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 아트] 사경 불화 작가 지호 스님

획으로 이루어진 법신, 화폭에 좌정하다

2015-12-10     유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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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백의 한지와 먹의 농담. 부조 같은 부처님을 마주했다. 한 발자국 다가가니, 부처님 법신에 부처님 명호가 가득하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획마다 깃든 염원은 켜켜이 쌓이고, 포개진 희원 위로 부처님이 좌정한다. 사경으로 부처님을 그리는 지호 스님(인천 부평구 보문암 주지)의 사경 불화다.

 

원을 담아 써 내려간 글씨에는 힘이 실린다. 수행의 방편인 사경이 작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지호 스님은 사경으로 부처님을 화폭에 모신다. 

사경불화는 글씨 점묘화다. 화폭 전체에 2~5mm 크기의 작은 글씨가 가득 사경돼있다. 글씨 한 자는 점이 되고, 점의 짙고 옅음으로 부처님이 드러난다. 글자가 불화의 깊이를 만든다. 

손끝으로 칭명하는 염불 정진이다. 부처님 법신은 명호로 이뤄져있다. 눈썹같이 미세한 붓으로 일념칭명하여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정근 기도하듯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드러낸다. 배경은 경전으로 장엄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그릴 땐 『금강경』과 『법화경』을,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지장보살은 『지장경』 등을 사경한다. 충만하다. 법신을 채우는 한 획마다 부처님을 떠올린다. 배경의 경전은 공부하고 이해한 후에야 사경을 시작한다. 수전증이 있는 손마저 떨리지 않는 고도의 몰입이다. 

“작품이 어느 장소에 있던지 많은 사람들이 원을 빌고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는 아주 작은 미물들도 있겠죠. 하나의 미물도 진심으로 기도한다면, 그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부처님이 되어주시길, 올바른 가르침을 전해주는 부처님이 되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경을 합니다.”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잘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먹을 간다. 부처님 가르침을 되새기며 붓끝을 모은다. 간절한 한 획. 획들은 모여 하나의 글자가 되고, 무수한 글자의 군집은 부처님을 이룬다. 작은 획에 담긴 염원들이 곧 부처가 된다. 그것이 사경불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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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과 마음으로 옮긴 사경寫經, 그리고 부처님

스님은 경을 필사하고 부처님을 모사하는 수행에 하루 15시간씩 매진한다. 부처님을 모실 화판 앞에서 장궤합장하듯 무릎을 꿇고 획을 새긴다. 낮은 곳을 그릴 때는 최대한 몸을 낮춘다. 한 작품의 완성까지 평균 4~7개월. ‘석가모니 고행상(2012, 134cm×164cm)’을 모사할 때는 먹지도, 자지도 않으며 21일 만에 작품을 완성시켰다. 

작품에 들어가는 칭명 수와 경전의 양은 크기와 도상에 비례한다. 작품 ‘지장보살(2013, 147cm×176cm)’에는 7~8만 자가 담겼다. 획이 많은 한자와 글씨의 농담으로 조형과 명암 등을 표현하기에, 장식이 화려해지면 시선이 분산되기 쉽다. 그렇다 해도 장식은 섬세해야 한다. 쉽지 않은 주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지물과 보관이 상징적인 작품 ‘천수천안관세음보살(2010, 157cm×157cm)’을 마주하면 그 우려는 깨끗하게 사라진다. 시선은 관세음보살의 상호에 사로잡힌다. 스님은 “전체 조형, 도상의 대칭, 중심도, 전체적인 명암을 함께 신경 쓰는 것이 고된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색의 사용이다. 이미 올해 여름, 한국화 물감을 사용해서 ‘칼라차크라만다라(2015, 132cm×132cm)’와 ‘석가모니만다라(2015, 130cm×130cm)’를 완성했다. 지금은 금니로 선운사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을 사불 중이다. 분채도 연구하고 있다. 색의 깊이를 찾아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를 사경으로 모사하겠다는 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정진으로 부처님을 사경하겠다는 지호 스님. 스님은 한 가지 목표를 더 이야기했다. 불상과 마룻바닥만 빼고 기왓장, 기둥, 벽면 등을 전부 사경으로 표현해 대웅전을 짓겠다는 것이다. 열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열 명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스님은 사경불화를 처음 시작할 때도 불가능한 일이라 들었다며 2~3년 후를 기약했다.

정결한 한지 위에 몸과 마음으로 옮긴 사경寫經, 그리고 부처님. 이제 부처님 앞에 선다. 획마다 칭명된 부처님들이 듣는다. 그 자리에서 법을 드러낸다. 그대는 마주한 부처님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읽어낼 것인가. 어떤 가르침이 가슴으로 쏟아져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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