[사찰음식기행] 가리왕산 골짜기 명이의 대합창

우관 스님과 함께 명이 찾아 떠난 여행길

2016-05-20     박찬일
 
이 나물이 어디에서 왔는가
 
“단식의 법이 있어요. 길이 있는 것이지요. 무작정 하는 게 아니라. 하루만 단식해도 몸이 가벼워집니다, 이런 얘기는 많이 들으셨죠?(스님은 ‘~죠?’ 하는 말투를 잘 쓰는데, 이것으로 대중을 끌어들이는 힘이 느껴진다.) 그게 전부가 아니여(이건 사투리다.^^). 아무것도 안 먹는 공포에 대한 나의 실험인 거라.”
 
나는 단식에서 공포를 떠올린다. 허기에 대해 무너지는 마음이 가엽고, 참아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 그리고 공황에 가까운 공포. 하루 이틀 안 먹는다고 안 죽는 줄 잘 안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우리의 마음을 속인다. 안 먹으면 죽는다, 너.
 
“그게 기도 없는 단식, 무모한 단식의 악폐랄까, 그런 거야. 좋은 소금과 물, 그리고 기도. 이게 없는 단식은 평면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스님, 단식 얘기가 우리 주제는 아니에요, 하하. 합승차 안에서 다 웃었다. 비워서 얻는 것. 그것이 어디 단식뿐이랴. 사람들은 이 사바에서 비우지 못해 결국 죄 짓고, 상처 입는다. 비우는 것에 대한 화두 하나를 얻는다.
 
차는 좋은 길을 달린다. 더러 막히곤 하는데, 올림픽이 평창에서 열리긴 하나보다. 굽고 거친 부분을 펴고 마른다.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하는데, 그건 우리의 행선지가 가리왕산이기 때문인 것 같다. 평창올림픽의 스키 슬로프가 생긴다는 영산靈山. 그 골을 까고 헐었다고 한다. 원상복구를 한다고 해도 그 영혼을 어찌 복구할지.
 
차는 이내 닿는다.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는 합승차가 힘겹다. 청아한 대기 사이로 봄기운이 스며든다. 정해수 사장이 맞는다. 우관 스님의 오랜 인연의 땅이다. 이 가리왕산 골짜기에서 스님은 늘 얻어가는 것이 있다.
“그냥 채소, 나물이 아니라 어떤 정수 같은 거예요. 골수, 정수. 여기에 있어. 자, 봐요, 어디 밭이 있나.”
 
과연 둘러보니 밭이 없다. 없는데 어디서 수확을 하는가. 자세히 보니 비탈진 땅에 줄도 맞추지 않은 풋것들이 듬섬듬성 보인다.
 
“요기 농사는 산에서 주는 대로 하는 것 같아. 싹 밀고 헐고 그런 게 없으니.”
 
정해수 사장이 일구는 사업체랄까, 아니 농장의 이름은 ‘아루농장’이다. 부친이 이미 가리왕산 농원이라는 이름으로 나물을 기르고 삶을 이으셨는데, 따로 이름 하나를 더 지었다. 아루는 귀여운 아들딸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딴 명명이다. 아이들이, 사람 타지 않고 수더분하며 귀엽기 그지없다. 고목에 정 사장이 매어놓은 그네를 타며 신이 났다. 강아지 한 마리도 마당을 폴폴 기어다닌다.
 
“우리 가족은 평창서 살고, 여긴 부모님이 상주하세요. 아이들 교육문제도 있고 해서. 우린 출퇴근 농부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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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꼼 내민 작은 싹, 이 아니 이쁜가
작물을 보기도 전에 밥상을 받았다. 능개승마, 곰취, 명이로 이루어진, 된장찌개 하나 올라간 시골밥상. 멀리서 객이 왔다고 좋은 고등어를 한 마리 조린 게 전부였다. 밥상은 슴슴했고, 된장도 심지어 염기가 적었다. 나물은 아직 이른 철인데, 일부러 여러 가지를 따 올렸다. 스님에 대한 공양이다. 여담인데, 이 밥상머리에서 나는 엄청난 양의 나물을 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가벼운 설사를 했다. 평소 내 몸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였다. 인스턴트, 야식, 과로, 음주, 고기…. 그렇게 익숙한 몸에 들어간 신선한 나물과 채소는 장을 공격했다. 몸이 받아내질 못했던 것이었다. 이건 일종의 역설이다. 내 장이 보여준 경고다.
 
우리나라에 나는 초본식물은 대략 8천 종이라고 한다. 그중 식용하는 것이 4~5백 종 정도. 물론 지역에 따라 더 많은 초본이 나물로 음식이 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제 그 나물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재배되는 것이라면 모를까, 캐거나 뜯고 갈무리할 사람이 없다. 우리가 시골 5일장에서 할머니들 좌판에 놓인 나물의 원산지며, 자연산 여부를 끊임없이 의문하는 것이 그것이다. “직접 따신 거예요?” 이런 말을 묻는 무례를 범한다. 땄든 아니 땄든, 묻기에는 쉬운 말이 아닐 터.
 
그러던 차, 이 농장의 나물들은 제각기 다른 향과 맛으로 봄을 알린다. 능개승마는 너무도 예쁘게 생겼다. 참가죽 나물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단풍색이다. 여린 싹과 줄기를 먹는다. 지장가리! 지장보살처럼 산촌의 어려운 살림과 몸을 넉넉하게 해준다 하여 붙은 이름. 풀솜대라는 이름이 있지만, 지장가리, 이 아니 이쁜가. 아아, 저 들과 산에 봄에 나는 것들이 모두 지장가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장보살이시여.
우리가 방문한 4월 중순은 아직 지장가리가 이르다. 하긴 모든 나물이 아직 겨울이다. 작은 싹을 내민다. 그저 쑥이나 지천일 뿐.
 
“조금 지나야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랍니다. 도시서야 봄이지만, 생물은 아직 이르거든요.”
 
봄 바다는 겨울 바다보다 차다. 겨우내 차가워진 상태의 절정이 봄이기 때문이다. 겨울 바다는 가을 바다의 결과일 뿐이다. 산촌도 마찬가지다. 5월이 되어야 진짜 봄, 나물의 대합창이 시작된다. 정해수 사장이 일구는 것은 종류가 많지는 않다. 요즘은 오미자에 힘을 쏟고 있다. 오미자나무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토질과 바람이 좋아서 일급 품질이다. 한 잔, 농축액을 받아 주시는데, 달고 진하다.
 
정해수 사장은 12년 전에 귀농했다. 회사를 쭉 다니다가 아버지도 이곳에 이미 나물을 거두고 있었으니, 큰 결심을 했다. 생각보다 살림은 나쁘지 않은데, 힘들기는 하다고 웃는다. 왜 아니겠는가. 가리왕산의 큰 기운 속에서 사람의 여툼이 어찌 호락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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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을 이어준다고 붙은 그 이름, 명이
경사진 등성이는 모두 푸르게 보인다. 명이 나물이다. 특산 채소다. 울릉도산이 있고, 오대산 쪽에서 자라는 종이 있는데, 두 가지가 모두 자란다. 기른다고 말하기도 좀 그런 것이 퇴비 말고는 농사답게 하는 게 없다. 거의 자연의 힘으로 기른다. 명이 나물. 수많은 사람들을 구황하므로 명을 이어준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란다. 사실, 나물에 구황 아닌 게 어디 있을까. 나물로 우리는 대를 이었고, 지금 우리가 여기 있다.
 
“명이는 아주 고급 나물이지. 요리를 못해도 맛있어(웃음). 장아찌도 좋고 무쳐도 좋고. 참가죽과 함께 참 좋은 나물입니다. 참가죽은 끓여놓으면 그 채수 국물이 아주 걸작이고.”
 
우관 스님의 나물 체험론이다. 스님이 우거하는 경기도 이천의 작은 절은 근처가 온통 스님의 먹거리 공급지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서는, 마침 싹을 틔우는 개두릅을 따서 주셨다. 엄나무 싹을 개두릅이라고 부른다. 너무 맛있어서, 어떤 이가 남들 먹지 말라고 개두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명멍설(?)이 있는 그 두릅이다.
 
아루농장 근처에도 참두릅나무가 꽤 있다. 주인 없는 나무들이 철마다 싹을 틔운다. 아무도 그 싹을 따서 참두릅 맛을 보는 이 없다. 그야말로 오지다.
 
“명이는 쉬운 농사가 아닙니다. 특히 오대산종의 명이는 화학비료 같은 걸 주면 뿌리가 다 녹아버려요. 기를 수 없는 나물을 기르고 있는 셈이에요. 게다가 얼마나 땅심을 따지는지, 한 해 지어 먹으면 다음 해는 명이 씨를 못 뿌립니다. 자라질 않아요.”
 
명이는 두 가지 종이 있다 했다. 울릉도종은 훨씬 잎이 크고 주름이 크게 있다. 반면 오대산 쪽의 종은 폭이 좁아 날렵하고 주름이 거의 없다. 매운맛도 후자가 강하다.
 
스님은 두 번째 사찰음식 책을 내고 있다. 이름하여 『보리일미』. 보리菩提. 참다운 마음과 깨달음, 우리가 평생을 바쳐 오르려는 깊은 산. 맛의 검박함과 겸허함, 부처님 마음으로 가는 음식의 진심을 얘기한다고 한다.
 
“이 책의 이름을 지어놓고 보니, 눈물이 나는 거야. 진짜 음식을 내가 하고 있었나, 중생구제라는 법도를 지키고 있었나 이런 마음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스님이 나물을 요리하기 시작한다. 좋은 나물 요리법. 귀가 쫑긋한다.
 
“데쳐서 집간장과 들기름, 통깨. 대개 이렇게만 해도 맛있어요. 나물이 좋아야지. 진짜 핵심이 되는 재료가 좋아야지. 기술이 다 무엇이야. 허명이야. 잘 기른 것, 잘 자란 것. 마음이 있는 것을 찾아서 써야 해요.”
 
명이는 그대로 겉절이로 무쳐도 맛있고, 데쳐서 무치기도 하며, 무엇보다 장아찌로 제격이다. 줄기가 두껍고 힘이 있으며 너르니 장아찌로 해놓으면 먹을 게 있다. 게다가 향도 좋은 나물이니까.
 
“비가 오네. 이 비가 오면 산에 나물들은 다 제 근기대로 받아서 자랄 거야. 목마른 놈이 비를 더 많이 받을 거고.”
 
스님 말씀이 알듯 말듯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창 밖으로 봄이 바삐 손을 흔들며 강원도 방향으로 지나갔다.    
                                    
촬영협조. 가리왕산 농원, 010-8918-4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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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명이 300g, 굵은 소금 약간
● 나물양념 : 감식초 2큰 술, 고추장·유기농설탕·매실발효액·참깨가루 
1큰 술씩, 생강즙 1작은 술
 
 
만드는 법
1. 명이는 깨끗이 씻어서 끓는 물에 굵은 소금을 넣고 줄기부터 잎 순으로 살짝 데친다.
2. 데친 명이를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꼭 짠다.
3. 명이를 4cm 길이로 먹기 좋게 썬다. 
4. 손질한 명이에 나물양념을 넣고 골고루 무쳐 그릇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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