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물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

2016-04-11     김남선
김남선 불교여성개발원 명상리더십센터장

“공부라는 것이 정녕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공부의 노예가 되었을까. 한창 꿈 많고 재미있어야 할 학창 시절에 우리는 왜 공부에만 얽매여 있어야 하는 것일까. 진정한 친구를 사귀고 싶고 교우관계 때문에도 고민하고 싶은 우리인데 매번 ‘시험’, ‘성적’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제쳐 볼까.’ 하고 고민한다. ‘옆에 있는 짝도 적이야. 어떻게 하든지 그 사람을 꺾어야 해.’ 담임선생님의 말씀. 자기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사랑하고픈 친구를 원하는 우리에게 친구 모두가 적이라니, 그리고 그들을 눌러 이겨야 한다니 마치 전쟁을 하는 것 같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식민지 쟁탈전처럼 입학 성적을 놓고 친구들과 싸우는 이 신세. 이제 공부라는 것이 정말 싫다. 학교에서 밤새워 공부한 것을 숨기고 숨기는 것도 정말 싫다. 친구에게 접근하여 얼마나 공부했는지 탐색하기도 지겹다. 진정으로 나를 좋아하고 따르는 친구를 이기는 걸 목표로 두고 공부하는 생활을 언제나 그만두려나. 진정으로 나를 좋아하는 친구를 나의 경쟁자로 의식하고서 친하게 지내는 내가 미치도록 싫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공부를 중단할 수 없는 내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참된 인간성보다 자신의 목적 달성에 얼굴 붉히는 그런 세상이니까 말이다.

친구의 편지 내용이 생각난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름다운 바람이 불어올 때 잠시 그 바람을 쐬기 위해 기다렸다가는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삭막한 세상이지만, 남들이 다 앞으로 전진하더라도 자신은 그 바람을 쐬며 기다리겠다고. 더 좋은 말이 많았는데 생각나지 않지만 그 편지는 나의 얼어버린 마음을 녹여주었다. 잠시 잠깐이지만 이 삭막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내게 밝은 태양이 되어 주었다. 아! 지금은 그 친구 생각을 하고 싶다. 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파도가 되어 다가가고 싶다던 그 친구를….”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고민 나누기 시간에 쓴 것입니다. 친구를 원하는 소녀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춘기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자립과 독립을 원하게 되고 스스로 무엇인가 해보고 싶어합니다. 지금까지 정신적 탯줄과도 같았던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홀로 서고자 하는 것이 그 신호입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지요. 바로 또래친구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학생들 대다수가 고민이 있을 때 상의할 수 있는 상대가 친구라고 대답합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안정감을 갖고 싶어서 친구를 찾게 되고 또래집단에 끼고 싶어합니다. 또래는 비슷한 연령 혹은 비슷한 성숙 수준에 있는 아동이나 청년을 말합니다. 이때는 가족과의 상호 작용은 급격히 감소하는 반면 대부분의 시간을 또래와 함께 보냅니다. 성격이나 흥미가 비슷하거나 능력 등에서 유사한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 경향이 있지요. 때로는 흡연을 하거나 음주, 약물 복용을 같이 하면서 친구 집단에 끼기도 합니다.

우리 반 여학생이 집단 구타를 당해 입원까지 하게 생겼는데도 자기를 때린 사람의 이름을 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형사인데도 말이지요.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랍니다. 또래친구들이 매를 맞고서 함께 놀 것인지 집단에서 나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해서 자신은 맞는 쪽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간절하게 친구하고 같이 있고 청소년에게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라면서 나무란다면 그렇게 말하는 부모나 어른들에 대한 분노가 생긴답니다.

현대사회에서 변화의 속도는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데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부모에게 익숙한 내용 그리고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들 중 많은 것이 자식 세대에는 더 이상 맞지 않아서, 청소년들은 친구들과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합니다. 사춘기, 청소년기의 정신적・육체적 변화로 불안하고 당황스러울 때 그 변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도록 돕는 것도 친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기의 우정의 질은 청소년들의 정체성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비행 또래집단인 경우 악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집단의 가치규범대로 따라하기 때문에 비행에 연루되기도 합니다. 친구를 가려서 사귀어야 할 때이지요.

친구는 기쁨을 두 배로 늘려주고 슬픔을 반으로 줄여주고(실러),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다(그라시안). 심지어 괴테와 같은 이는 인생으로부터 우정을 없앤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태양을 없애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은 시를 통해 “그대는 그런 친구를 가졌는가?”란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좋은 벗이 있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말했듯 지고의 행복입니다. 자녀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좋은 성적을 얻는 것보다 건강한 우정을 쌓아가도록 돕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중3 여학생이 호소했듯이 경쟁중심의 교육구조 속에서 마음을 다하여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어려운 형편입니다. 대학에 가서도 취직에 필요한 스펙을 쌓느라 친구 사귈 겨를이 없다고 하네요. 밥도 혼자 먹는 ‘혼밥’, 자발적 아웃사이더인 ‘아싸’가 되는 학생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집에서 스마트폰 보고 컴퓨터 하면서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편안함만 추구하는 것은 결혼생활마저도 불편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만일 그대가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는다면 어떠한 난관들도 극복하리니 기쁘게 사귀며 그와 함께 가라. 만일 그대가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지 못한다면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듯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나보다 나을 것이 없고 내게 알맞은 벗이 없거든 차라리 혼자 착하기를 지켜라. 어리석은 사람의 길동무가 되지 말라.”

『숫타니파타』와 『법구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사춘기 청소년의 부모가 먼저 좋은 벗의 모델이 되어주면 자녀가 성숙한 벗을 만나는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스스로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주라고 청소년에게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녀가 외뿔소처럼 혼자 가는 것보다 인생의 빛인 벗을 갖도록 도움 주는 일이 값진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아파트를 물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요. 부모가 안심하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복이 되기도 하고요.

 

 

김남선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역사 교사로 37년 간 지냈다. 참교육상담소 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마음자람원 대표, 불교여성개발원 명상리더십센터장으로 사람들의 마음 자람을 돕고 있다. 『행복을 가꾸는 교실』, 『생활명상』, 『인성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등 10여 권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