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계와 순경계에 동요하지 않는다

2016-03-31     김성동
이득손실 명성악명 칭송비난 행복고통
세상법은 세상따라 세상다시 세법따라 (A8:5)
이러한 『앙굿따라 니까야』의 부처님 말씀처럼 이득과 칭송 등의 좋은 경계와 손실과 악명 등의 나쁜 경계라는 세상법은 중생세상을 항상 따라다닙니다. 즉 부처님을 포함한 모든 중생에게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중생들은 좋은 경계에는 즐거워하고, 나쁜 경계에는 싫어하면서 세상법을 따라갑니다. 이러한 현상은 남녀노소, 지위고하, 재가와 출가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위빳사나 수행에 있어 순경계와 역경계,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역경계, 생겨난 그대로 관찰해야
위빳사나 수행이란 실제로 분명하게 존재하는 물질과 정신의 성품을 사실대로 바르게 관찰하는 수행입니다. 지금 현재, 즉 볼 때, 들을 때, 냄새 맡을 때, 맛볼 때, 닿을 때, 생각할 때, 여섯 문에서 분명하게 생겨나는 물질과 정신을, 혹은 『대념처경』의 가르침에 따라 표현하자면 몸, 느낌, 마음, 법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관찰을 시작해서는 여섯 문에서 생겨나는 모든 법들을 다 따라서 관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하시 위빳사나 방법에서는 더 분명하고 거칠어서 관찰하기 쉬운 물질부터, 그중에서도 호흡을 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생겨나기 때문에 배의 부풂과 꺼짐을 기본 대상으로 두고, 그보다 더 분명한 대상이 생겨나면 그 대상을 관찰했다가 다시 부풂과 꺼짐으로 돌아오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마하시 위빳사나 방법을 기본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물론 수행자들마다 차이는 있지만(A4:167 등을 참조) 이렇게 물질과 정신을 처음 관찰할 때는 보통 역경계에 많이 접합니다. 즉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운 느낌이 많이 찾아옵니다. 다리의 저림, 허리의 뻐근함 등 수행을 해서 새로 생겨나는 고통뿐만 아니라 이전에 겪었던 여러 질병과 관련된 고통들을 겪기도 합니다. 또한 졸음이 심하게 오기도 하고, 망상도 걷잡을 수 없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에는 그것을 억지로 없애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러한 현상들도 분명하게 생겨난 물질법과 정신법이기 때문에 그것을 생겨난 그대로 관찰해야 합니다. 즉 아픔이 생겨나면 ‘아픔, 아픔, 아픔’하며 그 아픈 부위에 마음을 두고서 아파하는 느낌, 또한 그 통증이 심해지는지 약해지는지, 한 곳이 아픈지 다른 곳으로 옮겨다는지 등을 관찰해야 합니다. 관찰하다가 중간에 통증이 사라지면 다시 부풂과 꺼짐이라는 분명한 대상으로 돌아가 관찰하면 됩니다. 졸음이라는 역경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장애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단계에서는 졸음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때도 ‘졸림, 졸림, 졸림’ 등으로 몸의 무거움, 나른함을 관찰한 뒤 만약 졸음이 사라졌다면 다시 부풂과 꺼짐으로 돌아가 관찰하면 됩니다. 그래도 계속 졸린다면 ‘앉음, 닿음’ 등으로 주제를 잠시 바꾸든가 눈을 떠서 앞에 보이는 대상이나 밝은 빛에 마음을 두고 ‘보임, 보임; 밝음, 밝음’ 등으로 관찰한 뒤 다시 부풂과 꺼짐으로 돌아갑니다. 망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망상을 억지로 없애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생겨난 대로 ‘망상함, 망상함; 생각함, 생각함’ 등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만약 중간에 배의 부풂과 꺼짐이 분명하게 드러나면 그것이 망상이 사라졌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그렇게 망상이 사라지면 다시 부풂과 꺼짐으로 돌아가 관찰해야 합니다.

수행 초기에 겪는 이러한 역경계들을 잘 극복하고 계속 수행을 해나가다 정신·물질 구별의 지혜, 조건파악의 지혜, 명상의 지혜를 거쳐 생멸의 지혜에 이르면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여러 가지 순경계들을 경험합니다.(역시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이것을 위빳사나 경계, 혹은 부수번뇌(upakilesa)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광명, 지혜, 희열, 경안, 행복, 확신, 분발, 확립, 평온, 욕구라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광명을 예로 들자면,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밝음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아주 짧은 순간 정도만 지속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계속해서 밝은 듯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아주 작은 크기로 생겨날 때도 있지만 때로는 큰 쟁반이 빙글빙글 돌듯이, 또는 수행센터 전체가 밝은 듯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때 광명이라는 순경계에 집착하여 ‘이것이 열반이다’라는 등으로 생각하거나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밝은 광명을 즐기며 수행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 생각하거나 즐기면서 수행을 놓아 버리는 수행자들의 지혜는 점점 퇴보합니다. 따라서 수행이 퇴보하지 않도록 이 광명을 ‘밝음, 밝음, 밝음’ 등으로 관찰한 뒤 계속해서 분명하게 생겨나는 물질과 정신들을 관찰해 나가야 합니다. 나머지 아홉 가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형성평온의 지혜, 여여
생멸의 지혜의 초기에 나타나는 위빳사나의 순경계들도 극복한 뒤 계속해서 수행해 나가다 무너짐의 지혜를 거쳐 두려움의 지혜, 허물의 지혜, 염오의 지혜 단계에 이르면 계속해서 소멸하는 성품만 분명하기 때문에 힘이 없는 것처럼, 넌더리가 나는 것처럼, 이유 없이 슬픈 것처럼 됩니다. ‘지금 관찰하고 있는 대상들 중에 좋아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무엇을 관찰하더라도 다 혐오스러운 것일 뿐이다.’라는 등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는 숙소에서 우는 수행자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또 수행을 그만두지도 못합니다. 어떻게 보면 다시 미세한 역경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지도하는 스승들은 “지혜가 향상되어 단지 성품들의 소멸을 잘 관찰해서 그런 것입니다. 원래 그러한 단계에 이르면 그러한 성품이 생겨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지 두려움이나 지겨움, 슬픔 등도 즉시 관찰하면 머지않아 극복할 것입니다.”라고 격려하며 지도해야 하고, 수행자는 지도에 따라 그러한 역경계들이 생겨날 때마다 즉시 관찰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역경계들을 극복한 뒤 벗어나려는 지혜, 재성찰의 지혜를 거쳐 형성평온의 지혜에 도달하면 비록 아직 모든 번뇌들을 다 제거한 아라한은 아니지만, 순경계와 역경계에 어느 정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두려워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과 만나더라도 싫어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대상을 만나더라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별하게 힘들여 관찰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마치 저절로 되듯이 관찰이 진행됩니다. 또한 한번 관찰을 시작하면 오랫동안 그 상태가 유지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지혜가 미세해지고 예리해집니다. 다른 대상으로 잘 달아나지도 않습니다. 일부러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더라도 달아나지 않습니다. 이때는 특별히 해야 할 것이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수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형성평온의 지혜에 도달하면 어느 정도 순경계와 역경계를 극복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닙니다. 위빳사나 관찰을 하는 동안만 억압된 상태입니다. 마음의 연속에 잠재된 상태로는 여전히 탐욕, 성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더욱더 위빳사나 수행에 매진하여 수다원 도의 지혜로 사악처에 태어나게 하는 탐욕과 성냄을 제거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역경계가 다가오더라도 사악처에 태어나게 할 정도로 강한 성냄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순경계가 다가오더라도 사악처에 태어나게 할 정도로 강한 탐욕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사다함 도의 지혜로 거친 감각욕망 탐욕과 성냄을 제거하고, 아나함 도로 모든 감각욕망 탐욕과 성냄을 제거한 뒤, 드디어 마지막 아라한 도로 남아 있는 다른 모든 번뇌를 제거해 버리면, 마치 굳게 박힌 돌기둥이 강풍에도 동요하지 않듯이 아무리 좋고 나쁜 대상이 다가오더라도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순경계와 역경계에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여여(tādi)라고도 말합니다.


육감관에 육대상이 강렬하게 나타나도
아라한은 동요없네 사라짐을 관찰하네
굳게박힌 돌기둥이 강품에도 동요없듯 (A9:26)
여러분 모두가 경계에 여여한 아라한이 되시길 기원하면서….                                                   

 
일창 스님
1996년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해인사 백련암에서 원융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범어사 강원을 졸업하였고 2000년, 2005년 두 차례 미얀마에 머물면서 미얀마어와 빠알리어 등을 공부하고 찬매 센터, 파욱 센터, 마하시 센터 등에서 수행하였다. 현재 한국마하시선원에서 지내며, 위빳사나를 지도하고 있는 우 또다나 스님의 통역을 도와드리고 있다. 옮긴 책으로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윗빳사나 백문백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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