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정신치료] 수행의 길에서 만난 불교 정신치료

2016-04-11     전현수

전현수 박사는 지난 30년간 정신치료와 불교공부, 수행을 통해 자신의 불교정신치료의 체계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초기불교 경전을 철저히 공부하고 경전에 입각한 수행(사마타와 위빠사나)을 통해 우리 존재(몸과 마음)의 본질을 이해하고 존재가 왜 괴로울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하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를 연구하였습니다. 이번 기획연재는 전현수 박사가 올해 3월부터 12월까지 10회에 걸쳐 서울 법련사에서 강의한 ‘불교정신치료 워크숍’을 지면으로 옮긴 것입니다. 이번 워크숍 강의를 통해 불교정신치료의 체계를 공유하길 바랍니다. - 편집자 주.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10회에 걸쳐 불교와 정신치료를 주제로 강의할 전현수입니다. 이 강의를 준비하면서 30년 가까운 나의 노력이랄까, 내가 걸었던 길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 만약 여러분들에게 어떤 목표가 생겼을 때 ‘아, 저분은 저렇게 했으니까 나는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하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또 그냥 적용해볼 수도 있고,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의 불교정신치료는 세 가지 원리에 입각해 있습니다. 첫 번째 원리는 몸과 마음의 속성에 대한 것입니다. 두 번째 원리는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를 아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리는 지혜를 계발하는 것입니다. 각각의 원리들을 두 번에 걸쳐 다루고, 그 토대 위에서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우리가 만나는 환자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다음 시간에는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치료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맨 마지막 시간에는 앞으로 불교정신치료자가 되려고 마음먹는 사람들이 어떤 공부를 하고 무슨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이야기할까 합니다.

 

| 불교정신치료는 가능한가?

제가 지난 30년간 품은 가장 큰 의문은 과연 불교가 정신치료가 될 수 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나 융의 분석심리학이 있듯, 불교정신치료도 과연 가능한 것인가를 살펴봤습니다. 불교정신치료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30년이 걸렸습니다. 나름대로 불교정신치료의 체계를 세우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하는 것도 여러분들한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985년, 불교에 있어 저의 첫 번째 스승인 고익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수행을 철저히 하셔서 불교에 대한 의문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분을 1985년 봄에 만나게 됐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가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불교란 것은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완벽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정신의학이라는 것도 결국은 인간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거 아니겠나. 내가 생각하기는 괴로움을 없애는 완벽한 불교 시스템의 용어만 좀 바꾸면 정신의학의 훌륭한 시스템이 될 거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와! 이 분 대단하시구나. 이 분이 가르친다면 가서 배워야 되겠구나.’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1985년 11월부터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인 고익진 선생님에게 불교를 배웠습니다. 그중 업설을 배웠는데, 세상이 어떻게 구성이 돼 있고 어떤 원리로 움직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듣고 눈이 확 뜨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교는 진리구나! 이걸 내가 평생 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업설을 배우고 생활 속에서 배운 것들을 실천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결혼생활에도 도움을 받고 힘든 정신과 레지던트 생활 때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업설을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배우면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불교를 정신치료에 이용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정신치료 속에 불교적인 요소를 넣으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익진 선생님께서 1988년에 돌아가시고 2003년까지 불교공부 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암흑기였죠. 그때 정신치료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동식 선생님이라는 분께서는 한국정신치료학회를 창립하고 도정신치료학파를 창시했습니다. 그 선생님에게 1988년 11월부터 1992년 12월까지 4년 2개월 동안 분석을 받았어요. 또 이동식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사례지도를 받고 정신치료 세미나에 참석하여 정신치료를 배웠습니다. 그 후 2003년에 미얀마에 가서 위빠사나 수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관찰을 통해서 몸과 마음의 속성을 알아 환자 치료에 적용했습니다.

 

| 인간을 이해하는 틀, 정신치료

저의 불교정신치료의 다음 여정은 빨리어로 된 초기불교경전인 『니까야』를 거의 다 읽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존재는 무아無我로 우리 자신을 통제를 못하여 괴로움을 겪어야 하고, 죽으면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윤회하면서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불교가 심리학이고 정신치료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부처님의 가르침 중 많은 것을 터득했지만, 아직 선정을 경험하지 못하였고, 윤회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걸 경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병원을 닫고 수행에 전념하여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수행을 마치고서 불교정신치료에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불교정신치료가 가능한지 알기 위해서는 정신치료가 어떤 속성을 가졌는지, 또 본질이 뭔지 좀 더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살펴보고 난 뒤에는 더 확신을 가지게 됐죠. 정신치료의 종류가 굉장히 많습니다. 1986년에 카라수Karasu라는 사람이 조사를 해보니까, 그 당시에 정신치료학파가 400개 이상 됐어요. 제가 최근 2016년 3월에 수정된 위키피디아를 보니까, 1천 가지 이상의 정신치료가 있습니다.

정신치료는 본질적으로 어느 학파든지 인간을 이해하는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파를 만든 창시자에 의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틀이 만들어지고,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 속에서 치료 작업을 함으로써 환자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이때 문제를 가진 사람은 치료자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고 느껴야 되고, 또 자신의 문제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치료자는 문제를 가진 사람과 관계형성을 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대표적인 정신치료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니다, 또 중요한 정신치료가 융의 분석심리학,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칼 로저스의 내담자 중심치료가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이 네 사람에 대해 읽으면서, ‘아! 이 사람들이 전부 다 인간을 보는 틀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고, 치료 장면에서 그런 것들이 나타나는 걸 확인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관심 있으시면, 프로이트의 경우는 『나의 이력서』, 융은 『정신치료의 목표』, 아들러는 이번에 일본 사람이 쓴 『미움받을 용기』, 칼 로저스는 한국정신치료학회에서 나오는 『정신치료』지 제4권 제1호에 이장호 선생님이 쓴 「칼 로저스에서의 공감」을 보면 됩니다.

각 학파에서 인간을 보는 관점과 문제의 해결은 그 학파 창시자의 관찰과 경험의 산물입니다. 그 창시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관찰하고 체험하는 가운데 생겨난 겁니다. 창시자 자신의 경험 속에서 확인되고 또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가운데 그런 것들이 확인될 때 나름대로 그것이 진리나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고 창시자는 확신하게 됩니다. 그것을 내담자나 환자와 같이하면서 더 확고해지거나 부적합한 것은 수정합니다. 그래서 각 학파의 치료자 훈련은 치료가 그 학파에서 필요로 하는 경험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그 학파에서 인간을 보는 관점과 그 관점의 틀에서 문제해결을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 보편성을 지닌 정신치료, 불교

그리하여 불교는 훌륭한 정신치료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부처님의 경험에서 시작된 불교도 충분히 정신치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불교에는 인간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습니다. 그것도 머릿속 사유를 통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본 것을 바탕으로 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습니다. 이 관찰이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관찰을 통해서 봤다는 것은 다른 사람도 다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보편적인 경험의 토대가 되는 게 관찰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관찰을 통해 있는 그대로 본 것을 바탕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한 보편적인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교는 초기불교를 말합니다. 초기불교는 자신의 몸과 마음 또 세상에 대해 관찰을 통해 정확히 알고, 거기에 근거하여 괴로움이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입니다. 관찰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과 선정을 통해 지혜의 눈을 계발해서 궁극적 실재인 물질과 정신을 보는 관찰이 있어요.

불교는 우리와 세상에 대해 정확히 알고 난 뒤에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겁니다.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근데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손해가 될 일을 합니다. 거기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혜로워지면 자신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환자들을 보면 손해 보는 일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저의 작업은 어찌 보면 손해 보는 일을 멈추고, 이익 되는 일을 하게끔 도와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신 불건강이나 정신적인 문제는 우리에게 손해되는 것이 누적될 때 일어납니다. 부처님은 자신이 관찰하고 경험한 것이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을 충분히 검토했습니다. 그게 경전 곳곳에 다 있습니다. 부처님 스스로 ‘아! 이거는 보편적인 진리다.’ 하고 난 뒤에 사람들을 가르쳤어요. 가르쳤더니 사람들이 깊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부처님의 경험을 똑같이 경험했습니다. 똑같이 경험했다는 것은 보편적이라는 말이고, 그것이 곧 진리라는 겁니다. 그것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어요.

초기경전은 전부 다 그런 증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장로게, 장로니게는 그 자체가 증명이죠. 초기경전은 전부 증명 시스템이에요. 부처님 자체가 철저히 증명하고 제자들이 증명하고 또 제자 상호간에 또 증명하고….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한 건 진실이에요. 불교의 모든 것은 관찰입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에 전부 증명됩니다. 제가 볼 때는 윤회가 맨 마지막에 증명될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불교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과거의 어느 정신치료학파 창시자의 이해보다도 더 검증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하면 그리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초기 불교경전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근거로 어떤 방법을 통해 사람들의 괴로움을 없앴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기록입니다.

불교정신치료는 검증된 진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다른 정신치료는 한 개인의 경험과 학설이 진리라는 측면에서 확실하게 충분하게 검증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 의해 수정되기도 하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가 아닌 것에 기반하면 실제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모르면 모른다고 생각하고 자세히 지켜보는 자세가 과학적입니다. 불교가 가진 인간 이해에 근거해서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불교정신치료자는 그 개인이 처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충분히 듣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돼요. 그것 없이 그저 불교 교리만 듣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의 인생을 충분히 듣고 그 사람이 가진 문제를 풀게끔, 불교적인 요소를 적용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글을 쓰며, 저의 뿌리가 불교이기 때문에 불교정신치료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불교 용어는 하나도 쓰지 않습니다. 관찰을 통해서 터득한 보편적인 경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 가서 발표할 때 때로는 ‘지혜 치료wisdom therapy’라는 이름을 씁니다. 불교가 지혜입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이 보편적이므로 그 경험을 어떤 종교 배경을 가진 사람이든 관계없이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이 처한 상황과 문제에 대해 탐색하고 논의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때 내담자나 환자는 치료자가 자신과 자신의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한다고 느껴야 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딴소리하고 엉뚱한 소리 한다.’고 생각하면 치료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교정신치료의 원리를, 개인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현수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의대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미얀마에서의 위빠사나 수행을 비롯한 수개월의 집중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의 작동 원리를 탐구하고 그 결과를 치료에 적용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생각사용 설명서』, 『노동의 가치, 불교에 묻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