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듣다] 흔들리는 심산心山

히말라야, 지진 속을 걷다-셋

2015-09-03     만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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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동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사람들 마음이다. 저 산 위에, 산 아래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한 동안 미망의 시간이 모두를 붙들고 있다. 각자가 꿈꾸었던 은빛 히말라야에 대한 몽환적 감수성은 이미 상처를 입었다. 랄리구라스의 황홀한 색감과 신비한 백색의 연봉들이 숨은 듯 나타나며 발길을 유혹했던 히말라야의 지도는 4,900m 고도에서 단지 하산하는 길을 안내하는 황량한 좌표들의 집합체로 바뀌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불안한 시간들, 어떤 곳이 안전한지는 알 수 없다. 선택이 있을 뿐이다. 다들 다시 낮은 곳으로 밀려간다. ‘일단은 여기서 내려가자.’ 하산하는 내내 몸과 마음이 덜컹거린다. 흔들리지 않은 정오 이전의 평온한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보니 히말라야는 그대로다.
 
 
| 히말라야는 중심을 잃지 않으리라
지진 이후 망연스러운 마음으로 허물어진 롯지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서 돌을 쪼는 망치소리가 들린다. 멀리 숙소를 신축하는 공사 현장에서 나는 소리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인부들 두세 명이 부지런히 돌을 쪼아 벽을 쌓고 있다. 숙소가 있는 마을마다 새롭게 집을 짓고 있는 현장을 많이 봐와서 평상시 같으면 무심히 지나칠 상황이었지만 지진 이후라서 망치소리가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보통 이런 비상한 때에는 일손을 놓고 현 상황에 대한 대처 방안을 궁리하기 마련인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주위에 널려있는 돌을 정교하게 쪼아 벽돌처럼 만들어 쌓아 올리는 솜씨가 가히 장인의 솜씨다. 오래된 롯지는 자연석을 흙과 함께 쌓아 지은 반면에 새로 지은 숙소들은 자연석을 벽돌처럼 다듬어 지어서 외관도 깔끔하고 견고하게 보인다. 내려오면서 보니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집들은 흙과 자연석으로 지은 집이 대부분이었다. 오랫동안 그들의 망치질을 보고 있노라니 에베레스트가 무너져도 다시 세울 수 있는 저력이 그들에게 있음이 느껴진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누대를 거쳐 이어온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단단한 근육 속에 축적되어 있는 한 히말라야는 중심을 잃지 않으리라. ‘꼭 다시 와서 세계의 어머니인 초모랑마의 얼굴을 마주 대하리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간밤에 내린 진눈깨비가 얼어서 내려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다. 길게 늘어선 하산 행렬을 보니 티베트 강 린포체(카일라스)를 갔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때는 눈 때문에 코라를 마치지 못하고 되돌아 왔는데 이번에는 지진 때문에 돌아간다. 그때처럼 내려가는 사람들의 복장이 움직이는 룽다, 타르쵸처럼 형형색색이다. 정작 그들의 마음속에는 룽다나 타르쵸보다 더 다양한 색깔의 상념들이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지진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들을 품고 걷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같이 밝은 빛깔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떠나보낸 가족들의 마음 또한 더욱 심하게 흔들릴 것이다. 이미 뉴스를 통해 네팔의 지진 상황이 전 세계로 방영된 지금 여기 사정을 알 수 없는 가족들의 마음속에는 히말라야의 어떤 룽다보다 무사귀환을 바라는 기원의 룽다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을 것 같다. 
 
문득 여러 대의 헬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오가는 헬기다. 많은 인명피해가 난 베이스캠프의 상황을 어제 밤늦게 내려 온 사람들을 통해서 대강은 알고 있었는데 현지 포터들의 인명피해가 많다고 한다. 우리 팀의 가이드나 포터들도 친구들이 원정대를 따라 많이 갔다고 하면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그들을 보낸 부모의 마음, 아내의 마음들을 헤아려 보니 내 마음 역시 간단없이 흔들린다. 오면서 보았던 셀파들의 추모탑들이 얼마나 더 늘어날 것인가. 길은 미끄럽고 생각은 자꾸 중심을 잃는다.
 
 
| 말방울 소리에 생각이 멈춘다
어제 지진을 만난 투클라에 도착해서 차를 한 잔 마신다. 오늘은 트레커들이 식당 입구 쪽에 많이 앉아있다. 여진이 오면 밖으로 뛰쳐나가기 쉬운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좌불안석, 오온이 불안하고 사대가 불안하고 법계가 불안하다. 법계불안상法界不安相이다. 헬기의 굉음은 이 적막한 불안감을 한층 고조시킨다. 정지된 호흡을 나르고 숨 가쁜 호흡을 싣고 구름이 옅은 계곡을 따라 쉴 사이 없이 오간다. 광명진언을 바람에게 전한다. ‘숨을 거둔 자 밝은 빛을 따라 길을 나서고 숨이 희미한 자 밝은 빛을 따라 깨어나시라.’ 나를 향해서도 한 소리 한다. ‘지, 수, 화, 풍으로 이루어진 이 몸이 내가 아니고 오온이 모두 공함을 알아 법계와 하나가 되시라.’ 
 
속을 후비는 통증은 계속 무아無我라고 하는 나를 괴롭힌다. 정말 나라고 하는 실체가 없는가? 본성의 자리에서 보면 이 몸이 객관 대상이 되고 몸의 입장에서 보면 감각하는 세계가 객관 대상이 되는데 이 삼자의 대립을 공성空性으로 해체시켜 아我가 없음을 아는 자리에서 통증이라는 감각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내가 없다고 하지마라. 청천 하늘에 구름 모이고 내가 있다고 하지마라. 구름 걷히니 푸른 하늘이다. 별 생각을 다 일으켜 통증에 대항한다.
 
말방울 소리에 생각이 멈춘다. 돌아보니 누군가 말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고소 증세로 고생을 하던 아주머니 한 분이 결국 아이를 업은 젊은 아낙을 견마 잡이 삼아 말을 타고 하산하는 중이다. 보통 마부는 남자들이 하는데 여성이, 그것도 아이를 업고 씩씩하게 말을 끌고 길을 안내한다. 말의 걷는 속도가 잘 걷는 사람의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말을 끌고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을 통해서 안다. ‘내려올 때 말을 타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무스탕 속담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도 안나푸르나에서 폐렴 때문에 말을 타고 하산을 했으니 한 때는 사람이 아니었다. 
 
에베레스트의 티베트 어원이 세계의 어머니라는 초모룽마이기 때문에 히말라야는 모성의 산이다. 뭇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모성이 히말라야의 힘이다.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 검붉고 복장은 남루하지만 이러한 여성들이 히말라야를 어르고 달래어 사람들을 살게 한다. 말방울 소리와 함께 먼저 앞서간 그 아낙이 셀파들의 추모탑이 있는 곳에 도달하니 벌써 딩보체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 땀이 맺힌 얼굴이 관세음보살 같고 등에 업힌 아이가 남순동자 같다.
 
 
| 살아있는 자 온전히 살 수 있기를
올라올 때 고소 적응을 위해 이틀을 머문 딩보체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쉬는 동안 다시 땅이 흔들린다. 강도가 약하지 않다. 지진이 일어난 시점에서 하루 정도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사람들의 얼굴이 다시 납색이다. 한쪽에서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는 포터들은 별 요동을 하지 않고 태연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무거운 짐을 지고 히말라야를 오르내리지만 그들의 마음 상태는 나보다 훨씬 고요하고 잔잔하게 보인다. 히말라야의 품안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부동심이 쵸르텐처럼 그들의 삶에 정초定礎하고 있다. 아무리 육체가 고단하더라도 흥을 잃지 않고 가볍게 물리적 고난들을 넘어간다. 그들의 모습을 잠시 카메라에 담는다. 가지고 간 간식거리를 나누어 주니 포즈를 취해주며 배경으로 자리한 아마 다블람처럼 순하게 웃는다. 이번 지진 때문에 당분간 히말라야를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텐데 이들은 어찌하나, 대부분 우기가 시작되는 5월 말까지는 포터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가는데 본의 아니게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처지에 측은심이 인다. 강인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고난의 시간들을 잘 견뎌 내리라. 
 
오후에는 짙은 안개가 산과 계곡을 완전히 감싸버려 구조헬기가 뜨지 못하는지 헬기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루클라 공항도 며칠째 날씨가 좋지 않아 비행기가 뜰 수 없어 수많은 사람들이 대기를 하느라 숙소마다 만원이어서 일찍 내려가도 잠잘 곳을 구할 수가 없다고 한다. 세계의 공항 가운데 안전도가 가장 낮은 위험한 공항이기 때문에 일기가 조금만 불순해도 비행기는 뜨지 않는다. 펄럭이는 룽다를 향해 잠시 손을 모은다. ‘맑은 바람이 불어와 이 안개를 걷어가기를, 푸른 하늘아래 히말라야의 눈부신 얼굴이 다시 드러나기를, 살아있는 자 온전히 살 수 있기를.’
 
 
만우 스님
계룡산 갑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에서 잠시 수학하고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황사 부도암 한주로 머물며 히말라야를 여행하고 돌아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익은 삶에 대한 특별한 기록들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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