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주치의] 공황, 의존에 대한 경고

2015-09-03     이승욱

자가용을 운전해서 급하게 출근을 하던 어느 날 아침, E씨는 병원 앞에 거의 다 와서 갑작스런 이상한 느낌에 당황했다. 뭔가 끔찍스러운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공포감이 확 몰려왔고 심장이 쿵쾅거리며 심하게 박동을 했다. 어질어질 혼절할 것 같은 느낌과 함께, 급격히 숨이 가빠져서 호흡조차 통제하기 어려운 괴로움이 엄습했다. 길가에 차를 세운 E씨는 운전대를 잡고 한동안 버티면서 자신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다행히 그런 고통은 몇 분 뒤에 잦아들었고 증상이 사라졌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청나게 땀을 흘려서 온 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 공황발작에서 공황장애까지

출근해서 내과 선배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며 그때의 느낌은 흡사 “몇 톤의 벽돌이 나한테로 쏟아지려는 순간을 보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선배는 몇 가지 필수적인 검사와 심전도 검사 등을 실시했으나 아무런 신체적 조건에 의한 소견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2주일 간 E씨는 같은 증상을 겪은 적은 없었으나 운전을 하는 것에 대해 점점 더 불안이 강해졌다.

처음 경험했던 그날로부터 3주 뒤 E씨는 슈퍼마켓에 가던 차 안에서 또 한 번 같은 증상을 느꼈다. 그 후부터 E씨는 불안함 때문에 운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위의 예는 실제 케이스인데(사생활 보호를 위해 약간 각색했다), 전형적인 공황발작Panic attack 증상이다. 누구나 일생 동안 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증상을 한 번 이상 겪는 경우가 60~70%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대체로는 이 증상을 한두 번 가볍게 겪고 넘어가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공황발작에서 공황장애로까지 악화된다(한두 번의 가벼운 공황발작 증상만으로는 정신장애로 진단하지 않는다).

공황장애로 악화되는 과정에서는 여러 단계의 심리적 경험을 하게 된다. 증상이 발현되고 그것이 몇 번 반복되면 응급실에 달려가거나, 자신이 미치거나 죽을 것 같아 극심한 공포에 질린다. 병원에서 심전도 검사, 방사선 검사, 뇌파 검사 등 모든 검사를 해봐도 원인은 찾아 낼 수 없으므로 심각한 건강염려 단계에 빠지게 된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자신의 공황발작이 일어난 곳과 유사한 장소를 극도로 기피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만원버스나 지하철, 꽉 막힌 도로나 비행기, 엘리베이터, 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 등이다. 이 상태가 더 악화되면 사회공포증 즉,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아예 집밖 출입을 못하게 되기도 한다. 더불어 심각한 우울증이 동반되기도 한다.

공황장애의 증상은 인종, 성별에 차이 없이 광범위하게 발현된다. 필자는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내담자들을 치료적 목적으로 만났는데, 개인적인 임상경험으로나 연구에 의한 통계로 보아도 인종, 성별에서 발생 빈도의 차이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다만 20~30대 젊은 층에서 비교적 더 많이 발생한다).

 

| 왜 연예인 병이라 부를까?

무엇보다 필자가 공황에 주목하는 이유는 언젠가부터 이 증상이 우울증만큼이나 시대적 질병이 된 것 같아서다.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사회에서 공황장애는 연예인 병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이름난 연예인들 중에서 자신이 이 장애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필자는 그들이 왜 그런 증상으로 힘들어 하는지 짐작이 된다.

내가 만났던 내담자들 중, 공황장애로 진단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가 있었다. 증상이 발현되는 그 시점을 기준으로 최소 몇 달(또는 1~2년 이상) 동안 축적된 스트레스 상황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대체로 그 스트레스 상황은 자신의 통제력이 전혀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신념과 두려움이 합성된 심리적 조건과 깊게 연관이 있었다.

특히 통제할 수 없다고 여기는 그 조건은 자신이 정말 욕망하는 어떤 것들인데, 앞서 든 연예인의 예를 계속 이어 나가 보자. 그들은 ‘인기인’이라는 조건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원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노력해서 만든 영화나 작품이 쪽박을 차거나, 힘들여 준비한 공연이 시들한 반응을 얻거나 할 경우, 그들의 인기는 자신의 노력 여하와 관련이 없어진다. 즉,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조건이 주는 두려움이 그들에게 심리적 공포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정말 자신이 얻기를 욕망하는 그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그만큼 거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강력하게 원하는 것은 강력하게 의존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지키고자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살불살조의 화두도 이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앞서 예를 든 E씨의 경우도, 힘든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고 결혼을 앞둔 훌륭한 사회적 성인이지만 사실 그녀도 부모의 강력한 요구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이렇다 할 자기생각 없이 의사가 되었다. 부모로부터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그녀는 부모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고자 결혼을 택했지만 그것은 E씨의 의존의 대상을 옮기는 것일 뿐, 그녀는 여전히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였다. 게다가 결혼, 직장, 거주 이전 등,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 닥쳤는데 남자 친구는 그녀 옆에 없었다. 부모님들도 근처에 없었으므로 그나마 의존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의존하는 것들에 대해 아무런 통제력도 행사할 수 없었기에, 낯설고도 힘든 상황에서 그녀가 경험하게 된 것은 내면으로부터의 공포였다. 사실 공황발작은 그런 내적 공포의 발현일 뿐이다.

 

| 통제 불능의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

점점 많은 사람들이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 세상은 개인들의 통제력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세상은 예측가능하지 않다. 예견된 사고들이 불의의 시간에 터지고, 그럼에도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고, 전문가들의 진단과 예상은 언제나 멸망의 시나리오다.

설상가상, 권력자나 재벌들의 비법과 불법 행위는 준법보다 몇 백배 더 횡행하고, 국민들은 원인 모를 죽음을 당하고도 거리로 내몰리고, 이름도 생소한 역병이 어처구니없이 번져나가 생계를 위협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갑’들은 자리를 내주지 않고, 조금이라도 힘을 가진 자들은 현대판 음서제로 권력을 대물림한다. 우리는 이런 세상의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 그러니 우리는 점점 더 어떤 것을 광적으로 집착하고, 그것을 갖고자 하며, 그것에 의존한다.

필자는 인간의 모든 증상은 하나의 메시지라고 믿는다. 감기는 우리 몸의 면역력이 떨어졌다는 메세지이며, 몸살은 너무 무리했으니 쉬라는 요구이며, 우울은 내가 내 자신의 분노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절규이며, 강박은 소외된 내 자신의 실재를 확인하려는 의례이며, 무기력은 착취당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대한의 몸짓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공황, 공포는 무엇을 그리 발작적으로 말하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탐심에 눈이 멀어 자기 자신을 점점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 같다. 설명이 시원치 않다고 생각된다면 스스로 그 답을 궁구하는 과정을 가지면 좋겠다. 그래야 자신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싯다르타의 시대는 태평성대였다고 착각하지 말라. 2,500년 전도 지금 같은 혼돈의 시대였고, 싯다르타는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을 통치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오직 자기를 통해 진정한 법을 찾아 구현하려 했던 것이다. 자기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지 않은가. 공황은 자기를 잃은 자들에게 자기를 찾으라는, 무서운 얼굴을 한 ‘자기로부터의 메시지’이다.

 

이승욱

정신분석가.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교사를 사직하고, 가족들과 함께 뉴질랜드로 떠나 정신분석과 철학을 공부했다. 뉴질랜드 정신병전문치료센터에서 정신분석가, 심리치료실장으로 10년 가까이 일하다가, 시작한 곳에서 끝을 맺기 위해 뉴질랜드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하자작업장학교의 교감직을 맡기도 했으며, 지금은 광화문에서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공공재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마음의 연대』, 『포기하는 용기』, 『상처 떠나보내기』, 『대한민국 부모』(공저) 등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