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공간] (사)지혜로운 여성 부부템플스테이

당신當身이라 부르는 부부의 인연

2015-08-31     하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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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팔기는 하되 세세생생 부부가 되어줄 것을 약속하셔야 합니다.” 
“나는 도를 닦는 사람이라 부부의 인연을 다시는 맺을 수가 없소.” 
“정히 그러하다면 꽃을 팔 수 없습니다.”
 
 
| 세세생생의 선연善緣, 부부
행자는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말했다.
 
“그대의 원이 그러하다면 나도 원이 한 가지 있소. 부부가 된 후 내가 출가하고자 할 때, 막지 않으리라는 다짐이 있다면 나도 약속하리다.” 
선녀는 기쁘게 맹세한 후, 꽃을 내주었다. 행자는 일곱 송이 꽃 칠경화七莖花를 연등부처님께 올렸다. 그리고는 머리카락을 풀고 엎드려 진흙길에 펴서 부처님이 지나가시게 하였다. 연등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장하다, 선혜야, 보리심이 갸륵하구나. 그대는 과거 여러 생을 수행하며 몸과 목숨을 바쳐 남을 위해 애썼으며, 욕망을 버리고 자비로운 행을 닦아 왔다. 이 지극한 공덕으로 오는 세상에 기필코 부처가 되리니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 부르리라.” 
선혜 행자는 싯다르타로 태어나고, 구리 선녀는 야소다라로 태어나 부부가 되었다. 
- 『불본행집경』 「수기품」
 
 
토요일 오후, 경기도 양주 육지장사 템플스테이관 3층 큰방에 열 쌍의 부부가 둘러앉았다. 50대를 넘긴 중년층 부부들이다. 처음에는 어느 쪽이 부부인지 잘 분간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분이 된다. 부부 사이는 미세한 차이지만 간격이 좀 더 가깝고, 스스럼없음이 보인다. 굳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지 않더라도. 불교여성개발원 산하단체 ‘(사)지혜로운 여성’이 주최하는 부부 템플스테이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모두 회원들이 재능기부로 기획하고 진행한다. ‘부부 자애명상’이 시작됐다. 김남선 불교여성연구소장이 말한다.
 
“명상은 자기 자신을 아는 과정이에요.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자연의 이치일 뿐임을 받아들이고 현상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겁니다. 화가 날 때, 내가 화낸 건가요? 짜증날 때, 내가 짜증낸 것인가요? 나는 어디에 있나요? 지금 일어나는 이 마음은 무슨 일일까요. 이렇게 물음을 던지면 얻어지는 답이 있어요. 진정한 스승이 이 속에 있거든요. 명상은 이 스승을 불러내는 작업입니다.”
 
김남선 소장은 자애명상에 앞서 사무량심四無量心, 자비희사慈悲喜捨를 먼저 설명했다. 자慈는 남을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이고, 비悲는 남의 아픔을 없애주려는 마음이며, 희喜는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다. 사捨는 모든 이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내면에서 무궁무진하게 퍼 올릴 수 있는 자애로운 마음, 자비희사는 모두 ‘남’을 향해 있다. 남에게 자애로운 마음을 주기 위해서,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해 사랑의 감정을 일으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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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세음보살의 손이 되어 서로에게 빛을 비추다
“내가 모든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하기를, 내가 모든 정신적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하기를, 내가 모든 적의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서 안전하기를, 거듭거듭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안전하기를.”
 
건강, 행복, 안전. 이것이 자애명상에 들며 스스로 발원하는 3가지 기본이다. 내가 부처가 되어 내 몸과 마음이라는 중생에게 사랑의 마음을 베푼다. 마음은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음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대체하려 한다. 자애명상은 사마타수행의 하나로, 자신의 행복한 모습, 행복한 마음에 집중해 이를 놓치지 않는 수행이다.
 
자애로운 마음과 행복한 느낌을 기르기 위한 대화가 이어졌다. 진행자는 부부 참가자들을 네 조로 나누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공유하도록 했다. “아들 결혼식 날, 참 행복했어요. 그 뒤로 손자를 얻었거든요. 이제 5개월이에요. 이이는 생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손자 앞에만 가면 금이빨이 계속 나와요.” 웃음 띤 아내의 발언에 남편이 응수한다. “금 아니에요. 가짜입니다.(일동 웃음) 저는 오늘이 행복하네요. 언제, 이런 얘기 하고 앉아 있겠어요.”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평소 표현하지 않았던 것들을 꺼내놓아서인지, 참가자들 표정이 조금 상기돼 있다. 이어서 모두 자리에 정좌하고, 본격적인 자애명상을 유도하는 진행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온몸이 한 부분씩, 민들레 홀씨가 흩어지듯, 허공이 됩니다. 남편은 바닥에 엎드리시고, 아내는 옆에 앉아 관세음보살이 되어주세요. 관세음보살이 손을 들어 가만히 남편의 머리에 올립니다. 손가락에서 빛이 몸속으로 들어가, 번뇌의 검은 업장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환한 빛이 비치는 것을 느껴보십시오. 
 
천천히, 머리에서 목으로, 견갑골로 손을 옮겨갑니다. 어깨에 손을 올리면 지금까지 짊어져왔던 삶의 무게가 빠져나갑니다. 팔로 지은 모든 업장도 빠져나갑니다. 관세음보살의 손이 손목, 손등, 손가락을 환하게 비춥니다.”
 
자애의 에너지를 담은 아내들의 손이 남편의 몸을 천천히 훑어 내린다. 엎드린 남편들은 눈을 감고 아내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에는 빛이 등에서 허파, 심장, 위장으로 들어갑니다. 허파는 시비분별을, 심장은 감정을, 위장은 인간관계에서 소화되지 않은 업장을 안고 있습니다. 빛으로 업장을 내보냅니다. 허리에 손을 올려 좌절감을 내보냅니다. 엉덩이, 허벅지, 무릎, 장딴지에 발목, 발뒤꿈치, 발등, 발바닥, 발가락에 차례차례 자애의 에너지를 비춥니다.”
 
다음은 부부의 화합과 감사를 일깨우는 진언명상이다. 다시 자리에 정좌한다. 들숨에 “여보,” 날숨에 “미안합니다.” 진언을 마음속으로 염송한다. 진언에 의해 떠오르는 것을 관하면서 진언을 놓치지 않도록 집중한다. 큰방이 고요해진다. 들숨에 “여보,” 날숨에 “감사합니다.” 진언을 이어간다. 나를 내려놓는 진언, 당신의 고마운 존재를 깨닫는 소리 없는 진언이 공간을 채운다.
 
 
|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저녁 공양 후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진 부부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진행자 이영호 씨는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덕분에 부부의 인연이 얼마나 사소한 이유로 금이 가고 깨어질 수 있는지, 잘 안다고 했다. 오늘, 함께 나눈 대화를 기억하는지, 마음과 마음이 나누는 대화는 얼마나 되는지 질문을 던졌다. 
 
이영호 씨에 따르면, 관계의 발달단계는 ‘오리엔테이션 단계’에서 시작해 ‘탐색적 애정교환단계’를 거쳐 본격적인 ‘애정의 교환단계’로 넘어간다. 중요한 것은 여기부터다. 지속적이고 친밀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애정의 교환단계’에서 ‘안정단계’로 넘어가기 어렵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부모를 향한 자식의 사랑, 동등한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사랑, 인류 보편을 향한 사랑이 고루 갖춰진 내면에서 ‘부부관계를 안정단계로 진입하게 하는 사랑’이 나온다. 남편을 때론 아버지처럼, 아들처럼, 친구처럼 대하고 아내를 어머니처럼, 딸처럼, 연인처럼 대할 수 있어야 관계의 안정욕구가 충족된다는 것이다.
 
‘화성거사 금성보살 수다방’에서는 휴일, 혹은 TV리모콘을 주제로 남편들과 아내들의 생각 차이를 알아본다. 남편끼리, 아내끼리 자기 부부의 에피소드를 공유하는 것. 옆자리 참가자의 말에 공감하고 경청하는 사이, 느슨했던 원이 점점 좁아진다. 참가자들이 서로 바짝 당겨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조별 수다내용 발표 중간 중간, 박수와 환호, 웃음이 터진다. 어느 ‘화성거사’는 학창시절 엠티 온 기분이라고 했다. 
 
다음은 ‘미.고.사. 포스트잇 만들기’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를 넣어 세 문장으로 된 편지를 적는 시간. 얼마만인지 모를 편지쓰기다. 포스트잇 편지가 모아졌다.
 
“회사 그만두겠다고 말할 때 공감해주지 못해 미안해요. 언제나 가정을 위해 애쓰는 당신 고마워요. 나를 사랑하는 당신을 나도 사랑해요.” 
 
“밖으로 나다니며 당신 혼자 계시게 해서 죄송해요. 항상 공부하는 자세로 수행하고 봉사하는 점이 좋다고 하시며,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시는 당신이 고맙습니다. 언제까지나 존경하고 수행하며 살아요, 사랑해요.”
 
“요즘 어머니 모시고 병원 다니느라 더 바쁘고 힘들게 해서 미안하오. 정성껏 며느리 노릇 잘 해주어 고맙소. 착하고 현명한 당신 사랑하오!”
 
“문득 내뱉는 나의 말에 언제고 여법하게 화답해 주시는 당신께 서운함으로 되돌린 시간들, 참으로 미안합니다. 아무리 피곤하신 잠결에도 팔 벌려 맞아주시는 따뜻함, 참으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마음 다해 사랑합니다.”
 
명상과 대화, 강의와 참여가 있는 부부템플스테이의 밤이 깊어간다.
 
부부간에는 흔히 서로를 ‘여보’, ‘당신’으로 부른다. 여보女寶는 전륜성왕의 일곱 가지 보배이며, 당신當身이란 마땅한 몸, 즉 자기 자신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불이不二의 이치를 평생 일깨우는 한 몸, 더없이 귀중한 존재라고 부르는 관계, 부부의 인연이다. 수많은 선혜 행자, 구리 선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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