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남 툽텐 린포체의 티베트 전통수행 쫃 수련회

(경북 문경 한산사)성대한 잔치에 마라mara를 초대하다

2015-10-07     하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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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칙 랍드론(Machig Labdrön, 1055~1145). 티베트 전통수행 쫃‘(chöd, 번뇌 끊기)’의 창시자다. 평범한 여성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일찍 삶의 고통을 직면해 감당한다. 불교에 입문해 경학에 통달한 그에게, 어느 날, 유랑 중인 한 라마가 물었다. 티베트식 독송방식에 따라 매우 빠른 속도로 반야경을 염송하던 중이었다.

“너는 이 경전의 의미를 이해하느냐?”

“...”

“네가 이해한 단어와 의미는 머리로 하는 이해일 뿐이다. 너는 진정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반야바라밀경을 읽는다는 진정한 의미는 이 지혜가 너의 의식에 깃드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집착을 잃는 것이다.”

이후, 마칙 랍드론은 경전에서 ‘마라(mara, 수행의 장애물, 인격화된 장애의 상징)의 장’을 읽다 공성을 체험하고, 유랑 수행자가 되어 쫃 수행법을 완성한다.

 

| 첫째 날, 깨어있음의 장으로 마라 초대하기

“이거, 저 말고 다른 분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미 한국에 왔으니 그럴 순 없겠죠.”

아남 툽텐 린포체의 농담에 웃음이 터진다. 일순, 낯선 수행에 도전하는 부담, 마음 속 각자의 번뇌로 긴장했던 몸이 풀어지고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100명의 수행자들이 아남 툽텐 린포체를 중심으로 반원형을 그리며 앉아 있다.

“부처님의 염원이 뭘까요? 저는 오늘 티베트불교 수행을 한국에 가져와서 한국불교 전통을 장엄하게 되었어요. 아름다운 통합이죠. 부처님의 염원이 아름다운 업연이 되어 이렇게 안거수행으로 현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모였어요. 지금 저의 직관으로 여러분에게서 슬픔, 고통, 기대, 갈망, 그리고 선함, 깨달음, 내적 지혜, 기쁨, 가피를 느낍니다. 쫃 수련을 하는 동안 한 가지, 꼭 알아두세요. 나는 법을 전하는 사람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지, 여러분의 구루(Guru, 정신적 지도자)가 아니에요. 평범한, 그냥 친구입니다.”

결계의식이 이어졌다. 바깥의 삿됨을 막는 의식이 아니다. 수행처의 안과 밖을 경계 짓고, 수행 중임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킨다. 기도문 공양을 올린다. “안거가 시작됐다. 이 순간 나는 쫃 수행 안거에 들어간다.” 기도문 또한 내면을 향해 말하는, 자기결단의 언어다. 자신을 향하고 있다.

이어서, 내면의 악, 부정성, 마장魔障과 대면한다. 대면이다. 대적이 아니다. 어떤 방어도 하지 않는다. 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두려움, 분노, 아만, 집착, 망상을 조절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흐르도록 놔둔다. 깨어있어야 한다. 그것들은 나로부터 왔다. 나의 깨어있음을 토대로, 깨어있음의 장에 나의 마장을 초대한 것이다. 내면에서 불려나온 악의 치유는, 더 이상 자기 자신과 그것을 동일시하지 않음으로써 이루어진다.

린포체의 관상觀想 유도에 따라, 마장은 여성악마로 인격화한다. 무서운 얼굴을 한 분노의 마라다. 화가 난 채로 분노의 춤을 추고 있다. 깨어있음의 장에서, 이 분노wrath는 자비다. 의식을 정화하고 깨어나게 하는 선한 에너지, 선禪에서 말하는 분심忿心이다. 관상觀想에 몰입하도록, 린포체가 참가자들에게 요청한다.

“타오르는 염원을 불러일으켜보십시오.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 가장 끔찍한 악마를 만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증오, 고통, 수치, 죄책감, 자아집착이라는 악마를, 사랑이라는 깨어있음으로 지켜볼 수 있도록. 이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도록.”

밤이 깊다. 참가자들은 각자 숙소로 흩어진다. 다음날부터, 하루 8시간씩 법문과 의식,명상이 예정돼 있다.

 
 

| 둘째 날, 자아집착이 만든 방어기제들

아침명상 시간에 린포체는 행복과 평화와 이익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오직 깨달음을 얻겠다, 깨닫겠다는 목적만이 유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깨달음은 현재 한국의 신행토양에서 ‘뜨거운 감자’다.

“구제, 구원은 익숙한 개념이죠. 깨달음? 깨달음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깨달음은 이 생에, 한 생에 얻을 수 있는 걸까요. 아니에요. 바로 즉시 깨달을 수 있습니다. 특별한 자유, 특별한 열림, 특별한 깨어남이 깨달음입니다. 깨어남을 향한 단계를 십지十智라고 해요. 밀교에서는 더 많은 단계를 말하죠. 티베트 불교수행의 하나인 족첸에서는 16단계입니다. 계속해서 깨어나는 겁니다.”

다소 무거운, 깨달음의 법담法談에 린포체는 유머를 덧붙였다.

“관세음보살을 믿으십니까, 라고 하면 잘못된 질문이에요.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최대한 빨리 도망치세요.”

밖에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일상적 신뢰체계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의미다. 린포체는 이것을 ‘비이원적 헌신’이라고 했다. 믿고, 안 믿고, 그 이원성을 넘어선 비이원성, 불이不二다. 쫃 수련에서 염송하는 만트라에도 선禪의 요소가 들어있다.

“옴 바즈라 꼬르띠깔리 빰 하리니사 훔팟”

여기서 ‘팟’은 모든 가르침을 통합한 단어, 해체와 공성의 에너지다. 선사의 “할!”과 통한다. 무엇을 해체할 것인가. 오후법문에서, 참가자의 개별 질문에 답한 린포체의 말 속에 그것이 들어 있다.

“누군가에게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도 합니다. 왜 그런가요? 사랑이 없는 건가요?”

“방어기제입니다. 자기를 보호하려고 스스로 만든 거죠. 방어기제로부터 자기 자신을 분리하면 사랑을 느낄 수 있어요. 아픔, 슬픔, 상처 받는 데 대한 두려움, 수치, 업의 경향성, 이것들을 합쳐 놓은 것이 자아입니다. 자아는 마음을 닫아놓으려고 해요. 자아는 깨달음을 원하지 않아요. 깨달으면, 자아는 죽거든요. 그래서 방어하죠. 그걸 인식했다면 내려놓으면 됩니다. 어렵다면, 방어기제를 약하게 만들 수 있겠죠.”

무감각은 방어였다. 다음 질문은 모두를 웃게 했다.

“화를 잘 내는 성격입니다. 화를 내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화를 내는 것과 화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다릅니다. 아잔 차 스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스님은 천문이나 손금, 부적 같은 것들을 혐오하셨어요. 그런데 어떤 불자가 다가와 공경하는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스님, 손금 읽어드릴까요?’ 그 사람은 그게 직업이었어요.스님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손을 내민 채 고개를 돌리고 계셨죠. 한참 동안 손금을 들여다보고 나서,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화anger가 많으시네요.’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그렇소, 쓰지 않을 뿐이오.’ 아름다운 이야기지요.”

해묵은 고통과 분노. 적으로 인식했던 장애들을 초대하고 대접하는 공양의식은 저녁시간에 이어졌다. 어둠의 마라를 초대하기에 어울리는 시간이다. 린포체가 손에 쥐고 흔들어 소리를 내는 작은 북, 금강저 손잡이가 달린 요령이 유일한 의식도구다. 린포체는 화려한 의식이 깨어있음을 압도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눈을 감은 린포체가 주의 깊게 북과 요령을 흔든다. 참가자들은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각 대륙에서 풍악소리를 따라 춤추는 관상에 든다. 분노, 아만, 탐욕, 질투, 무지를 밟고 올라 춤춘다. 지혜의 피리, 해골 북, 요령, 깃발, 염송을 공양한다.

 

| 셋째 날, 몸을 잘라 마라에게 바치다

다음날, 명상, 만트라, 법문으로 낮 시간을 보냈다. 수련 도중, 몇몇 참가자들은 종종 울음을 터뜨렸다. 자아집착의 방어기제가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 눈물은 저절로 쏟아진다.잦아들도록 그대로 둔다. 마지막 밤, 관상으로 몸을 잘라 마라에게 바치는 공양의식이 남았다. 악마로 인격화된 마라는, 동시에 부처다. 미친 듯이 요동하는 광기에 깨어있음이 더해질 때 몸은 해체되고 자아와 몸이 분리된다고 린포체는 설명한다.

“도대체 몸이란 뭘까요? 이게 내 몸이네, 아름답네, 추하네, 하는 생각은 몸이 아니라 몸에 대한 개념일 뿐입니다. 개념은 몸과의 연결성을 끊어버립니다. 우린 많은 시간, 몸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죠. 숨 쉴 때, 춤출 때, 움직일 때 내 몸과 연결됩니다.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바로 이것, 살아있는 신성함이에요.”

린포체는 이어서, 사랑의 에너지는 연결이며, 집착의 에너지는 생각으로 인해 연결이 끊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제 마라의 에너지를 움직일 차례다. 북과 요령이 울린다. 깨어있음으로 의식이 몸을 떠난 것을 관상한다. 몸을 공양하는 의식문을 염송한다.

“이 몸은 잘 먹이고 살쪄 징그럽기 짝이 없어도 청정한 부분을 가지고 있으니, 내면에서 일어나는 릭빠가 팟 소리와 함께, 분노한 여인의 형상으로 나타나는구나! 얼굴 하나, 팔 둘에 가죽을 벗기는 칼과 해골 잔을 들고, 여인은 내 몸뚱이에서 두개골을 잘라내네. 삼천대천세계에 걸쳐 세 개의 화로 위에 두개골을 올려놓고 그 몸의 구성요소들을 잔치공양으로 화로 안에 차려놓으니, 빛에 의해 감로수로 활활 타오르네. 옴 아 훔 하 호 흐리.”

잘 차려진 다과상이 들어왔다. 참가자 전원이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수행자의 만트라를 흥겨운 가락으로 염송하며 어깨춤을 추는 것으로 공양의식은 끝을 맺었다. 넷째 날 오전, 아남 툽텐 린포체의 법문으로 대장정은 모두 끝났다.

쫃 수련은 갖가지 상징들로 은유된 법의 향연이었다. 설계가 감성적이면서도, 설법은 세밀하고 명징하다. 드물게, 티베트불교의 모든 학파들이 이 수행법을 받아들여 전승한다.닝마파, 까규파, 겔룩파, 샤카파의 수행체계는 각기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쫃 수련을 포함하고 있다.

성도成道하기 직전, 마라의 방문을 받았던 싯다르타가 겹친다.

 

“한국의 수행자들은 헌신적이고 용감해요”

아남 툽텐 린포체 인터뷰

 

티베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대부분을 사원에서 보냈다. 평생 은둔자로 살았던 스승 라마 추르 로 곁에서 수행하고, 21세에 걸어서 히말라야를 넘어 망명한다. 3년 전, 한국에 처음 번역 출판된 저서 『티베트 스님의 노 프라블럼(No self, no problem)』 이후, 한국대중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세 번째 방한 수련을 모두 마친 아남 툽텐 린포체와 작은 다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직전이다.

- 티베트 전통 쫃 대중수련은 한국에선 처음입니다.

“자비와 공성空性의 가르침이 결합해 있고, 심리적 요소가 큰 수행법입니다. 한국에서 이 수행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고, 또 유효할 것으로 봤어요. 한국의 수행자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비종교적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요. 한편으론 불교 가르침이 무의식에 내재돼 있습니다. 쫃 수련에 헌신하고 수용할 용기가 준비돼 있었어요. 저는 방편을 알려준 것뿐입니다.”

- 린포체께서는 쫃 수행법을 언제 전수받으셨는지요.

“제가 속한 닝마파 주요수행입니다. 입문 초기 예비수행에도 들어 있어요. 처음 접한 건 아주 오래전인데, 언제였더라…, 아마도 11세 때일 겁니다. 전수자로 관정을 받은 건14, 15세쯤이고요.”

- 어떤 도움을 받으셨나요.

“여기(왼쪽) 불이 났어요. 그런데 물을 여기(오른쪽) 붓습니다. 어떤 물을 얼마나 붓던지, 이건 불을 끄는 방법이 아니죠. 문제와 방편이 연결되지 못하는 거예요. 나도 그랬어요. 내 문제가 뭔지 몰랐어요. 경전공부를 좋아했고 이해를 잘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학자 지위에 올랐고요. 경전에, 아만을 넘어서라고 나옵니다. 아만을 놓으라는 경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만에 대한 논쟁에서 이기면 이길수록 아만은 커졌어요. 쫃 수행은 자기 내면의 것을 부정하거나 숨길 수 없게 합니다. 보여주죠. 그래서 아주 좋아해요.”

- 누구나 단칼에 번뇌를 잘라버리고 싶어 합니다. 어떤 ‘칼’이 필요한가요.

“보통, 번뇌의 뿌리, 고통의 근원을 보라고 말합니다. 일종의 클리셰(cliche, 상투적 표현)인데, 현대에는 정신분석 같은 방법으로 자기 문제를 보긴 해요. 문제에는 수많은‘층’이 있습니다. 층들이 서로 연결돼 있죠. 지적인 방식으로 문제 뿌리를 보거나 잘라내긴 어려워요. 존재의 무지, 자아집착, 여기까지 알긴 쉽지 않죠. 두려움을 넘어서라, 아니에요. 두려움을 불러들여라, 경험해라, 그런 다음에 넘어서게 되죠. 번뇌의 뿌리인 자아집착도 마찬가지예요. 깊은 내면으로부터 끌어내서 드러내고, 보는 겁니다. 심리적으로, 의식적으로요. 이것이 고통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방법입니다. 고통의 근원에 대미지damage를 입히는 거죠.”

- 이번 수련 현장의 반응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심리적 방어기제를 제거하고 마음을 여는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문화에서는 보기 힘든 부분이죠. 이분들, 한국을 대표한다고 느껴져요. 젊은 사람, 주부, 학생, 비구, 비구니…. 직관적인 집단지성의 힘을 봤습니다.”

- 앞으로 한국에서 대중화될 수 있을까요.

“티베트 불교 전통에서는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쫃 수련을 합니다. 스승이 제자들을 묘지에 보내 야 영을 하게 해요. 이때 강렬한 욕망과 분노, 많은 것들이 올라오게 됩니다.이 수행을 모든 수행자가 하진 않아요. 아주 강한 결심과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지금 세계적으로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알아차림)가 대중화됐습니다. 그 과정에 ‘물 타기(희석)’가 있었죠. 하지만 깊이를 덜어내면 아무 효력이 없어지겠죠. 다만, 많은 사람들과 공유했으면 합니다, 수행의 힘을 빼면 안 되고, 그 깊이를 현대 언어로 설명할 순 있습니다. 한국에서, 쫃 수련이 잘 연결될 거라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