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주치의] 한방에서 본 치매와 예방법

2015-12-10     구병수

| 오장육부가 건강해야 뇌가 건강하다

치매를 언급할 때면 기억에 남는 환자분이 있다. 노부부가 외국에 나가 생활하다가 치매에 걸리신 할아버지의 병을 고치려고 한국에 들어와 내원한 경우다. 진료실로 들어온 할아버지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 후로 할아버지는 몇 차례 치료를 받다가 중단했다. 더는 소식을 알 수 없지만 나를 보던 할아버지의 눈빛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있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랑하는 가족에게 무거운 짐이 되는 치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질환임에 틀림없다. 가정의 경제적 손실, 환자와 가족의 정신적ㆍ육체적 고통은 심한 경우, 가정파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치매에는 중풍으로 고생하거나 본인도 모르게 뇌경색을 앓다가 서서히 뇌세포가 영향을 받아 생기는 혈관성치매와 뇌 속에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이상단백질이 축적되어 생기는 알츠하이머병이 전체 치매의 약 90%를 차지한다.

치매는 서서히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환자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이때 발견하면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단계라 치료에 어려움이 있다. 현재까지 치매의 원인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그와 관련된 많은 치료법이 있지만, 완치는 쉽지 않다. 최선의 방법은 조기진단을 통해 증상을 예방하는 것이다.

수면 상태는 기억과 매우 관련이 많다. 잠을 자는 동안에 뇌척수액이 지나가면서 뇌의 노폐물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분한 수면 시간과 수면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매 질환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도 수면이상을 동반하면서 악화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심장병이나 당뇨 역시 수면 상태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치매에 대해 처음으로 다룬 한의학 문헌은 『내경』 「본신편」이다. 치매를 ‘희망기전어喜忘其前言’라고 기록한 것이 보인다. 뇌를 건강하게 하는 방법으로는 ‘수승화강’이 있는데, 이는 자연의 이치를 근거로 한 주역의 지천태괘地天泰卦를 형상화한 것이다. 괘상으로 보면, 위에는 땅(地)이 있고 아래는 하늘(天)의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수승화강의 이치는 위에 있는 땅은 아래로 내려오고, 아래에 위치한 하늘은 위로 올라가는 것인데 이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기운이 잘 조절된다.

한의학에서 기운의 원천은 오장육부의 힘이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오장육부에 정신精神이 배속되기에, 오장육부가 건강해야 정신이 잘 발현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치매 치료의 범주를 뇌의 내부로 국한하지 않고, 오장과 육부에서 찾고자 하는 과학적 검증이 시도되고 있다.

 

| 외로운 노인들이 치매환자가 된다

우울증이나 건망증은 치매와는 다르다. 아직 명확한 연관성에 대한 근거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이 증상들이 치매로 발전할 위험성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최근에 이러한 정신질환이 늘고 있는 것은 규칙적이고 균형 있는 식사가 이뤄지지 않는 생활습관과 점점 각박해지는 사회 분위기를 주요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경증 치매환자를 비롯해 병이 일정수준 이상 진행된 치매환자들 가운데, 본인 스스로 굉장히 외롭다는 것을 호소하는 분이 많다. 우리는 점차적으로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그러한 정서적 풍조가 치매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필자는 치매의 이러한 연유를 염두에 두고 불교적인 차원에서 어떠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거듭 고민하고 있다. 오늘날의 치매환자는 지금까지 한국불교의 밑거름이 되어 온 어르신들이다. 그분들의 신심은 지극하고 정성스럽다. 개인적으로 그분들의 신심이 자식이나 손주들에게 온전히 이어져 불교에 큰 힘이 되기를 바란다. 불교계에서도 노년층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치매 예방법 연구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동국대 일산병원 한방정신과 연구팀은 최근, 탕류에 쓰는 향신료인 산초, 카레 재료인 강황, 독특한 향을 지닌 고수나 부처님 전에 올리는 향 재료로 사용되어 온 한약재 등에서 치매 치료의 효능을 입증한 바 있다. 의사와 한의사가 동시 진료하는 양한방뇌융합클리닉도 환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치매 대응의 최선책은 예방이다. 무엇보다도 일상적인 스트레스 관리와 체내에 축적된 노폐물 배출이 중요하다. 평소 몸에 염증을 일으키는 조건을 만들지 않도록 하고, 충분히 잠을 청하며, 음식을 가려 먹는 섭생 조절,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에 노력해야 한다.

치매의 예방과 치료방안을 불교수행 안에서 강구한다면, 탐진치의 소멸이 우선이다. 음식이든 물질이든 과도한 탐심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지속적인 긴장, 극도로 화를 내고 미워하는 에너지가 쌓이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항시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몸 상태를 수시로 체크해서 몸이 주는 경고를 인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자기를 관찰하고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야말로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지를 배려하는 진정한 이타심이 아닐까.

치매가 두렵다면, 가까운 절을 찾아가서 독경과 사경으로 뇌파 진동과 뇌 기능을 활성화하자. 부처님 전에 진심으로 향공양 올리는 것 또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뇌를 건강하게 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구병수
동국대학교일산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이자 연우회 회장. 동국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동국한방병원에서 전문의과정을 밟았다. 일산한방병원 병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강남한방병원 교수와 한방신경정신과 학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