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천태종 총무부장 월도 스님

사회변화를 읽고, 계율에 근거해 실천해야 합니다

2015-12-10     김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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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 스님의 눈이 붉어졌다. 스승인 대충 대종사(1925~1993, 천태종 2대 종정)의 마지막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안경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스님은 천태종 총무부장, 분당 대광사 주지,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이라는 묵직한 소임을 맡고 있다. 직책의 무게는 관계없다. 불법佛法으로 이어진 스승과 제자는 그렇다. 스승과 공유했던 삶을 돌아보면 가슴 속에서 징, 하고 울리는 것이다. 십여 초가 흘렀다. 벌써 이십여 년이 지나간 일이지만, 지금도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나의 스승, 대충 대종사
구인사에 큰 한파가 찾아왔다. 농작물 모두 냉해를 입었다. 한 해 농사가 쓸모없게 되었다. 모든 대중들이 속상해 있을 때 스승은 웃으며 말씀했다. “소먹이라도 나왔으니 다행이다.” 한번은 월도 스님이 세속의 벗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 마음을 읽은 스승은 제자에게 차비와 밥값을 쥐어주며 갔다 오라고 하셨다. 기쁘게 세속의 벗들을 만났지만, 이미 길이 달랐다. 삶의 지향이 달랐던 벗들과의 만남은 공허감만 주었다. 당일 다시 구인사로 돌아왔다. 스승은 예상했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거봐라. 네가 헛되게 살지 않았다. 너는 이미 변했다.” 스승은 그랬다. 대중을 꿰뚫어보셨고, 기다렸고, 자비로웠다. 구인사로 오는 모든 대중들을 일일이 만나셨다. 열반에 든 전날 저녁에도 신도들과 만났다. 1993년 가을 밤, 스승은 “오늘 늦은 밤에 나를 만나러 올 사람이 있으니 내치지 말라.”고 하셨다. 그날 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스승을 만나러 왔다. 길을 잃어서 밤 12시에야 구인사로 들어온 것이다. 스승은 그 학생을 마지막 대중으로 만났다. 새벽, 스승은 가부좌를 한 채 열반에 들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늘 가부좌로 생활했기 때문이다. 한참 후에나 스승을 흔들어 본 후 비로소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처음으로 느꼈다.    
 
- 스님께서 현재의 활동과 생각에 대충 대종사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행운이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스승을 모셨다는 것을 다들 부러워합니다. 우리 천태종은 스승이 한 분입니다. 모든 행자의 스승은 종정스님입니다. 때문에 문중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많은 도반 중에 제가 종정스님을 모신 것은 큰 영광입니다. 스승께서는 구인사 5백 명 출가 대중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교감했습니다. 또 대중에게 잘못했다는 질책을 하지 않았습니다. 옳고 그름을 나누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떤 질문을 해도 바로 답변했으며, 긍정적 답변을 하고, 부정적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 평생 장좌불와長坐不臥하셨습니다.” 
 
- 몇 년 전부터 천태종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일반인들은 모르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동안 천태종은 하드웨어 구축하는 데 시간을 쏟았습니다. 이제는 소프트웨어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천태종은 독신 출가 종단입니다. 독신 출가 종단이 조계종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웃음) 또 종정스님 한분께 계를 받기 때문에 문중도 없습니다. 모든 사찰이 공찰이기 때문에 공공성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일반 대중들이 좀 더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모든 천태종 절은 24시간 개방이다. 법당은 그래야 한다는 것이 천태종단의 판단이다. 법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부처님께 예경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 머물면 안 된다. 불자와 대중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낮에 바쁜 일을 보냈던 사람들이 밤이나 새벽에 법당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전국 천태종 법당은 늘 사람들이 기도하고 수행하는 공간으로 정착되어 있다. 근 10여 년 사이에 천태종은 대중에게 성큼 다가선 것이다. 지난 2007년에는 교계 매체가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가장 모범적인 종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천태종’이라는 공동체
20대 초반의 청년이 군에서 제대 후 구인사에 기도하러 갔다. 애초 한 달 머물 예정이었다. 독실한 불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이다. 구인사에서 기도하며 오랜 병고를 벗어난 아버지의 인연이 아들에게 이어진 것이다. 기도 할수록 신심이 차올랐다. 행복했다. 이 길,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출가를 결심했다. 그렇게 행자 생활 3년을 보냈다. 천태종 행자 기간이다. 3년 기간 동안 수많은 행자들이 하산한다. 그만큼 아상我相을 철저하게 버린다. 3년 내내 한 벌의 옷으로 지냈다.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선방에서 기도와 참선을 병행했다. 
 
- 천태종은 기도를 많이 강조합니다. 스님께서도 기도를 강조하십니다. 천태종 신도에게 기도는 어떤 의미인가요?
 
“불성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승속도 차별 없습니다. 부처님 제자일 뿐입니다. 부처님 제자는 결국 탐진치를 버리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잘 안될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죠. 천태종은 지자 대사에 의해 체계가 다듬어졌습니다. 지자 대사는 지관 수행을 말씀하셨습니다. 상월 조사스님도 강조하신 것이 지관 염불 수행이었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를 때 일체의 생각을 끊는 것이며, 그 속에서 나를 찾는 것입니다. 지관에 근거한 염불, 이 부분이 천태종의 정체성입니다. 천태종 신도들에게는 처음부터 지관 수행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선 몸으로 해보고, 몸을 통해서 행위를 하고, 행위를 통해서 마음을 얻고, 마음을 통해서 마음의 근본을 알게 됩니다. 먼저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듣고, 생각하고, 그렇게 자꾸 몰입하면 결국 일체의 생각을 그치는 것입니다.” 
 
- 스님은 마음공부도 많이 말씀 하십니다. 어떤 것인가요?
 
“우리가 세상을 보면 마음의 창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이 마음의 창을 없애야 합니다. 누가 끼워놓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끼워놓은 마음의 필터가 있습니다. 이것을 내려놓으라는 겁니다. 신도들과 자주 이야기를 합니다. 아내는 어떠해야 한다, 남편은 어떠해야 한다, 이런 상이 있습니다. 누가 정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것입니다. 이 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못합니다. 상에 놀아납니다. 상을 내려놓으면 온전하게 아내와 남편이 보입니다. 마음공부를 하면 이 상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 승속에 차별없다지만, 출가 수행자는 재가와는 수행의 밀도가 다릅니다. 행자 생활도 그렇죠. 천태종 출가자의 바람직한 상은 무엇인가요?
 
“무소유 정신, 노동, 공공성입니다. 스님들은 공공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일거수일투족이 투명합니다. 어떻게 보면 개인의 자유가 없죠. 예를 들면 저는 대광사에서 한 달에 주지로서 50만원 받습니다. 그리고 구인사에서 모든 대중이 함께 받는 비용이 있습니다. 저는 24만5천원을 받습니다. 다만, 호봉이 매년 5천 원 정도 올라갑니다. 이게 가능한 것은 개인의 공용비는 종단에서 대부분 대줍니다. 제가 책을 썼고 인세를 받았는데, 저는 갖지 못합니다. 종단에 들어갑니다.”
 
- 개인보다 종단이 중심이군요. 
 
“어떻게 보면 종단 안에 있는 것이 자유롭습니다.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요.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습니다. 종단이 책임지니까요. 수행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저도 구인사에 가면 개인 방이 있습니다. 대부분 4인실이고, 어느 정도 승납이 되면 2인실이 주어집니다. 승납이 한참 높으면 1인실을 줍니다. 저는 총무부장 소임을 맡고 있어서 1인실이 주어집니다. 소임을 내놓으면 다시 2인실로 가야죠. 천태종 모든 스님들은 구인사에 방이 있습니다. 다만, 전국의 사찰에서 소임을 갖는다면 출장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방이 늘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구인사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 그럼 사설사암은 없는 것인가요?
 
“없습니다. 천태종 모든 사찰은 중앙에서 직접 스님들을 파견합니다. 소임이 끝나면 다시 구인사로 복귀합니다.”
 
- 종단 자체를 공동체로 봐도 되겠습니다. 신도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승속불이입니다. 다만, 역할이 다를 뿐이죠. 조계종이 중앙종회가 있듯이, 천태종도 중앙종회가 있습니다. 천태종 중앙종회 종회의원 중 50%가 재가자입니다. 천태종 신도죠. 종회 의장을 스님이 하지만, 부의장은 신도가 합니다. 종회가 열리면 신도의 발언이 아주 셉니다. 이런 내용 외부에 잘 안 알려졌죠?(웃음) 
 
- 아, 놀라운 일인데요. 
 
“지역 사찰에서도 신도의 참여나 역할은 상당히 높습니다. 승속불이. 상월 조사께서 강조하신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출가 승려는 신도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스님들이 개인적 의지로 돈을 만질 수 없고, 반드시 신도들과 협의해서 지출해야 합니다. 아, 이런 사실 모르고 계셨네요. 우리 종단도 홍보 좀 많이 해야 하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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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태종과 한국불교와 남북불교의 문제
- 천태종이 앞으로 가야할 길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양적으로 팽창하는 부분도 필요하지만, 답은 아닙니다. 변화하는 사회 패턴을 읽어보면 결국 부처님 법과 계율에 근거한 실천입니다. 상월 조사께서도 강조하신 것인데, 바로 십선계十善戒입니다. 이것을 단지 구호가 아니라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불자들이 지킬 것과 자유를 줄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자비입니다. 대표적으로 대만불교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천태종은 앞으로 이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월도 스님은 천태종 스님들 중 신도들과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스님 중 한 분으로 꼽힌다. ‘즉문즉설’이 그렇다. 서울 관문사에서 총무 소임을 하면서도 신도들에게 매일 밤 12시에 3년간 법문을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신도들의 질문을 받았고, 부처님 법에 근거해 답변했다. 많을 때는 1천 명 가까이 몰렸다. 스님의 법문이 입소문을 타고 신도들에게 퍼져나갔다. 신도와의 대화와 법문은 이곳 대광사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 대광사에 청년회가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취업 등으로 사찰을 찾는 청년들이 많지 않습니다. 스님은 청년법회에 어떤 이야기를 해주는가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머물러 시간을 보내지 말고, 봉사나 무보수라도 끊임없이 자신을 움직이라고 합니다. 내가 조건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성실하게 움직이면 뭐라도 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다, 거기에 내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하자, 작은 일이라도 내 몸을 움직여라, 이런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러면 길이 보입니다.”
 
스님의 법문은 불교이야기를 직접 하기보다 생활이야기로 대화를 끌고 간다. 실제 즉문즉설의 내용에 절반 이상은 불교신행 문제가 아니라, 신도들이 일상에서 겪고 있는 문제를 질문한다. 이런 관계는 사찰과 지역사회의 역할로 이어진다. 작년 11월 대광사가 성남시와 함께 종교계로는 최초로 ‘빚 탕감 프로젝트’ 모금 법회를 한 것이 그렇다. 미륵보전 앞 계단에서 2억5,000만원 상당의 채권을 소각했고, 이날 사부대중이 모연한 기금을 바탕으로 부실채권을 저가로 사들여 채무자들의 빚을 청산하는 데 지원할 계획이다. 스님은 이런 회향의 바탕이 천태종 신행에서 나왔다고 한다. 앞으로 한국불교가 바른 신심을 바탕으로 한 지혜와 자비의 길이 아니면 존재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 올해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을 맡으셨습니다. 한국불교 안팎으로 여러 가지 느꼈을 텐데요. 
 
“조계종도 이해하고, 군소종단도 이해했습니다. 군소종단이 조계종을 비판하는 이유도 이해했고, 또 조계종이 군소종단의 문제를 지적한 것도 이해했습니다. 그동안 벽이 있었는데, 지금 큰 변화가 있습니다. 서로 많이 이해하고 좋아졌습니다. 또 아시아 불교를 좀 더 살펴보게 됩니다. 중국불교는 국가주의 불교에 갇혀있고, 일본불교는 개인주의 불교에 빠져있습니다. 자율성을 담보한 불교가 바로 한국불교이고, 답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국불교의 최근 흐름을 잘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 주도이지만, ‘불학원’을 만들어 승려양성 등 불교중흥을 위해 큰 예산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아마도 향후 이 상태라면 중국불교는 크게 달라질 겁니다. 국가 주도에서 점차 자율성이 강조될 겁니다.”
 
- 천태종이 주력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가 남북불교교류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개성에 천태종이 주도해 복원한 영통사입니다. 올해로 복원 10주년이 되어 최근 방북하기도 하셨습니다. 향후 천태종의 남북불교교류 전망은 어떤가요?
“북한 불교가 최근 많이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체제 선전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남북 불교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늘 북한 불교와 자주 만나고 교류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 사찰 복원도 계속 이어나가야 하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근 북한 불교도 공감하고 있고요. 아무래도 남북 정치 현안과 연관되어 있으니까 한계가 있긴 합니다.” 
 
- 스님께서 보는 한국불교의 문제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걸출한 고승이 나와서 한국불교가 이만큼 발전했습니다. 이제는 한국불교의 청규가 필요합니다. 청규가 없으니까 합리화하는 경향이 너무 많습니다. 불자들도 스님들의 (계율에 어긋난)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는데 이것도 문제입니다. 스님들도 사람이다, 이런 말들을 합니다. 위험한 발상입니다. 불자는 호법신장이 되어야 합니다. 청규가 없으니까 그런 말들을 합니다.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월도 스님은 분당 대광사 주지다. 분당은 개신교가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큰 교회는 새벽에 인원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려든다. 대광사의 역할, 주지의 역할은 무엇일까? 
 
“주지는 신도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일거리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절의 주인으로 설 수 있습니다. 절 곳곳에 신도의 땀이 배어있어야 합니다. 또 끊임없이 신행의 동기유발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게 주지입니다.” 
 
신도가 주인으로 참여하는 사찰, 그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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