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일본만화, 불교를 그리다

2016-03-03     강형철

[특집] 만화, 불교를 다시 그리다

01.  새로운 붓다의 탄생 만화, 붓다를 다시 그리다 / 조혜영
02.  만화, 불교를 소재로 세상을 그리다 / 조혜영
03.  동글동글 2등신 캐릭터가 전하는 부처님 세상 / 유윤정
04.  불교를 다채롭게 풀어내는 6인 6색 프리즘 / 정태겸
05.  일본만화, 불교를 그리다 / 강형철
 
불교만화로 화하다
 
일본의 에도시대 임제종臨濟宗 승려였던 센가이 기본(仙厓義梵, 1750~1837)은 불교설화, 선문답 같은 주제들을 현대적 의미에서 만화적 묘사를 사용해 화선지에 붓으로 그려내고, 그 옆에 간략히 스토리를 적었다. 센가이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은 비율의 변경 및 개성의 과장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의 만화캐릭터를 연상케 한다. 또한 그림 옆에 길거나 짧은 문장을 적어 내용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도 만화와 유사하다. 
 
현대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만화를 창작하는 나라이다. 그것은 일본인들에게 전통문화와 만화 사이에 교집합을 이루는 모종의 욕구가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센가이의 그림들은 최초로 그 공통분모를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의 잠재적 예술 욕구가 만화와 관련되어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것이 선불교의 그림이라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사실이다. 불교만화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에도시대의 그림에 나타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 불교만화의 실질적인 역사는 전쟁 직후인 1948년에 출간된 오타 지로太田じろう의  『주먹만유기げんこつ漫遊記』로부터 시작한다. 주인공인 미타로三太郎라는 소년이 바닷가에서 커다란 소라를 구해주는데, 꿈속에서 소라 신이 나타나 그에 대한 보답으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주먹을 지닌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미타로는 강한 주먹으로 평소 괴롭히던 동네 아이들에게 복수를 하게 되지만, 이후 한술 더 떠서 그 주먹으로 공공기물을 파손하고 가축들을 괴롭히는 동네의 골칫거리가 된다. 이에 미타로의 어머니는 그를 절에 출가시키게 되고, 강한 주먹을 이용해 괴물을 퇴치하고 도적들을 소탕하는 등 큰 활약을 펼치게 된다는 내용이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최초의 불교만화는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가 1954년부터 연재한 『불새火の鳥』이다. 데즈카 오사무는 『철완아톰鉄腕アトム』으로 잘 알려진 일본 만화계 최고의 거장이다. 『불새』는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고대부터 미래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까지 무대로 삼아 생명의 본질, 인간의 업과 인과응보, 윤회 등 불교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들을 다룬다. 『불새』는 다양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특히 1986년에 제작된 『불새-봉황편火の鳥-鳳凰編』은 미디어에서 역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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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 만화를 보고 출가를 결심하다
일본의 조동종曹洞宗 승려이면서 명상가, 임상심리학자, 사찰음식 연구가, 불교만화연구가인 요시무라 쇼요吉村昇洋는 조동종의 인터넷 사찰로 개설된 허공산 히간지(虛空山 彼岸寺, www.higan.net)라는 사이트에 『스님이 읽어주는 불교만화의 세계お坊さんが読み解く仏教マンガの世界』라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 기고문에서는 수십 여편의 일본만화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종류로 분류한다.
 
① 세존·조사·명승들의 전기 혹은 불교의 역사
② 불교설화, 불교사상, 불교교리, 불교철학, 불교용어
③ 현대의 불교인들의 실태·생활
④ 불교관련 캐릭터를 모티브로 한 오리지널 스토리 창작
 
그의 이러한 분류는 일본 불교만화의 카테고리를 효율적으로 구분 짓는다. 앞서 언급한 『주먹만유기』는 분류④에 해당하며, 『불새』는 기본적으로 분류④이면서 분류②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에피소드에 따라 분류①의 내용도 다루고 있다. 요시무라 쇼요의 집계에 따르면, 2000년 이전에는 분류①이나 ②의 만화가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2000년대 이후에는 분류③이나 ④에 해당하는 만화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분류①에 해당하는 작품 중에서 대표적인 만화는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ブッダ』라고 할 수 있다. 위의 분류①과 ②에 해당하는 초기 작품들이 대개 교육을 위해 그려진 입문서에 가까웠다면, 『붓다』에서는 창작욕구 발현의 결과로 빛을 보게 된 생생한 붓다의 생애가 묘사된다. 무엇보다도 『붓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곳곳에 블랙 유머가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붓다의 생애를 읽으며 접하게 되는 많은 내용들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작가적 시선으로 재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후 작품들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중요한 요소다. 그것이 작품의 상업성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불교의 내용들이 작품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붓다』가 환기시켜주고 있다. 앞서 거론한 『불새』가 분류④의 방식과 관련하여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것도 물론이다.
 
만화소재로서의 불교라는 장점이 잘 드러난 작품 중 대표작으로는 분류③의 범주에 들어가는 『팬시댄스ファンシィダンス』와 분류④에 해당하는 『공작왕孔雀王』을 들 수 있다.
 
『팬시댄스』는 오카노 레이코岡野玲子가 1984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만화로서, 영화 『쉘 위 댄스Shall we ダンス?』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일찍이 영화화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만화의 주요 내용은 밴드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주인공이 아버지의 절을 물려받기 위해서 조동종의 유서 깊은 사찰인 에이헤이지永平寺로 출가하게 된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원래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을 지닌 주인공이 절에서 좌충우돌 사고를 일으키면서도 서서히 한 사람의 스님으로서 본분을 자각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는 성장 스토리이다. 현대 출가자의 생활을 사실적이면서 드라마틱하게 다룬 작품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오기노 마코토荻野真가 1985년부터 연재된 이후 많은 시리즈물을 양산한 『공작왕』은 밀교 경전인 『불모대공작명왕경佛母大孔雀明王經』의 내용을 모티브로 한 만화이다. 공작명왕孔雀明王의 화신이면서 현대 교토의 고야산高野山을 중심으로 하는 밀교 종단의 승려로 태어난 공작이 요괴들과 악마들을 퇴치하는 내용이다. 인도에서부터 일본으로 전해진 밀교의 방대한 세계관이 충실하게 만화 속에서 녹아나는 작품이다. 분류④의 내용 속에 분류②의 내용을 성공적으로 접합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일본의 불교만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몇 작품을 분류별로 소개했다. 20세기 이후 일본에서는 많은 불교만화들이 출간되었다. 그 중 어떤 만화들은 잊혀졌지만, 어떤 만화들은 최근까지도 재출간되면서 각광받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살아남은 대부분의 작품들은 완성도도 뛰어나며, 소재만으로 발간 당시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포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2000년대 이전에 발간되었던 분류①과 ②에 해당하는 수많은 작품들의 경우처럼 그 수명이 오래 가지 못했다. 불교만화가 작품 자체로서 창조적이지 못하고 소재 자체가 다양한 고민의 필터를 거쳐서 소중하게 다루어지지 못하면, 어설픈 포교의 시도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승려 요시무라 쇼요는 포교와는 무관한 『공작왕』을 읽고 출가를 결심했었다고 고백했다. 이 고백이 시사하는 의미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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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철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상키야와 불교의 찰나멸에 관한 대론 연구 -Yuktidipika를 중심으로」를 연구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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