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페데리코 하인스만 파크하얏트도쿄 쉐프

요리, 레시피보다 철학이다

2015-08-31     하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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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섭의 인문학을 요리하다
“When you eat food, You eat culture, culture of the place you’re.”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여러분이 속한 곳의 문화를 먹는 거예요.” 
 
당연하게 먹어온 음식에 대한, 익숙한 생각들을 돌연 백지상태로 만드는 한마디였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과거이자, 현재이자, 바로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쓰고 매운 맛은 그 나라를 시작할 때의 어려움을 나타내고, 나라의 미래가 밝을 때 단맛을 이야기합니다. 짠맛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의 맛 그 자체입니다.”
 
역사와 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맛’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정한 맛에 따라 형성되는 몸과 마음의 현존상태를 역사와 연결한다. 통섭의 시선이다. 곧바로 질문이 따라붙는다. 
 
- 서양인들이 한국에 오면 여러 음식을 맛있게 먹지만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혀가 느끼는 맛은 훈련에 달려있고, 첫 번째 훈련코스는 어린 시절 맛의 경험입니다. 어릴 때 느꼈던 맛의 감각이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맛을 경험할 때 과거의 맛과 현재의 맛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요. 서양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한국 음식에는 발효된 맛이 있어요. 서양인에게 자기 나라에 없는 맛, 향취, 예를 들어 인삼 같은 것은 자기 마음 속 어떤 것과도 연결고리가 없죠. 한국에 와서 참기름 맛을 처음 봤는데 어디에 가든 참기름을 먹는 순간 한국이 생각납니다. 맛이란 마음과 연결되는 겁니다.”
 
- 그렇다면 요리란 무엇인가요?
 
“언어와 같아요. 말을 통해서 남을 해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통해서 남을 해칠 수도 있고 편안하게 해줄 수도 있어요. 요리란 자연과 사람의 중간자입니다. 말하자면, 가디언(Guardian, 보호자, 파수꾼)이죠. 저는 맛의 가디언이고, 제가 만든 음식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의 가디언이면서, 자연의 가디언입니다. 지금까지 인류역사는 생존을 위해서 음식을 획득한 투쟁의 역사지만, 이젠 음식이 우리 몸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음식이 되는 자연을 우리가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 물어야 하는 그런 시대에 와 있어요.”
 
- 그런 음식철학을 실제로 메뉴에 반영하나요?
 
“한국 하얏트호텔에 처음 왔을 때 아침식사에 컴플레인(Complain, 불만)이 많았습니다. 한국인, 서양인 마찬가지였죠. 한 달 동안 사람들이 아침 먹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한 숟가락 뜨고는 물리는 것을 지켜봤어요. 아침식사는 편안함을 주는 음식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침 먹을 때, 몸은 호텔에 있지만 엄마 생각, 아빠 생각, 집 생각을 한다는 거죠. 그래서 ‘한국 아줌마’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쉐프가 아닌.”
 
이 대목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페데리코가 아줌마, 그것도 ‘very(매우) 아줌마’가 왔다고 덧붙이자 스님들은 파안대소했다.
 
“처음에 아줌마가 호텔에 와서 겁을 먹었어요. 몇 인분이나 해야 됩니까, 150인분입니다, 헉! 두 명의 젊은 쉐프를 투입했지요. 아줌마는 맛을 보세요, 쉐프들은 일을 하세요. 7개월 뒤 아시아에 있는 하얏트 중 아침이 최고인 호텔로 뽑혔습니다. 제가 할 일은 이곳의 문화에서 어떤 연결고리를 찾고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할 수 없다면, 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의 힘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한국말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지만 음식이 언어니까, 맛보고 오케이, 이렇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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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음식과 사찰음식에서 배운 것
페데리코의 말에는 인간 보편의 본성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었다. 한바탕 웃고 난 뒤 토론의 열기는 더욱 고조됐다. 질문이 쏟아졌다.
 
- 한국과 서양 음식의 결정적 차이는 뭔가요?
 
“한마디로, 충격이었어요. 그동안 보여주기 위한 음식을 했다면, 음식에 책임이 들어간다는 걸 느끼게 해줬어요. 한국음식에는 다른 문화의 영향을 안 받고 성장한 순수성이 있고, 궁중음식, 사찰음식은 어떤 나라 문화에서도 볼 수 없는 음식들이예요. 서양음식이 계속 진화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연을 돌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 한국은 서양을 따라가는 경향이 많은데요?
 
“그거, 하지 마세요, 절대로. 서양에 있는 뷔페에 가면 한국음식, 중국음식, 일본음식 섹션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지금 이걸 못 볼 수도 있는데, 세계를 다녀보면 모두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세계 100대 식당에 올해 처음으로 한국식당이 3개 들어갔어요. 한국음식의 중심은 사찰음식입니다. 자연을 돌보는 음식이기 때문이죠. 선재 스님의 음식철학을 서양 쉐프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어요. 아주 작은 숫자의 쉐프들이라도 그것을 공감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과 선재 스님이 연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탈리아나 그리스에서 일어나는 슬로푸드운동과 사찰음식은 어떻게 다르죠?
 
“차이, 없습니다. 계절성, 단순성, 신선함, 건강과의 관련성, 모두 사찰음식이 이미 갖고 있는 특징들이죠. 모든 음식을 다 먹어봤지만 사찰음식이 이 시대의 음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K-팝 밴드한테 사찰음식을 먹게 하면 금방 유행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스님들의 역할이 중요해요. 우리가 음식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스님들하고 나누고 있다는 건 행운입니다.”
 
- 20년, 30년만 지나면 음식문화가 단절이 되지 않을까요, 서양은 어떤가요?
 
“젊은 세대는 앞 세대가 얼마나 훌륭한 선생인지 보여주는 거울이에요. 만약 지금 상황이 나쁘다면 좋은 선생이 아니었다는 뜻이겠죠. 그렇다면 젊은 세대들에게 무얼 해줄 수 있느냐, 아무것도 해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젊은 사람들은 항상 혁명을 꿈꾸거든요. 영원히 살 거라고 믿고요. 젊은이들은 원래 그래요. 젊은 시절에는 과거의 것과의 단절을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면 달라집니다. 문화를 이어가는 것은 계승하는 사람들의 몫이지, 젊은 사람들의 몫은 아니죠.”
 
페데리코 하인스만. 지금은 사찰음식과 깊은 사랑에 빠진 단계, 아직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라고 말한다. 무엇인가를 사랑하게 될 때는, 다른 사람과 나누게 되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고 말하는 그다. 대부분의 호텔은 1년 365일 문을 닫지 않는다. 호텔 쉐프에게도 쉬는 날이 따로 없다. 체력적으로 지치게 마련이다. 강의에 감동한 스님들이 말한다.
 
- 그럴 때, 힘들 때는 부처님께 의지하세요.
 
“걱정 마세요. 부처님은 여기 있어요.”
 
페데리코가 자신의 가슴을 짚는다. 선재 스님이 전한 것은 음식철학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