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불자 신행의 지형 변화

2016-03-03     김성동

●    한국불교의 신행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그 시작점은 바로 경전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초기불전인 ‘니까야’다. 지난 1월 21일 계간 『불교평론』 월례 세미나에서 전 동국대 역경위원이며 책 칼럼니스트인 이미령 씨는 ‘경전번역과 신행의 지형변화’를 발표해 한국불교의 신행 지형이 경전읽기를 통해 크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들려줬다. 이 씨는 ‘니까야 독송회 7년 결사’를 마쳤고, 지금도 소모임으로 니까야 읽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팔리어 경전인 니까야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채 20년도 안 된다. 짧은 기간 니까야를 읽는 불자들이 늘어났고, 그 신행의 변화도 눈여겨볼 대목이 많다. 

●    니까야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장 전재성 박사가 1999년 『상윳따 니까야』 한글역을 시작으로 초기불전연구원 대림 스님, 각묵 스님 등도 한글 번역본 작업을 속속 완성했다. 서양보다 144년, 일본보다는 58년 후의 일이다. 현재는 4부 니까야가 모두 한글로 번역된 상태이며, 지금도 팔리 삼장三藏 번역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번역된 니까야는 『디가 니까야』, 『맛지마 니까야』, 『상윳따 니까야』, 『앙굿따라 니까야』로 각각 대승불교권인 『장아함長阿含』, 『중아함中阿含』, 『잡아함雜阿含』, 『증일아함增一阿含』  등에 대응된다. 

●    이미령 씨는 니까야 읽기를 통해 한국불교 신행 지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 이 씨가 바라본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현실적이란 것이다. 니까야를 읽는 불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것은 아난과 가섭 존자가 옆에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것처럼 친근하고 감동을 주며, 부처님의 생생한 육성을 듣는 것 같다는 것이다. 막연한 ‘환희심’이나 ‘가피’가 아닌, 자신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또 하나는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초기경전은 정확한 질문과 명확한 부처님의 답변이 그대로 들어있기에 읽을수록 그 뜻이 명료하게 들어온다고 한다. 다의적이며 함축적인 한문과 달리 팔리어가 단순하며 또렷하기에 현대인들에게 더 쉽고 명쾌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 니까야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나타난 변화 중 하나가 이 부분이다. 니까야는 부처님이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경의 모음이기에 ‘부처님은 어떻게 행동하셨을까’를 늘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처럼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    작은 변화가 아니다. 적지 않은 재가불자들이 니까야를 읽으면서 살아있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그 회상會上에 직접 동참했다는 느낌을 갖는다. 니까야를 읽고 난 후 대승경전의 추상적 개념이 또렷하게 잡혔다고 한다. 무엇보다 재가불자들이 니까야를 통해 중간 전달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부처님을 대면했다는 것이 큰 변화다. 최근 전남대 이중표 교수의 ‘니까야로 읽는 금강경’ 강의는 개설하고 얼마 안 되어 정원을 꽉 채웠다. 이쯤 되면 니까야 읽기가 21세기 한국불교 신행의 흐름에 큰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    니까야를 읽는 재가불자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재가불자들이 사찰에서 혹은 작은 모임을 만들어 니까야를 읽는다. 불과 10여 년 전에는 없었던 현상이다. 니까야가 한글로 번역되면서 재가불자들은 이제 초기불전과 대승경전 중 스스로 읽고 싶은 경전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선택이 다른 하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을 관통하는 부처님 가르침을 삶에서 구현하는 선택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