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듣다] 흔들리는 정오

히말라야, 지진 속을 걷다 - 둘

2015-08-31     만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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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 높아질수록 생각은 한없이 낮아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함께 일어난다. 지나는 구름만이 그늘을 던져주는 이 불모의 땅에서 잠을 잘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터 잡고 사는 사람들, 짐을 운반하는 사람들, 함께 걷는 사람들, 낯설은 풍경에 낯설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있어 내가 여기 있다는 생각에 언제나 산이 높아질수록 생각은 한없이 낮아진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 산과 물이 다르고 돌과 나무가 다르고 너와 내가 다르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다. 저절로 몸이 일어난다. 모든 생명들이여 ‘좋은 하루 되소서’ 아침 예불을 마친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 간밤에 투명한 하늘을 지나가는 초이레 달을 보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진눈깨비가 내려 벌써 길이 하얗다. 히말라야에서 사월은 날씨가 좋아 정상을 오르려는 원정대들뿐만 아니라 트레킹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계절이다. 히말라야가 가장 안정적인 시기가 사월 무렵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을 때는 숙소 구하기도 만만치 않다. 때로는 침상이 아닌 맨 바닥에서 잠을 자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정상적인 잠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사월에 이렇게 날씨가 좋지 않은 것은 처음입니다.” 가이드를 맡은 빠상이 한마디 한다. “그런가? 그럴 수도 있지.” 기후학자들이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생태계의 이변을 경고하지만 지구가 생성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대단한 생태적 변화를 겪었는가는 상식적으로 대충 알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 웬만한 이론은 마음에 걸어두지 않는다. 온 지구가 얼어붙어 모든 생명체가 거의 사라진 빙하기는 차치하고서라도 히말라야도 바다가 융기해서 형성된 지형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과정이 서서히 진행됐다고 하더라도 바다가 산이 되는 지리적 생태적 전도현상을 지구는 겪어왔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속쓰림과 더부룩함이다. 어제 여기 감자가 맛있어서 과식을 했는지 체한 느낌이 있어 손을 따고 했는데도 속이 영 불편하다. 속쓰림과 트림의 연속이다. 사유는 우주적이라도 감각은 철저하게 단세포적이다. 객관세계가 비록 비본질적이고 비상식적으로 전개되더라도 현재 나의 감각이 불균형 상태라면, 특히 고통의 감각이 지배적이라면 감각주관은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흐른다. 나의 고통감각이 최우선 작업 대상이다. 상대방의 고는 그 다음이다. 지금 이상기후로 인해 지구가 병들어가도 현재 나의 감각의 최대 관심사는 이 통증의 사라짐이다. ‘괜찮아지겠지.’ 우비를 단단히 걸치고 오늘의 목적지 로부체로 향한다.

 

| 나는 과연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어 본 적이 있는가

셀파들의 무덤이 있는 고개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룽다가 고개를 가로질러 어지럽게 걸려있고 여기서 잠시 한 숨 돌린다. 투박하게 쌓아 만든 쵸르텐이 서 있고 주위에 사각형으로 돌을 쌓아 만든 셀파들의 추모탑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다.

“셀파 ○○○를 추모하며, 초모랑마의 팔 안에서 평화로운 안식을 취하기를 -세계의 신들의 어머니-” 이런 내용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셀파족은 히말라야-눈이 사는 곳-의 뜻처럼 히말라야서 살고 있는 많은 종족 가운데 가장 높은 지대에 터를 잡고 눈과 바람을 친구처럼 가까이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히말라야에 있는 고봉을 오르려는 일은 셀파들의 도움 없이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히말라야 정상에 올라 환호하는 사람들의 뒤에는 셀파들의 희생이 탑의 기단처럼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생사의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과연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어 본 적이 있는가? 온전히 생사일대사를 위해 나를 던져본 적이 있었던가?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절망하고 고행하고 성취했는가? 붓다 같은 상상기인上上機人도 6년이라는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고행을 통해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는데 나 같은 하열한 근기의 사람은 논리적으로 고찰한다면 그보다 몇 배의 시간을 더 처절하게 고행을 해야 성취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고 있는가? 셀파들의 탑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진다. 이 젊은 죽음들이 나의 현재성을 싸늘하게 점검한다. 문득 몸의 고통이 작아진다. 숙연하게 그들의 안식을 기원해본다.

여기서부터 오늘 점심을 먹을 투클라Tukla까지는 고도가 200m정도 상승하는 경사가 완만한 길이다. 한동안 넓은 개활지가 펼쳐지고 중간 중간 돌담으로 이루어진 야크 떼들의 피신처가 있어 이곳부터는 야크들의 서식지임을 알겠다. 진눈개비가 계속 내려 길은 미끄럽고 질퍽거린다. 내 몸집의 두 배만한 여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걸으면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여성이다. 걷는 속도는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걸음을 옮긴다. 시선이 부딪치자 미소를 보낸다. 아무리 힘들어도 잃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 거들지 않아도 뭔가 가벼워진 느낌이다.

이윽고 정오 무렵 투클라에 도착했다. 일기가 불순해서 트레커들이 다들 식당으로 몰려, 들어갈 틈이 없다. 겨우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니 동서양, 남녀노소 마치 인종 전시장 같다. 언어도 갖가지로 이런 소음이 없다. 오늘 점심은 라면과 밥이다.

 

| 달빛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리라

겨우 두 숟가락 뜨려고 하는데 갑자기 건물이 요동을 친다. ‘아 지진이다.’ 누군가 꼼짝 말고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소리친다. 입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밖으로 뛰쳐나가고 안쪽에 앉아 있던 나는 사람들 때문에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담이지만 트레킹 내내 서로 살뜰하게 챙겨주며 곰살궂게 굴던 부부가 있었는데 지진이 일어나자 남편이 아내를 몰라라 하고 혼자 뛰쳐나가는 바람에 하산하는 내내 주위 동료들의 입담거리가 되었다. 밖을 내다보니 땅이 흔들리니 바깥에 있는 사람들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지진이 멈추고 사방을 살펴보니 다행히 피해 입은 사람도 건물도 없다. 다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잔뜩 긴장한 모습들이다. 나는 지진 경험이 두 번째다. 부탄을 갔을 때 처음 지진을 경험했다.

파드마 삼바바가 수행했던 동굴 사원 탁상-호랑이 둥지- 곰파를 올라가던 날이었다. 그때도 비가 내려 일행들은 멀리 탁상 곰파가 보이는 전망대까지만 올라갔지만 거리를 가늠해 보니 두세 시간이면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아서 혼자 부리나케 올라갔다. 부탄 역시 티베트불교를 그대로 본받았지만 환생자나 린포체가 오히려 티베트보다 많다고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다. 900m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탁상 곰파에서 잠시 구루 린포체인 파드마 삼바바 진언 기도를 하고 흔연한 마음으로 하산해서 호텔에서 저녁을 먹는데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호텔 전체가 흔들리면서 갑자기 사람들이 밖으로 뛰쳐나가고 그때는 처음 지진을 겪어서 이게 무슨 퍼포먼스인 줄 알았다. 그때도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다가 흔들림이 멈춘 후 다시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식사 시간에 두 번이나 지진을 만난 셈이다.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지진이 일어난 시간대가 정확히 4월 25일 오전 11시 56분이었다. 다른 지역의 상황은 알 수가 없었다. 진앙지가 어딘지 지진 강도나 피해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단 오늘의 목적지 로부체까지 가기로 했다. 디보체에서 만났던 두 명의 한국 젊은이들은 오늘 여기서 묵는다고 한다. 지진은 여진을 동반하기 때문에 지형적으로 안전한 여기서 머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오늘의 목적지 로부체까지 가야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로부체까지는 다시 고도가 200m쯤 높아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먼저 도착해서 차를 마시며 주인에게 물어보니 아이패드로 사진을 보여준다. 여기까지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있어 외신이 보낸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1934년 이후 80년 만에 최대 지진이고 강도는 7.8이라고 하며 카트만두에는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세계문화유산들이 다수 파괴됐다고 한다. 밤이 되자 하나 둘씩 이 사람 저 사람들에 의해 지진 피해 정도가 알려진다. 베이스캠프에 있었다는 두 사람이 헐레벌떡 내려와서 그 쪽 상황을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많은 인명피해가 나서 지금 부상자들을 내일 우리가 묵을 고랍셉 롯지로 이송하고 있고 고랍셉 롯지도 여기저기 많이 무너졌단다. 모두들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잊었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여진으로 갑자기 건물이 흔들린다. 벌떡 일어나 자리에 앉아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오늘 편안히 잠자기는 글렀다.

밖으로 나오니 반달이 구름사이로 히말라야를 잠시 조문하듯 비켜간다. 눈 위에 몇 자 적는다. ‘월광인도月光引導, 달빛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리라.’

 

만우 스님
계룡산 갑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에서 잠시 수학하고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황사 부도암 한주로 머물며 히말라야를 여행하고 돌아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익은 삶에 대한 특별한 기록들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