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밀 청춘] 국악 크로스오버 가수 권미희 씨

꿈 향해 또 한 발, 얼씨구나! 좋다!

2015-12-10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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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나기로 한 곳은 서울 옥천암이었다. 그녀는 옥천암에서 여는 백불白佛음악회의 게스트로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무대가 꽤나 궁금했다. 옥천암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차를 대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구성진 노랫소리가 들린다. 잠깐 스쳐가며 들어도 성량이 폭발적이다. 그녀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동안의 그녀, 혹독한 인생극장에 들어서다
추위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야외 음악회에 속살이 비쳐 보일 만큼 얇은 한복드레스를 입고 올만큼 예상치 못한, 느닷없는 추위였다. 그런데 그녀, 국악 크로스오버 가수 권미희 씨는 아랑곳없다. 바람이 차거나 말거나, 무대가 떠나가라 노래를 부른다.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꽤나 구성지다. 보는 사람이 쭉 끌려들어가는 느낌이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뒤편에서 만난 그녀는, 예상 밖에도, 너무나 발랄하기 그지없었다. 어허, 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 보소. 무대 위의 구성진 목소리는 간곳없다. 꽤나 야누스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인 듯했다. 
 
- 언제부터 국악을 시작했어요?
 
하나부터 캐볼까 호미를 넣었더니 고구마 줄기가 줄줄이 딸려온다.
 
“국악을 처음 시작한 건 9살 때였어요. 그때부터 판소리를 배웠지요. 그런데 저희 집안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어머니께서 일하신 돈으로 간신히 레슨비를 대주시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어요. 고민 끝에 국악 공부를 그만두기로 했고요. 그리고는 수학과를 진학했어요. 그곳에서 2학년까지 공부하다 다시 돌아온 거죠.”
 
하나를 물었는데 열 가지를 알려준다. 얘기를 듣다보니 역시나 범상치 않다. 감수성 충만한 음악의 길을 포기하고 간 곳이, 무미건조한 이미지의 대명사 수학과라니. 게다가 다시 국악의 길로 돌아와 편입을 했을 때, 그가 택한 전공은 판소리가 아닌 가야금이라고 했다. 오호라, 가야금 병창을 한 모양이구나, 안숙선 명창의 길을 따라가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가야금 병창이 아닌 가야금 산조를 했단다. 가수 권미희 씨, 진정 반전을 거듭한다.
 
그녀가 다시 국악의 길로 돌아온 건 봉사활동을 다니며 느꼈던 희열감 때문이다. 양로원 등지를 다니며 공연을 하는데 권 씨의 노랫가락에 신나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그렇게 좋았단다. 노래를 하는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했다고. 어렵사리 편입을 해서 몇 년 만에 다시 국악의 길로 돌아간 그녀는, 다시 찾은 그 길 위에서 버티기 위해 숱한 고생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고, 별의 별 서러운 일도 많았다. “다시 그 길을 가서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는 아버지의 질책도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발랄하기 그지없던 그녀의 목소리가 새삼 성숙하게 느껴졌다. 가만, 그러고 보니 그녀의 나이가 서른하나다. 지나치게 동안인 얼굴에 깜빡 속았다. 꿈을 향한 그녀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꿈은 무대 위에 오르며 돈이나 명예를 좇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던 사례가 지난 5월 출연했던 모 케이블 방송사의 음악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숨바꼭질처럼 노래 실력자들 사이에 숨어있는 음치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당시 권미희 씨는 가수 에일리에 의해 음치로 지목됐다. 권 씨는 음치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이선희의 ‘인연’을 국악 창법을 섞어 애절하게 불렀고, 그의 노래실력에 패널 및 방청객들은 깜짝 놀랐다. 마이크가 그녀의 성량을 못 받아낸다는 평가마저 받았다. 권 씨가 그 프로그램이 출연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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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는 내 삶의 이정표
“저는 대중들에게 국악의 매력을 전하는 매개체가 되고 싶어요. 내 능력껏,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무대를 돌아다니며 관객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국악이 가진 매력을 전하려는 거죠. 굳이 최고의 길을 향해 가지 않으면 어때요.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서 내 나름의 역할을 하는 이 길도 나쁘지 않잖아요. 저는 젊은 층부터 노년층까지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장르를 가리지 않되, 다양한 방식으로 국악의 색을 입힌 음악이 제가 추구하는 음악의 색깔이에요.”
 
권미희 씨의 음반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기획사 소속이 아닌 개인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가 크다. 그래서 활동에 어려움이 더 많다. 많은 기획사들의 제안이 있었지만,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기 위해 모두 거절했단다. 그래서 그녀가 걷고 있는 길은 가시밭길이다. 권 씨는 그 어려운 길을 가는 데 있어 산사음악회 무대를 계기로 인연을 맺은 스님들이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스님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주신 게 참 컸어요. 본래 가톨릭 신자였지만, 산사음악회에서 공연하기 시작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됐지요. 불교를 만나면서 삶의 이정표를 얻게 됐다고 할까요. 영양에서 만났던 스님 한 분은 무명이나 다름없는 제게 최고의 가수들이 받을 수 있는 대우를 해주셨어요. 그땐 너무 고마워서 펑펑 울었죠. 젊은 불자가수가 드문 현실에서 좌절하지 말고 더 열심히 활동하라는 뜻이었을 거예요. 그런 마음들을 읽고 나면, 힘들어도 다시 일어서게 돼요.”
 
불교를 만나서 하루하루를 버텨낼 힘을 얻었다는 그녀는 지난해 첫 번째 찬불가 음반을 발표했다. 그중 타이틀곡인 ‘나무대성인로왕보살’은 지금까지 만들어온 그녀의 음악세계가 응축된, 말 그대로 압권이다. 재밌는 것은 전형적인 국악스타일의 타이틀곡과 그 뒤를 잇는 ‘천상으로 보내는 편지’의 보컬 색깔이 완벽히 다르다는 것. 이곡에서 그녀는 국악의 발성을 버리고 여리디 여린 목소리로 가볍게 오선지 위를 노닌다. 대신 국악기를 사용해 국악의 색을 더했다. 데뷔곡이었던 ‘빈한시貧寒時’이후 5년간 그녀의 음악이 얼마나 깊어지고 성숙됐는지, 이 음반에 오롯이 드러난다. 그녀는 앞으로도 무대 위에서 찬불가를 부를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스님들과 불자들에 대한 보은인 셈이다.
 
“저는 집에서 쉴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어요. 대부분 지방을 다니면서 공연을 하거든요. 그래도 좋아요. 무대 위에 올라 기분 좋게 제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들을 만나는 게 너무 좋아요. 말 그대로 ‘팔도유랑가수’죠.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노래할 거예요.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국악이 가진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거고요. 불자 여러분들께서도 많이 응원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녀, 또 웃는다. 구김살 하나 보이지 않는 미소다. 꿈을 좇는 사람의 미소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참 예뻤다.                                  
 
 
•음반은 권미희 팬카페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arisolg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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