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듣다] 살아 있음은 피난이다

히말라야, 지진 속을 걷다–다섯

2015-11-06     만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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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이 환하다. 계곡을 따라 피어있는 연분홍 랄리구라스가 정지된 회백의 공간에 점혈을 하여 생기를 돌게 한다. 올라올 때 풍기탱가PungiThanga에서 팡보체로 가는 구간에 피어있던 선홍빛 랄리구라스. 자주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이 꽃이 보기 드물게 연분홍으로 피어 몽라MongLa로 가는 계곡에서 물소리와 함께 나를 붙든다. 이쯤에서 눈이 녹아 강으로 흐르는 것처럼, 땅이 풀려 꽃을 피우는 것처럼 나의 굳어 있는 마음이 행여 풀릴까 잠시 물과 꽃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생각은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고 꽃이 피어있는 나무뿌리까지 내려간다. ‘저 산정의 눈이 녹으면 그 눈을 붉게 물들인 죽음들도 이 강물을 따라 흐르리라. 그 붉은 피들이 땅을 적셔 다시 핏빛 랄리구라스로 피어나리라. 히말라야의 봄을 붉게 물들여 숨 막히게 하는 랄리구라스들은 여기서 생을 마감한 수많은 사람들의 환생이리라.’ 여러 가지 상념들이 맴돌다 둡코시DudhKoshi 강을 따라 조금씩 흘러간다.
 
몽라에서의 몽롱한 밤과 몽환의 아침
포르체를 지나 둡코시 강을 건너 숙소가 있는 몽라까지는 꽤 가파른 길이다. 포르체에서 계곡을 향해 100여 미터쯤 내려가다가 다시 200미터를 올라가야 한다. 몽라는 지명이 말해주듯이 고갯마루에 자리한 조그마한 롯지촌이다. 여기도 예외 없이 탑은 금이 가고 롯지의 담들은 허물어져 있다. 숙소에 들어가니 후덕하게 생긴 롯지의 여주인이 반갑게 인사한다. 가이드가 한국에서 온 라마lama라고 소개하니까 대접이 깍듯하다. 티베트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스님들에 대한 예우가 지극하다. 걷는 동안 가이드나 포터들도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먼저 배려하고 예의바르게 대했다. 히말라야 깊은 산중에서 태어나 삶을 마감하는 이들에게 사원은 단순히 불교를 배우고 믿는 신행 공간을 넘어서 학교를 대신하는 교육기관이고 아픈 몸을 치료해주는 병원이다. 따라서 스님들은 교사이며 의사인 동시에 친구이다. 스승의 지위와 동반자의 위상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붓다보다 스승을 앞에 둔다. 숙소는 다른 곳에 비해 비좁고 열악하지만 주인의 미소만큼은 티 없이 맑고 넉넉하다. 
 
저녁을 먹고 포터들이 네팔 막걸리 ‘창’을 권해서 몇 잔 마셨더니 온 몸이 혼곤하다. ‘꼬도’라고 하는 기장의 일종인 곡식으로 담근 창은 막걸리보다는 신맛이 강한데 현지인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다.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달과 별들이 설산 봉우리마다 넉넉하게 빛을 드리우고 있다. 위태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허물어진 탑도 달빛아래서는 균형 잡힌 안좌安坐다. 내 발걸음만 조금 위태로워 보인다.
 
간밤에 다시 눈이 내렸다. 차를 마시러 밖으로 나와 보니 안개 속에 주위가 하얗다. 초저녁에는 하늘이 맑아서 달과 별을 벗 삼아 배회했었는데 잠자고 있던 시간에 눈이 내렸나보다. 히말라야의 변덕을 가늠할 수가 없다. 나도 몽라에서 몽롱한 밤과 몽환의 아침을 맞이했다. 떠나기 전에 롯지 주인과 사진도 찍고 제법 묵직하게 이별을 했다. 그러나 이 고개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냈을 주인의 얼굴은 많은 감정들이 오간 얼굴이 아니다. 손님을 맞이할 때나 보낼 때나 그 미소 그대로다. 흔들림이 없다. 주인답다.
 
 
| 흔들리는 심산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가
안개가 짙게 깔린 길은 여기저기 무너져 내려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오늘의 목적지 남체까지는 반나절이면 닿을 거리다.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길가에는 랄리구라스 꽃과 함께 붓꽃과의 꽃들이 눈에 띈다. 지진의 여파로 올라오는 사람은 없다. 일행보다 앞서 왔기 때문에 내려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나 혼자다. 오직 안개와 꽃 그리고 나, 고립된 풍경이 심장을 식힌다. 잠시 앉아서 이 느낌을 잡는다.
 
비가 오면 걸어서
나만 아는 그곳에 가야겠다.
비닐우산 하나 들고 
아무도 오지 않는 그곳에 앉아서
돌아보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그리워하지도 않고,
비닐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 
오래 들어야겠다.
 
흔들리는 심산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가. 박범신의 이 시가 떠올라 떠나지를 않는다. 갈래길에서 뒤 따라오는 일행을 위해 길 위에 방향표시를 해놓고 쿰중KumJung을 향한다. 한참을 오르니 인도에서 온 여고생들이 무리지어 가고 있다. ‘나마스테’ 인사를 건네고 다시 쿰중으로 향한다. 쿰중은 에베레스트가 있는 히말라야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1953년 세계 최초로 초모랑마(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가 텐징 노르가이를 비롯한 쿰중 출신 셀파들의 도움에 보답하고자 1961년에 병원과 학교를 세운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입구에 힐러리 경의 추모탑 안내판이 서 있어서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추모탑은 사방으로 히말라야를 조망할 수 있는 평평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전통 티베트 양식의 백탑으로 힐러리의 사진과 이력이 새겨진 표석이 탑 앞에 서 있다. 그 위에 걸린 타르쵸에 노란 리본을 걸었다. ‘껴안아 주시라.’
 
 
|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야 한다
내려가다 일행들과 함께 올라오는 가이드 빠상을 만났다. 이 길이 에베레스트 호텔로 가는 지름길이란다. 혼자서 쿰중을 들러보고 남체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지만 그냥 일행들과 합류하기로 했다. 이 일행들은 한국 산악회 회원들인데 산악회가 결성된 지 10년이 된 기념으로 여기 오게 됐다고 한다. 일정이 같아 여행사에서 권유해서 처음부터 이 팀들과 함께 움직였다. 그러나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걸을 때는 일행들과 떨어져 거의 홀로 걸었다. 전나무와 바위들이 어우러진 숲길을 따라 오르니 제법 건축 양식과 규모가 일반 호텔과 다름이 없는 건물이 보인다. 일본 미우라 가문에서 세운 에베레스트 호텔이다. 역사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는 호혜의 관계보다 대척점에 서 있을 때가 많았지만 감정적 비난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화적 응축력이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칼로써 자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역사까지 피로 물들였지만 때로는 꽃을 들고서 세계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세계화도 일본의 양면성 가운데 꽃을 들고 있는 순수한 측면에 힘입은 바가 크다. 등산가였던 미우라 가문에서 히말라야에 이런 호텔을 세운 것도 꽃을 든 결과물이 아닐까. 오랜만에 야외 커피숍에서 진하게 커피를 한 잔 마신다. 날씨가 좋으면 여기서 초모랑마 로체, 눕체, 아마 다블람 등 에베레스트 산군들을 다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냥 진한 커피향 속에 마음을 담근다. 
 
남체 가는 길 사이사이 롯지들의 담이 허물어져 길을 막고 있다. 건물들도 벽에 금이 가고 일부는 허물어졌다. 아직까지는 그대로 방치해 놓은 상태다. 사람과 자연, 높거나 낮거나 모두다 상처를 입었다.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야 한다. 가만히 『천수경』을 염송하며 내려온다. ‘모든 언어와 행위와 생각이 정화되어 본래면목과 만나기를’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시방세계, 안과 밖 모든 생명들이 안락하게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이렇게 생각으로 진언을 풀어본다. 진언은 진정견해眞正見解의 언어적 표현방식이지만, 되새김해서 심정적으로 각인된 이상향이 진실로 실현된다는 행위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나는 어떤 진언을 하고 있는가. 진정 사람을 살리는 활인活人진언을 하고 있는가.
 
멀리 각양각색의 텐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삶을 보중하고 보중한 삶이 위태로워 무너져도 금방 다시 일어설 피난의 풍경이다. 내가 흔들린 시각에 함께 흔들린 사람들의 현재다. 땅을 딛고 있어 피난해야 한다. 살아있음은 피난이다. 죽은 사람은 입난入難이다. 입난入難에 들어선 사람들은 이 풍경을 어떻게 바라볼까. 남체에 가득한 천막을 보며 마지막 리본을 건다.                             
 
만우 스님
계룡산 갑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에서 잠시 수학하고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황사 부도암 한주로 머물며 히말라야를 여행하고 돌아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익은 삶에 대한 특별한 기록들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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