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공간] 조계사 생전예수재

생전예수재, 재가불자를 위한 참회와 수행

2015-12-10     하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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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예豫 닦을 수修. 살아생전에 미리 닦는 재의식인 생전예수재를 불교수행으로 받아들이는 불자들은 아직 많지 않다. ‘윤달에 절에서 지내는 재의식이다’, ‘영산재 수륙재와 함께 불교 3대 의례 중 하나이다’, ‘망자의 위패가 아닌 본인의 이름을 올린다’ 정도가 예수재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다. 올해부터 조계사는 윤달과 관계없이 생전예수재를 봉행한다. 무형문화재 등록을 추진하며, 불자들이 재의식에 이름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도록 수행적 의미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 육바라밀행을 서원하다
지난 10월 4일 조계사에서는 처음으로 윤달이 아닌 평달에 생전예수재 입재의식이 봉행됐다. 지현 스님(조계사 주지)은 “생전예수재는 살아 있는 동안의 악업을 미리 닦아서 청정한 몸과 마음으로 죽음을 대비하는 불교수행의례입니다. 49일 동안 매주 법문을 청해 듣고 수행일지를 기록하면서 생전예수재를 함께 만들어갑시다.” 하고 당부했다.
 
초재부터 6재까지는 육바라밀을 주제로 한 법문이 설해졌다. 초재에서는 수진 스님(범어사 율주)이 ‘보시’를 화두로 법상에 올랐다. “예수재, 무엇을 닦는 것인가요? 미래에 부자가 될 복업, 미래에 행복해질 복업, 미래에 극락 갈 복업, 미래에 부처가 될 복업을 닦는 겁니다. 보시는 가진 것을 그냥 주는 겁니다. 하늘에서 비가 그냥 내리듯이, 강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혹여 선물할 일이 있으면 거룩한 부처님 말씀을 함께 건네 보십시오. 물질의 보시는 부자가 되는 인연, 진리의 보시는 부처가 되는 기연을 만드는 일입니다.”
 
2재에서는 성우 스님(조계종 전계대화상)이 “계율은 빛이에요. 우리의 근본 업을 풀어주어 죄의 어둠과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이 계율에 있습니다. 생전예수재를 지내는 것도 업을 소멸하기 위한 것입니다. 업을 소멸하면 극락이 바로 그 자리예요. 예수재 자체가 계율입니다.”라고 법을 전했으며, 3재에서는 성오 스님(前 백양사 주지)이 “불교에서 하는 법회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 예수재이고, 가장 어려운 불사가 예수재입니다. 인욕은 노여움과 원한을 관찰하여 잘 안주하고 편안해지는 겁니다.”라는 내용으로 인욕바라밀을 알기 쉽게 설법했다.
 
4재 법문에서 법산 스님(동국대학교 명예교수)은 “마음이 게을러서 몸이 게으른 것입니다. 마음이 깨어있으면 몸이 척척 따라줍니다. 이것이 그대로 정진입니다. 부처님께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계율을 지킬 것, 그리고 방일하지 말 것입니다. 부싯돌을 열심히 비벼야 불꽃을 일으키고, 물은 샘을 파야 나옵니다.”라고 정진바라밀을 설명했다.
 
이어서, 5재에는 정우 스님(조계종 군종교구장)이 선정바라밀을 주제로 하여 “몸과 마음이 고요한 이는 불보살님이고, 몸은 번다해도 마음이 고요한 이는 수행자이고, 몸은 고요한데 마음이 번다한 이는 산중에 있는 사람이고 몸도 마음도 번다한 이는 중생입니다. 계율을 닦는 것은 몸이 고요하기 위함이고, 선정삼매를 닦는 것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함입니다.”라는 내용의 법을 설했다. 6재에는 지하 스님(前 중앙종회 의장)이 “생전예수재는 마음을 깨끗이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하면 탐진치 삼독이 없어지고 무심無心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마음이고 여기에서 비로소 부처님 지혜가 나옵니다.”라고 지혜바라밀을 설명했다.
 
11월 21일, 회향식에는 지선 스님(백양사 방장)이 야외법석에 올라 천여 명의 불자들에게 설법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세계와 국가, 사회가 시끄러운 것은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닦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국가, 종교를 내세워 쌓은 원한을 풀고 해원 상생하는 것이 예수재의 참의미일 것입니다. 예수預修하는 삶을 삽시다.” 최근 이슬람 무력조직이 프랑스에서 일으킨 폭탄테러의 참상을 지적하며, 혼란의 시대에 국경을 초월해 전 인류가 지향할 가치는 무엇인지 성찰하게 하는 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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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사 생전예수재의 역사와 유래
조계사 생전예수재 문헌적 근거는 「대한불교」(「불교신문」 전신)에서 찾을 수 있다. 창간해인 1960년 7월 5일자 1면에 동참권선문 형식으로 당시 조계사 주지스님과 조계종 서울신도회 회장이 예수재를 공동주최하는 소식이 실려 있다. 재는 21일간 거행되었는데, 마지막 7일 동안 지장경 산림대법회를 열고 회향식은 오전 10시부터 아홉 시간에 걸쳐 대웅전에서 설행한 것으로 나와 있다. 1966년에는 2일 동안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거행했으며, 1968년에는 7일 동안 예수재와 동시에 『금강경』 해설 강좌를 진행하고 회향식은 13시간에 걸쳐 모셨다. 지난해까지 54년 동안 21번의 윤달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17번의 생전예수재 기사가 확인되고 있다. 일반적인 천도재와 동일하게 49일 동안 예수재를 모신 것은 1982년부터다.
 
1960년 윤달에 거행된 생전예수재에 관해서 「대한불교」에서는 다른 사찰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평달인 음력 9월 1일부터 21일까지 봉행되는 개운사 생전예수재 기사가 발견된다. 『유마경』, 『미타경』, 『열반경』 법문을 경봉 스님 등 당대의 큰스님들이 강설한다는 예고기사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국불교에서 예수재가 반드시 윤달을 기점으로 시행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예수재의 유래는 『지장보살본원경』 및 『불설예수시왕생칠경』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재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경전은 『불설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인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와 있다.
 
부처님께서 구시나가라국 사라쌍수 사이에서 열반에 드시고자 할 때 타방국토의 보광보살이 “네 무리의 제자가 임종할 때이거나 이미 임종한 이를 위해 어떤 공덕을 닦아야 시방국토에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하자 임종할 때이거나 임종에 다다르지 않았다 할지라도 모두 원에 따라 왕생할 것이라 하시고, 부처님 세계에 태어나기를 희망한다면 임종을 당하거나 임종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향을 사르고 등불을 켜고 탑사의 표찰 중에 번을 세우고 21일 동안 부처님 경을 외울 것 같으면, 목숨이 끊어져 중음에 있어 그 몸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아 죄와 복이 결정되지 못할 때 그때에 응당 복 닦음이 되며 망자의 몸이 시방의 무량찰토에 나기를 원하면 그와 같이 되어 질 것이라 하였다.
 
 
 
| 회향, 그 장엄한 현장
인묵 스님(조계종 의례위원장)을 필두로 한 의례대중이 회향식을 봉행 중이다.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모신 괘불이 대웅전 어간 앞에 걸리고, 지장보살, 육광보살, 육대천조, 도명존자, 무독귀왕, 대범천왕, 제석천왕 등을 증명으로 모셨다. 운수단, 사자단, 고사단을 비롯한 마구단까지 재의식을 위한 각단이 모두 차려졌다. 
 
계율에는 가무를 금하고 있으나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봉양의식이나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무는 인정되는데, 이것이 바로 범패와 작법이다. 첫째날인 11월 20일 오전 9시, 신중작법을 시작으로 괘불불패이운-외대령-관욕-조전점안-운수단-사자단-상단 공양이 오후 5시까지 설행되었다. 조전은 생전에 진 빚을 명부시왕과 시위권속에게 헌공하기 위해 만든 종이돈으로, 점안을 거쳐 효력을 발하도록 한 뒤 경전과 헌납된다. 이는 후일 업경대에 기록된다. 둘째 날인 21일의 의식은 중단-하단-고사단-마구단 공양에 이어 조전과 경전을 봉입한 함합소에 예를 갖추고 시식과 봉송으로 49일에 걸친 생전예수재가 모두 마무리됐다.
 
올 상반기에 열린 학술대회 등 조계사 생전예수재의 전통 복원과 무형문화재 등록을 위한 제반과정을 준비해온 숨은 인물이 있다. 성청환 교수(동국대 연구초빙교수)다. 회향식을 지켜본 성 교수는 앞으로 보강해야 할 작업으로 장엄물의 전통 재현에 좀더 만전을 기하는 것을 꼽았다. 
 
회향식이 모두 끝나고, 회화나무 밑에 앉아서 예수재의 여운을 갈무리하고 있는 김석(90, 무애월, 대전 거주) 불자는 50년 전부터 조계사 신도다. 이번 예수재에는 매주 법문을 듣기 위해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와 참여했다. 오랜 세월 동안 예수재를 지켜보았던 보살님의 감회는 남달랐다.
 
“조계사에서 예수재라고 해서 시작한 건 오래됐지만, 예전에는 단 하나 차리고 지내는 정도였습니다. 49일 만에 회향이니까, 보통 재가 아니지요. 대재입니다. 각단을 모두 갖추고, 이틀을 소리를 내니 얼마나 좋아요. 아주 흡족해요! 이 공덕으로 온 우주가 해원을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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