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남대학교 철학과 이중표 교수

교수연구동 내 그의 연구실은 책과 각종 자료로 둘러 싸여 있다. 그는 “천성이 잘 치우지 못합니다.”고 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연구실은 세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다. 내딛는 발끝에서 ‘삐걱’하고 소리가 났다. 얼핏 봐도 오래된 공간이다. 1989년에 당시로는 생소한 주제인 ‘아함의 중도체계 연구’로 동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문적 스승인 고익진 교수의 영향 때문이다. 이후 이곳 전남대 철학과에서 ‘아함’을 주제로 수많은 가지를 뻗어가며 연구 성과를 세상에 내놓았다. 최근 그는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을 주제로 서울, 광주, 구례 등에서 연속 강좌를 했다. 반응이 좋았다.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은 새로운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교계 매체에 보도된 내용으로는 이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다른 이가 아닌, 아함을 꾸준하게 연구해온 이중표 교수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 『금강경』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 니까야로 『금강경』을 읽으면 (한문번역과) 어떤 점이 다른가?

“『금강경』은 총 6개의 번역본이 있다. 우리나라는 가장 오래된 구마라집 번역본을 본다. 구마라집은 중국 사람들이 『금강경』을 통해서 무아無我를 깨닫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구마라집 『금강경』은 깨달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인도에서 『금강경』을 만든 사람들의 취지는 불교의 목적이 개인의 성취, 아라한이 아니라, 깨달음을 향해서 함께 가는 삶, 즉 보살승에 있다. 구마라집 번역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금강경』의 본래 취지를 흐리고 있다. 이런 취지를 이해하면서 『금강경』을 읽자는 것이다.”

- 예를 들어 설명해달라.

“『금강경』 첫 장면은 부처님이 탁발하고 와서 옷과 발우를 수습하고 발을 씻고 앉는다. 그 이야기가 『금강경』을 이해하는 첫 출발이다. 그때 수보리가 뭐라고 하는가? ‘희유하십니다’ 하고 찬탄한다. 여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금강경』 전체가 잘못 꿰진다. 부처님께서 단순히 옷과 발우를 수습하고 발을 씻었다고 했는데, 니까야를 읽으면 왜 이 장면이 중요한지 알 수 있다.”

- 왜 이 장면이 중요한가?

“『맛지마 니까야』 「보디 왕자에게 설하신 경」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박가국의 보디 왕자는 화려한 궁전을 완공하고 부처님을 초대한다. 그는 아무도 밟지 않은 계단에 융단을 깔고 부처님에게 맨 처음으로 오르시길 청한다. 부처님은 융단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왕자는 거듭 청하지만 부처님은 침묵한다. 이를 본 아난다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왕자여, 융단을 거두십시오. 세존께서는 융단을 밟지 않으십니다. 여래는 가장 낮은 사람을 바라봅니다.’ 부처님은 이런 분이다. 항상 가장 낮은 사람을 바라보며 사신 분이다. 『금강경』 첫 장면은 부처님의 일상에서 이런 뜻을 보라고 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금강경』 첫 장면은 부처님의 일상을 그대로 드러낸 장면이고, 부처님의 일상은 중생의 삶을 살피는 것이며, 부처님이 맨발인 것은 신발이 없어서가 아니라 맨발로 중생의 삶을 함께하기 위함이다. 부처님은 우리들과 보살들에게 그 길을 함께 가도록 가르치고 부촉하신 것이다. 니까야로 『금강경』을 읽으면 부처님께서 보살들에게 가르침을 부촉하셨다는 것과 그 부촉을 받들어서 사람들이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실천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그가 쓴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 강연을 위한 텍스트에는 보살, 중생, 지금 여기, 아상, 행복 등의 단어가 자주 나온다. 그와의 인터뷰는 4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한 가지를 물으면 3~4개의 주제로 번져 나갔다. 부처님의 생애와 초기, 부파, 대승의 불교사가 펼쳐진다. 차를 마시고, 화장실을 갔다 오길 두 번,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 우하 스님과 고익진 교수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주 다보사로 출가했다. “출가하러 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노승이 “우리 절은 가난해 쌀이 없다. 출가하려면 자기 먹을 쌀을 갖고 와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노승은 당시 천진 도인으로 이름난 우하 스님(1903~1976)이었다. 산을 내려가 장기간 먹을 쌀을 짊어지고 다시 절에 왔다. 그날로 출가를 허락받고 스님을 따라 참선부터 했다. 절 가풍은 결제 해제가 없었다. 일 없으면 참선했다. 무자 화두를 받았다. 하루 지나서 대략 알 것 같았다. 다음 날 스님을 찾아가 말했다.

“스님, 알았습니다.”

“뭘?”

“개가 왜 불성이 없는지 알았습니다.”

“일러보라.”

“불성이라면 단 하나의 불성일 뿐이니, 사람 불성, 개 불성이 따로 있겠습니까?” 하고 답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했다. 그러자 스님이 딱 쳐다보더니 물었다.

“행자!”

“예.”

“어떤 놈이 대답했는고?”

이 말을 들으니, 갑자기 깜깜해졌다. 마치 철퇴로 머리를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멍해지고 아무 생각 없이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걸으면서, 먹으면서, 잠자면서도 그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몇 달을 보냈다. 그때 고1때 읽었던 『선가귀감』을 다시 꺼내 읽었다. 1년 전에는 이해되지 못했던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선을 해보면 선어록이 이해된다는 것을 알았다. 화두는 1년 이상 계속 이어졌다. 우하 스님은 참선 때 몇 마디 툭툭 던져 줬고, 그것이 길잡이가 됐다. 스님은 이렇게 말해 줬다. 좌선 중에 이상한 것이 보일 수 있다. 부처님도 보이고. 그것 다 마구니다. 절대 그런 것에 끌려가면 안 된다. 행자에게 참선 중 갑자기 눈앞에 큰 광명이 나타났다. 마치 깨달은 것 같았다. 노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부처님이 와서 뽀뽀해도 마구니다. 화두 들면 다 사라진다. 행자는 다시 화두를 들었다. 그러자 다 사라졌다. 우하 스님께 배운 화두가 평생의 지남이 됐다.

1973년 전남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때 고익진 선생이 전남대에 내려와 불교철학 강의를 했다. 주제는 ‘아함 체계 연구’다. 고익진 선생에게 매료됐다. 이후 학문 스승으로 모시고 함께 연구했다. 2년간 동국대 앞에서 숙식을 스승과 함께했다. 박사 논문 주제가 아함이었는데 한문 경전으로는 충족되지 못했다. 빨리어를 공부했다. 스승처럼 독학했다. 언어가 갖고 있는 기본 구조와 맥락을 이해했기에 가능했다. 동사와 명사의 기본 줄기가 어떤 의미를 갖고 문장을 구성해 갔는지 알면 된다. 그에게 니까야 번역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 불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경전

- 최근 『정선, 맛지마 니까야』(전남대 출판부)를 번역 출간했다. 기존 번역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경을 읽으면 어떤 말씀인지 이해되어야 한다.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애매하면 안 된다. 우리 문법에는 수동태가 없는데, (빨리어를) 수동태로 표현하면 이상해진다. 능동태로 고칠 것은 과감하게 고쳤다. 또 나는 (빨리어) 문장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번역하지 못한다. 우리 언어가 갖는 고유의 특성도 고려해 번역했다. 더 중요한 것은 불교 언어의 개념과 의미들이 아비달마를 거치면서 완전히 다르게 나타났다. 예를 들면 색色을 물질이란 개념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이것을 고려하면서 번역했다.”

- 왜 니까야를 번역했는가?

“불교를 수십 년 공부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이 불경이 너무 많아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설이다. 지금 절에 다니면서 불경을 공부하는 불자들이 얼마나 있는가? 별로 없다. 불자들이 읽을 수 있는 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오래된 숙제였다. 80년대 후반부터 대장경을 본격적으로 번역했는데 불자들에게 맞는 불경을 만들고 싶었다. 실제 대장경을 재구성하려고 번역 작업을 많이 했다. 대소승을 공부하면서 결국 니까야에 있는 내용이 확대된 것을 알았다. 결국 니까야 불교 성전을 번역하는 마음을 냈다.”

- 근본불교연구회를 이끌고 있다. 왜 ‘근본불교’인가?

“부처님의 초기경전들은 초기의 불교가 아니다. 모든 불교의 뿌리가 된 불교다. 나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아함경과 니까야의 불교를 근본불교라고 부른다. 경전에는 경전이 갖고 있는 근본 시스템이 있다. 이 근본 체계에서 벗어난 것은 불교의 중심이 아니다. 예를 들면 연기설을 중심으로 하는 근본 체계가 있는데 윤회설 같은 것들이 아비달마 때 찌꺼기처럼 끼어들었다. 윤회설은 불교의 근본이 아니다. 이처럼 큰 틀에서 부처님의 근본 사상을 보여주는 것을 근본불교라고 부르고 싶다.”

- 그럼 ‘근본불교’의 내용은 무엇인가?

“연기, 무아, 공, 업보다. 흔히 사람들이 업보설을 윤회설로 오해한다. 부처님은 공空을 업보業報로 봤다. 작자作者는 없지만 업보는 있다는 것이다. 무아다. 또 부처님은 ‘나는 업론자業論者다.’ 고 했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업의 차이다. 부처 노릇하니까 부처이고, 중생 노릇하니까 중생인 것이다. 연기, 무아, 공, 업보가 다 연결된 것이다.”

- 불자는 니까야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부처님은 열반하시기 전에 두 가지 말씀을 하신다. 내 가르침에 의지할 것과 너 자신에게 의지할 것. 둘이 같은 말이다. 불자는 경을 읽고 자신의 삶에서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부처님은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했을까? 어느 날 부처님께서 숲에 머물고 있는데, 지나가는 이가 묻는다. ‘당신은 뭘 가르치는가?’ 이는 불교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묻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질문인 것이다. 보통 이 질문을 받으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주 거창한 답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부처님은 이렇게 답변한다. ‘나는 세상의 어느 누구와도 다투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나중에 『맛지마 니까야』를 찾아보니 ‘꿀 덩어리 경’에 있다.) 이 장면을 보면 불교는 결국 개인적인 열반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 경전, 삶, 깨달음

- 경전을 이해하고 삶에서 성찰한다는 인식은 모든 것에 적용되어야 한다. 작년 불교계에서 큰 논쟁이 되었던 ‘한상균 사태’를 적용하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부처님은 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봤다. 문제는 편싸움이다. 근데 약자를 한번 도와준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부처님은 혁명적으로 문제를 풀지 않으셨다. 부처님은 사실 뜨거운 사람이다. 왕자의 자리를 내던졌다. 왜 그랬을까? 부처님은 약육강식, 투쟁, 갈등 이런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것을 깊이 고민했다. 부처님은 다투지 않는 방법을 가르쳤다. 부처님은 갈등을 해결하려고 했다. 어떻게 해결할까? 부처님은 불같은 사람인데, 늘 스스로를 제어하고 또 제어한다. 부처님은 서로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연기緣起적 구조를 자각하지 않고서는 어떤 정치 시스템이라도 안 된다고 봤다. 자각하지 못한 이들을 모아 놓고는 화합할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이 맨발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깨우침을 주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 (불교가) 가르침을 주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갈등은 해결될 수 없다.”

- 작년부터 교계에서 ‘깨달음’ 논쟁이 일었다. “깨달음은 이해하는 것”을 두고 논쟁이 되었다. 어떻게 봤는가?

“현응 스님이 용기 있는 발언을 했다. 지금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이해가 선결되어야 하고, 이해하면 실천하게 된다. 불교의 기본은 사성제고, 핵심은 고통이다. 수행자는 이를 해결해야겠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깨달았다는 것은 그 해결책을 찾았다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서 뭔가 번쩍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돌아가신 통광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교수, 난 요즘 왜 수좌들이 지금 깨달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아니,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 따라가서 실천하면 되지, 지가 깨달을 것이 뭐가 있지? 자기 교敎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그러셨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전해주신 깨달음을 이해하고 실천하면 된다. 이것이 육조 혜능의 선법이다. 이해하면 누구나 쉽게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

- 깨달음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는 것인가?

“간절한 자기 문제가 있다면 그렇다. 간절함이 없으면 안 된다. 달마와 혜가(慧可, 487~593)의 대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혜가가 말한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불안한 마음을 해결해 주십시오.’ 달마가 말한다. ‘불안한 마음을 가져와라. 그럼 해결하겠다.’ 그러자 혜가가 마음을 찾아더니 ‘잡을 수가 없습니다.’ 고 했다. 달마가 말한다. ‘이미 내가 너의 마음을 편안케 했다.’ 이것이 바로 사마따 위빠사나다. 사람들은 불안하면 불안 속에 빠진다. 이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면 더욱 불안해진다. 불안한 마음은 실체가 없다. 사라지게 되어 있다. 위빠사나가 그렇고 선이 그렇다. 불안한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그 마음을 살피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혜가는 이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