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으로 본 역경계와 순경계

2016-03-03     이미령
경전을 보면 ‘역경계와 순경계’라는 단어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대신 나를 즐겁게 해주고 빠져들게 해주는 것, 즉 탐욕의 대상을 만난 경우와 나를 화나게 하는 것, 즉 분노의 대상을 만난 경우에 대한 부처님 법문은 많습니다. 탐욕을 일으키고 자꾸 집착하게 하는 것을 순경계라 할 수 있고, 그와 반대로 자꾸 피하고 싶고 화나게 만드는 그런 경우를 역경계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석가모니 부처님이 순경계와 역경계에 어떻게 대처하셨는지를 초기경전과 법구경 주석서에서 살펴보려 합니다. 그리고 대승경전인 『대반열반경』과 『유마경』을 통해 이 두 경계를 대하는 수행자의 마음가짐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 아침 왕사성으로 탁발하러 가신 부처님이 골목길에서 데바닷타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슬그머니 다른 골목으로 돌아서 가시려고 했습니다. 이에 아난 존자가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 골목에서 떠나시려고 하십니까?”
 
“데바닷타가 이 골목에 있구나. 그래서 피하려는 것이다.”
 
아난 존자는 참으로 의아해서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데바닷타가 두렵습니까?”
 
“나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나쁜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데바닷타더러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를 다른 곳으로 가게 하고픈 마음은 내게 없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다가 자기가 가서 살고 싶은 곳에 가서 살면 그뿐이다.”
 
아난 존자가 다시 여쭈었습니다.
 
“그렇다면 데바닷타가 여래보다 더 뛰어난 인물입니까?”
 
“저 어리석고 미혹한 사람과는 할 수 있다면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세존께서 이렇게 답하신 뒤에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과는 만나지 말고 / 어리석은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도 말라. / 또한 그런 이와 뭔가를 따지지도 말며 / 일의 옳고 그름으로 다투지도 말라.”
- (『증일아함경』 제13권)
 
부처님은 게송을 읊으신 뒤에, 데바닷타는 좋은 벗(善友)이 아니라 나쁜 벗(惡友)이며, 그런 어리석은 사람과 어울리다 보면 믿음과 계행과 공부한 것과 지혜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곳을 찾아가야 할 것이요, 자신의 수행에 해를 입히는 사람은 가급적 피하라는 매우 현실적인 대답입니다. 수행과 신앙생활에 현실적으로 장애를 되는 것을 역경계라고 한다면, 극복하겠다고 자꾸 맞서기보다는 차라리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역경계를 직면하셨을 때 피하려고만 하지 않았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담담하게 견디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의 경우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 붓다, 역경계에 담담히 머무르시다
우데나 왕의 두 번째 왕비인 마간디야는 예전에 부처님으로부터 자신의 미모가 무시당하자 복수를 꿈꾸게 됩니다. 그리하여 왕비가 된 이후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도록 성 안 사람들을 부추겼습니다. 부처님과 스님들이 아침 일찍 탁발하러 성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특히 외도들)이 “강도, 못된 놈, 바보, 낙타, 황소, 얼간이, 지옥에 갈 자, 짐승 같은 자, 구제받지 못할 자,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을 자”라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스님들은 탁발은커녕 비난과 욕설에 쫓기듯 승원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에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청했습니다.
 
“이 도시 사람들이 저희에게 욕설과 비방을 퍼붓고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답하셨습니다.
 
“만약 다른 곳으로 갔다가 그곳에서도 욕설과 비방을 퍼붓는다면 어디로 가야 하지?”
 
“그러면 또 다른 곳으로 가야겠지요.”
 
“그곳에서도 또 욕설과 비방을 퍼붓는다면?”
 
“그때는 또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가야겠지요.”
 
부처님은 이에 답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어려움이 일어나면 어려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려야 한다. 어려움이 가라앉은 다음에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전쟁터에 나간 코끼리가 쏟아지는 화살을 참고 견디듯이, 여래는 사악한 자들이 내뱉는 말을 참고 견딘다.”
이렇게 하여 설하신 게송이 바로 『법구경』에 실려 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코끼리가 / 쏟아지는 화살을 참고 견디듯 / 나는 욕설을 참고 견디리라. / (중략) /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을 잘 참는 사람이 / 자신을 가장 잘 길들인 사람이다. / 노새나 준마나 힘센 코끼리도 길들이면 훌륭하지만 / 자신을 길들인 사람이 가장 훌륭하다.”
- (『법구경』, 제320~322게송, 무념 응진 역 『법구경이야기』제3권 참고)
 
 
| 붓다, 순경계에 흔들리지 않다
부처님에게는 평생 사람들의 찬양과 공경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뜻밖에 그런 찬미에 다소 차갑다 싶을 정도로 담담하게 대하셨고, 지나친 환대에는 오히려 거리를 두신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때 코살라국의 한 마을 숲 속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입니다. 사람들이 제각기 맛난 음식을 가지고 사원 문 앞으로 몰려와 자기가 먼저 공양 올리겠다고 다퉜습니다. 부처님은 사원 앞의 저 시끌벅적한 소리 정체를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숲에 와 계신다는 소문을 낸 나제가 존자가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을 사람들이 부처님께 공양 올리려고 몰려왔습니다. 서로 먼저 공양을 올리겠다고 다투고 있는 소리입니다.”
 
이에 부처님은 그들을 돌아가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자 나제가 존자가 청했습니다.
 
“저들의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저들은 세존을 향한 지극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나를 이롭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 나를 칭찬하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칭찬을 바라지 않는다. 나제가야, 여래처럼 멀리 떠남・멀리 여읨의 즐거움을 얻은 이가 어찌 저런 곳에서 생기는 이익의 즐거움을 맛보거나 구하려 하겠는가?”
- (『잡아함경』 제1250경)
 
나제가 존자가 거듭 저들의 신심을 부처님에게 들려드리면서 공양을 받아주실 것을 청하였지만, 부처님은 군중이 모이고 이익이 모이는 것을 멀리 떠나고 그런 것을 멀리 떠나고자 힘쓰도록 정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중생의 마음을 몰라 주는 부처님이 못내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중의 환대와 지극한 공양은 수행자에게 참 좋은 환경이 되겠지만 그럴수록 대중의 환대라는 순경계에 조심해야 하며 멀리 떠나야 한다는 것(遠離)을 제자들에게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 순경계와 역경계는 동전의 양면 ①
『맛지마 니까야』의 36번째 경인 「마하삿짜까숫따」에는 악기웨세사나라는 니간타 제자에게 부처님이 ‘몸도 닦지 않고 마음도 닦지 않은 이와 몸도 닦고 마음도 닦은 이에 대한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악기웨사나여, 여기에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즐거운 느낌이 일어난다. 그가 그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면 그 즐거운 느낌을 갈망하고, 그 즐거운 느낌이 지속되길 갈망한다. 그런 그에게 이제 그 즐거운 느낌이 소멸한다. 즐거운 느낌이 소멸하면 다시 괴로운 느낌이 일어난다. 그가 그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면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악기웨사나여, 그에게 일어난 그 즐거운 느낌은 마음을 제압하면서 머무나니, 그것은 몸을 닦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에게 일어난 그 괴로운 느낌은 몸을 제압하면서 머무나니 그것은 마음을 닦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악기웨사나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 즐거운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그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그 즐거운 느낌을 갈망하지 않고 그 즐거운 느낌이 지속되길 갈망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이제 그 즐거운 느낌이 소멸한다. 즐거운 느낌이 소멸하고 다시 괴로운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그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근심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고 탄식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악기웨사나여, 그에게 일어난 그 즐거운 느낌은 마음을 제압하지 않나니 그것은 몸을 닦았기 때문이고, 그에게 일어난 그 괴로운 느낌은 몸을 제압하지 않나니 그것은 마음을 닦았기 때문이다.”
- (초기불전연구원 옮김, 『맛지마 니까야』 중에 36. 「마하삿짜까숫따」에서)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나 제대로 수행하는 성스러운 제자에게나 어떤 것에 대한 즐거운 느낌(순경계)은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단, 범부는 즐거운 느낌이 오래 지속되기를 갈망하게 되는데, 그런 느낌은 언젠가는 소멸하게 되며 그로 인해 괴로움(역경계)을 맛보게 됩니다. 하지만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 즐거운 느낌(순경계)이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보지 않으며 그에 대한 갈망을 품지 않으니, 그 즐거운 느낌이 사라지는 데서 따라오는 괴로운 느낌(역경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경계와 역경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떤 경계에 대한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의 발생과 소멸의 과정, 그런 느낌이 가져다주는 맛과 우환을 제대로 알면 담담히 수행의 길을 걸어갈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즐거움과 괴로움에 휘둘린다는 것이 초기경전인 니까야의 입장입니다.
 
 
| 순경계와 역경계는 동전의 양면 ②
한편, 『대반열반경』에는 아주 유명한 공덕천과 흑암천 비유가 있습니다. 빼어나게 아름답고 화려하게 몸단장을 한 여인이 어떤 남자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공덕대천功德大天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온갖 보물이 넘치게 하고 그곳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부를 안겨줍니다.”
 
이 말을 들은 집주인은 뛸 듯이 기뻐하며 그 여인에게 좋은 향을 뿌리고 환대했습니다. 그런데 늙고 추할 뿐만 아니라 옷도 더럽기 짝이 없는 여인도 따라 들어오려 합니다. 집주인이 정체를 묻자 “나는 흑암천黑暗天입니다. 어디를 가든 그 집의 재물을 흩어지게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을 들은 집주인은 불쾌한 생각에 칼을 빼들고 썩 나가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흑암천 여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금 당신 집안으로 들어간 이는 내 언니입니다. 나는 언제나 언니와 함께 다닙니다. 그러니 나를 쫓아내려면 언니도 쫓아내야 합니다.”
 
그러자 아름답고 우아한 공덕천도 말했습니다.
 
“문밖에 서 있는 여인은 내 동생입니다. 나는 언제나 동생과 함께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나는 좋은 일을 하고 동생은 나쁜 짓을 하며, 나는 이로운 일을 동생은 손해나는 일을 했습니다. 만일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동생도 사랑해야 하고, 나를 공경하려거든 동생도 공경해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집주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둘 다 나가시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한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소.”
 
그러자 두 여인이 나란히 그 집을 떠났고 집주인은 그 둘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뛸 듯이 기뻤습니다.
- (『대반열반경』 제12권)
 
우리는 누구나 공덕, 복덕을 좋아하고, 손해와 피해를 꺼립니다. 하지만 경에서도 말했듯이 이익과 손해는 늘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아는 현명한 사람은 이익에 취하지 않지만,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서 손해까지도 함께 불러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이로운 순경계가 언제나 역경계와 함께 다니며, 역경계는 언제나 순경계와 짝을 이룬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보살은 순경계와 역경계를 어떻게 봐야 하나
한편, 『유마경』에서도 순경계와 역경계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법문을 접할 수 있습니다. 유마 거사가 ‘불가사의해탈’이라는 법문을 베풀자 옆에서 듣고 있던 가섭 존자가 크게 감탄을 하면서 말합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보살이 이와 같은 불가사의해탈의 신통력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믿음과 이해를 굳건하게 일으킨다면 그 어떤 마왕과 마군도 이 보살에게 조금도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유마 거사는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시방의 무량무수한 세계에서 마왕魔王으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자는 대부분 불가사의해탈에 안주하고 있는 보살입니다. 그는 뛰어난 방편으로 마왕을 지어 보이고 있으니 여러 유정들을 성숙시키고자 함입니다.”
- (『유마경』 제6 「부사의품」)
 
그런데 또 옆에서 듣고 있던 문수사리보살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유마힐이 대답합니다.
 
“환술사가 환술을 보는 것처럼 중생을 봐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물속의 달을 보듯,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듯, 아지랑이 속의 물을 보듯, 메아리 소리를 듣듯, (중략) 허공을 날아간 새의 자취를 보듯이, 꿈에서 깨어난 뒤에 꾸었던 꿈을 보듯이, 이와 같이 보살은 중생을 바르게 관찰해야 합니다. 무슨 까닭일까요? 모든 법은 본래 공하니, 진실로 나(我)도 없고, 중생도 없기 때문입니다.”
- (『유마경』 제7 「관유정품」)
 
이 부분을 음미하면 할수록 감탄하게 됩니다. 수행을 어지럽히는 마장(魔障, 역경계)이 바로 불가사의해탈경계에 머물고 있는 보살이라는 말입니다. 보살의 깨달음을 성숙시키기 위해 짐짓 뛰어난 방편으로 일부러 마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지요.
 
한편, 보살은 유정을 일깨워 주면서 그들의 공양공경을 받습니다. 또한 유정을 이롭게 하고 그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면서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는데, 그와 같이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유정(순경계)은 환幻처럼 봐야 한다는 것이 유마 거사의 대답입니다.
 
역경계는 내 수행을 도와주는 보살이라 여기고, 순경계는 실체가 없는 환이라 여겨야 한다! 이것이 부처님과 경전의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그런 담담한 평정의 마음상태에서도 세상을 향해 커다란 연민(大悲)를 품어야 합니다. 그 대비가 보살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결국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이며 불교칼럼리스트이다. 동국대 역경위원을 지냈다. 현재 YTN라디오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과 BBS 불교방송에서 ‘경전의 숲을 거닐다’를 진행하고 있다. 또 불교서적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 수행 입문』, 『붓다 한 말씀』,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