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스님의 선담禪談] 물은 바다를 꿈꾸지 않는다

2016-03-03     금강
 
 
 
가없는 푸른 하늘에
구름 일고 비 오는데
빈산엔 사람 하나 없어도
물 흐르고 꽃은 피네
 
- 산곡山谷 황정견黃庭堅
 
 
 
연어처럼 바다에서 강으로 수많은 실개천을 거슬러 올라가 강의 시원인 샘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와 사회과 부도 만드는 일을 하다가 우리나라 강의 길이나 시원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강에 천착하여 전국 열여덟 개의 강을 실측하고 원천을 찾아 국토지리원의 지도를 바꾼 이형석 선생이다. 오래전부터 교분이 있어서 그에게 강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느 날인가는 한강의 새로운 시원을 찾았다고 자랑을 한다.
 
“『조선왕조실록』 중 「세종실록」의 지리지地理志를 보면 한강의 시원으로 오대산 우통수와 금강연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봄과 가을에 조선시대 관리가 와서 시원제까지 올렸는데 한강의 원천이 틀렸습니다. 직접 찾아다녀 보니 태백시 창죽동 금대산 고목샘이 맞습니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그 강의 원류는 강의 중심을 따라 흐른다고 한다. 그래서 옛 호사가들은 강에 배를 띄워 중심부로 나아가 철 두레박을 내려보내 물의 원류를 담았다고 한다. 이 물은 가장 무거운 물이어서 한번 담기면 다른 물과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강에 배 띄우고 강 중심수를 길어다가 차를 달이면 강원도 깊은 골짜기 샘물로 차를 달이는 셈이 되는 것이다.
 
봄 산중에 사람들이 찾아오면 말 주변이 없는 나는 묵묵히 샘물을 길어 싱그러운 작설차 한잔 달이고, ‘수류화개水流花開 - 물 흐르고 꽃 피듯이’라는 글귀를 적어주는 소박한 대접을 한다.
 
물이 흐른다는 말은 지금 현재 활발발하게 살아서 새로운 것들을 환희롭게 만나라는 것이다. 강물은 과거에 아름다운 꽃밭을 지나왔을 때도 있었고, 노루와 달콤한 입맞춤을 하기도 했을 터이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공포도 있었을 테고, 웅덩이에 갇혀서 빙글빙글 제자리걸음하며 답답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지금 흐르는 물이 과거의 아름다운 꽃밭과 현재 만나는 것들을 비교한다면 불만스러운 마음만 가득한 채 흘러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달콤한 기억 또한 현재를 만나는 것에 방해만 줄 뿐이다. ‘또 다시 폭포를 만나면 어떡하지.’ 하면서 공포스러운 마음으로 흘러가는 물은 없다. 깊은 웅덩이를 만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주저하며 흐르는 물은 없다. 새롭고 아름다운 꽃과 새들을 만나고, 신나게 미끄럼 타기도 하면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흐를 뿐이다.
 
물은 바다로 간다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물에게는 온갖 가능성이 있다. 논밭으로 흘러 기름진 양식이 되기도 하고, 수증기로 증발하여 다시 산으로 올라가거나 더 빨리 바다로 가기도 한다.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무엇을 만나도 어떤 상황에서도 기쁠 것이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나의 삶이나 자식의 삶도 그렇다. 기대감을 버리고 온갖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그러면 세상과 만나는 매 순간이 환희롭고 행복할 것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 1학년을 자퇴한 학생과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어떤 스님의 소개로 무작정 왔다는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금쪽같은 손자였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손자가 다시 제 길을 걷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관심을 받았고 귀한 보배처럼 애지중지 키워졌다.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교 때까지 그렇게 부족함 없이 자랐다. 말투 하나, 행동 하나까지 가족들은 관심을 보이며 애정을 쏟았다.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먼저 어른들이 준비를 해주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자 소년은 폭발하고 말았다. 어른들의 관심어린 말 한마디에도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갔다.
 
제 삶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무력감, 애정으로 포장된 지나친 관심은 소년의 모두 의지를 꺾어놓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소년의 마음 안에는 아직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내 보겠다는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내 인생을 만들어주려 한다거나 간섭한다면 그것은 부자유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반발하는 게 당연하다. 우리는 새로운 만남에 신기해하고 스스로 이루어내는 것에 흥미를 갖는 존재이다.
 
봄나무가 꽃을 피우려면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 푸르던 이파리들 남김없이 땅에 떨구고, 뿌리는 깊게, 껍질은 두텁게 한 채 당당히 서서 추위를 맞서야 한다. 그렇게 살아남아서 봄기운이 돌면 작은 실뿌리까지 부지런히 움직여 땅의 기운을 저 먼 가지 끝까지 올려 보내는 정성을 쏟아야 한다. 무언가 이루려고 한다면 과거의 연기적 관계성과 현재의 연기적 관계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한다. 통찰의 지혜가 필요하다.
 
수류화개라는 글귀를 좋아하여 집 이름을 수류화개실이라고 쓰신 법정 스님의 글도 있다.
 
“언젠가 한 젊은 청년이 뜰에 선 채 불쑥, 수류화개실水流花開室이 어디냐고 물었다. 아마 내 글을 읽고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도 불쑥, 네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라고 일러주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그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을 피워낼 수 있어야 한다. 저 꽃도 나무도 강도 봄 또한 그러할진데 사람이라면 응당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은 적적하게 흐르고 꽃은 성성하게 피듯이 번뇌는 적적하고 화두는 성성하게 한다면 좋겠다.
 
추사 선생이 초의 스님에게 보낸 명품 서첩들이 많다. 그중에서 다인들이 곁에 두고 애송하는 유명한 구절이 산곡 거사의 대련이다.
 
靜坐處 정좌처   茶半香初 다반향초
妙用時 묘용시   水流花開 수류화개
고요히 앉은 곳 차 마시고 향사르네
묘한 작용이 일 때 물 흐르고 꽃이 피네                                                      
 
 
 
금강 스님
미황사 주지. 조계종 교육아사리. 서옹 스님을 모시고 ‘참사람 결사운동’, 무차선회를 진행하였다. 홍천 무문관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참선집중수행 ‘참사람의 향기’를 진행하며 일반인들과 학인스님들의 참선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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