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세계명상대전 현장 스케치와 세기의 무차토론

2016-04-11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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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구도의 열기
2016년 2월 26일 아침 6시, 강원도의 차디차고 맑은 아침이 밝아온 가운데 컨벤션홀에는 1,500여 명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1시간가량 진행되는 아침 명상을 위해서다. 일동 침묵.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오직 오고가는 발소리만 가벼이 들릴 뿐. 참석자들은 스크린에 비춰진 부처님께 삼배의 예를 올렸다. 

“자타일시 성불도” 

합장한 손, 살짝 감은 눈, 곧게 핀 허리, 가지런히 모은 두 발…. 고요한 가운데 예불이 진행된 컨벤션 홀에는 여느 사찰 못지않은 경건함이 묻어났다. 강원도 정선에서 펼쳐진 용맹정진의 3박 4일은 뜨거운 구도열로 가득 했다. 누가 특별히 시킨 것도 아닌데 명상을 쉬는 시간에도, 식사시간에도 경건한 고요함은 계속 됐다. 

오전 10시, 대회에 모신 네 명의 선사 중 처음으로 혜국 스님이 수행지도의 문을 열어 법문과 질의응답에 나섰다. “왜 수행하느냐? 탐진치 삼독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다.”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간화선에 대해 설하시다 혜국 스님께서는 버럭 호통까지 치신다. 하지만 지척에서 지켜보니 오히려 큰 목소리로 구도하심이 인자하게 느껴진다. 


| 말로 할 수 없음을 말로 설하다, 무차토론
2016년 세계명상대전에서 가장 큰 이슈는 이날 오후 펼쳐진 세기의 ‘무차無遮’ 토론이었다. 무차토론이란 차별 없이, 사전의 각본도 없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각자의 의견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장이다. 이날 오후 2시 하이원리조트 컨벤션홀에서 펼쳐진 이번 토론에는 한국의 혜국 스님, 태국의 아잔 간하, 영국의 아잔 브람이 참여했다.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 선승인 혜국 스님께서는 문화적 차이나 언어적 불통의 여지를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일까? 토론의 시작부터 언어로 풀이하기 힘든 화두의 큰 주제를 던졌다. 

“모든 업이란 내가 만듭니다. 처음에는 내가 만들었는데 나중에는 업이 나를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그 업이란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있다고 본다면 있는 것은 없앨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있는 걸로 착각하면 집착이요, 놔 버리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없는 곳에 깨달음이 있습니다. 깨달음이 이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무념 상태에 안 가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지극히 미묘하고 미세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리이며, 말로 이해할 수 없고 생각으로도 이해할 수 없고 침묵으로도 통할 수 없습니다. 생각에 속지 말며 침묵할 줄 아는 나. 그 나는 있는 나가 아니고 있지도 아니 하고 없지도 아니 하고 존재 자체인 연기이기 때문입니다.”  

아잔 브람께서 답하신다. 

“(스승이신) 아잔 차 스님께서 제 마음이 고요한 이유를 알고는 저에게 깨달음을 주려 하셨습니다. 저를 이렇게 쳐다보시더니 물어보셨습니다. ‘왜?’ 저는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그다음에 스님께서 왜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이제 너에게 왜라고 물었던 질문에 답을 주겠다.’ 저는 굉장히 설랬습니다. 그때 저를 바라보시며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 공. 무.’ 그리고 저를 다시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이해하나? 정말?’ 하셨습니다. ‘네’ 했더니 ‘아니다, 너는 모른다,’ 하십니다.”
다음 차례인 아잔 간하는 통역의 한계, 각 불교 문화권의 차이 때문인지, 그저 묵묵부답이다. 한국 불교에 궁금한 점이 무엇이요, 간화선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여쭈어도 그저 말씀을 못 하신단다. 도리어 아잔 브람에게 “내가 답할 시간을 가져가라.” 하시며 “나는 본래 말을 잘 못한다. 그저 얼굴 보여주러 온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아무것도 없다. 가르침의 책임을 아잔 브람에게 넘기겠다.” 하신다.

깨달음은 이해도 아니요, 생각도 아니요, 말 또한 아닌 것이다. 언어 아닌 것을 언어로 설하자니 오히려 입을 다무는 아잔 간하가 이해될 법도 하다. 혜국 스님은 답 아닌 답을 던지시는 두 분 스님께 계속 질문하신다.

“아무것도 없다 했는데, 아무것도 없다 그러는 그놈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답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답이 있을 뿐입니다.” 아잔 브람이 답하신다. 혜국 스님과 아잔 브람 사이에 대화가 이어졌다.

“간화선과 남방불교의 차이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다 하는 그 사람이 있을 때에만 말이 나옵니다. 간화선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이치라면 아무것도 없는 언어가 나옵니다. 아무것도 없다,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서 백척간두 진일보하여, 아무것도 없다는 그놈과 아무것도 없는 것이 완전히 일치하면 그때 모든 말이 다 답이 됩니다. 위빠사나에서는 ‘주시한다’, ‘바라본다’, ‘마음 챙김’이라 하는데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생각하는 것 일체가 환영입니다. 환영인 줄 알고 주시하며 마음을 챙깁니까? 환영을 인정하지 않고 마음을 챙기는 겁니까?” 

아잔 브람이 답한다.

“저는 여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공항에 자주 가는데요. 제가 누군가에게 묻습니다. 화장실이 어디 있나요? 그러면 사람들은 화장실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가리키며 저기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 표지판에 소변을 보는 시늉을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아잔 브람 도대체 뭐합니까?’ 합니다. 화장실이라는 표지판은 화장실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논쟁을 하는 것은 결국 화장실을 가지 않고 화장실 문에다가 소변을 보는 일입니다. 그래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담마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더 이상 논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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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으며 명상하다
27일 대전 시작 셋째 날 아침에도 명상대전 참가자들은 고요한 가운데 구도의 길을 걸으려 아침 예불에 참석했다. 이어진 명상에서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정적과 고요 속에 평화를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오전과 오후에 각 한 차례씩 대만의 심도 선사는 호흡관과 행선 시범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신도 50만 명을 자랑하는 영취산 불교교단의 선원장이기도 한 심도 선사는 대만에서 한국까지 신도 10여 명을 대동해 행선 시범을 보이도록 해 1,500여 명의 참석자에게 편이를 제공했다. 중국 영취산 불교교단의 신자들은 호흡을 길게 들이쉬고 내쉬며, 한 발을 천천히 들어올린 후 다리를 들었다가 한 쪽으로 조용히 내려놓는 행선 시범을 보였다. 심도 선사는 이 모든 과정에서 마음을 차분히 하고 움직임을 천천히 조절하는 ‘내려놓기’가 중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 마지막 날, 드디어 입을 연 아잔 간하
28일, 대전 마지막 날 무차토론에서 침묵을 지켰던 아잔 간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동한 그의 수제자 아잔 사마히의 입을 빌려, 아잔 간하는 한국의 불자들에게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사탕을 참석자들에게 뿌려 축복을 기원했다.  법을 청하는 대중의 요청에 아잔 간하는 수제자를 보며 “나보다 나의 제자가 설하는 것이 대중에게 나으리라.” 하셨다. 아잔 간하의 수제자 아잔 사마히는 스승을 대신하여 “법의 수행을 일상생활에서도 잊지 마십시오. 특히 가정에서 법을 수행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며 짧은 법문을 전하고 “이번 명상대전은 참으로 놀랍고 대단한 기회였으며 특별한 행사였다.”고 세계명상대전의 의미를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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