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만화, 불교를 소재로 세상을 그리다

2016-03-03     조혜영

[특집] 만화, 불교를 다시 그리다

01.  새로운 붓다의 탄생 만화, 붓다를 다시 그리다 / 조혜영
02.  만화, 불교를 소재로 세상을 그리다 / 조혜영
03.  동글동글 2등신 캐릭터가 전하는 부처님 세상 / 유윤정
04.  불교를 다채롭게 풀어내는 6인 6색 프리즘 / 정태겸
05.  일본만화, 불교를 그리다 / 강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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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민, 현대 사회의 지장보살  
웹툰 『신과 함께』의 ‘저승편’은 불교의 지옥관을 소재로 한다. 죽은 자에게 염라국 소속 저승차사가 나타나 그를 저승 초군문으로 데리고 간다. 죽은 자는 그곳에서 49일 동안 일곱 개의 지옥을 통과하며 지옥을 관장하는 신에게 심판을 받게 된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화적 내용이다. 여기에 만화적 상상력이 더해진다면 어떨까? 죽은 자가 올바른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변호사를 등장시켜 보자.
 
“모든 영혼들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49일간의 재판을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있겠어요? 게다가 상대는 저승시왕이라고요.”
 
변호사는 주인공이 도산지옥, 화탕지옥, 한빙지옥 등 일곱 개의 지옥을 거치는 동안 그가 각각의 지옥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옥에서 죽은 자를 도와주는 존재라.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바로 지옥중생을 도와주는 지장보살이다. 웹툰 『신과 함께』의 주호민(36) 작가가 주목한 것은 지옥도地獄圖였다.
 
“우연히 지옥도를 하나 보게 됐는데, 자세히 보니 서로를 바라보는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의 눈빛이 불편해 보이는 거예요. 여기서 착안해 캐릭터를 만들게 되었죠. 기획단계에서는 지장보살을 그대로 등장시켰다가, 저승세계를 현대적으로 보여주는 과정에서 대중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변호사로 바꾸었습니다.”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웹툰 『신과 함께』는 불교 및 토속신앙에 등장하는 한국의 전통 신들과 주인공들의 관계를 통해 신과 인간의 운명, 우리가 사는 현재의 세상을 이야기한다. 판타지적인 요소를 표현하기 위해 저승의 하늘을 붉은 색으로 칠하는 등 현실 세계와는 차별화된 공간을 창조해냈지만, 군대 총기사고라든가 판자촌 재개발 문제 등 세상에 대한 풍자도 놓치지 않는다. 저승과 이승, 신과 인간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 신화는 올림푸스 산에 사는 능력이 뛰어난 신들을 이야기하잖아요. 그에 반해 우리나라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부엌, 화장실 등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요. 그만큼 우리에게 친근하고 위안이 되는 존재죠.”
 
2014 붓다아트페스티벌 특별전인 ‘만화가 만화卍話 하다’에 초대되기도 했던 주호민 작가는 독특한 헤어스타일 때문에 ‘파주 스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군대시절 우연한 기회에 군종병으로 뽑혀 불교를 알게 됐다는 주 작가는 불교적 소재를 다룬 웹툰 『제비원 이야기』를 발표하기도 했다. 경상북도 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함께 기획한 『제비원 이야기』는 경북 안동에 전해 내려오는 4가지 설화를 엮어 주 작가가 새롭게 만들어낸 스토리다. 
 
 “연미사의 유래, 형제 목수의 대결 등 전혀 다른 4가지 설화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면서 빈 공간을 메우는 작업이 재미있었습니다. ‘이 캐릭터가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됐을까?’ 질문을 던지다 보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작업을 하며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면 독자들도 재미있게 보는 것 같아요.” 
 
특정 종교의 틀에 갇히고 싶지 않지만 만화가로서 불교적 소재는 늘 흥미롭다고 말하는 주호민 작가. 
 
 “사람들이 불교의 가르침대로만 살면 참 행복할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불교의 지혜를 배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불교와 만화에 대해 얘기하다 생각났는데, 일본의 유명한 만화가인 데츠카 오사무의 『붓다』라는 만화를 추천할게요.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만화라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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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태호, 정치와 선禪의 공통점
선사禪師들의 세계에도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허 스님, 성철 스님 등 이미 열반하신 한국의 큰스님에서부터 달라이라마와 틱낫한 스님까지. 10여 년 전 교계 신문에 ‘주장자를 따라’라는 제목으로 선사들의 일화를 만화로 연재했던 조태호(58) 화백의 이력은 시사만화가이다. 인간의 탐·진·치가 응축되어 있는 속세의 정치판과 비어 있는 마음자리를 관하라는 선가禪家를 오가며, 전혀 다른 두 세계에서 화백이 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치만평을 그리다 필화사건에 휘말려 심적 고통을 받을 때 등산을 하다가 우연히 진관사에 가게 됐어요. 행색이 힘들어 보였는지 비구니스님 한 분이 제게 다과상을 차려주셨는데,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불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는데, 그 스님의 소개로 현대불교신문과 인연이 되어 연재를 하게 되었죠. 동국대 도서관에 다니며 큰스님들의 어록도 보고 전국의 사찰을 찾아다니면서 취재를 했습니다.”
 
산에서 뗄감으로 쓸 나무를 베다 벌목죄로 경찰서에 잡혀온 춘성 스님(1891~1977)은 본적과 주소가 어디냐는 경찰의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 부모 배꼽 아래가 본적 고향이요. 사람의 근원도 모르면서 본적 주소를 어찌 알까?”
 
춘성 스님의 일화가 하나 더 있다. 통금이 있던 시절, 밤길을 가다가 ‘누구냐?’고 묻는 경찰에서 춘성 스님이 말한다. 
 
“중대장이요. 왜 내가 중의 대장쯤 되어 보이지 않소?”
 
그야말로 선문답 같지만 그 안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 게 선사들의 어록이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들을 조 화백은 친근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선사들의 어록은 불교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수행한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다가가기가 어렵습니다. 스님들이 고통 속에서도 왜 그토록 수행을 계속 해나가는지, 수행을 하며 느끼는 환희심, 득도한 과정 등을 대중들의 시선에 맞춰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시사만화를 그릴 때는 자기도 모르게 자극적으로 세게 그리게 되고 돈에도 집착했는데, 선사들의 이야기를 연재할 때는 자기성찰도 되면서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었다고 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양극단으로 보이는 두 세계 모두 세상을 얘기하고, 사람들을 얘기한다는 것. 
 
조태호 화백은 3년이라는 산고의 기간을 거쳐 『만화로 보는 진본 서유기』를 출간하기도 했는데, 조 화백이 그려낸 손오공과 사오정, 저팔계의 캐릭터는 못생기고 흉악한 원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독자들이 서유기의 원본에 묘사된 캐릭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요즘 세상이 각박해지고 먹고 살기가 어려워졌는데, 서유기의 이야기가 실패를 겪은 이들에게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 화백은 『법구경』을 웹툰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구상 중이라고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고통 받는 사람들, 결국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만화에서 『법구경』의 은은한 향기가 느껴지도록 그리고 싶어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더욱 좋겠죠.”   
 
불교와 만화의 만남, 종교의 틀을 넘어 우리가 사는 세상과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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