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의 방에서 벌어진 일

2016-03-03     불광출판사

 

● 유마힐은 까칠한 사람이다. 석가모니 곁에 있던 사람 가운데 이 이의 핀잔을 안 들은 사람이 없다. 부처님의 500제자가 한결같이 지청구를 들었다는 말도 있다. 8,000명에 이르는 보살들도 유마힐에게 다들 한 번쯤은 씹혔다 하니, 부처를 따르던 이들이 다시는 유마힐 옆에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체머리를 흔드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이 유마힐이 앓고 있다는 말을 부처가 들었나 보다. 부처는 열 손가락 꼽히는 제자 가운데도 가장 슬기롭고 뛰어나다고 알려진 사리자에게 병문안을 다녀오라고 이른다. 사리자가 고개를 흔든다. 부처를 둘러싸고 있는 열 제자 가운데 아무도 가겠다는 이가 없다. 석가의 아들인 라훌라까지도 못 가겠다고 한다. 이럴 수가 있나. 유마힐은 비록 머리를 깎지 않았으나 석가가 ‘더할 나위 없이 바로 고른 바른 깨우침’(아뇩다라삼먁삼보리. 無上正等正覺)을 얻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받들던 사람이다. 그런데 스승의 말을, 아비의 말을 거스르면서까지 병문안조차 안 가겠다고 뻗댄다?
 
“아니 왜 못 가겠다는 거야?”
 
“이런이런 일이 있었는데, 된통 야단맞고 저런저런 꾸지람까지 들었거든요. 그런 꼴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요. (저희 망신은 스승님 망신이기도 하잖아요)”
 
“할 수 없군. 길상(문수사리)이 자네가 가 보게.”
 
“만만치 않은 분이십니다. 말솜씨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요. 그래도 시키시는 일이니…….”
 
 
 
● 이렇게 문수사리가 유마힐의 방을 찾아가고, 그제서야 너도나도 우르르 따라나선다.(현장이 옮긴 ‘때 묻지 않았다 일컫는 말의 경’『설무구칭경』에 따르면 문수사리를 좇아 보살 8,000, 부처 제자 500, 그밖에 온갖 떨거지들까지 다 따라붙었다 한다.)
지나는 결에 한마디 하자. 석가모니와 유마는 한 스승 밑에서 배운 적이 있다는 말이 떠돈다. 가르침을 베푸는 몫을 따로 맡았다는 말도 있다. 석가는 부드럽게 감싸고 보듬는 모습으로, 유마는 날카롭게 찌르고 내치는 모습으로 일깨움을 준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석가의 제자들은 이렇게 여긴다.
 
 ‘하늘 같은 우리 스승께서도 머리 깎고 비렁뱅이로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 모두 고른 슬기(일체평등성지)로 우리를 다독거리는데, 술 퍼마시고 기집질하고 노름에 빠지기도 하고 저잣거리에서 이놈 저년들과 시시덕거리는 주제에 어디 대고 걸핏하면 삿대질이야. 삿대질은.’
 
사리자는 씩씩대는 이 제자들의 첫머리에 선다. 문수사리가 유마의 집에 들어서니 유마힐은 자리에 앓아 누워 있고 방은 텅 비어 있다. 이럴 수가! 한때 유마힐은 마당발이고 돈도 많이 벌어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고 산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사는 꼴이 우리보다 나을 게 없구나. 까칠하기 이를 데 없어서 곁에 사람이 많지 않으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 병 수발들 사람 하나 없이 끙끙거리고 있다니.
 
겨우 몸을 일으킨 유마힐이 아니나 다를까 쿡 찌른다.
 
“문수사리님 잘 오셨수. 오고 싶지 않은데 와서 보고 싶지 않은 꼴 보시는구려(不來相而來 不見相而見).”
 
문수사리는 시덥잖은 법거량으로 치고, “어떻게 해서 앓아 눕게 되셨는지, 얼마나 오래 앓아 누우셨는지, 어떻게 해야 나을 수 있겠는지 세존께서 궁금해 하십니다.” 하고 말머리를 돌린다.
 
“어리석은 사랑 때문에 생긴 병이지요. 모두가 앓고 있어서 저도 앓고 있습니다. 중생들이 모두 낫는다면 제 병도 사그라지겠지요.”
 
“거사님, 방은 왜 비어 있고 돌보는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까?”
 
“(스님 같은 분들은 저마다 제 앞가리기에 바쁘니 병문안 올 틈도 내기 어려운 터에) 온갖 마구니 떼와 길 벗어난 이들(外道)이 모두 저를 보살피지요.”
 
“몸에 생긴 병인가요, 마음에 생긴 병인가요?”
 
“몸에서 생긴 것도 마음에서 생긴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흙, 물, 불, 바람 가운데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딱히 어느 것이라고 짚어 말하기 힘들군요. 그러나 중생이 앓는 것은 흙과 물과 불과 바람에 따르는 것이고, 이것들이 앓고 있어서 저도 앓고 있지요.”
 
뒤이어 유마힐과 문수사리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때 묻은 땅에 몸 굴리고 있는, 반은 얼빠지고 반은 넋 나간 나 같은 늙은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니까 제쳐두기로 하고, 이제부터 부처의 우두머리 제자 격인 사리자와 유마힐이 티격태격하는 모습, 또 유마의 방에 숨어서 보살피던 길 벗어난(外道) 하늘기집(天女)과 사리자의 대거리를 지켜보자.
 
‘그때 사리자는 이 방에 앉을 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다.’ 이 많은 보살과 큰 제자들은 어디 앉아야 하나. 그 꼴을 본 유마힐. “법을 위해 오셨나요? 앉을 자리 찾아오셨나요?” 이런 망신이 없다. (문득 보라매공원에서 김대중이 선거 유세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수십만이 모여 들었는데 앉을 자리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철망으로 둘러친 담 위에 매달리기도 하고, 나무에 올라 흔들리기도 하고, 아비 어깨에 무등 타기도 하고, 발뒤꿈치 들기도 하고, 한마디라도 더 귀담아 들으려고 바늘 꽂을 틈 없이 뒤엉킨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숨을 죽이던 그때 그 모습이.)
 
 
 
● 다음은 하늘기집(天女)과 주고받은 대거리다. 숨어서 유마힐을 돌보던 하늘기집이 나타나 방에 꽃을 뿌린다. (몸도 제대로 씻지 못하고 마음에도 때가 탄 수컷들 냄새가 코를 싸 쥘 만도 했겠지.) 사리자는 몸에 붙은 꽃을 탈탈 털어버리려고 하는데, 달라붙은 꽃잎은 떨어질 줄 모른다.
 
“왜 털어버리려고 하시나요?”
 
“법도에 맞지 않기 때문이요.”
 
“이 꽃은 사람 가리지 않는데, 어른께서는 가리시는군요.”
 
“이 방에는 얼마나 오래 머물렀소?”
 
“어른이 벗어 던진 해 만큼요.”
 
“그렇게나 오래 있었단 말이요?”
 
“벗어 던지신 지 얼마나 되셨는데요?”
 
말문이 막힌 사리자.
 
“어른이시고 슬기로 빼어난 분께서 왜 말이 없으십니까?”
 
“음婬, 노怒, 치癡를 떠나는 것이 해탈이 아니겠소?”
 
마침내 속이 드러났다. 사리자는 하늘기집과 유마힐 사이가 수상쩍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쯧쯧.)
 
“부처님께서는 음노치의 됨됨이가 벗어 던짐과 둘이 아니라고 하셨을 텐데요.”
 
“좋아요, 좋아. 천녀님, 그대는 무엇을 얻고 어떻게 깨우쳤기에 말솜씨가 이렇습니까?(혹시 유마힐 거사한테 들은 풍월 아니요?)”
 
“저는 얻은 것도 깨달은 것도 없어서 말주변이 이렇습니다.(아무렇게나 제멋대로 씨부리는 거예요.)”
 
말솜씨야 어떻든 깨우침은 몸으로 드러난다고 굳게 믿는 사리자는 마침내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을 내뱉는다.
 
“그대는 왜 여자 몸을 바꾸지 않고 있소?”
 
“제가 유마힐 거사를 모신 지 열두 해 동안 기집 꼴을 갖추려고 무던히 애썼어도 얻을 수 없었는데, 어떻게 하면 여자로 바뀔 수 있지요?”
 
         그 대거리를 보고 있는 무리들에게는 하늘기집이 수컷 닮고, 사리자 꼴이 갈 데 없는 기집이다.
 
“사리자님, 사리자님이 여자가 아니면서 기집 꼴을 드러냈듯이 여자들도 모두 이와 같아서 비록 여자 얼굴을 드러내지만 여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을 죄다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말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떼거리로 몰려가면 유마힐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으리라 여겼을까? 사리자는 잘못 짚었다. 잠깐 얼굴만 비추고 돌아설 수 있으리라 여겼던 이 만남은 한 권의 경전으로 묶일 만큼 길어져서 사리자는 이제 ‘대중공양’ 걱정이 앞선다. 그 마음을 알아채고 유마힐이 나무란다.
 
“부처님은 벗어 던짐을 여덟 가지나 말씀하셨지요? 어진 이께서 그것을 몸 받아 옮기는 것으로 아는데 어찌 먹고자 하는 잡념을 버리지 못하고 법문을 듣고 있습니까?”
 
부처가 유마힐에게 바란 게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으뜸 제자에게 제 곁에서만 맴도는 작은 수레(소승) 버리고 큰 수레(대승)에 오르기를 바라 사나운 코끼리에게 매질하듯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개망신을 주는 것.
 
병문안 소식을 모두 귀담아들은 붓다는 아난에게 이렇게 이른다.
 
“이 경전은 ‘유마힐소설’이라 이름 짓고, 또 ‘불가사의 해탈법문’이라고 부르고 받아 지니기를 이와 같이 하거라.”
 
대승의 문은 이렇게 열린다. 아멘.(아무렴)                                           
 
 
 
윤구병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월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거쳐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1995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으로 낙향,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해 20여 가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어린이 전문 출판사인 보리출판사를 설립해 많은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다.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