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단상] 지도 밖으로 여행하라

2015-08-02     문태준

“정처 없는 우리 인생 무엇과 같을까? 
기러기가 눈밭 위를 배회하는 것과 같으리. 
진흙 위에 어쩌다가 발자국을 남기지만
기러기가 날아간 뒤엔 행방을 어찌 알리?
늙은 스님은 이미 죽어 사리탑이 새로 서고 
낡은 벽은 허물어져 글씨가 간 데 없네. 
힘들었던 지난날을 아직 기억하는지? 
길이 멀어 사람은 지칠 대로 지치고 
나귀는 절뚝대며 울어 댔었지.” 

 

이 시는 소동파가 쓴 ‘설니홍조雪泥鴻爪’라는 시이다. 이 시는 정처 없는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다. 소동파의 삶을 들여다보면 부침이 유난했다. 실각이 되어서 귀양살이했고, 또 다시 복권되어 득의했다. 이 둘 사이의 낙차를 반복적으로 오갔다. 심지어 그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해남도에 있는 담주儋州까지 유배되기도 했다. 그가 여주로 유배지를 옮겨가던 중 여산廬山을 보고 쓴 시는 잘 알려져 있다. 

 

“가로로 보면 산줄기 옆으로 보면 봉우리 
멀리서 가까이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
보는 곳에 따라서 각기 다른 그 모습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건 
이 몸이 이 산속에 있는 탓이리.”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이라는 말은 이 시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실각과 복권이라는 두 정치적 입지를 추처럼 오간 그의 안타까운 소회가 녹아 있는 것 같다. 소동파는 여산의 본모습을 질문하면서 권력의 본모습은 무엇이고 또 그것을 지향하는 인간의 안과 겉은 어떤 것인지를 스스로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또 느낀 것은 아마도 무상함이었을 것이다. 생의 고단함을 물 위에 떠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부표에 빗대었듯이 첩첩이 둘러싸인 깊은 산속 나그네의 고립된 신세와 방황하는 심사가 곧 우리 삶의 면목이 아닌가 싶다. 

소설가 김연수가 쓴 책 『여행할 권리』의 맨 앞에 이런 문장이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국경을 꿈꿨다. 왜냐하면 나는 국경이 없는 존재니까.” 무슨 말인가, 하고 좀 더 읽어나가니 이런 문장이 있다. “내게는 국경이 필요했다. 국경에 가서 아무런 사상의 전환 없이도, 혹은 어떤 권리도 포기하지 않은 채, 내 다리로 월경越境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또 몇 쪽 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국경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묻고 싶었다. … 과연 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어떤 곳인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이제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만 하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에겐 구속이 참 많다. 스스로를 속박하기도 한다. 국경이라는 장벽도 우리가 만들어낸 것일지 모른다. 지금의 생각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내부에 국경을 만들어놓기 때문이다.

인도를 여행한 경험은 내게 아주 특별했다. 인도를 방문한 때는 여름이었다. 무더위가 최고조에 이른 때였다. 거리는 한 움큼의 먼지덩어리처럼 느껴졌다. 바람이 불면 그 푸석푸석한 거리는 금방 멀리 사라질 것 같았다. 부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걸을 하는 소년과 소녀들은 차창 바깥으로 불쑥 다가섰다. 뒷골목에는 오물이 쌓여 있었고, 길에는 소와 가축들이 주저앉아 있었다. 차량들의 경적 소리가 요란하게 들끓었다. 그런데 이런 첫인상은 갠지스 강에 이르렀을 때 매우 사소하게 느껴졌다. 강가에는 사원들과 화장터와 목욕 계단이 있었다. 기도 인파가 넘쳐났고, 죽은 이의 몸을 화장하고 있었고, 강물에 몸을 씻어 종교적인 정화를 실천하고 있었다. 세속적인 것과 신성한 것이 혼재되어 있어서 묘한 느낌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의 경건한 종교적 내면, 영적인 삶의 기술과 영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힌두교 사원을 들렀을 때에도 영적인 신성을 갖춘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미국의 서부를 여행한 경험도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사막과 평원과 협곡의 규모는 가히 놀랄 만한 것이었다. 그것들을 보면서 나는 그 언젠가 우리 시단의 어른 한 분이 내게 “대자연을 자주 만나세요. 대자연에게 조언을 구하세요.”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소동파에게 유배지는 낯선 곳이었다. 국경을 넘어서는 경험도 우리에겐 낯설고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낯선 곳은 우리가 의지하면서 전부라고 믿었던 영혼의 영토를 차분하게 되돌아보게 한다. 되돌아보는 순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소동파처럼 우리가 여산 속에 있었다는 것 아닐까. 눈밭 위를 배회하는 기러기 신세에 불과하다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지도 밖으로 여행하는 일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열기구를 탄 여행객처럼 국경 너머로 자아를 팽창시키면서 자유롭고 거침없이 나아가보자. 

 

 

문태준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등이 있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동서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불교방송 PD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