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법문] 진여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2015-08-31     지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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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살기가 편안해지고 수월해지려면
 
세속의 일반적인 생활을 세간인연이라고 말합니다. 세간인연에서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한정된 범위를 가지고 그 제한된 범위 안에서 활동합니다. 출세간이라는 것은 세간을 벗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가령, 우리는 부모로부터 받은 육신을 가지고 삶을 살아갑니다. 몸을 중심으로 살다보면, 태어나서 한 생애를 사는 동안에는 시간적인 제한이 있어요. 몸이라는 것은 항상 때와 장소에 자리 정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세간이라는 말은 시간과 공간의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합니다. 
 
세간에서 생각할 때는 현실이 가장 중요하고, 육체가 가장 중요합니다. 몸을 받아 태어나기 이전의 문제, 죽고 난 다음 생의 문제에 대해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오직 현실에서 내게 이익이 돌아오고, 안녕이 보장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속적인 것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교수행에 있어서 올바른 수행정신이 아닙니다. 세간법에 한정지어 살면 인생의 의미가 그만큼 좁아지고, 짧아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출세간법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세간법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마음은 세간법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이 몸은 하나뿐입니다. 이 몸은 전생에는 없었던 몸이에요. 부모를 의지해서 태어난 이 몸은 유일무이해요. 몸을 놓고 볼 때는 현실위주 중심이 됩니다. 그런데 마음을 놓고 생각해 볼 때, 지금 이 마음은 전생의 그 마음과 똑같은 마음입니다. 죽고 난 다음의 마음도 똑같은 마음이에요. 몸은 전생 몸이 아닌데 마음은 전생 그 마음이다 이거예요. 부처님 가르침은 이걸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몸에 맞춰서 세상을 살 때는 세상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에 맞춰 세상을 살면 세상 살기가 편안해지고 수월해집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출세간법을 통해서 세간법을 알아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우리는 숱한 번뇌를 일으키면서 삽니다. 중생의 마음에는 팔만사천 번뇌가 있다고 하지요. 그러나 중생의 마음은 사라지는 마음입니다. 중생의 마음은 생멸심生滅心이에요. 우리가 아무리 근심걱정을 많이 하고, 온갖 번뇌를 일으키더라도 번뇌는 결국 없어지는 것입니다. 
 
부처님 마음은 진여심眞如心입니다. 한결같은 마음이에요. 부처님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진여의 마음에는 무분별지無分別智가 가득차 있습니다. 생멸의 마음에는 분별지分別智가 가득 일어납니다. 진여의 마음, 부처님 마음으로 돌아가면 ‘세상 모든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본래 아무 일도 없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 세월이 가고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지금 이 순간에 처해있는 상황을 의식하면서 여기에 자기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놓고 삽니다. 사실은 무상無常한 것인데 말이죠. 그걸 모르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속적인 차원에서는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진여심으로 볼 땐 달라질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세세생생 백천억겁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미래도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그런 삶들이 전부 현재 한 생각 속에 다 있습니다. 현전일념現前一念입니다. 현전일념에 들어가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一念普觀無量劫 일념보관무량겁
無去無來亦無住 무거무래역무주
如是了知三世事 여시요지삼세사 
超諸方便成十力 초제방편성십력
 
일념보관무량겁 무거무래역무주. 과거 모든 시간, 미래 모든 생각, 백겁천생의 무수한 겁의 시간을 한 생각 속에 모두 관해보니, 오고 가는 것도 없고 머무르는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시제로 말하면 과거도 없고, 현재도 미래도 없다는 말입니다. 항상 현전일념, 모든 게 현재예요. 부처님은 방편으로 과거를,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정각 자체에서는 모든 것은 일념일 뿐입니다. 
 
잠자고 있는 사람에게는 ‘내가 몇 시간 째 자고 있다.’라는 의식이 생기지 않습니다. 잠 속에서는 시간이 진행되는 것이 없어요. 자고 일어나 시계를 보고서 ‘내가 몇 시간을 잤다.’ 알게 되지요. 선정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념만년一念萬年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한 생각이 만년이다. 진여의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시요지삼세사 초제방편성십력. 과거, 현재, 미래 일을 이 이치를 통해 바로 알게 된다면, 모든 방편을 뛰어넘어 부처님 능력을 한껏 갖추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한 생각을 잘 살피는 것, 공부는 거기서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불교를 ‘일념 공부다.’ 이렇게 말합니다. 
 
 
| 온갖 보배로 장엄돼있는 아름다운 세상
 
중생인 우리는 분별심으로 분별하며 삽니다. 『대승기신론』에 이렇게 정의되어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일체분별一切分別은 분별자심分別自心이라.’ 우리 마음이 진여심으로 돌아가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분별망상이 일어나니까 문제가 생깁니다. 분별심으로 분별하기 때문에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이 많아집니다. 남의 잘못된 점도 자꾸 보이고요.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는 진여의 청정성으로 돌아가면 아무 문제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 세계를 정토라고 하지요. 정토를 구현한다고 하는데, 마음이 청정하면 이 세상이 전부 정토입니다. 내 마음이 진여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토입니다. 
 
『유마경』 「불국품」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리불이 어느 날 어떤 의구심을 품게 됐습니다. 
 
‘이 세상에는 온갖 차별이 많고 문제가 많다. 보기 싫은 것도 많고 더러운 것도 많다. 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를 짓는 사람도 있다. 이걸 우리가 어떻게 정토로 볼 수 있을까. 중생의 업이 범벅돼있는 세상이지, 어떻게 정토인가.’ 
 
그때 부처님이 그 마음을 아시고는 사리불을 앞에 두고 신통을 부렸습니다. 발가락으로 바닥을 꾹 누르자 신통변화가 일어났어요. 온 세상이 칠보로 장엄된 세계로 변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고 온갖 보배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보이느냐?” 사리불이 답했습니다. “부처님, 온 세상이 온갖 보배로 장엄된 세계로 보입니다.”
 
그때 곁에 있던 나계범왕이 사리불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본래 세상은 이렇답니다. 부처님의 지혜에 의지하면 세상은 항상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세상은 온갖 보배로 장엄돼있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거예요. 세상이 내 뜻에 맞지 않아서 때로는 절망을 하고 불평이 저절로 일어나지만, 일심의 진여를 회복하면 세상은 아무 문제없는 정토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이지요. 이 세상은 근본, 본질로 돌아가면 좋은 것, 아름다운 것만 있습니다. 나쁘고 추한 것은 없어요. 분별심을 가라앉히면 세상이 새롭게 보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가만히 있지 않고 보고 듣는 걸 좋다 싫다 판단해버립니다. 이게 분별심이에요. 하지만 내가 일으킨 분별심, 이 번뇌는 객진번뇌客塵煩惱입니다. 내 자신 본래 성품에 있던 번뇌는 아니에요. 손님이 찾아오듯 내게 잠시 찾아와 머물고 있는 그런 것에 불과합니다. 객진번뇌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연에 감사하고 세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내 가슴이 따뜻해지고 밝아져옵니다. 내 가슴이 따뜻해지고 밝아져 오는 것이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예요. 이 자비와 지혜로써 살려고 원력을 세우고, 올바른 신행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항상 내가 맺는 인연에 대해서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의미는 무궁무진해요. 산에 꽃 한 송이 피어있는 의미가 우리 전체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생은 끝없고 다함없이 생성 변화하며 발전해 나갑니다. 하지만 그 근본진여根本眞如는 언제나 변함없습니다. 이 이야기로써 법문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내내 편안히 잘 계십시오. 걱정 말고 내내 편안히 잘 계십시오.
 
 
지안 스님
1970년 통도사에서 벽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강백으로 꼽힌다. 통도사 승가대학 강주, 정법사 주지, 조계종 교육원 역경위원장, 은해사 승가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통도사 반야암 회주로서, 조계종 고시위원장이자 반야불교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마음의 정원을 거닐다』, 『산사는 깊다』, 『성지에서 쓴 편지』, 『대승기신론 신강』, 『조계종 표준 금강경 바로읽기』, 『보현행원품강의』, 『신심명강의』, 『기초경전해설』 외 다수의 저서와 『대반니원경』, 『대승기신론강해』, 『왕오천축국전』 등의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