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한상균 조계사 피신’을 보는 시선들

2016-01-27     김성동

화쟁和諍. 2015년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근 한 달간 불교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검색어 순위에 노출되기도 했다. 근래에 화쟁이란 단어가 이토록 격렬하게 현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화쟁’이란 단어는 불교계와 사회 속에 깊이 기억된다.

2015년 11월 16일 밤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조계사 피신을 두고 정부와 노동계, 보수층과 진보층이 “범법자이기에 즉각 사찰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과 “약자를 보듬어야 한다.”는 목소리로 팽팽하게 갈렸다. 이 갈등은 불교계 내부에서도 나왔다. 조계사 신도회 일부 불자들이 조계사 관음전에 진입해 한상균 위원장을 강제로 끌어내려고 했다. 불교 시민단체들은 조계사 앞에서 한상균 위원장을 보호하자는 작은 법회를 열었다. 언론은 연일 조계사 상황을 보도했고, 수십 명의 기자들이 조계사 내에 상주하면서 긴장감은 더해갔다. 바로 이런 긴장과 갈등 상황의 한 가운데 조계종이 자리하고 있었고, 더 중심에는 조계종 화쟁위원회(위원장 도법 스님, 이하 화쟁위원회)가 두 갈등의 중재자로 위치했다.

갈등은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24일 국무회의에서 “수배 중인 민노총 위원장은 종교단체에 은신해 2차 불법집회를 준비하면서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증폭되었고, 마침내 12월 8일 경찰이 조계사 관음전에 경찰 병력을 투입하겠다는 결정으로 더욱 뜨거워졌다. 이 때부터 조계사 주변의 경찰력은 2천여 명으로 늘어났고 민주노총, 불교 시민단체 등에서도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항의 집회를 이어나갔다. 조계사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기도하거나 절을 하러 오는 신도도 들어올 수 없었다. 조계사와 조계종 중앙종무기관 종무원들은 병력 투입을 막고자 인의 장막을 형성하였으며, 경찰의 일부가 관음전 입구에 진입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이 과정에서 종무원 한 명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경찰은 금방이라도 조계사에 경찰 병력을 투입할 것처럼 두터운 매트리스를 관음전 둘레에 배치했다. 조계사 주변은 경찰, 종무원, 기자, 민주노총, 불교 시민단체, 보수단체 등의 목소리가 얽히면서 탁한 공기가 무겁게 내려왔다.

한상균 위원장은 왜 조계사로 들어왔을까? 그는 교계 매체(법보신문, 2015.11.25)와 인터뷰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와 농민의 간절함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의미에서 마지막 보루인 종교, 조계사를 찾았습니다. 무례하고 어려운 부탁이라도 부처님 화쟁의 마음으로 껴안아 주실 것을 거듭 청원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현재 고통의 목소리가 제도권에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라고 했다. 그는 화쟁위원회에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의 평화적 진행 △노동자 대표와 정부 간 대화 △정부의 노동개악 정책 강행 중단 등의 중재를 요청했다. 첨예한 사회적 갈등이 예정된 문제였다. 화쟁위원회는 이 중재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풀어갔을까? 지난 2010년 6월 8일 출범한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주로 사회 현안 갈등(4대강 사업, 한진중공업 사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조성 등)의 중재 역할을 자임한 조계종 공식 기구다.

화쟁위원회는 한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해 온 이틀 뒤인 11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사자, 정부 등과 함께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지혜로운 길을 모색하겠습니다.”라며 중재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중재 요청 내용을 확인한 화쟁위원회는 11월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가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와 경찰, 노동계에 대화와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한상균 위원장은 11월 27일 대국민 입장문을 발표하고 “화쟁위의 중재를 받아들이면 즉각 자진 출두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쟁위원회도 11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저희들 또한 한상균 위원장의 경찰 출두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겠습니다. 그러려면 경찰과 정부도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라며 정부와 경찰에 대화를 적극 요청했다.

이러한 화쟁위원회의 중재 노력에 정부는 냉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1월 24일 국무회의에서 한 위원장과 관련해 “비상한 각오를 가져야 한다.”면서 “이번에야말로 배후에서 불법을 조종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법과 원칙에(따라) 엄중하게 처리해서 불법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할 것”이라고 강경한 대응을 주문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11월 27일 담화문을 발표하고 “불법과의 타협은 결코 없다.”며 “정부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동안 잘못된 관행을 단호히 끊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날 28일 경찰은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가 불법집회임을 대회 개최 단체인 전국농민총연맹에 통고했다. 사실상 대화 거부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12월 5일 예정된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의 평화적 시위도 어려울 수 있었다.

조계사 주변에는 “경찰 투입 임박.” 이란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경찰, 조계사, 화쟁위원회, 민주노총, 불교 시민단체 등의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계 밖에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12월 1일 서울행정법원에 서울지방경찰청의 12월 5일 예정된 제2차 민중총궐기 집회·행진 금지통고를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12월 3일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의 명령에 따라 12월 5일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는 불법 집회가 아닌 허가된 집회가 되었다. 화쟁위원회도 12월 4일 긴급회의를 통해 “불교, 개신교, 가톨릭, 원불교, 천도교 등 5대 종단 5백여 명의 종교인들이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평화의 꽃길 기도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는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화쟁위원회는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한 위원장이 중재를 요청한 세 가지 사항 중 △노동자 대표와 정부 간 대화 △정부의 노동개악 정책 강행 중단 등이다. 이 두 가지 사항은 사실상 정부가 대화를 거부했기에 중재 자체가 어려웠다. 또한 조계사 신도회가 12월 6일까지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자진 퇴거할 수 있도록 대승적 결단을 촉구한 상황이었다. 정부의 대화 거부로 화쟁위원회가 당장 중재를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이 없었다. 그러자 민주노총은 12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 당장 나가지 못하는 중생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려 달라. 종교의 사회적 역할로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거취 기한은 “노동개악 처리를 둘러싼 국회상황이 종료될 때까지.”라며 조계사의 자진퇴거 요구를 거부했다. 화쟁위원회에 요청한 중재안 중 ‘노동개악 정책 강행 중단’을 꺼낸 것이다. 화쟁위원회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산 넘어 산이었다.

도법 스님은 12월 8일 기자회견을 통해 “야당은 연내 노동관련법을 처리하지 않겠다고 했다. 야당의 약속과 국민을 믿고 한 위원장이 자신의 거취를 조속히 결정해 달라.”고 밝혔다. 또 도법 스님은 한 위원장의 조계사 거취 시효에 대해 “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온갖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는 공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해 왔다. 그런 것들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드릴 수 없음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불교포커스 2015.12.8.) 한 위원장의 거취(자진 출두) 문제로 많은 대화와 설득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 위원장은 12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찰은 나를 철저히 고립 유폐시키고 있다. 그 전술은 자본과 권력의 수법과 다르지 않다. 객으로 한편으론 죄송해서 참고 또 참았는데 참는 게 능사가 아닐 것 같다.”며 조계종에 섭섭함을 드러냈다.(이 내용은 현재 삭제됐다.) 화쟁위원회와의 대화를 압박으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다음 날 12월 8일에는 페이스북에 “오늘 발표한 화쟁위 입장 잘 보았다. 많은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 꽃을 든 스님들의 제안을 모두가 받아들인 결과다. 평화의 소중함을 계속 이어 가겠다.…출두 전제 조건을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차이도 확인했지만 노력하기로 한 것은 사실이다.”며 변화된 심경을 드러낸다.

한 위원장이 밝힌 ‘출두 전제 조건’이 무엇인지 알려지지는 않았다. 다만 화쟁위원회와 많은 대화 속에 자진 출두하는 날 이전까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찾았다는 것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12월 9일 오전 10시 조계종은 긴급하게 기자회견을 하며 “조계사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단지 체포영장이 발부된 한 개인을 강제 구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계종, 나아가 한국불교를 또 다시 공권력으로 짓밟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경고했다. 오후에는 경찰의 조계사 관음전 경찰 진입 예고, 조계종의 강력한 경고 등으로 긴장이 깊어갔고, 조계사 관음전 주변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넘쳤다. 경찰 투입이 진행되는 오후 5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긴급기자회견이 열렸다. 다음 날인 12월 10일 정오까지 한 위원장 거취를 해결하겠다는 입장문이다. 마침내 한 위원장은 12월 10일 10시 25분께 관음전을 나와 도법 스님과 함께 걸어서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이로써 한 위원장의 조계사 25일간 피신은 자진 출두 형식으로 끝났다.

25일. 이 기간 동안 화쟁위원회의 중재 활동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도법 스님의 표현처럼 “불덩어리”라 불릴 만큼 뜨거웠다. 우리 사회의 갈등 모습을 압축해 드러낸다.

정부와 여당, 경찰, 보수언론, 보수단체 등은 조계종과 화쟁위원회에 다양한 방법으로 한상균 위원장의 피신을 “범법자 보호”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퇴거를 종용했다. 보수 언론은 연일 종교의 정치개입, 치외법권, 법의 심판 등등을 기사화했다. 대통령도 “강력한 법집행”을 주문했다. 조계사 주변 전체를 경찰병력으로 통제했고, 관음전 일부에서는 진입까지도 했다. 극우 성향의 보수단체는 조계사 앞에서 연일 “빨갱이” 운운하며 위압했다. 정부는 강력한 법집행이 일관된 입장이다. 정부와 경찰은 화쟁위원회의 만남과 대화 요청에는 묵묵부답이었다.

조계사는 보호해 달라고 들어온 약자를 차마 내칠 수 없었다. 관음전에 피신한 그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당장 조계사 신도들의 신행 생활이 크게 침해되었다. 조계사가 연일 정치 공방 장소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내부에서 상당한 불만이 나온다. 일부 신도들이 관음전에서 한 위원장과 몸싸움을 했다. 이후 신도회는 전체 회의를 통해 한시적인 보호를 한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한 위원장은 조계사에 자진 퇴거 이틀 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도 경내 외에서 소란과 충돌이 있음에 가슴이 찢어진다. 이 불편을 온전히 감내해야 하시는 조계사의 스님, 직원님들 모두와 다수의 신도님들께 거듭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것은 “약자를 내쳤다.”는 비판이다. 주로 진보적 단체와 사람들, 불자들에게 나타난다. 앞으로 사회적 약자가 기댈 곳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무런 문제가 해결된 것이 없이 그를 자진 출두시킨 것은 사실상 압박해서 출두시킨 것이란 주장이다. 화쟁위원회가 노동개악 등 본질은 뒤로하고 자진 출두에만 골몰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화쟁이 정치공학적으로 활용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비판에 대해 도법 스님은 12월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일은 약자 편을 들고자 하는 문제도, 특정 편에 서서 다루는 입장도 아니다.”고 했다. 또 “문제를 풀고 더 나은 길을 만들어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말 이외에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며 “정부와 경찰, 노동계와 불교계가 극단적인 충돌을 막고 평화적으로 마무리된 것이 다행이고,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평화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종교 본연의 역할.”이라고 했다.

한상균 위원장은 불교계에 다양한 생각의 지점을 던져줬다. 화쟁, 자비, 평화, 대화, 사찰역할 등의 단어들이 나오기도 했다. 많은 문제가 그 주제의 버거움과 무거움으로 불교계 내부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휘발될 수 있다. 화쟁위원회가 인정한 것처럼 ‘부족한 내부역량’이 이를 제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화쟁’을 바라보는 시각의 큰 편차도 확인된다. 화쟁위원회의 ‘화쟁’이 적대적 모순에 적용될 수 있는가?란 논쟁적 질문이 나오게 된다. 도법 스님의 언급한 것처럼 종교가 고통의 문제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우리 불교계가 고통의 내용과 그 속에 관계된 다양한 결을 깊이 천착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