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감성] 파주 용미리 마애불 :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

2015-08-02     하지권

 

 
 

 

파주 용암사에 도착해 눈에 들어오는 보리수나무 아래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땀을 식힌다.
보리수 잎을 통과해 들어오는 오후 빛은 부드럽고 아늑해 보인다.
마애불을 빨리 보려는 성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잠시 뒤 바람을 따라 꽃향기가 지나간다. 
일어나서 보리수나무를 올려다본다. 매달린 꽃과 바닥에 떨어진 꽃이 반반이다.

 

 

계단을 올라 마애불상 앞에 섰다. 
거대한 자연석 바위에 만들어진 고려시대 마애불이다. 
둥근 갓을 쓴 불상이 남자, 네모난 갓을 쓴 불상은 여자라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선종은 아들이 없어 
왕족인 원신공주를 후궁으로 들였다.
어느 날 공주가 꿈을 꾸었는데 두 명의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바위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다오.” 하였다.
공주는 왕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왕은 장지산에 사람을 보냈다. 
과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는 보고를 받은 왕은 
즉시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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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한곳에서 두 마애불상은 세상을 굽어보며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아이가 없거나 병에 걸리지 않도록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함께 한곳을 지키며 나란히 험한 세월을 이겨온 마애불상의 모습이 새롭게 보인다.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에게 따뜻한 의지처가 되어준 두 불상은 
서로에게도 굳건한 의지처가 되어주며 긴 시간을 지나왔다.
여름밤이 깊어간다. 
멀리서 바라본 두 마애불상을 뒤로 하고 나도 의지하고 쉴 수 있는 
가족 곁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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