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박에 떠나는 암자순례] 고창 선운사 참당암 도솔암

삼장三藏 지장보살을 참배하다

2015-11-06     유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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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선운사 일원은 지장보살 신앙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선운사 동백꽃과 도솔암 미륵불 등의 유명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본래 선운사는 삼장三藏 지장신앙의 중심이다. 지장신앙은 본존이 지장보살이며,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양 협시로 하고, 시왕이 좌우로 배열되어 있어, 지옥의 구제자라고 불린다. 이것이 후세에 와서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사상과 결합된다. 삼장 지장보살이 탱화가 아닌 불상의 형태로 온전하게 봉안되어 내려온 곳은 이곳 선운사가 유일하다. 지표상으로 볼 때 선운사가 가장 낮으니 ‘지장地藏’이고, 참당암은 ‘인장人藏’이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솔암에는 ‘천장天藏’이 모셔져 있다.
 
인장人藏 지장보살, 참당암 
참당암懺堂庵은 낯설다. 불자들이 고창 선운사를 참배하면 다시 발길을 옮기는 곳이 도솔암兜率庵이다. 도솔암 쪽으로 한참을 걷다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도솔암 가는 길이며, 오른쪽이 참당암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솔암으로 오른다. 참당암은 불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암자다. 걷기 좋은 오솔길을 1km를 오르면 오른편에 대나무 숲이 앞을 가로막는가 싶더니 이내 넓은 평지가 펼쳐진다. 참당암이다. 참당암은 도솔산 내의 사찰과 암자 가운데 가장 먼저 창건된 사찰이다. 사람들에게는 선운사와 도솔암의 이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본래 참당사 또는 대참사大懺寺로 불리었던 거찰巨刹이었다. 정조 18년(1794) 임상우가 쓴 『도솔산대참사고사』와 『대참사법당기』 등에 따르면 참당암은 신라시대 의운 화상이 개창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그 이야기가 설화의 형태로 전해진다.
 
의운 스님이 도솔산에 살고 있을 때 산 아래 죽포 포구에 돌배 한 척이 들어왔다. 이 배는 속인들이 보려고 다가가면 저절로 멀어지곤 하다가, 스님이 제자와 함께 포구로 가니 돌배가 저절로 다가왔다. 배에 올라보니 옥축대장경과 석가모니불, 가섭, 아난, 16나한상이 나란히 앉아 계셨다. 그날 밤 의운 스님의 꿈에 한 금인金人이 나타나 여러 불상과 경전과 보인寶印을 스님에게 전해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진국의 왕인데 불상을 모실 곳을 찾아 여러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던 중, 도솔사에 대참大懺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서린 것을 보고 이 곳으로 왔으니, 청컨대 집을 짓고 편안히 모시도록 하시오.” 의운 스님은 우진국 왕의 뜻을 깊이 새겨 581년 선운산 가운데 터를 잡고 ‘대참사’라 하였다. 
 
대참사 참당암에 이르면 탁 트인 평지 중앙에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고, 특이하게 오른쪽으로 한 지붕 아래 응진전, 명부전이 함께 들어서 있다. 맨 왼쪽으로 참당선원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왜 이런 곳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기운이 넓고 평온하다. 참당암이 지장참회도량으로 불리게 된 까닭은 대웅전 뒤편 오른쪽에 자리한 지장전에 모셔진 지장보살상(전북유형문화재 제33호) 때문이다. 참당암 지장전 안에는 돌로 만들어진 석조지장보살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광배를 제외하고 아래의 대좌로부터 불신에 이르기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불상이다. 손에는 동그란 약병을 들고 있어서 약사보살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머리에 두건을 두른 것이 전형적인 지장보살이다. 이 지장보살이 선운사 삼장 지장보살 중 인장人藏 지장보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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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지장보살이 다시 온 이유
일제 식민지 시절, 이곳 고창 선암사도 예외 없이 국보급 보물들이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 그 중 선운사 관음전에 봉안되어있던 고려 말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79호)이 1936년 어느 여름날 없어졌다. 일본인 2명과 우리나라 사람 1명이 공모하여 지장보살좌상을 훔친 뒤에 이를 거금으로 매매한 후 일본으로 보냈다. 일본으로 넘어간 지장보살좌상은 어느 일본인이 구입하여 소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일본인의 꿈에 지장보살이 수시로 나타나 “나는 본래 전라도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어서 그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하였다. 소장자는 다소 이상한 꿈으로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계속 꿈에 나타나고, 급기야 병이 들면서, 집안은 더욱 기울게 되었다. 이 일본인 소장자는 마음이 꺼림칙해 이 지장보살상을 다른 일본인에게 팔아 넘겼다. 그러나 또 다른 소장자의 꿈에 지장보살은 똑같이 나타났으며 역시 병이 나고 가세도 기울었다. 
 
이렇게 몇 차례 소장자가 바뀌게 되고, 이 지장보살좌상을 소장한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마지막으로 소장한 이가 고창경찰서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지장보살좌상을 모셔갈 것을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선운사 스님들과 경찰들이 일본 히로시마로 가서 모셔오게 되었는데, 도난당한 지 2년여 만인 1938년 11월이었다. 당시 이 이야기는 잃어버린 보살상을 다시 모시고 온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과 글에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 지장보살좌상은 선운사 내 지장보궁地藏寶宮에 있으며, 일반인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열려있다. 이 지장보살좌상이 바로 선운사 삼장 지장보살 중 지장地藏 지장보살이다.   
 
| 천장天藏 지장보살, 도솔암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는 약 3.2km로 1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 길도 평탄하고 울창한 숲길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산책길처럼 걸어갈 수 있다. 
 
도솔암에 도착하면 왼쪽으로 마애여래좌상과 도솔천내원궁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유명한 도솔암 마애여래좌상(보물 제1200호)이 눈 앞 전체로 다가온다. 이 마애불에는 1893년 가을 동학도 손화중이 미륵불 배꼽에 숨겨있는 비결을 꺼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후 어떤 내용의 비결을 얻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손화중이 미륵불의 배꼽에서 비결을 꺼냈다는 이야기는 당시 전라도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전한다. 도솔암 마애불에는 120년 전 새로운 사회를 염원했던 동학민들의 빛바랜 꿈이 담겨있었다. 마애불을 지나 도솔천내원궁으로 오르면 이곳에 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인 천장 지장보살이 모셔져있다. 특이하게 이 천장 지장보살에는 적지 않은 영험담이 전해져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불자들이 이곳 도솔천내원궁 지장보살을 보며 삼 배를 올리고 있다.  
 
『지장보살본원경』에는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해 마침내 그들이 보리를 깨달아 얻고, 지옥이 다 빌 때까지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衆生度盡 方證菩提 地獄未空 誓不成佛).”는 지장보살의 서원이 나온다. 지장보살이 현재의 보살이며, 실천적인 보살이며, 자비의 보살인 것을 알 수 있다. 도솔암 주지 도완 스님은 “도솔암은 지장 도량이면서 동시에 미륵 도량이다. 마애여래불과 지장보살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꿈과 의지처를 삼고 있다.”고 말했다. 지친 삶으로 미래가 불확실하고, 의지처가 필요할 때 이곳 도솔암은 좋은 순례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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