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 스님

부처님은 길을 열어준 분, 나는 그 길을 따라간다

2016-03-03     불광출판사

부처님은 길을 열어준 분, 나는 그 길을 따라간다

 

| 활성 스님과 대림 스님

지난 1월 10일, 각묵 스님을 실상사에서 만났다. 스님은 실상사에서 매년 연말과 연초에 진행하는 ‘실상사 겨울학림學林’ 지도법사로 참여했다. 올해 주제는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 - 이론과 실제.’ 『청정도론』의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토대로 이론적인 공부와 좌선수행을 병행한 공부다. 30여 명이 가득한 화엄강당 밖으로 계속 박수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회향식이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가며 4박 5일 간의 공부길을 함께 나눈다. 스님을 만나본 이들은 안다. 빠른 말과 자신감 있는 어투, 그리고 호쾌한 웃음. 스님과 대화하면 지루할 틈이 없다.

- 잠자는 시간 외에는 번역만 하셨는데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셨나요?

“못했죠.(웃음) 계속 많이 아팠습니다.”

- 4부 니까야를 지난 2012년 완역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 번역하고 계신가요?

“제주도에 10평쯤 방을 마련해서 6개월은 거기서 보냅니다. 팔리어 삼장 중에 논장, 즉 아비담마 삐따까를 거의 마쳤습니다. 아마 올해 3월에는 출간될 예정입니다. 니까야도 그렇지만 오탈자 교정은 자원봉사하시는 분들 맡고, 최종 교정과 편집은 제가 합니다. 인쇄 넘기기 전까지 제가 최종 봅니다.”

1989년 3월 인도 푸나 대학에서 대림 스님과 처음 만났다. 당시 재연 스님(선운사 초기불교승가대학원장)이 푸나 대학에 계셨고, 10여 명의 한국 스님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푸나 대학으로 왔다. 스님과 함께 푸나 대학에서 동문수학한 한국 스님들이 의외로 많다. 환성 스님(초기불교승가대학원 교수사), 성륜 스님(초기불교승가대학원 원감), 각성 스님(동국대 경주 정각원장), 성호 스님(홍원사), 선일 스님(화운사), 미산 스님(상도선원 선원장), 각림 스님(초기불전연구원) 등이 그들이다.

- 대림 스님과는 어떻게 초기불전 번역을 함께 하시게 되었나요?

“푸나 대학에서 박사과정 수료한 후, 인도 여행을 마치고 2001년 미얀마로 갔습니다. 거기서 다시 대림 스님을 만났습니다. 당시 대림 스님은 푸나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청정도론’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대림 스님은 미얀마에서 고승高僧인 우 난다말라 사야도 스님께 아비담마를 배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같이 배웠죠. 대림 스님은 이미 아비담마에 관해서는 많은 관점을 정립하셨죠. 제가 궁금하면 바로 답변을 했습니다. 놀랐죠. 그때 스님께 말씀드렸죠. 우리 팔리 삼장을 번역할 수 있도록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하자고. 그래서 설립된 거죠.”

- 대림 스님께 아비담마를 배운 셈이네요.(웃음)

“저는 아비담마를 대림 스님께 배웠습니다. 뭐 솔직하게 그렇습니다. 써도 됩니다.(웃음)”

1979년 화엄사로 출가했다. 대불련 부산지부 교화부장 출신이다. 부산대학교 76학번. 대학 때 이미 화두 경험을 했다. “화두 때문에 출가했다.”고 할 정도다. 출가 후 곧바로 선방에 갔다. 7년. 오후 불식을 하며 나름 꽤 정진했다. 87kg의 몸은 출가 후 65kg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수행의 진전은 없었다. 의정이 붙지 않았다. 몸이 점점 피폐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처님 제자인데, 부처님이 무엇을 가르쳤고,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불교가 무엇인가?’

-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죠. 계기가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당시 봉암사에 계셨던 함연 스님께서 책을 권했는데, 월폴라 라훌라가 쓴 『What the Buddha taught』, 마쓰야 후미오의 『아함경 이야기』 이런 책을 보았습니다. 이 책들을 보고, 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화두를 타파해서 견성성불한다는 것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부처님이 제시한 해탈열반을 실현한다, 이렇게 방향이 바뀐 것이죠.”

- 인도는 어떤 인연으로 가시게 된 것인가요?

“당시 활성 스님께서 ‘고요한 소리’를 이끌면서 팔리 삼장을 한글로 번역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제가 칠불암에 있었는데, 자꾸 해외에 나가서 수행하는 망상이 나오는 겁니다. 해제하고 함연 스님을 만났는데, 활성 스님이 팔리 삼장을 번역할 수좌를 찾는다고 하여, 바로 “내가 하겠다.”고 했죠. 활성 스님은 팔리 삼장을 번역할 스님을 찾는다고 했는데, 조건이 선방 수좌였어요. 수좌가 깨달음에 대한 의식이 투철하고, 수좌들만큼 깨달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고 말씀하셨죠. 활성 스님을 만나니, 왜 팔리 삼장을 공부해야 하는지, 왜 산스크리트어와 베다어를 공부해야 하는지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 너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2012년 겨울, 머리에 4cm 종양이 발견되었다. 주변에서는 머리의 종양은 대부분 뇌암이라고 하며 수술해도 살 날이 길어야 4개월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하기 전 실상사 골방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죽음이 곧바로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니 실감나지 않았다. 잠이 안 왔다.

“한참 누워 있는데 저 깊은 곳에서 불쑥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너는 부처님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스스로 답변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부처님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러자 또 이런 말이 올라옵니다. ‘그러면 너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러자 잠시 후 또 이런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너는 법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스스로 다시 답변합니다. ‘나는 법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러자 또 다시 이런 말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면 너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이런 두 개의 문답이 나오니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 뒤 스님은 평온한 마음으로 뇌수술을 받았다. 2010년 12월 21일 동지 때였다. 이후 삶이 많이 바뀌었다. 생각도 많았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의식했는데, 수술 후 남 이야기도 많이 잘 듣게 되었다. 많이 웃게 되고, 삶에 확신이 생겼다. 잠도 잘 잤다. 하지만 병은 계속 찾아왔다. 갑상선암과 폐결핵. 아마도 번역의 후유증이 아닐까. 죽음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에게 던졌던 두 개의 문답은 부처님의 법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병은 손님처럼 지나갔다.

- 스님은 20대부터 화두를 들었고, 또 선방에서 7년을 보냈습니다. 무엇을 얻었는가요?

“선은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목표로 하잖아요. 깨달음을 바로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초기불교의 가르침과 그 목적은 같아요. 이 목적의식을 분명하게 한 것이 선에서 배운 것입니다.”

- 지금은 선이 아닌 초기불교를 하고 계십니다. 한국 선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구체적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좌 때 도반과 함께 유명한 큰스님께 질문을 드리러 갔습니다. 도반이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스님, 화두가 안 들립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큰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두가 안 들린다고 생각할 때 그때 화두를 들어라. 그 말씀을 듣고, 저는 더 이상 어느 스님께도 화두를 여쭤보지 않았습니다. 지금 한국 선은 구체적 방법이 없습니다.”

- 그 말씀은 아마도 선을 제대로 안 해서 그렇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그렇죠.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큰스님 말씀이 방법은 아니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스님께 부처님은 어떤 분인가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스승입니다. 또 부처님은 길을 제시하신 분입니다. 제게 부처님은 길을 열어주신 분입니다, 그렇게 봅니다. 저는 그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 어떤 의심도 없는 것인가요?

“없습니다. 다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주석서를 참고합니다. 우리가 지금 드는 의문은 옛날 주석서에 거의 대부분 나와 있습니다.”

- 스님은 대승경전을 본 적은 없나요?

“이전에는 약간 봤지만, 니까야를 번역하면서 가능한 한 다른 책은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전류는 보고 있습니다.”

- 이전에는 선택의 여지없이 한역경전을 보았지만, 이제 니까야를 보는 불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불자의 입장에서 경전을 볼 때 어느 경전을 봐야할지 혼란스러울 듯합니다.

“그것은 불자의 선택입니다. 권위로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경전은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불자가 어떤 경전을 읽고 감동받고 좋은 느낌을 받았다면 바로 그런 경전을 선택하면 되겠죠. 제가 불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니까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만약 대승경전이 그런 역할을 못한다면 그것은 대승경전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분들의 책임이죠.”

 

| 부처님 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

- 오래된 주제이지만, 초기불교에 자비, 구세대비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 란 질문에 어떤 답변을 주시겠습니까?

“조계종 종지는 석가세존의 근본교리를 봉체하며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입니다. 구세대비救世大悲는 바로 이 전법도생傳法度生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세대비는 부처님 법을 이 세상에 전해서 세상을 밝고 행복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세상 사람들이 다툼이 없고,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초기불교가 추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대한불교조계종은 초기불교종이라고 봅니다.(웃음) 석가세존의 근본교리가 뭐죠? 물론 대승불교이기도 하고 초기불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초기불교죠.”

- 대승불교에서 전법도생은 스님이 말씀하신 것보다 좀 더 사회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화중생下化衆生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연기법으로 볼 때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제 이것은 보편적인 상식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각 분야 전문가들이 아주 많습니다. 지금 구세대비는 각 부분에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불교는 무엇으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중요합니다.”

- 불교가 무엇으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나요?

“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합니다. 다른 법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이죠.”

- 부처님 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군요.

“그렇죠. 조계종 종지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전법도생을 그렇게 봅니다.”

- 한국불교가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스님들은 법을 전승하는 것이 가장 큰 책임입니다. 그런데 법을 호지해야 할 스님들 자체가 법을 무시하거나 등한시합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미 스님들은 문화재 관리인 외에 할 것이 없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재가자가 할 일이죠. 전법도 재가자가 할 수 있습니다. 스님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법을 호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가자가 할 수 없어요. 이것을 스님들의 역할로 부각시켜야 합니다.”

- 초기불전이 부처님의 원음은 아니다, 라는 비판은 어떻게 보시나요?

“초기불전은 구전口傳이 아니라 합송合誦입니다. 합송은 대중이 노래를 불러서 대대로 정확하게 전승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베다 전통입니다. 인도 최고의 문헌인 리그 베다는 AD 8세기에야 문자로 정착됐습니다. 저는 인도에서 베다를 공부했습니다. 베다 독송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은 절대로 한 명이 부를 수 없습니다. 작게는 8명 등 그룹으로 합니다. 원음이 아니라는 것은 구전을 염두에 둔 발언입니다. 베다 전통을 안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 초기불전에 문자의 교조성이 있다는 비판은 어떻게 보시나요?

“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 자체가 그 교조성을 부정하는 가르침입니다. 불교는 무아를 강조합니다. 그 비판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 초기불교에서 한국불교에 긍정성, 에너지를 줄 수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불교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 이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승불교의 가르침이 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공’을 이야기하는데, 바로 그것이 부처님 문헌에서 왔다는 것을 안다면 초기불교의 가르침과 완전하게 같습니다. 『금강경』도 그렇습니다. 법을 해체하는 것이 초기불교에 그대로 나옵니다. 초기불교를 이해하면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더욱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한국불교에 큰 도움을 주지 않을까요?”

- 마지막으로 불교를 처음 접하는 불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니까야를 소개해주세요.

“제가 쓴 책이라 머쓱한데요.(웃음) 『니까야 강독 1, 2』를 추천합니다. 이 중에서 ‘라훌라의 경’을 읽어두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