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오늘날 북한의 불교는 어떤 모습일까?

2015-08-31     이지범

불교, 통일을 시뮬레이션하다

01 그리운 사찰, 그곳에 가고 싶다  : 그곳에 남은 절과 절터 / 하정혜
02
오늘날 북한의 불교는 어떤 모습일까? / 이지범
03 
금강산 신계사 이야기 : 제정스님,장인자 할머니 인터뷰 / 하정혜
04 
분단 70년, 민추본 15년. 단절과 교류의 역사 / 박재산

지난 봄, 한 케냐인이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쫓겨났습니다. 평창Pyeongchang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려던 그에게, 철자가 비슷한 평양Pyongyang행 비행기표를 건넨 여행사 직원의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평양으로 가는 하늘길이 열려있다는 뜻입니다. 북한은 대부분의 나라와 똑같이, 비자visa없이 입국한 외국인에게 강제출국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그동안 개성공단을 개방하고 금강산 관광사업을 남북공동으로 추진할 정도로, 북한은 더 이상 폐쇄된 사회주의국가가 아닙니다. 특히 북한의 젊은 세대는 자본주의의 가치들을 빠르게 학습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것이 광복 70년, 분단 70년의 세월 동안 우리에겐 극단적 대립의 적국敵國이라는 화인火印으로 새겨져 있던 북한의 현주소입니다. 이념대립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통일의 실체는 아직 막연합니다. 지금, 불자와 불교계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동안 어떤 준비를 해왔을까요? 멀지 않은 시기에 통일이 된다면, 우리가 몰랐던 북한불교는 어떤 모습일지 이번 특집에서 살펴봅니다. - 편집자 주

2.png
 국제불교도평화행진개막집회(보현사 1989.7.3)
 
 
| 북한에서의 종교 
미국 CIA가 2014년 7월 공개한 통계를 보면, 북한의 인구는 약 24,851,627명으로 세계 49위에 해당한다. 그중에서 종교인구는 전체 인구의 2% 정도이다. 해방이후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활동을 멈추거나 사라졌던 북한의 종교는 1972년 7월부터 공식적인 활동을 재개했다. 천도교를 필두로 불교, 개신교, 천주교과 유교, 그리고 러시아정교회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공식 허가를 받고 단체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종교정책을 총괄하는 ‘조선노동당 조국통일전선중앙위원회’ 제6국 소속으로 되어 있다. 1989년 5월 30일 설립된 ‘조선종교인협회KCR’가 현재 북한의 종교단체를 대표하고 있다. 
 
북한은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허용된 종교활동이라고 하더라도 남한의 종교활동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첫째는 북한주민들의 거리 이동에 대한 제약이 많다. 평양에 살고 있는 불자가 강원도 내금강산 표훈사를 참배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것은 경제적인 여건이 미약하고 소속된 조직생활을 우선적으로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종교적 경험이나 신앙심이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분단 이후 반종교정책 시행 등으로 인하여 북한주민들이 종교에 귀의하거나 필요성을 갖출 기회가 무엇보다도 적었다. 이와 같이 기존의 종교체계가 거의 무너진 북한사회 안에서 전통적인 종교활동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기대하기는 어려운 사회적인 환경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를 통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제교류 등 대외관계에서 종교의 필요성과 가치를 인식한 북한 당국이 1980년대 중반부터 불교, 개신교, 천도교, 천주교 등 종교조직과 신앙활동을 본격적으로 허용하고, 평양 광법사 및 정릉사 등 사찰복원에 있어 ‘주체건축’이란 명분으로 경제적인 지원까지 담당하였다. 북한의 종교는 체제에 따라야만 하는 종교기능을 위해 허가를 받은 종교단체가 그 중심에 있고, 다른 하나는 주민들의 의식 속에 오래전부터 잠재된 종교성이 민속 내지 전통문화로서 생활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북한주민들이 정초가 되면 한 해의 운수를 보거나 자식과 남편 등의 진학, 진급 및 승진시험이 있을 때마다 가족들이 절에서 불공드리는 풍습은 남한과 별로 다르지 않다.  
 
 
| 북한불교의 역사 
1945년 11월 26일 평양에서 창립한 북조선불교도총연맹은 ‘불교의 통일단결과 신앙의 자유’를 주요 강령으로 정하고 연맹원 375,438명으로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1946년 12월 26일을 기해 명칭을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약칭 조불련)로 바꾸고 불교조직을 모두 통합하였다.
 
조불련은 1955년경 각 시・도위원회 조직을 구성하는 등 조직체계를 재정비하였으나, 1967년부터 진행된 ‘북한식 문화혁명’의 체제복무와 그 영향으로 말미암아 전통적으로 이어진 종교의 계보보다는 정치적인 상황과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조불련의 조직체계와 강령(종헌·종법), 교구와 사찰운영 등에서 남한의 종단들과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 그러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불련의 역사는 북한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제3대 학림 박태호(화) 위원장 때부터 새롭게 시작되었다. 국내적으로는 사찰복원과 문화재 보수, 불교행사 등을 비롯해 불교학원(佛學院)이 다시 개설되었다. 국외적으로 중국 소련 일본 등과 불교교류를 추진하고, 1991년에는 분단이후 처음으로 미국 LA에서 ‘남북불교도 조국통일기원법회’를 개최하는 등 남북불교교류도 이때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1979년 5월부터 위원장을 맡아오던 학림 대선사가 2005년 11월 11일 갑자기 입적하면서, 2006년 5월 8일에 취임한 제4대 위원장 유성철(영선) 대선사가 2007년도 말까지 위원장으로 재직하였다. 그 후 조불련 내부 승진의 형태로 당시 서기장과 부위원장을 역임했던 심상련(진) 대선사가 2008년 7월~2012년 10월까지 제5대 위원장을 맡았고, 제6대 강수린 위원장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해외동포원호위원회 등에서 국가공직 활동을 해온 인사로 2012년 11월 19일부터 조불련 위원장을 맡고 있으면서, 현재 조선적십자사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직도 겸직하고 있다. 
 
특히,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으로 북한종교계와 더불어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이로부터 2008년까지는 3・1절 민족대회 → 6・15 민족공동행사 → 8・15 민족대축전 → 10・3 개천절 민족행사라는 형태로 남북교류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 시기에는 박태호(화) 조불련 위원장이 2002년 서울에서 개최된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공식 방문했으며, 2003년 3・1민족대회 서울행사에 조불련 대표단이 직접 참가한다. 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2005년 법장 스님, 2007년 지관 스님, 2010~12년 자승 스님)의 평양 방문으로 직접 남북불교가 교류하게 된다. 이러한 인적교류와 같이 남북공동 협력사업으로 개성 영통사와 외금강 신계사를 복원한 것은 남북한의 불교가 종교 및 문화분야에서 대규모로 이룬 실질적인 성과들이다. 
 
 
| 북한불교의 법맥
1982년부터 10차례 북한을 방문했던 독일의 소설가 루이제 린저Luise Rinser가 “우리를 맞은 그 승려는 깊은 산중에는 아직도 수도승들이 있다고 했다.”라고 한 것처럼, 분단이후 북한지역에도 수행승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파악할 수 있는 북한불교의 법맥은 금강산 유점사, 안변 석왕사, 함흥 귀주사, 묘향산 보현사, 평양 금수산 영명사, 법흥사, 구월산 성불사, 패엽사 등 일제 31본산제로부터 이어진 계보를 꼽을 수 있다. 여기에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분들과 전쟁 전후의 월북승려들에 의해 다시 전승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46년 12월 조불련중앙위원회로 단일화되면서 북한불교의 법맥은 전통적인 계보가 사라지고, 조불련이라는 자생적 문중으로 통합되었다. 조불련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은사-상좌’로 이어지는 법계가 만들어지고 묘향산 보현사, 내금강산 표훈사 등 일부 사찰에서 유지되고 있다. 현재 조불련 임원들의 은사로 기록되는 홍화두 고문(1915년 출가)과 박태호 위원장(1919년 출가)의 은사가 묘향산 보현사 출신의 김법룡金法龍 스님인 것으로 보아 31본산제의 계보는 이 두 분에 의해 전승되었고 다시 조불련중앙위원회 법계로 전환한 것이다.  
 
북한승려의 법계는 선덕-중덕-대덕-선사-대선사의 5품계로 나눠져 있다. 선덕과 중덕의 법계자격은 나이 25세 이상의 남자, 대학졸업자, 불학원 수료자, 승납 10~15년, 3~5년의 안거(선사는 5~8년)를 마친 사람에 한하여 자격고시 등과 개인적인 도덕성과 불교발전에 기여한 것을 바탕으로 법계를 품수하고 있다. 대덕의 경우는 일정한 자격기준에 이르면 법계 응시자격을 받게 되고, 선사와 대선사의 경우는 중덕과 대덕 법계의 품계를 가진 자에게 응시자격을 주고 있다. 특히, 대선사와 선사 법계는 선사의 법계 자격에 해당된 자와 불교발전과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더 인정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한편, 비구니 스님을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사미와 사미니 제도가 없는 것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 북한승려의 교육과 의식주
북한의 승려교육은 1965년 삼수갑산 중흥사에 4년 학제로 설립된 불학원을 통해 이루어진다. 불학원은 1991년 평양 대성산 광법사가 조불련의 총본산으로 건립된 다음, 이듬해 2월 그곳으로 옮겨왔다. 불학원의 입학은 고등중학교 이상의 학력 소지자로서 각 도와 시・군・노동자구의 조불련위원회에서 직접 추천하고 조불련중앙위원회가 최종 선발하게 된다. 이외에도 1989년 신설된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에서 가톨릭・기독교・불교・유교・이슬람교 등 5개 전공과목으로 이루어지고, 중앙당 통일전선부가 부정기적으로 주관하여 열리는 ‘지방순회 강습소’를 통해서도 승려의 교육과 양성이 이루어진다. 
 
오늘날 북한의 염불은 약간 느리면서도 장중한 음색과 리듬을 기본으로 한다. 의식 중간에 별도로 사상적 내용을 랩rap풍으로 넣는 것이 남한과 다른 점이다. 염불 의식교육은 불학원을 통해 사사되거나 집중 실습으로 이루어진다. 조불련 부위원장 연암 리규룡 선사와 부장 직책을 맡고 있는 혜안 리영호 스님이 대표적인 염불승으로 알려져 있다.  
 
승려의 법복은 법회와 각종 행사에는 회색과 검정색 2종류의 두루마기와 장삼을 상의로 착용하고, 붉은색 대가사(紅袈裟)를 그 위에 입(受)는다. 다만, 2000년대 이전까지 박태호 위원장 등은 변형된 낙자(絡子, 남한의 5조 가사와는 다름)를 착용하기도 했다. 평상시에는 양복 또는 인민복을 착용한다. 국가 행사를 제외한 각종 불교행사에서는 법복을 상의로 입지만, 아래에는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는다. 여자들은 법복 형태의 옷을 전혀 입지 않는다. 또 백팔염주는 사용하지 않지만, 손목에 단주는 많이 착용하고 있다.
사찰에 상주하지 않고, 주 5일 출퇴근을 하는 북한의 스님들은 일정한 금액의 월급과 배급을 받아 생활을 한다. 그리고 두발 내지 삭발은 스님이라면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율적 의지’와 선택으로 한다. 다른 사찰에서는 삭발하지 않지만, 묘향산 보현사의 경우는 2001년부터 거의 모든 스님들이 삭발을 하고 있다. 이 사실은 남한의 언론과 방문객을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해당사찰에서 직접 제작하여 의식에 사용하는 목탁과 염주, 등燈들은 당일행사에서만 사용하고 모두 정리하여 보관한다. 양초와 촛대, 향로, 그릇 등은 당으로부터 배급을 받아 사용하고 있다. 묘향산 보현사 경내 매점 등에는 목탁과 염주를 관광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물고기 모양을 본뜬 목탁 등 수제품과 ○○기업소(해당지명을 사용)에서 기계식으로 만든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법회와 개인적으로 행하는 불공의식에서 사용하는 음식물은 여러 가지 떡과 과일을 사용하는 남한보다 소박한 차림으로 개인이 직접 가져온 것이나 인근에서 바로 구할 수 있는 오이, 사과, 참외 심지어 계란 등을 불단 공양물로 올린다. 계란은 한 꾸러미나 낱개로도 아주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공양물은 계절과 그 당시의 사회적인 경향을 대변하기도 한다. 과자나 수박, 배, 오렌지 등은 구하기도 어렵지만 생산되지 않고, 만약 있다면 아주 귀한 물품으로 여기게 된다. 또한 받침 등으로 사용하는 그릇과 향로, 촛대 등 불기佛器들은 과거로부터 전해진 것들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근래에 생산된 텅스텐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 사찰현황과 신도조직
북한사찰의 복원과 복구는 1989년을 기해 ‘조선식(일명 주체식)’을 강조한 당국에 의해 이루어졌다. 고구려의 정통성을 내세우고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전국적이고 대규모로 건설하였다. 평양의 여러 사찰들과 묘향산 보현사와 산내암자들, 금강산 표훈사, 구월산 월정사, 평성 안국사 등이 이 시기를 전후하여 복구되었다. 그 결과, 현존사찰은 총 67개소로 온전하게 남아 있다. 이들 사찰은 외국인 관광코스로 그리고 지역 특산물을 채취하고 생산하는 곳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31본산의 하나였던 평양 대동강의 영명사는 현재 ‘흥부초대소’라는 이름으로 김일성 주석의 시설로 사찰기능을 잃었고, 황해도 개성 관음사, 함경도 개심사, 강원도 석왕사 등 명산대찰에는 관리인 1~2명을 배치해 관리하고 있다. 
 
재가 신도조직은 2003년 12월 ‘조불련 전국신도회’가 새로 결성되어 조불련 서기국과 긴밀하게 협의를 갖고 활동한다. 조직은 회장-부회장-위원-신도 체계로 운무 라영식 회장, 안심행 리현숙 부회장이 주요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지범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abc992005@naver.com)으로 1993년 말부터 북한의 종교와 불교를 연구하고 있으며, 수차례 방북하여 북한의 사찰과 스님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또한 2011년 고려 초조대장경 판각 천년의 해를 맞아 천년기념 행사를 총괄하고 초조대장경 복원사업의 도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고려대장경의 비밀(2013년)』, 『남북불교의 흐름 -남북불교교류60년사(2010년)』 등이 있다.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