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면목을 깨달아야 한다

2016-03-03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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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도 그렇고 추석도 그렇고, 좋은 날에는 이런 말들을 하지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같은 날만 되어라.” 여러분들을 보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오늘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법당에 함께 모여 앉아 있는 것을 보니까 참 좋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절에 무엇을 하러 오셨습니까?

| 오늘 절에 무엇을 하러 오셨습니까
부처님 뵈러 오셨다는 분이 계시네요. 여러분, 오늘 부처님 뵈러 오셨습니까? 그렇다면 부처님은 집에는 안 계신가요? 부처님은 어디에도 다 계시지요. 부처님 뵈러 왔다. 참 묘한 이야기입니다. 뵈러 왔다는 그놈이 참 묘한 놈입니다. 부처님을 뵙기 위해 절에 왔다고 하지만, 사실은 부처님을 뵈러 온 그놈을 공부하는 것이 절에 오는 이유입니다. 부처님을 뵈러온 그 주인공, 그놈을 바로보자는 데 절에 오는 참뜻이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 한 신문과 명사 애장도서라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책 두 권을 소개했는데 그중 하나가 2003년도에 최인호 작가가 법정 스님과 네 시간동안 나눈 대담을 엮은 책 『꽃잎은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입니다. 두 분이 길상사 요사채에 앉아 사랑과 행복은 무엇인가, 죽음과 삶은 무엇이냐 등등 인생살이의 물음들을 주거니 받거니 했어요. 그 대담의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에도 두 분 사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법정 스님께서 2010년에 입적하셨을 때, 그 당시 최인호 작가도 항암치료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습니다. 최 작가가 병상에서 법정 스님께서 열반하셨다는 비보를 듣고는 주치의의 반대에도 법정 스님을 뵈러 길상사에 갔습니다. 그렇게 작가가 문상을 마치고 길상사를 한 바퀴 휘 걷고 돌아가는데, 길에서 모진 한파를 이기고 피어난 꽃을 보았다고 해요. 그때 떠올린 문구입니다. ‘꽃잎은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는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이 한 말입니다. 최인호 작가는 왜 그 말을 떠올리게 됐을까요.

왜 꽃잎은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는 눈이 있으면 누구나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을이 오면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는 이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꽃은 지지 않는다 했습니다. 왜 꽃은 지지 않는다고 했을까요. 이것이 화두입니다.

‘부처님 뵈러 왔습니다.’ 그 말은 곧 ‘꽃잎은 떨어진다.’는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요. 법정 스님. 법정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법정은 출가 이후에 생긴 이름입니다. 법명 이전에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도 있습니다. 최인호 작가는 법정이라는 허물, 그 껍데기를 떨어지는 꽃잎에 비유한 것입니다.

꽃잎은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떨어집니다. 꽃잎이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고, 여러 가지 환경과 기온에 의해 떨어진 꽃잎은 풍화작용으로 흩어져 버립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모두 공수래공수거입니다. 올 때 가져온 것 없고 갈 때 가져간 것 없어요. 법정 스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중 영원한 것이 있다면 법정이란 진면목이에요. 그 진면목이 곧 지지 않는 꽃입니다. 법정 스님은 근면, 청빈, 검소함을 몸소 보여주시고, 명 수필로서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주셨지요. 그러한 법정 스님의 울림이 그대로 우리 곁에 남아있기에 꽃은 지지 않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 지지 않는 꽃을 봐야 한다
만약, 우리가 법정이란 허울에 놀아났다면 오늘날 우리 가슴속에 그분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자기의 진면목을 보고, 오로지 중생들이 맑고 향기롭게 살 수 있도록 애썼기 때문에 우리 가슴속에 오롯이 앉아 있는 거예요. 그 진면목 법정은 가시지 아니했단 말이지요. 그렇기에 꽃잎이 떨어졌지만 꽃은 지지 않고 이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우리는 그 어른의 청빈한 삶과 진실성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절에 오는 것은 부처님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고, 나의 진면목을 이 자리에서 발견하러 오는 것입니다.

나의 진면목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사회가 행복하고 가정이 해체되지 않습니다. 나의 진면목을 깨우치면 부부는 화합되고, 가정은 평화로워요. 가정이 평화롭지 않고 부부가 화합하지 않는 것은 지지 않는 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집이 크고 작다, 돈이 많다 적다 이런 것들을 분별하는 것은 떨어지는 꽃잎에 불과해요. 지지 않는 꽃을 봐야 합니다.

얼마 전 가슴 아픈 일들이 있었지요. 정말 인간으로서 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부천에서 아동학대로 13살 여학생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참된 부모, 진면목으로서의 부모, 나의 본성을 깨우치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부천뿐만 아니라 울산 계모사건, 칠곡, 인천 등등 주위 많은 아이들이 자기의 진면목을 모르는 부모들로부터 학대를 받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이만 괜찮으면 되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중생이에요.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도리로서 직무유기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부천에서 생을 달리한 아이를 우리의 진면목으로 보면 ‘그 부모의 딸’이 아니라 ‘우리의 딸’이고 ‘나의 딸’입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 어린 영혼들이 자신들의 진면목을 얼른 알아채 환희해탈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려 합니다. 어린 영혼들이 환희해탈해서 다음 생에는 인간 몸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 영혼들을 위해서 49일 동안 아미타 부처님을 떠올리며 염불하고 발원문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함께 정성을 다해서 기도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 살아가는 것은 다 나눠 갖는 것이다
올해는 병신년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복덕은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집 밖으로 나가라.’ 염원하시는 분들 계실 거예요. 그렇다면 집밖으로 나간 재앙은 어디로 갈까요. 재앙은 어디로 보내야 합니까. 진면목을 깨우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만복은 들어오라 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액운더러 나가라 해서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집의 안과 밖은 분별심으로 이리저리 헤아려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그 본질은 공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반드시 나라는 정체성을 깨우쳐서 모든 것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나라는 정체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해 자비와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부터 한낱 돌멩이까지도 모두 다 소중한 것들이에요.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자연을 훼손했을지언정, 대자연이 우리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법정 스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살아가는 것은 다 나눠 갖는 것이다.” 부처님의 진리를 지금의 언어로 현대인들에게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많이 가진 자일수록 더 갖기 위해서 없는 자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나눠 갖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말이지요. 일례로, 대자연들은 여러분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혜택 받고 있음을 잘 모르고 있지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혼자 살 수 없어요. 오늘 이 자리, 이 법당에 잘 차려입고 온 것도 그렇습니다. 혼자 있으면 잘 차려입을 필요 없지요. 혼자 있다면 옷을 입고 오지 않아도 뭐라 말 할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옆 사람을 생각합니다. 옆 사람과 나는 알게 모르게 교감을 하고 있어요. 내가 예쁘게 차려입고 오고 싶은 것은 내 주위에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것은 함께 나눔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내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죄인들입니다. 불필요한 것은 버리세요. 남에게 무언가를 줄 때도 나에게 불필요한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내게도 필요한 것을 함께 나눌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법정 스님 말씀입니다. 여러분 허망되고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지 마시고 헌신적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발원하는 모든 공덕으로 공을 이루고 성불하시길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종연 스
학능 스님을 은사로 조계종 전종, 1988년 백양사에서 사미계, 2000년 송광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현재 인천 수미정사의 회주이며, 인천불교총연합회 회장·이사장, 경인불교대학 학장, 사단법인 미추홀공덕회 이사장, 미추홀종합사회복지관 운영위원장, 해양경비 안전본부(서) 경승위원장 및 인권위원, 인하대학병원 생명윤리위원회 위원 및 지도법사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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