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경계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셨는가?

2016-03-03     불광출판사
 
이러한 순경계와 역경계 앞에서 부처님은 어떤 태도를 보이셨을까? 사실상 부처님에게 순경계와 역경계란 없다. 애욕과 분노를 해탈하여 무아법에 통달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중생들의 입장에서 순경계와 역경계가 있을 뿐이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부처님의 태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 마간디야를 통해 본 순경계와 역경계
순경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애욕의 대상이다. 부처님은 애욕의 대상에 당면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셨을까? 나중에 코삼비국 우데나 왕의 왕비가 된 마간디야는 뛰어나게 아름다워서 어울리는 남편감을 구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상류층 자제들이 청혼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모두 거절하였다. 어느 날 부처님을 만난 그녀의 아버지는 드디어 자신의 딸과 결혼할 만한 배필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아내와 함께 부처님께 가서 자신의 딸을 데리고 가라고 청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과거에 마라의 세 딸들이 소녀와 중년의 갖가지 요염한 모습을 하고 와서 당신을 타락시키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말씀하시고,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으셨다.
 
갈애, 혐오, 애욕이라는 이름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세 딸을 보았어도 사랑하고픈 마음이 없었는데,
오줌과 똥으로 가득한 마간디야를 왜 원하겠는가?
그 더러운 몸에 나의 발바닥조차 닿지 않게 하겠네.
 
이 게송을 들은 마간디야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아나함과를 얻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마간디야는 자신을 오줌과 똥으로 가득한 더러운 것이라고 말하고, 발바닥조차 닿게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부처님께 증오심과 복수심을 품었다. 나중에 코삼비국의 왕비가 된 마간디야는 부처님이 그 나라로 오시자 복수를 위해 사람들을 매수해서 욕설과 비방을 퍼붓도록 지시했다. 삼보를 믿지 않는 이교도들은 부처님께서 성 안에 들어오시자 부처님 뒤를 따라다니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난다는 차마 듣기조차 힘든 욕설을 듣고 부처님께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고 간청한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어려움이 일어나면 어려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어려움이 가라앉은 다음에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는 여래를 전쟁터에 나간 코끼리에 비유한다. 전쟁터에 나간 코끼리가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참고 견디는 것처럼, 사악한 자들이 내뱉는 말을 참고 견디는 것이 여래가 할 일이라고 설하시는 것이다.
 
전쟁터의 코끼리가 날아오는 화살을 참고 견디듯이
나는 욕설을 참고 견디리라.
사람들은 대부분 도덕과 계율을 모른다.
사람들은 축제에 잘 길들인 코끼리만을 데리고 가고
왕은 길들인 코끼리만 탄다.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을 잘 참는 사람이
자신을 가장 잘 길들인 사람이다.
노새나 준마나 힘센 코끼리도 길들이면 훌륭하지만
가장 훌륭한 것은 자신을 길들이는 것이다. 
- 『법구경』 320~322
 
결국 자신을 잘 길들인 사람은 순경계이든 역경계이든 동요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는 이교도의 집안에 시집간 급고독장자의 딸 쭐라수밧다가 읊은 다음과 같은 게송에 잘 나타난다.
 
세상 사람들은 이익이 있으면 우쭐대고
손해가 있으면 풀이 죽지만
그분들은 이익과 손해에 무관심하지요.
그런 분들이 저의 스님들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명성을 얻으면 우쭐대고
잃으면 풀이 죽지만
그분들은 명성을 얻고 잃음에 무관심하지요.
그런 분들이 저의 스님들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칭찬하면 우쭐대고
비난하면 풀이 죽지만
그분들은 칭찬하거나 비난받거나 똑같은 태도를 보이지요.
그런 분들이 저의 스님들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기쁘면 우쭐대고
괴로우면 풀이 죽지만
그분들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벗어난 분들이지요.
그런 분들이 저의 스님들이에요.
- 『법구경』 304
 
이 게송에는 여덟 가지 풍파, 즉 팔풍八風이 잘 나타나 있다. 이익과 손해, 명성을 얻고 잃음, 칭찬과 비난, 괴로움과 즐거움에 당면하여 결코 흔들림이 없는 것이 부처님의 제자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물며 부처님이야 더 말할 것이 있으랴?
 
 
| 난타 비구를 통해 본 순경계의 활용
부처님께서 경계를 대하여 여여부동如如不動 하셨음은 많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자들을 대함에 있어서 순경계와 역경계를 잘 활용한 경우도 엿보인다.
 
태자의 신분으로 있다가 결혼을 앞두고 얼떨결에 출가한 난타 비구는 아름다운 약혼녀가 눈앞에 어른거려 도저히 수행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를 알고 계신 부처님께서 어느 날 난타를 데리고 불이 타고 지나간 숲으로 갔다. 거기에는 화상을 입은 암컷 원숭이가 있었는데, 그 원숭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난타여, 저 원숭이와 그대의 약혼녀 중 누가 더 아름다운가?”
 
그러자 난타가 대답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약혼녀는 이 나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미인입니다. 어찌 저렇게 화상을 입은 원숭이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다시 난타를 데리고 천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아름답기 짝이 없는 오백 명의 여인들이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를 보고 다시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저 여인들과 그대의 약혼녀 중 누가 더 아름다운가?”
 
“부처님이시여, 저 여인들에 비하면 저의 약혼녀는 마치 원숭이와 같습니다. 이 오백 명의 아름다운 핑크빛 발을 가진 천녀들은 아름답고 귀엽고 사랑스럽기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뻐하라, 난타여! 그대가 열심히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는다면, 오백 명의 아름다운 핑크빛 발을 가진 천녀들을 얻게 된다는 것을 내가 보증하노라.”
 
난타가 설레는 가슴으로 말했다.
 
“부처님께서 오백 명의 천녀를 얻게 된다고 보증하신다면 저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이에 다른 비구들은 난타를 ‘일용직 잡부’ 혹은 ‘장사꾼’처럼 천녀라는 대가를 얻기 위해 수행하는 자라고 놀려대고 비난했다. 난타는 부끄럽고 창피하여 홀로 떨어져서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였으며, 결국 아라한과를 성취하게 되었다.
 
위와 같이 부처님은 무조건 애욕을 끊으라고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욕을 적극 활용해서 보증까지 서주며 결국 애욕이 쉬도록 하고 있다. 분노 또한 마찬가지다.
 
 
| 바라문 바랏와자 형제를 통해 본 역경계의 활용
바라문 바랏와자는 불교도인 부인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 부처님께 찾아가 거칠게 항의하며, “무엇을 부수어야 편안히 살고 무엇을 부수어야 슬픔이 없는지”를 물었다. 이에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성냄을 부수어야 편안히 살고 성냄을 부수어야 슬픔이 없네.
뿌리에는 독이 있지만 꼭지는 달짝지근한 성냄을 부수는 것을
성자들은 칭찬하나니, 성냄을 부수면 더 이상 슬픔이 없기 때문이네.”
 
이러한 응답에 감동한 바랏와자는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동생이 찾아와 부처님께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묵묵히 이를 다 듣고 난 부처님은 마침내 주인이 손님에게 차려준 밥상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이처럼 그대가 나에게 비난하고 화내고 욕하였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그것은 도로 그대에게 되돌아갔다.”
 
결국 동생 또한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이렇게 셋째, 넷째까지 사형제가 모두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분노에 분노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잘 활용하여 마음을 닦는 계기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 선禪의 중흥조 경허 선사의 「참선곡」에 이런 표현이 있다.
 
일체 계행 지켜 가면 천당 인간 수복壽福하고
대원력을 발하여서 항수불학恒隨佛學 생각하고
동체대비同體大悲 마음먹어 빈병걸인貧病乞人 괄세 말고
오온색신五溫色身생각하되 거품같이 관觀을 하고
바깥으로 역순경계逆順境界 몽중夢中으로 관찰하여 희로심喜怒心을 내지 말고
허영虛靈한 나의 마음 허공과 같은 줄로 진실히 생각하여
팔풍오욕八風五欲 일체경계 부동不動한 이 마음을 태산같이 써 나가세.
 
순경계와 역경계의 여덟 가지 바람에 동요하지 말고 태산같이 여여如如하자는 뜻이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이러할진대 부처님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부처님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자들을 교화함에 순경계와 역경계를 자유자재로 잘 활용하신 것으로 보인다. 알고 보면 순경계가 역경계요, 역경계가 순경계다. 또한 내가 있기에 경계가 있는 것이지, 내가 사라지면 경계 또한 사라진다.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애욕과 분노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활용해야 할 현상이다.”           
 
월호 스님
행불선원 선원장이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동국대 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쌍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이후 쌍계사 승가대학 학장을 지냈고, 현재 BBS와 불교TV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달라이라마 방한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문 안의 수행 문 밖의 수행』, 『행복은 달처럼 우리 곁에 있네』 등 1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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