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듣다] 애꾸눈 붓다

히말라야, 지진 속을 걷다 – 넷

2015-10-07     만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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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흔들리지 않고
단순하지가 않다. 걷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모든 행위에 감정이 깊이 작용한다. 히말라야 안에 있는 시간만큼은 모든 감정들이 잠잠해져서 마음의 본바탕을 바로 보는 계기가 찾아오기를 항상 바라고 기원해 왔는데 격하게 일고 지는 감정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음을 흔들어 댄다. 오감은 불안하게 열려 있고 길은 불안함이 깊게 각인된 굵은 감정선이 되어 몸과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평상시 작은 수포처럼 사이좋게 병렬로 의식계에서 작동하던 감정들이 일순 거칠어지면서 경계를 강화하고 대립하기 시작한다.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봤던 생사의 문제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일체의 감정을 지배하며 순간순간 나를 압박한다. 몸의 통증과 마음의 산란이 길을 흔들리게 하고 나를 비틀거리게 한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호흡이 긴 음악을 찾아 동무하며 균형을 찾는다. 내부의 소음을 잠재우고 일정한 몸의 리듬을 찾을 때 음악에 기대는 것, 평소에 즐겨 쓰는 방편이다. 이 땅의 음색을 닮은 악기들과 목소리가 점차적으로 감정을 분할시키며 오감으로 다시 인식작용을 되돌려 놓는다. 균형은 일정한 파장의 흔들림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생명은 파동이고 일정한 파동을 지니고 가는 생명은 평화롭다. 문득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귀를 점한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올라오면서 들었을 때나 지금이나 균일한 파장을 지니고 있다. 이어폰을 빼고 아이들과 잠시 어울린다. 
 
오늘은 팡보체pangboche에서 묵을 예정이다. 쇼마레syomare는 팡보체와 딩보체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올라올 때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그 때 만난 아이들을 내려가면서 다시 만났다. 아이들은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다. 천진한 미소와 웃음소리가 히말라야의 진동에도 변함이 없다. 히말라야 산골 어디에나 아이들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 주로 숙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들이 함께한다. 남루한 옷차림에 코찔찔이지만 활달하고 구김이 없다. 과자를 몇 개 주니 함박미소를 보내준다. 
 
 
| 삶은 하나로 단단하게 엮여있다
팡보체에 도착해서 숙소를 정하고 마을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집들이 많이 허물어지고 금이 가고 피해가 작지 않다. 경찰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피해상황을 조사하고 다닌다. 오늘 묵을 숙소는 오를 때 전망이 좋아 차를 마셨던 곳이다. 온몸에 햇살을 받으며 느긋하게 혼자 아마 다블람의 전경을 즐겼던 곳인데 이곳도 피해가 만만치 않다. 건물 외벽이 많이 무너져 이층은 비워놓고 일층에만 손님을 받는다. 이 롯지를 운영하는 부부의 부모님들은 아예 밖에 설치해 놓은 텐트에서 머물고 계신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두 노인네가 연신 마니륜을 돌리며 만트라를 염송한다. 티베트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평생을 두고 가장 가까이 하는 도구가 염주와 마니륜인데 아마 지진이후로 만트라 염송과 마니륜 돌리기를 더 열심히 하시는 듯하다.
 
약속의 땅이라는 뜻의 팡보체는 주로 농사와 목축을 하면서 사는 위 팡보체와, 초모랑마를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는 아래 팡보체로 나뉜다. 여기는 산악인 엄홍길 씨가 히말라야 오지에 학교를 설립하는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휴먼재단에서 세운 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밤, 여진이 어김없이 잠자리를 흔들어 놓는다. 무심하게 잠들기는 글렀다. 이럴 때는 일물一物로 마음을 고정시켜 놓고 시간의 변태상에 대응하는 것이 낫다. 하나만 붙들고, 그것이 화두이든 만트라든 체념이든….
 
유심으로 나를 세워놓고 한참을 살피다 잠이 든다. 역시 꿈이 어지럽다. 
 
하산하는 코스는 올라올 때와 다르게 위 팡보체를 지나 포르체, 몽라, 쿰중을 거쳐 남체에 도착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숙소 뒷길을 따라 백여 미터쯤 오르니 엄홍길의 휴먼스쿨이 눈에 들어온다. 야외 화장실과 담장이 조금 무너졌을 뿐 교실이 있는 건물들은 괜찮은 듯하다. 학교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의 명단에 도반의 이름이 있어서 흔연한 마음이 인다. 일찍부터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닌 도반인데 법호도 설산이다. 언젠가 봉선사에서 설산 스님과 함께 엄홍길 씨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순한 인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생사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런 분들이 참 선지식이다.” 
 
이런 말도 했던 기억이 난다. 온몸으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고 이제는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깊이 내려가려 하고 있다. 아름다운 회향이다. 
 
학교 바로 위에는 거대한 파드마삼바바상을 야외에 모셔놓은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올라가 보니 노스님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향로를 들고 도량 구석구석을 돌며 정화의식을 행하고 있다. 구루 린포체라 불리는 파드마삼바바상 앞에서 파드마삼바바 진언 “옴 아 훔 바즈라 구루 파드마 싯디 훔”을 암송하며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피해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흔들리는 나를 위해 절을 한다. 기도를 마치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으니 노스님이 다가와 웃으며 목에 빨간 실을 묶어준다. 말을 안 해도 그 의미를 알겠다. 목숨은 쉽게 허물어질 수 있으나 삶은 이렇게 하나로 단단하게 엮여 있다. 하나가 아프면 다 아프다. 
 
 
| 나의 눈은 누가 점안點眼해주나
위 팡보체에 있는 오래된 탑을 돌아 포르체로 향하는 길은 지진으로 많은 곳이 허물어져서 걷는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숨은 듯 나타나며 공중을 선회하는 독수리떼들이 함께 한다. 어디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동물들의 사체라도 있는 걸까? 경사진 초지에서 풀을 뜯다가 지진으로 계곡에 굴러 떨어져 죽은 야크들을 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중에 남체에서 들었는데 어쩌면 이 죽음들을 정리하려고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히말라야에서는 야생 동물들의 죽음은 독수리가 정리한다. 사람들도 독수리에게 자신의 죽음을 맡긴다. 이른바 조장이다. 독수리는 단순히 죽은 육신의 해체자가 아니고 영혼을 하늘세계로 인도하는 영혼 배달부의 역할을 한다. 독수리를 통해 되살아나는 것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지상에서의 생을 마감하고 독수리가 되어 히말라야를 날고 있을 모든 존재들이 그들이 원하는 곳에 안착하기를 바라는 기원의 마음을 날린다.
 
멀리 포르체가 보이는 고갯마루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포터도 여기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넓은 평지에 남향으로 마을이 형성된 포르체는 매우 평화롭게 보인다. 계획대로라면 촐라패스를 넘어 고쿄를 지나 여기 포르체를 거쳐 하산했을 것이다. 눈으로만 멀리 고쿄로 가는 길을 더듬는다. 포르체까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 중간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이 윗마을은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묻는다. 큰 피해는 없다고 대답하고 길을 재촉한다. 멀리서 볼 때는 지진 피해가 거의 없어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크고 작은 지진 피해들이 눈에 띈다. 계곡과 가까이 있는 에베레스트 롯지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마니석이 길게 늘어서 있는 담장 초입에 서있는 쵸르텐에 그려진 붓다의 한쪽 눈이 떨어져 나갔다. 지진 때문에 애꾸눈 붓다가 돼버린 것이다. 
 
‘바르게 보는 것’ 정견正見은 불교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바른 안목을 얻어 지혜로써 일체를 바르게 통찰하는 것이 다르마, 법法의 핵심이다. 안다는 것은 본다는 것이고 때문에 깨달음을 뜻하는 한자적 표현도 견성見性이다. 일체의 근본을 보아 안다는 의미다. 따라서 한쪽으로 치우쳐 보는 편견은 사견邪見이며 망견妄見이다. 탑 앞에 서서 남아있는 하나의 눈을 바라보다 붓다의 눈이 애꾸가 아니라 바른 눈을 얻지 못하고 아직도 편견과 관견管見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진정 애꾸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안正眼의 붓다가 눈이 한 개이든 두 개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두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내가 문제지.’ 붓다가 한 개의 눈으로 나를 점검한다. “나의 눈은 누가 점안點眼해주나.” 영화 만다라 구절이 떠오른다.             
 
                         
만우 스님
계룡산 갑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에서 잠시 수학하고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황사 부도암 한주로 머물며 히말라야를 여행하고 돌아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익은 삶에 대한 특별한 기록들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