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 세월이 만드는 장맛, 항아리밭을 가다

수진 스님과 전통장 찾아 떠난 여행길

2015-11-06     박찬일
 
 
 
 
 
좋은 청국장은 원래 냄새가 없다
“이기, 제가 하자꼬 해서 이리 된 기 아이고….”
 
경북 영덕생, 서분례 원장은 맑고 수더분하다. 스님을 청하고, 스님께 예를 올린다. 정갈한 방에 앉아 먼저 백련뿌리차 한 잔씩. 그윽하다. 수인사를 하는데, 서 원장의 오래 전 모시던 스님과 수진 스님(서산 수도사 주지)의 은사 인연이 서로 겹친다. 
“두 분이 도반쯤 되는 사입니다. 이런 인연이.”
 
명주 스님이라고, 두 분이 다 아는 고승의 함자도 나온다. 이내 화기가 도는 실내다. 
 
최근에 서 원장은 국가로부터 명장 칭호를 받았다. 청국장 제조다. 담소 나누는 너른 방 이곳저곳에 축하화분들이 놓여 있다. 우리는 청국장 얘기부터 나눴다. 
 
서 원장의 청국장은 이른바 냄새 안 나는 청국장이다. 그런데 기능적으로 청국장의 효능은 살아 있게 만들었다. 청국장은 으레 냄새가 나야 좋은 것이라는 오랜 인식과 반대다. 
 
“좋은 균이 죽으면 냄새가 납니다. 제 생각이 아니고, 여러 학자들과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고, 실험해서 나온 결과지요. 청국장은 살아 있는 균이 있으이께네, 그길 살려야 좋은 식품이지요. 살아 있으면 냄새가 안 납니다,”
 
그렇구나. 우린 오랫동안 청국장의 냄새를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데 애를 썼다. 맛은 좋은데, 냄새가 나서 문제라고들 했다. 그러자, 냄새 없는 청국장은 효능도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논란에 어떤 방점이랄까, 새로운 얘기를 여기서 수진 스님과 함께 듣고 있는 것이다. 
 
뒷얘기지만, 스님과 여러 번 이 취재를 다니므로 중간에 공양을 하게 된다. 맛을 따질 겨를 없이 그저 주어진 대로 식사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하동에 가서는, 주인네가 스님께 올린 묵은 김치와 나물 두어 가지로 밥을 넘긴 적도 있다. 서일농원은 알려진 대로 식당이 있고, 공양이 훌륭하다 소문이 났다. 스님이 이것저것 재료를 보고, 맛을 음미한다. 좋다고 하신다. 아마도, 십수 번 이 취재 행차에서 각별히 속가의 공양이 입에 붙는다고 하신 건 처음인 듯하다. 
 
“음, 맛있네. 이건 장에 조청을 넣어 쓴맛을 버리고 입에 붙게 했네. 음, 이 나물은 아주 잘 데쳤어요. 두부도 향이 있고 연합니다.”
 
이런 식이었다. 채식으로 차려진 한상에 손맛이 은근하고 깨끗하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시중의 입맛으로는 더러 밋밋하달 이 음식의 가치를 알아주신 게 스님이다. 실제 공양에는 청국장이 바글바글 끓여서 나온다. 공양 받는 식당이 수백 명이 동시에 들어갈 곳이니, 모두 청국장을 먹고 있는 셈인데 냄새는 전혀 맡을 수 없었다. 
 
“보건복지부에서 기능성 식품이 된 기 그런 이유지요. 냄새 안 나게 하고, 그기 오히려 유효 성분이 그대로 살아 있고 하이께네.”
 
그것은 영하 50도 급냉법이었다. 그는 이런 결과를 모두 공개한다. 50도로 급냉을 했더니 균이 죽지 않고, 그러니 또 냄새가 나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하 50도, 그 극한의 한계에서 살아 있는 콩의 균은 놀랍다. 세계적으로 널리 먹는 음식 가운데 이 나라의 토종인 것은 아주 드물다. 그중에 바로 콩이 있다. 만주와 파주 등 콩의 반도 토종을 증명할 여러 가지 근거가 있고, 국제적 공인을 받았다. 그 콩이, 그리하여 장을 담그는 오랜 역사가, 서기 2천 년이 넘어 비로소 급냉을 통해 다른 경지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 원장이 스님을 모시고 장을 담가둔 장독대(이렇게 어마어마한 항아리의 군집도 결국은 다른 이름 없이 장독대다, 정겨운 이름)로 간다. 담근 날짜가 일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항아리가 2천5백 개가 넘는다. 십 년이 넘은 장이 있다. 뚜껑을 여니, 레이스 달린 보가 씌워져 있다. 과거 디자이너 하던 솜씨를 살려 일일이 짜고 만든 레이스라고 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 장이 익어서 어둡고 그윽한 색을 낸다. 그것을 파내자, 모두들 탄성! 노랗게 잘 익은 된장이 촉촉한 윤기를 머금은 채 속살을 드러낸 것이다. 스님이 아, 하시더니 한 점 떠서 드신다. 맛있어, 잘 익었어. 그리고는 “고마워.” 하신다. 무엇에 대한 감사인지 굳이 여쭐 필요가 없겠다. 장을 익혀준 세월, 그것을 만든 대중의 공,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저는 살림이 크지 않고, 또 손이 없어서 이렇게 오래 장을 건사하고 그러지는 못해요. 참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스님이 합장하여 인사를 한다. 일가를 이룬, 노력과 인내의 한 인물에게 보내는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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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장 아지매’ 탄생 설화
서 원장이 너른 땅 3만 평에 완벽하다 할 농원을 지은 건 완벽한 계획에서 시작한 바가 아니었다. 본디 그이는 여행사를 운영했다. 돈도 좀 벌었다. 그이의 숙원 중 하나는 양로원이다. 아는 보살이 좋은 곳이 있다고, 양로원을 하시라고 땅을 하나 소개해줬다. 공매 넘어가는 땅이었다. 그곳이 바로 지금 농원의 일부다. 
 
“82년도 일인데, 안성이라고 해서 지척인 줄 알았는데 멀어. 5천7백 평이더라꼬. 와보이께네 과일나무가 많고, 조용해서 나중에 돈 생기모 양로원 하면 되겠다 했지. 그래서 덜컥 산겁니다.”
 
주변에 과수원 가진 이도, 논 가진 이도, 산 주인도 그이에게 땅을 사라고 했다. 붙어 있는 땅이라 그러마고 하나씩 사다보니 기어이 3만 평의 거대한 대지가 되었다. 당장 뭘 할지도 자세한 계획이 없었다. 
 
여행사 일로 일본을 자주 갔다. 당시 카페리를 빌려 선상에서 인기가수 공연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아주 인기가 좋았다. 조용필을 불러서 할 만큼 행사가 컸다. 그렇게 다니러간 일본에서 콩 기르는 방법을 우연히 배운다. 순 자르기인데, 그것을 통해서 콩의 수확을 크게 늘리는 법이었다. 너른 땅에 콩을 길렀다. 팔려고 보니 애를 쓴 노고에 비해 값이 헐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된장을 만들자,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가마솥 두 개를 샀어요. 뭐 땅만 넓지 아무 것도 없던 곳이라 이곳이.” 
 
배추밭 옆에 솥 두 개를 걸고 콩을 삶았다. 겨우 서너 가마 분 되는 적은 양이었다. 항아리가 독 있다는 말이 돌던 때라 좋은 옹기를 사러 남원까지 갔다. 거기서 서른 개를 사서 올라온 것이 지금 서일농원 된장의 시작이다. 
 
그렇게 1백 개, 다시 2백 개, 항아리가 늘었다. 농사도 커졌다. 친구가 내려와 된장을 얻어갔다. 돈 십만 원을 받았다. 첫 판매의 시작이다. 그렇게 농원은 성장했다. 
 
“참 별일이 다 있었어요. 체험 삶의 현장인가 하는 프로가 있었는데, 여길 온다는 거예요. 강부자 씨 오신다면 한다꼬 했지요. 그랬더니 진짜 모시고 옵디다. 된장 담그고 뭐 이런 노동을 하고. 돈 벌어 양로원 해야 하는데 이래갖고는 언제 하나, 해서 직접 된장을 팔러 다닌기라. 휴게소 가서 마이크 잡고 된장을 팔고 그랬어요.(웃음)”
 
그의 말대로 ‘된장 아지매’의 탄생 설화(?)다. 
 
앞서 스님과 공양한 식당 이름이 ‘솔리’다. 서 원장은 소나무를 아주 좋아한다. 농원 구석구석에 좋은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다 사연이 있다. 수몰지역에 가서 생명을 다할 소나무를 가져온 것이다. 어쩌면 그이가 양로원을 하겠다는 오랜 꿈도 소나무의 사연과 닮은 것 같다. 스러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 그것들을 거두어 윤기를 입히고 살만 하게 만드는 일. 된장이 바로 그런 일이기도 하다. 처음 몇 가마의 콩을 수확했는데, 막막하던 그 ‘별 볼 일 없는 곡식’이 삶고 저장하고 익히면서 쓸모가 가득한 음식이 된 것이니까. 
 
사람을 보는 서 원장의 시선도 그러하다. 농원에 들르면 아주 익숙한 서비스와 안내를 받게 된다. 직원의 다수가 노인이다. 오래 다녔다는 뜻이다. 주인이 덕이 있어야 일하는 이들도 오래 붙어 있다. 그건 만고의 진리다. 그리하여 이 농원의 오랜 일꾼들은 모두 스스로 된장이 되었다. 서 원장은 그렇다면 묵은 장이다. 
 
“묵어서 다 좋은 건 아이고, 잘 간수하고 다뤄줘야 하지요. 잘못하면 못쓰게 베리삡니더. 살면서 얻은 교훈이지요.”
 
언뜻언뜻 던지는 투박한 사투리와 된장의 기운이 서로 얽혀 들어간다. 다시 ‘항아리밭’이자 ‘된장밭’으로 스님과 함께 걷는다. 저 항아리 안에서 장이 저마다 참을성 있게 용을 쓰기도 하며 더러는 느긋하게 숨 쉬며 맛을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린다. 세월은 그래서 맛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아이고, 좋아요. 장과 사람이 다 같은 것이여. 제몫을 하는 것이 최고여.”
 
스님의 한 마디. 오래 귀에서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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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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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 스님의 청국장으로 만드는 빡빡장
 
재료 
청국장 150g, 배추 속 1/4, 두부 1/3모, 청ㆍ홍고추 1개씩, 들기름
 
 
만드는 법
 
 
1. 청ㆍ홍고추는 씨를 빼고 곱게 다진다. 배추 속은 흰 부분을 빼고 노란 부분만 다져 놓는다. 
    두부는 물기를 짜서 으깬다.
 
 
 
2. 냄비에 들기름 한 숟갈을 두르고 다진 배추 속을 볶아 달큰한 맛을 낸다.
 
 
 
3. 청국장을 골고루 풀고 다진 고추를 넣어 볶는다.
 
 
 
4. 3의 반을 덜어내 그릇에 담고, 남은 재료에 두부를 넣어 볶으면 두 종류의 빡빡장이 된다.
    밥에 넣어 비비거나 쌈장으로 낸다.
 
 
Tip_
잘 익은 된장은 황금색이 아닌, 곶감색이 난다. 된장을 오래 끓이면 떫은맛이 나므로 된장을 끓일 때는 재료를 먼저 익히고 나서 된장을 넣는다. 무침에는 참기름이 어울리고, 볶거나 불에 올려 요리할 때는 들기름을 쓰면 더욱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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