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공간] 제10기 금강선원 청소년 명상

1519, 참선으로 뇌를 디자인 하다

2015-09-03     하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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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를 위한 습관, 인내와 집중
40여 개의 좌복이 가지런하다. 아직 자리가 모두 채워지지 않았다. 한쪽에 몇 명의 학생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사이인지 물으니, 지난 번 템플스테이 때 같은 법등으로 활동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프로그램 소감이 어떨까. “마음이 가라앉아요.” 김진섭(청학고 1학년) 학생의 대답은 간단했다. 박성일(별내고 1학년) 학생은 “마음이 안정되고요, 학교에서 조는 일이 줄었어요.”라고 했다. 제환주(이수중 3학년) 학생은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주말에 오기 싫고, 놀고 싶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아요.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있어요. 공부할 때 확실히, 집중력이 높아졌어요.” 
 
학습에 대한 도움과 마음에 대한 도움, 어느 쪽이 더 큰지 궁금했다. 세 학생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반반이에요.” 
 
“정말, 딱 반반씩이요.”
 
한 달 남짓한 기간, 이미 학생들은 변화를 체험하고 있었다. 잠시 후, 입구에서 선원장 혜거 스님을 만나 인사했다. 스님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이 여름을 어떻게 나십니까?”
 
무슨 말씀인지 재차 반문하다가 답했다.
 
“다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아니야, 아직 안 지나갔어요.”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느냐를 점검하는, 서늘한 선어禪語였다. 혜거 스님은 맨손으로 금강선원을 일구어 참선 수행자를 길러내고, 20여 년 전부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참선을 지도해 왔다. 스님의 법문이 시작됐다. 앞쪽에는 청소년 명상 10기 참가학생들이, 뒤쪽에는 청소년 명상 지도자과정 3기를 이수 중인 스님들과 예비 청소년지도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습관 하나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아십니까. 나라의 습관을 바꾸려면, 이천 년, 삼천 년이 걸립니다. 사람의 습관도 20년, 30년이 걸려야 바뀌지요. 여러분 나이에는 단박에 고칠 수가 있습니다. 익어버린 빵을 국수로 만들 수 있습니까? 밀가루 반죽은 빵도 되고, 국수도 됩니다. 세상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까? 이 생각이 마음속에 꽉 들어야 해요. 공부 잘하는 것도 한번 마음 내기 나름입니다. 기왕이면 기둥감이 되려는 마음을 내세요. 말뚝감이 돼가지고 무슨 재미입니까.”
 
스님은 인내와 집중을 당부했다. 인내는 참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참으면서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궁수가 과녁을 향해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길 때, 만약 벌이 날아와 얼굴을 쏠지라도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 활을 잘 쏜다는 비유를 들었다. 본격적인 집중력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몸 풀기 단계를 거친다. 앉은 채로 따라하는 간단한 동작들이다. 
 
“어깨를 귀에까지 올렸다가, 툭! 내려놓습니다. 마음도 툭! 내려놓아보세요.” 40여 명의 청소년들이 몸을 풀며 활시위를 당길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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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무엇이 내 시간의 주인인가?
“인간의 행동은 습관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 하루의 목표를 떠올리세요. 오늘은 무엇 무엇을 꼭 할 거야, 이 결심이 지켜진 후 나머지 시간에 스마트폰이나 게임을 합니다. 무엇이 내 시간의 주인이죠? 목표인가요, 스마트폰인가요. 참선하면서 다리 아픈 마음도 들고 움직이지 말자 등등 모두가 여러 마음을 가져요. 그 순간 어떤 마음이 강한가요, 꼼짝 말자가 강하면 허리 아픈 생각, 가려운 생각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을 반복하면서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겁니다.”
 
금강선원 청소년 명상 지도자 김우현(양재고 교사) 선생이 단단한 목소리로 말한다. 집중력 훈련, 20분간의 좌선이 시작됐다. 보통의 좌선과 다른 점은 반개한 눈으로 시선을 던지는 곳에 집중표가 있다는 점 한 가지뿐이다. 가로, 세로 각 10센티미터 가량의 흰 종이에 원형을 그려 넣은 집중표가 사용된다. 원은 수많은 직사각형의 점으로 이뤄져 있다. 언뜻 보면 과녁을 닮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초점이 잘 맞지 않고 계속해서 시선이 흩어진다. 마음을 쓰고 힘을 들여야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집중표는 좌선 동안 원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표로 돌아오게 해주는 구체물이다. 화두話頭의 대체물이기도 하다. 혜거 스님의 ‘심존목상心存目相’을 바탕으로 개발됐다. 이것은 ‘눈 가는 데 마음 두라.’는 의미로, 철저한 집중을 위한, 금강선원 공통수행수칙의 첫 번째 항목이다. 청소년 명상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TV, 모니터, 스마트폰 등 화면 속 시각자극을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던 눈동자를 한 곳에 묶어두는 일은 쉽지 않다. 표 안의 원이 빙글빙글 돈다면 주의집중이 산만하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 원에 눈동자를 고정하다 보면 원이 본래보다 커 보이거나 원 주변으로 빛이 보이게 된다. 학생들은 움직임 없이 집중에 노력한다. 20분이 훌쩍 지나갔다. 매회 작성하는 일지에 학생들의 좌선 후기가 있다.
 
- 20분에 도전했다. 역시 쉽지는 않았다. 몸을 움직이고 말았다. 끈기를 키워야겠다.
 
- 다리가 고깃덩어리가 된 것 같았다. 계속 다른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원에 집중했다.
 
- 미치도록 다리가 저렸다. 오늘만큼은 참아내고 싶었다. 이마저 못 이기면 무슨 일을 하겠나 생각했다. 20분을 하고난 뒤, 뿌듯했다.
 
 
| 기억의 회로와 감정의 회로는 일치한다
다시 일지를 펼쳐 날짜를 기록한다. 8월 15일 토요일. ‘듣기 훈련’이 이어진다.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주의를 기울여, 한 문장 한 문장씩 듣고 기억해서 받아 적는다. 스무 글자에서 서른 글자 길이의 문장이다.
 
“인식되는 정보 중에 10%만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부정확하고 흐릿한 기억만 남게 된다. 어텐션attention하고, 저장하고, 다시 기억된 내용을 불러오고…. 이렇게 기억을 공고화하는 반복과정이 있어야만 내 기억이 정확해진다. 그러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기억의 오류가 일어난다. 왜냐하면 기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과립세포 생성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억을 잘하려면 감정이 편안한 상태여야 한다.”
 
듣기 훈련용 문장은 지난해 새로 제정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존 오키프, 모저 부부(공동 수상)의 연구논문에서 가져왔다. 김우현 선생이 학생 한 명을 지목한다.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듣고 기억해서 받아 적은 문장을 하나하나 읽는다. 학생의 수고를 격려한 뒤 김우현 선생이 부모들을 향해 덧붙인다. 
 
“기억의 회로는 감정의 회로와 일치합니다. 감정이 안정되면, 있는 그대로 저장하고 기억을 불러오는 공고화 과정도 안정되지요. 후각세포와 해마 과립세포는 매일 700개 정도 새로 만들어져요. 그런데 불안과 스트레스는 해마를 위축시켜 과립세포가 제대로 생성되지 않게 만듭니다. 다그치지 말고, 경청해주세요.”
 
학생들에게 프로그램 소감을 물었을 때, 학습에 대한 도움과 마음에 대한 도움이 절반씩이라고 말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훈련을 통해 기억의 회로와 감정의 회로가 동시에 안정되기 때문이다. 
 
금강선원 청소년 명상 현장에서 직접 진행한 연구 결과도 있다. 2011년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가 청소년 명상 6기 학생 중 5명을 상대로 뇌 활성도를 측정했다. 듣기 훈련 중 안와眼窩전두엽이 활성화됐다. 15회 과정을 하기 전과 후의 비교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전두엽은 정서와 인지를 조절하는 영역이다. 잔상훈련, 이미지 훈련 등 몇 가지 훈련이 더 이어졌다. 과정 내내, 자발적 의지가 아닌 부모의 권유로 왔다는 학생 모두가 프로그램에 깊이 집중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 그들의 생생한 눈빛과 더불어, 김우현 선생의 말이 새겨졌다.
 
“현대인의 괴로움은 끊임없는 잡념 때문이죠. 내려놔라, 버려라 말하지만 어떻게 하는 건가요? 어렵습니다. 숫자 계산,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듣고 쓰는 훈련, 눈을 고정하는 훈련으로 전두엽을 단련하면 잡념이 일어나지 않아요. 금강선원 청소년 명상은 내 안에 목표와 지향을 정하고 집중하는 힘을 기르는 겁니다. 화두 놓치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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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금강선원  |  02-445-8484, www.geumgang.org
서울시 강남구 개포로82길 삼우빌딩 4층
 
탄허기념박물관  |  02-445-8486 www.tanheo.org
서울 강남구 밤고개로14길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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