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너머] 씨앗, 인류 생활사의 시작과 끝

2016-03-03     최원형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 소장

내가 처음 오관게五觀揭를 만났던 건 귀가 아닌 눈을 통해서였다. 한 사찰 공양간 벽에 적혀 있던 오관게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배고픔도 잠시 잊은 채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해본 경험이 그때까지 전무했던 터라 실로 그 충격은 컸다. 내 앞에 놓인 음식의 인연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 개인의 수행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 그 통찰과 혜안이 놀라웠다. 다섯 줄로 적혀 있던 오관게는 그 사찰에서 공양을 하는 동안 어느 때는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기’도 했고, 또 어느 때에는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오관게를 암송하며 밥을 먹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오관게를 잊고 지내다 어느 해 한 사찰에서 템플스테이 어린이 생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다시 내 기억 저장소에서 꺼냈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아이들이 공양 때마다 읊조리는 오관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시켜보자는 취지였다. 쌀 한 톨에서 시작된 마인드 맵이 햇빛과 비, 바람을 거쳐 자동차와 빌딩으로 연결되었고, 지구촌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가 닿았다. 쌀 한 톨에서 시작된 생각들로 전지 한 장을 다 채우고 나더니 아이들은 쌀 한 톨이 놀랍다 했다. 아이들에게 쌀은 그동안 뭐였을까?

마트에 진열된 여느 상품들처럼 쌀 역시 마트에서 돈을 치르고 가져오면 되는 것 이상은 아니었던 듯싶었다. 그런 아이들이 쌀 한 톨에서 시작된 여행을 하고 나더니 농부의 땀방울과 바람과 햇빛 그리고 지렁이 도움까지 받고서야 밥이 우리 밥상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에 꽤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며 온갖 풀이 돋고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는 3월이다. 겨우내 그저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생명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땅에 날이 풀리자 봄나물이며 봄꽃이 쏙쏙 올라오는 일은 볼수록 신기하기 짝이 없다. 그 놀라움이 오죽했으면 저쪽 사람들은 봄을 ‘spring’이라 했을까? 짐작하듯 비밀은 씨앗에 있다. 그리고 그 씨앗들은 인류에게 농업혁명을 가져다줬다.

수렵 채집 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전환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씨앗 덕분이었다. 잘 갈무리해 둔 씨앗을 솔솔 뿌려 거두어 먹게 되니 자연 정착생활이 가능해졌던 거고, 그로 인해 잉여 생산물이 생기게 되고.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더 이상 유쾌하지만은 않다. 잉여 생산물로 인류역사에는 끊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진행된 종자 갈무리는 오랜 시간 축적된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농사를 지으며 대를 이어 종자를 남긴 덕분에 오늘날 우리에게 풍요로운 식탁이 주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농부들이 더 이상 씨앗을 남기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느 순간 특정 기업이 종자를 소유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현재 종자는 시장 한복판에 던져졌고 몬산토, 듀폰, 신젠타를 비롯한 소수의 초국적기업들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이 기업들 대다수는 독가스와 질소폭탄을 만들던 화학기업들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비료와 제초제를 만드는 농화학기업으로 변신했다가 1980년대 중반 유전공학이 등장하자 종자회사들을 대거 인수하면서 종자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거대 종자기업의 탄생 배경이다. 그들이 생산해내는 종자가 바로 GMO종자다.

유전자조작농산물(GMO)이 처음 상업적으로 재배가 되기 시작한 지 이제 20년이 넘었다. GMO란 말 그대로 인간의 요구(정확히는 기업의 요구)에 맞도록 씨앗의 유전자가 조작된 농산물이다. 종자를 개발한 이들에게 법과 제도는 그 종자에 대한 소유권을 배타적으로 부여했다. 기업에 씨앗을 빼앗긴 농부들은 파산의 벼랑 끝에 섰다. 면화씨를 GMO종자로 바꾼 뒤 해마다 종자 기업이 면화 씨앗의 가격을 올리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은 인도 농촌에서는 매년 수백 명의 농부가 목숨을 끊고 있다.

미국의 대평원,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콩과 옥수수의 절반이 생산되는 그곳에 끝도 없이 심어진 옥수수와 콩도 모두 GMO다. GMO 씨앗은 불임씨앗들로 일회용이 되었고, 농민들은 해마다 씨앗을 새로 구입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종자회사의 씨앗에만 반응하는 농약과 비료를 해마다 더 많이 뿌려야 농사가 가능하다보니 농민들은 GMO종자 회사에 속았다며 분노하고 있다. 처음 농민들에게 씨앗을 팔 때 종자회사들은 영농비용이 줄어 막대한 수익이 보장된다며 사탕발림을 했다. 결과는 참담한 반대였다.

“씨앗을 책 대출하듯 받아가서 그 씨앗으로 농사를 지어 가을에 수확한 씨앗을 다시 반납하며 우리 씨앗을 꾸준히 지켜 나가는 게 바로 씨앗도서관이 하는 일이에요.” 홍성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작년에 씨앗도서관을 열었다. 그곳에서 생태농업 전공부 농업교사로 일하는 오도 씨는 씨앗도서관 앞 텃밭에 채종포를 마련하고 학생들과 씨앗 받는 일을 하고 씨앗도서관도 운영하며 틈날 때마다 씨앗 마실을 다니고 있다. 씨앗 마실은 풀무학교가 있는 홍동에서 반경 4km안에 있는 마을을 다니며 씨앗을 얻고 씨앗에 얽힌 이야기도 기록하는 걸 말한다. 홍성에서 일평생 농사일하며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 꺼내 놓는 씨앗은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적부터 보존되고 대물림되고 키질해서 갈무리 되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똑같은 품종의 콩도 마을마다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아주 미세한 기후 차이가 그런 다양성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씨앗도서관에서는 일 년에 네 번 씨앗을 받는 방법을 배우는 워크숍이 열리고 특히 4월에는 씨앗 장터가 열려 다양한 씨앗들을 물물교환 한다.

이렇게 수집된 씨앗들이 씨앗도서관에서 다시 여러 사람들에게로 전해지니 씨앗도서관은 씨앗 네트워크인 셈이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보고서들은 입을 모아 급격한 기후변화에 가장 치명타를 입을 분야로 농업과 식량문제를 꼽았다. 그렇기에 요동치는 기후변화에 그나마 견뎌낼 수 있는 농작물은 기업이 유전자를 조작한 씨앗이 아니라 해마다 그 땅에서 기후에 견디며 버텨온 작물의 씨앗이다.

도시에서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는 나는 곧 씨 뿌릴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해마다 종자회사에서 상품으로 파는 씨앗을 아무 생각 없이 사다 썼지만 이제 나는 씨앗의 인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씨앗이 사람을 위한 먹거리에서 기인한 것인지, 기업의 이윤을 남기기 위한 것인지를 말이다. 생각해보면 인류의 생활사는 씨앗과 함께였다.

삼베에서 면화, 곡식 그리고 목재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씨앗에서 기인하지 않은 게 없다. 우리에게 의식주를 제공했던 씨앗을 기업의 탐욕에 오염되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해 줘야 하는 건 우리의 책무다. 농사의 시작은 흙이고 씨앗이며 그리고 생명이다. 오늘 내 몸을 지탱하는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언제까지나 음식이 ‘순환하는’ 씨앗과 흙에서 올 수 있기를.

 

최원형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EBS와 KBS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현재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 소장으로 생태·에너지·기후 변화와 관련해 강의하며 관련 콘텐츠 개발도 하고 있다. 또한 생물 다양성 보존과 탈핵, 에너지 전환으로 가는 길을 모색하며 시민 교육에 힘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