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의운하] 경남 산청 대원사 동국선원장 성우 스님

“좋은 씨 뿌리고 좋은 수확을 해라 할 뿐이지, 무씨 뿌린 데, 배추 안 나”

2016-01-27     최배문

 

 
 
성님
경남 산청 대원사 동국선원 선원장. 1922년 충남 서산 출생. 1943년 쌍계사 국사암에서 법일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은사스님과 함께 대원사 정화불사와 전후 중창을 일궜다. 현재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이 된 대원사 동국선원 설립 당시부터 입승 소임을 맡아 대중을 이끌고 정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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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공부가 허고 싶은데 여자가 공부허믄 집안 망한다고, 경주 김가, 아주 양반이라. 야학을 다녔어, 저 뒷문으로 몰래 가고오고. 선생님이 해인사를 가서 중이 되가꼬 나타났어. 그때부터 나도 절에 가고 싶은 생각이 난 기라. 집이는 저 딴 디로 간다고 써놓고, 쌍계사 국사암으루 갔어요. 붙잡으루 올까봐서, 한 달 만에 계 받고, 사흘 만에 머리 깎고. 콩깻묵하고 썩은 강냉이하고 삶어서 요만한 디다 퍼서 줘, 비구니 회상이 영- 시원찮을 때라요. 그걸 먹고 쪼록쪼록 배를 곯아가믄서 낮에는 산 파고 밭 매고, 밤에는 집안일 허는디두 후회 한 번을 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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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그럭허고 살다가 정혜사를 가려고, 다 떨어진 걸망, 그눔 빨아서 그것하고 옷은 칠렁칠렁한 걸 입고, 밀대모자를 쓰고 나서는데 팔일오 해방이 됐는기라. 사람덜이 쏟아져 나오니께 석탄 실쿠 가는 기차, 그 문짝에 매달려서 종일을 갔어. 좋드라고, 세월 가는 줄 모리게. 일엽 시님이 입승하고 그럴 땐디, 저 큰 방에 입승자리, 항상 그 자리 앉아 가지고 입승 노릇을 허는데, 아무리 편찮애두 그 자릴 안 떠나. 그 시님 밑에서 공부를 허구, 만공 시님 날마다 오셔서 법문해 주시구, 아주 재미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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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육이오 뒤에 은사시님하고 여기 들어올 때, 길도 없고 전부 바위널이라. 어디가 절터인지도 모리게 생겼어. 건물이 다 내려앉아서, 거서 다 나무가 나고 엉켜 있응께. 반찬꺼리두 간장 된장두 저 부산까지, 진주까지 가서 얻어가지고 순전히 내 손으루 짊어져다 일꾼들 밥을 하고. 전국적으로 대처승하구 비구승하구 싸울 때거든. 하루 걸러 와서 우리 살림보따리 다 마당으로 끄집어내고. 그래도 꿋꿋하게 잘 싸웠습니다. 대중공사를 해서 그 사람들 설득을 잘 시키고. 만인동참책을 맹글어 가지구 사방으루 댕기구. 그럭해가꼬 이게 이룩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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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몸땡이라는 건 허망한 거거든, 죽는 거 안 봤습니까? 시간되면 놔버리는 거라. 그러니께 적당허게, 이 몸뚱이 유지헐 만큼, 창자 마르지 않을 만큼만, 입히고 멕이고. 아, 백 년도 못 가는 눈을 갖고, 옳다 그르다 분별허지. 눈이 그러는 게 아니구, 여기서 주장허는 게 들어서. 그 놈은 불에 태워두 안 태워지구, 물속에 잡어 넣어두 죽는 게 아닙니다. 그 자리를 찾어 내면 아뭇꺼두 논헐 게 없다 이 말이우. 잘하면 네 일이다, 잘못해두 네 일이다, 전부 다 네가 씨 뿌리고 거두는 거다, 그르니 좋은 씨 뿌리고 좋은 수확을 해라 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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