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던 날

2015-08-02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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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하늘에서 마구 떨어지는 꿈 아닌 꿈을 꾼 적이 있다. 중국 운남성을 여행하던 길에 대리삼탑大理三塔으로 알려진 ‘숭성사崇聖寺’에 들렸을 때의 일이다. 대리고성에서 북쪽으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대리삼탑은 어느 해인가 강한 지진 탓에 살짝 기울어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을 연상시킨다. 코끼리 열차를 타고 절 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얼하이 호수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 나는 숭성사 안에 들어가 일단 법당의 규모에 깜짝 놀랐다. 그 안에 있는 수많은 불상들의 모습이 얼마나 다양한지 정신을 잃다보니, 순간 그 안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만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큰 법당 안에 웃풍이 불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한옥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자던 방에서 불던 웃풍은 상대도 안 되는 세찬 바람이었다. 문득 평화로운 얼굴의 불상에 한동안 맘을 뺏겼던 나는 사방에 돈이 떨어져있는 걸 발견했다. 내 주머니에서 돈이 떨어진 줄 알고 나는 지폐 몇 장을 주었다. 하지만 눈을 드니 사방에 수많은 중국 인민폐들이 회오리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세상에 태어난 이후 꾸어보는 가장 강렬한 꿈이었다. 잠시 흥분되는 감정을 수습하고 나니 나는 거대한 숭성사의 불전함이 열려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제 것인 줄 알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던 돈들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불전함은 너무 크고 무거워서 내 힘으로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곳에서 나 혼자 머물렀던 시간은 회오리치는 돈들을 맞으며 내가 서있는 현실이 한낱 꿈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그 돈벼락을 피해 법당문을 닫고 빠져나왔다. 지금도 가끔 그 꿈 아닌 꿈을 통해 붓다가 내게 보낸 메시지에 관해 명상한다. “아 - 돈이다. 아니 돈이 아니다. 아 - 꿈이다. 아니 생시다. 그게 그거다.”


황주리
이번 호부터 황주리 화가의 ‘붓다의 마음’을 연재합니다. 작가는 평단과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이며, 유려한 문체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 등의 산문집과 그림 소설 『그리고 사랑은』 등을 펴냈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관람자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깁니다. 그것은 한 번 뿐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의 순간들에 관한  고독한 일기인 동시에 다정한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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