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밀청춘] 손베틀직물디자인팀 지음ziium

손바닥 면에 삶을 짜다

2015-08-31     유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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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실을 잣아 시간과 공간을 엮다
빛 고운 실들이 수납장마다 칸칸이 쌓여있다. 조그만 베틀의 바디집은 쉼 없이 오르내린다. 손베틀로 작품을 만든다. 사회적 기업 활동으로 손베틀 강의를 하며 심리 치유를 돕는다. 젊은 불자 작가 권지은(31), 유정진(34), 이혜진(28) 씨의 작업 공간을 찾았다. 방문에 걸려있는 ‘지음’이란 이름표가 먼저 따스함을 전한다.
 
지음. 동사 ‘짓다.’의 명사형인줄 알았다. 그보다 앞선 의미가 있었다. 알 지知, 소리 음音을 써서 知音이다. 유정진 씨가 올찬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엔 반야라는 이름을 사용했었어요. 그런데 지혜롭지 못해서, 이름에 담긴 힘이 커서 고민을 많이 했지요. 잘 못 듣고 잘 말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말에 스스로 잘 속아요. 내 식대로 듣고, 내 말이 아닌 것을 말하게 돼요.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고, 있는 그대로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잘 훈련해보자는 의미로 지음이라 이름했어요.”
 
잘 듣고 잘 말하고 싶은 이들 손에는 조그만 손베틀이 쥐여있었다. 손베틀도 직접 개발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쉽게 직조를 접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느낀 것을 당신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유정진 씨가 베틀로 천을 짤 때 일어나는 느낌을 설명했다.
 
“손베틀로 천을 짜는 동안에는 내가 설정한 공간에 내 시간, 생각, 노력들이 그대로 반영돼요. 누구도 한 줄 대신 짜주지 않죠. 작은 컵받침 하나에도 나 그대로가 오롯이 표현됩니다. 천을 짤 때 다가오는 여러 가지 느낌들이 불교적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에요. 몰입의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키트를 제작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녹여내 쌓는다. 나를 엮는다. 나로 인해 내가 만든 작품의 결이 달라진다. 내 집중의 결과물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깊은 몰입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보면 때때로 ‘내가 짠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한다. 손베틀 워크숍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제가 만든 건데 제가 만든 것 같지 않아요.” 이혜진 씨는 손베틀로 작업하며 느낀 바가 있어 2013년 가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명상심리상담학과에 입학했다. 혜진 씨가 자신의 생각을 더했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감들에 휩싸여있어도 천을 짤 때에는 지금 현재에 집중하게 돼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요. 소재가 주는 따뜻함도 있어요. 씨실과 날실을 엮어 이만큼의 공간을 지으면서 받는 위로와 안정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토대로 명상과 베틀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려 준비하고 있어요.”
 
 
| 몰입의 순간, 말없는 말
어떤 물건의 재료가 되는 천이다. 재료가 되는 천을 직접 짓는다. 직물을 짜기 위해 베틀에 실을 거는 것은 사람이다. 근본의 알아차림. 토대를 만드는 즐거움도 함께 느낀다.
 
더 많은 이들과 경험을 함께 나누려 워크숍도 열었다. 벽걸이 작품을 만들 때는 길에서 주어온 풀, 조악한 플라스틱 조화, 집에 있던 종이테이프 같이 눈길 가지 않는 것들을 함께 엮어보도록 조언했다. 소재의 확장이다.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여 훌륭한 작품이 됐을 때 오는 성취감. 손바닥만 한 작품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란 없다고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사회적 기업 활동으로 손베틀 강의를 할 때는 참가자들이 조금 더 자신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참 신기하죠. 사람이 많이 모이면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생기잖아요. 워크숍을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말이 없어도 괜찮아지는 때가 와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자기에게 집중하는 시간. 그런 부분에 참가자들도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희들끼리도 말이 없어도 통하는 순간이 있어요.”
 
유정진 씨가 설명한 말이 없어도 통했던 그 순간을 이혜진 씨가 회상했다.
 
“언젠가 언니가 작품을 만들어 설명 없이 제게 내민 적이 있어요. 작품을 보는데 문득 추운 겨울날 봤던 나무숲이 떠올라 그 이야기를 했어요. 그걸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말없이 전달된 의미에 서로 굉장히 감동받기도 하고, 신기해했었죠.”
 
말을 거치지 아니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의미를 전한 경험. 생각은 작품에 고스란히 담겼다. 알아차림에 대한 반가움은 작품 활동을 하는 데 큰 에너지가 됐다. 이런 에너지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지음으로 받은 사랑을 어떻게 회향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3~4개월마다 한 번씩은 작업실에 사람을 초대해보자 생각했다. 작은 파티를 열고 그간의 작업들을 보여주며 회향하자는 계획이다. 유정진 씨는 그녀가 활동하는 청년법회 법우들과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기회가 닿는다면 템플스테이에서 손베틀 프로그램을 진행해 많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도 품었다.
 
경經을 의미하는 범어梵語 수트라Sutra에는 날실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한자 경經은 실 사糸와 물줄기 경巠의 합성어다. ‘베틀의 날실을 가지런하고 팽팽하게 당겨놓다.’는 자형적 의미를 지닌다. 
 
베틀에 가지런하게 걸은 날실을 잉아로 나눈다. 엇갈린 날실 사이를 실꾸리가 가로지른다. 공간을 파고든 시간의 결을 정리한다. 바디집을 내려 켜켜이 씨실을 쌓는다. 과정의 반복. 조금만 생각을 놓치면 삐뚤빼뚤한 결과물이 나온다. 실과 실을 얽는 행위. 어쩌면 몰입의 순간, 말없는 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유리컵에 맺힌 물이 또르르 흘렀다. 컵 밑에 놓인 컵받침이 흐른 물방울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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