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론에 길을 묻다] 지금 ‘누가’ 움직이고 있는가

2015-11-06     법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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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무원의 변화
다음은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곳곳의 사람들은 매우 친절합니다. 백화점과 호텔, 음식점과 옷가게 등에 일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상냥한 말씨에 얼굴에는 늘 웃음을 띠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관공서나 큰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친절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대부분 그들의 말은 퉁명스럽고 시선은 무표정하거나 사람을 내려다보았습니다. 1970년대에는 하다못해 구청에서 간단한 민원서류 하나 발급받는데도 담배나 스타킹 하나라도 주어야 빨리 처리해 주었으니까요. 공무원들은 한마디로 시민들에게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왜냐고요? 그때는 시민이 당당하게 자기 권리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대통령 직선제를 시작으로 사회가 점차 민주화되면서부터 사회 곳곳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공무원의 근무 태도였습니다. 청렴과 친절이 강조되었습니다. 특히 친절한 태도는 내부와 외부의 평가를 거쳐 인사고과에 반영되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이십여 년 동안 구청에 근무한 공무원이 정기인사에서 민원실로 배치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사발령이 그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그 공무원은 기질상 매우 경직된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가도 웃을 줄 모르고 남과 화기 넘치는 대화도 할 줄 모르고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도 인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민원실에 배치되었던 것입니다. 민원인들이 자기의 이름을 보고 친절도를 평가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갑과 을이 바뀐 환경에서 일해야 합니다. 그에게는 좌불안석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그는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민원인을 대하면서 그는 먼저 웃어야했습니다. 그리고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인사말을 건네야 했습니다. 웃으면 나도 너도 좋은 일인데 그에게는 고역이었습니다. 평상시에 웃어 본 일이 없었고, 굳이 웃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뚝뚝한 사람, 불친절한 사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도 얼굴에 미소 띄고 인사를 건네야 하고 민원인의 질문에 세세하게 응답해야 했습니다. 참 힘이 들었습니다. 민원인들도 그런 그에게 다소 어색해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점차 조용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고마워하고 기뻐하는 시민의 태도에 그가 점차 조그만 기쁨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친절한 태도와 말씨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1년이 지나자 그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매우 적극적이고 유머도 늘어났습니다. 사람들과 거리감 없이 말을 주고받았고 친절이 그대로 몸에 동화되었습니다. 이제는 그에게는 친절이 어색한 것이 아니라 매우 편한 자기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직장 동료와 사람들에게 그는 ‘부드럽고 친절한 사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억지 친절이 부단한 노력으로 자연스런 한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 오직 현재의 선택이다
자,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민원실에 근무하기 이전, 그는 주변에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원실에 근무하고 1년이 지난 이후, 그는 주변에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입니다. 당연한 것 같지만 좀 신기하지 않습니까? 몸은 하나인데 왜 불친절한 사람과 친절한 사람으로 두 개의 주체가 있을 수가 있는 것인가요? ‘불친절한 사람’이 본래부터 있었다면 그는 결코 ‘친절한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불친절한 사람’은 불변하는 고정적 실재여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는 이제 ‘친절한 사람’으로 변모했습니다. 현실에서 이런 사례는 종종 경험합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 단순히 사람이 변했다고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행위’가 변한 것입니다. 거듭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행위가 곧 행위자를 만든 것입니다. 불친절한 행위가 반복되면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불친절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그리고 마치 ‘불친절한 사람’이 본래부터 있어서 그 ‘불친절한 사람’이 불친절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론』은 일관되게 다음과 같이 역설합니다. “주체는 미리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 행위에 의하여 부여된 임시적 명칭(假名)일 뿐이다. 그리고 주체를 부여하는 어떤 행위도 이미 결정되거나 향후 결정되어 있는 고정태로 존재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곧 ‘그것’과 그것의 ‘작용’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고정되어 존재하는 그것과 그것의 작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통째로, 혹은 분할하여 고정시키고 분절시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의 구청 공무원의 사례를 다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는 이십여 년 동안 불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불친절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던 것이고 자신도 아마 그렇게 자신을 규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친절한 언행과 표정을 연출했습니다. 거듭되다 보니 그의 행위가 자연스러워지고, 마침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친절한 행위를 한다는 작위적 인식도 없어지고 친절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친절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그렇게 명명했습니다. ‘친절한 사람’도 결국은 거듭된 행위의 반복에 의한 주변과 자신의 인식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친절하지 않으면 평가에 의하여 가족의 생계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 아래 필사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변모시키려 노력했던 것이지만, 어떤 경우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그런 위기감의 환경에서 어떤 이는 체념과 포기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선택을 할 경우는 그는 예전의 태도를 견지할 것이고 결코 ‘친절한 사람’으로 변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것과 그것의 작용에서, 작용 즉 행위도 결코 고정되거나 예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현재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 선종의 선사들은 오직 그 자리에서 ‘한 생각’이 지옥과 극락, 생사와 열반, 중생과 부처를 가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강경』은 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잡아서 떼어낼 수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시간도 공간도 인식도 행위도 그 어떤 것도 고정된 형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체와 행위, 혹은 그것과 그것의 작용은 이미 존재하거나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이라고 예단할 수 없습니다. 대체적인 경향으로 미래의 행위를 예단할 수는 있겠지만 기계적인 인과론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 가는 것과 오는 것
이번에는 제2장 「관거래품觀去來品」의 문을 조금만 열어놓겠습니다. ‘가는 것과 오는 것’에 대한 고찰입니다. 이 품에서 ‘가는 것과 오는 것’이란 행위, 작용, 운동을 말합니다. 단순하게 사람이 어느 곳으로 가는 동작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오고 감’이라는 행위와 운동을 고찰합니다. 그리고 행위와 운동에는 그것의 주체가 있다는 세간의 인식을 받아서 ‘가는 것’과 ‘가는 작용’이라는, 주체와 행위의 관계를 고찰하고 있습니다. 이 품에서는 가는 작용에 의하여 가는 자가 성립이 되기 때문에, 가는 자라고 하는 주체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하게 가는 작용도 고정되고 예정된 모습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자’라고 하는 임시적 명칭의 주체와 나뉘어 생각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오고 가는 작용은 과거와 미래, 현재라고 하는 시간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이 「관거래품」은 이하 총 27장의 『중론』 중에서 이하 26품의 각 주제의 골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장 「관인연품」에서는 여덟 개의 골격을 제시하여 모든 존재가 공성이기 때문에 연기라는 이치를 총체적으로 밝혔다면, 이 품에서는 모든 관심 주제를 곧 ‘주체와 행위’로 나누어 그것의 실체성을 타파하여(空) 연기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바로 ‘주체와 작용’의 총론격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괴로움과 업을 다루는 장에서, 괴로움과 업을 짓는 주체와 작용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고, 그러기에 실재하지 않는 공空이고 연기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자세하게 「관거래품」을 탐구하겠습니다. 

 

법인 스님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다. 2000년 해남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오늘날 템플스테이에 해당하는 ‘새벽숲길’이라는 프로그램을 불교계 최초로 열었다. 2009년부터 4년간 조계종 교육부장을 맡아 ‘백 년만의 변화’라는 승가교육개혁을 이끌었다. 이때 우리 사회의 고뇌하는 청년들을 위한 ‘청년출가학교’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았으며, ‘청년암자학교’를 통해 청년들의 고민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과 따듯한 처방으로, 일약 ‘병’주고 ‘약’주는 스님이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차茶의 성지, 일지암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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