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과 현대미술] 최고의 예술은 깨달음이다

2015-12-10     윤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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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은 1992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은 사기인 것처럼 회자되었다. 백남준은 왜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을까? 당시 예술을 전공한 필자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예술은 인간의 진정한 내면 정신을 정화시켜주는 힘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인데, 갑자기 ‘예술은 사기다.’라니 모든 것이 허망하게 생각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예술은 사기가 아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예술이 사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자체가 사기는 아니다. 어떤 이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행하는 몰지각한 현상은 사기일수도 있을 것이다. 백남준은 우리나라의 예술에 대한 인식을 비판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당시 백남준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할 때였다. 자신을 사기꾼에 비유하며 반의법을 사용한 그의 표현은 가끔씩 화두처럼 각인되기도 한다. 그의 독특한 어법이기도 하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예술은 돈인가? 명예인가? 라고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예술가들에게 “돈을 벌기 위해 그 길을 가는가?” 또는, “명예를 얻기 위해 그 길을 선택했는가?”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아니다.”라고 대답하지만 현실 속에서 보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즉, 예술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아가고 이를 통해 부와 명예를 얻고자하는 욕망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필자 또한 이러한 욕구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예술은 삶의 한 방식이며 그 자체의 순수성을 지켜나가고자 하지만, 현실에서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시대적 변화에서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은 변화했다. 사진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예술가는 기록적인 일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상황들을 표현해 당시의 시대정신과 문화적인 관점들을 후대에 전하는 역할을 했다.
사진기술이 발달하면서 예술가는 예술의 목적에 집중하게 된다. 초기에는 자연이나 대상에 작가의 감정을 이입해 표현하는 과정을 가지게 된다. 점차 자연이나 대상을 재현하던 것에서 벗어나 작가의 관점이 중요하게 작용하면서 작품들의 표현과 내용들이 다양해졌다.
 
인상파와 후기인상파를 거치며 점차 작품에 작가의 정신이 투영되기 시작했으며, 미니멀리즘에 와서는 자연이나 대상은 사라지고 작가정신의 흔적만이 화면 위에 존재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작품을 보고 일부의 평론가들은 예술은 죽었다라고 한탄하며 비판했지만, 예술은 더욱 더 정신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됐다. 특히 선사상에 대한 관심이 예술가들 사이에 증폭되면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선을 공부하고 체험한 작가들은 자신의 정신성을 작품으로 드러내고 표현하기 시작한다.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소한 사상과 작품들을 보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선에 관심을 가지는 예술가들과 일반적인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늘어났고, 선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예술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미술과 관련한 좋지 못한 사건들이 보도되면,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한국에서,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해 나아가며 살아간다는 것은 수행자적인 관점이 아니면 불가능할 정도다.
삶의 방식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영역을 확대시켜 나아가는 것은, 이제 예술가들만의 노력이 아닌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이 없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존재하기 어렵다고 대답한다. 이처럼 예술은 인간이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진 벽화에서 예술이 가지는 위대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예술은 사기가 아니다. 예술은 삶의 중심에 있다. 외형적인 화려함을 추구하거나 거짓을 행하지 않는 예술가들의 진정어린 삶의 방식은 우리 모두가 공존하며 살아가야한다는 존재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아가는 예술가들의 땀 흘린 노력은 인간의 존재가치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모든 집착과 번뇌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예술가들은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 안정을 주기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은 사기가 아니며, 예술가는 사기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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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은 계속된다
삶의 과정은 수행이다. 시·공간을 떠나지 아니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길을 떠나는 수행자들이 현존하고 있다. 수행이라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수행방법을 권유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자신이 오랜 시간 수행하여 얻은 성과를 타인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과연 그 방법이 나에게도 잘 맞을지는 알 수가 없다. 필자 또한 오랜 시간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 수행을 하고 있는데, 본인이 체험한 것을 타인에게 권하지는 않는다. 대신 자신의 특성에 맞는 방법을 찾아가기를 이야기해준다. 가끔씩 수행하는 방법을 찾아다니는 수행자를 마주한 경험에서 비춰보면, 누군가에게 어떠한 것을 권선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이 타인에게 신뢰를 얻을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행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이다. 그런데 그 많은 수행 방법을 찾아내고 체험하면서, 자신이 체험한 방법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음’과 착각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커다란 산일수록 산 정상에 올라가는 방법들은 많다.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어떠한 길을 선택할지라도 목적지에 다다르면, 정상에서는 모든 올라오는 길이 훤히 보인다. 즉, 수행에서도 개별적 특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예술의 특성과 비슷하다. 예술의 세계에서도 정상에 이르는 길은 무수히 많다. 예술에서 그 길을 선택해 가는 것은 자신의 자유이지만 꼭 지켜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타인이 간 길을 절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사선에서 나오는 임제 선사의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다.’를 예술가들은 철저히 지키고 있다. 예술의 생명은 창의성이다. 즉 다른 것을 모방하거나 따라해서는 안 된다. 수행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간화선에서 하는 화두 연마는 모든 관심을 자신의 마음에 집중한다. 외형의 세계가 아닌 내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자아를 찾아가는 방법이다. 예술가들 역시 내면을 찾아가는 방법은 유사하다. 여기에 경우에 따라서 추가되는 것이 대상에 대한 본질을 찾아 자신과 일치시키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나무를 그린다고 할 때, 나무의 외형적인 형상을 그리는 것이 아닌 나무가 지닌 본질적인 특성을 기호나 색채로 함축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즉 나무라는 형상은 사라지고 작가의 마음에 나타나는, 나무에 대한 생각 또는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때문에 나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나아가서 나무라는 이름 이전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 
 
개념미술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려진 나무를 세 가지의 관점으로 나눠서 본다. 
 
1)그려진 나무 2)나무의 사전적 의미의 글 3)실제 나무의 한 부분을 제시할 때 어떠한 것이 진정한 나무인가? 
 
여러분은 세 가지 관점 중에 어떠한 것을 진정한 나무로 볼 것인가. 독자 여러분의 높은 수행력을 실험해보길 바란다.
 
예술가에게 수행은 이처럼 대상을 인식하고 대상을 해체하며, 대상을 대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또한 대상을 떠나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표현은 수행의 방법처럼 다양하다. 어떠한 방법을 선택하는가보다, 어떻게 원하는 바를 표현하였는가가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터득해 나아간다.
 
예술가는 예술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서 존재한다. 예술은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매순간 새롭게 탄생하는 예술을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념규정이 필요하지도 않다. 
 
칸트는 자신의 미학에서 최고의 예술은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새롭다는 것은 인식의 변화를 말한다. 대상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대상을 보는 관점이 새로운 것이다. 때문에 예술가는 ‘시각의 눈으로 보는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는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최고의 예술은 깨달음이다.
 
 
| 禪조형예술은 계속된다
선조형예술은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선조형예술을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유럽에서 선조형예술은 보편화되어 있는 예술의 커다란 흐름이다. 
 
선조형예술의 특성을 살펴보면, 1)대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2)대상은 뜻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3)대상의 특성이 약화된다. 4)형상과 색채가 자유롭다. 5)무의식적인 관점을 중시한다. 6)대상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 7)자극적인 방법으로 표현한다. 8)평온함,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9)무형식의 방법을 선호한다 등으로 볼 수 있다. 
 
1)대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대상을 변형, 해체, 왜곡하는 것보다는 대상의 본래 모습을 수용하며 단순화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상과 작가와의 일치하는 부분을 찾아 그 부분을 중심으로 표현한다.
 
2)대상은 뜻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왕필의 화론에 나오는 득의망상(得意忘象, 뜻을 얻으면 상을 버린다.)과 『금강경』의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모양을 떠나면 고요하게 사라진다.)의 관점과 유사하다.
 
3)대상의 특성이 약화된다.- 대상은 상징화되며 본래의 특성은 사라지고 대상의 상징적 이미지와 색채만 남는다. 마음의 작용이 표현의 주된 관점이 되며 대상의 외형적인 특성은 약화되거나 사라진다.
 
4)형상과 색채가 자유롭다.- 형상은 마음의 변화를 나타내고 색채는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므로 매 순간 변화한다. 마음의 변화에 따라 형상의 모습이 변화하며, 그 마음의 순간적 특성에 따라 색채가 정해진다. 색채는 에너지의 표현이기 때문에 색채에 의하여 마음의 변화를 가져다준다.
 
5)무의식적인 관점을 중시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서 삼매三昧의 상태를 추구한다. 일심의 관점에서 대상을 관하여 그 드러나는 이치를 표현의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것이다. 표현된 작품은 다시 많은 의식과 무의식의 관점을 넘나들며 마음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
 
6)대상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 『금강경』의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색을 떠나고 상을 떠난다.)의 관점이다.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어떠한 생각이나 관점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즉, 관념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본래의 대상에 대한 깊은 관조가 필요하다. 대상을 관조하다보면 어느 순간 대상의 본질에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은 아주 짧은 찰나이므로 그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7)자극적인 방법으로 표현한다.- 여기에서 자극적이라 하는 것은 화두처럼 의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작가가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다양한 해석과 인식에 자극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작가의 역할은 스스로 화두를 들어 나타나는 방법들을 찾아 제시하는 것이다.
 
8)평온함,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작품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성 중 하나가 평온함이다. 평온함은 재료의 선택과 형상, 색채에서 대비되거나 표현에서 거침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작품의 화면에서 나타나는 밝음과 맑음을 위하여 가능한 단색이나 두 가지 색으로 제한하며, 자유로움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직선이나 경계의 구분을 최소화 한다.
 
9)무형식의 방법을 선호한다.- 어떠한 스타일이나 이즘을 공통적으로 사용하거나 표현하지 않는다. 미술사에 나타나는 사조의 특성인 상호 유사성을 배제하고 작가의 정신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한다. 개별적 특수성을 통하여 작가의 창의성을 존중하며 추구하는 가치의 공유를 선호하는 것이다.
 
필자가 선조형예술에 대한 관점들을 정리한 것이다. 현재까지 진행 중인 선조형예술에 대한 미학적 토대를 구축하고자 정리한 것이며 부족한 부분은 보완을 해 선조형예술의 미학적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앞으로 선조형예술이 활성화되어 작가들과 관객들에게 선과 선조형예술의 가치가 더욱 확산되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Tip_
‘禪과 단색화II’라는 제목으로 2015.12.25.~29. 서울아트쇼 국제아트페어에서 특별전시가 진행됩니다. 지금까지 연재한 내용들을 실제작품을 통하여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관람바랍니다.
 
12월호를 마지막으로 ‘현대미술과 禪’ 연재를 마칩니다. 지난 1년간 글과 작품으로 현대미술계 속에 스며든 선禪의 정신들을 소개해주신 윤양호 님께 감사드립니다. 
 
 
윤양호
독일의 국립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마이스터쉴러 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에 국내 최초로 선조형예술학과를 개설하여 국제적인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다. 현대미학의 새로운 관점을 선사상을 바탕으로 정립하기 위하여 「현대미술에 영향을 끼친 선사상」, 「선사상에 나타난 조형성 연구」, 「조형예술에서 본 불교의 미학적 특성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고 작품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