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이 본 명상은 혁명이다

장현갑 교수

2015-08-02     하정혜

세계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에 2001년부터 9년 연속등재, 2009년 미국에서 ‘Man of the year 50’에 선정, 장현갑 교수(영남대 명예교수, 前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다. 6월 5일, 대구로 차를 달렸다. 질문지를 메일로 보낸 상태다. 문자메시지가 울린다. “매우 a적절한 문제를 지적하신 것 같군요.” 장현갑 교수의 답신이다. 테이블 위, 답변 자료가 손글씨로 빼곡하게 정리된 A4용지들이 놓여 있다. 인터뷰가 시작됐다.

 

| 서구 명상불교, 어떻게 볼 것인가?

- 얼마 전, 뉴욕의 명상 붐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됐습니다. 지속적인 흐름을 볼 수 있는데요, 서구에서 명상을 중심으로 한 불교가 새롭게 자리 잡는 변화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리스도 이후 2,000년간의 메쏘드Method, 그 모든 접근들은 이제 한계에 부닥친 거죠. 21세기에 부처님 법이 어떻게 이처럼 각광받게 되는가? 왜 그런가? 20세기 후반에 과학이 불교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계기는 초강대국 미국의 월남전 패배라고 봐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거죠, 우리가 왜 졌는가, 분석해 들어갔어요.”

월남전 종전 직후 1977년, 아비 콕스는 저서 『터닝이스트Turning East』에서 서양문명 우월성 붕괴원인을 처음으로 동양불교문화에서 찾는 시도를 했다. 이후 달라이 라마, 틱낫한 등 망명한 불교지도자를 방문하는 지성인들의 지식여행이 줄을 이었다. 물리학자, 심리학자, 양자역학자들이 1983년부터 다람살라와 뉴욕에서 2년마다 컨퍼런스를 열어 과학과 불교접점을 연구했고, 가장 민감하고 빠른 반응을 보인 것은 의학계였다.

“미국에서 써든데쓰Sudden Death, 갑자기 심장이 멈추는 심장병 성인사망률이 40%였어요. 딘 오니쉬라는 학생이 누나의 우울증을 요가로 치료한 데 착안해 요가, 호흡, 채식을 접목한 ‘심장병 역전 프로그램’을 선보였죠. 이것이 의학계에서 ‘혁명’으로 평가받았어요. 이 학생은 나중에 심장병을 가진 클린턴 대통령 주치의가 됩니다. 1990년대, 의료에 위빠사나를 접목한 존 카밧진의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명상치유프로그램)이 의료보험 처리를 받게 되죠. 2005년 달라이라마가 신경과학회 특별 초청을 받아 뇌 가소성에 대한 스피치를 합니다. 명상을 통해 뇌를 바꿀 수 있다, 이런 내용입니다. 종교가 과학 위에 서는 상징적인 날이었죠.”

- 서구에서 먼저 인정받은 MBSR을, 20년 전 최초로 국내에 소개하셨습니다. 의료현장에서 명상을 활용하는 것에 국내 분위기는 어떤가요?

“동상이몽이라고 할까요. 안타깝죠. 불교계가 명상의 의료적 측면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거칠게 말하면 ‘족보에 없다.’는 거거든요. MBSR을 들여오면서 계정혜 삼학을 접목해 한국형으로 개발한 K-MBSR은 크게 조명 받지는 못했습니다.”

| 일체개고一切皆苦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을 뇌과학이 설명하다

- 뇌 과학이 불교의 가르침을 검증하는 시대입니다. 신경과학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인간의 뇌는 원래 치우쳐 있어요. 부정적 편향성이라고 합니다. 부정적인 정보, 위험신호에 5배 이상 강력하게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 됐다는 거예요. 그것이 진화의 조건이었고,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말해주죠. 또, 뇌에서 시각중추만이 작용한 상태가 리얼리티Reality입니다. 그런데 우측전두엽이라는 연합영역에서 이전에 축적된 정보를 가지고 스토리를 조작해요.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죠. 뇌가 보여주는 현실이란 것이 이렇습니다. 『금강경』에 나오는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있죠? 감각중추를 써서 지금 만지고, 듣고, 보고, 냄새 맡고, 먹는 것을 철저하게 수용하면 부정적 편향성을 띠는 우측전두엽의 우세성이 좌측전두엽으로 바뀝니다. 긍정적이고 행복한 시뮬레이션이 생성되죠.”

장현갑 교수는 젊은 시절 정신분석을 받으며 어린 시절 경험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후, 격리성장이 행동장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30가지 동물실험을 주도했다. 당시 한국사회는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시대였다. 실험결과, 격리성장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10배의 과잉행동, 불안, 분노폭발장애를 야기했다. 브레이크 고장이다. 소셜러닝Social Learning, 즉 대인관계 속에서 상황에 따라 감속과 가속을 연습하며 신경회로를 만들어가는 것, 뇌의 가소성이다. 일상 속 관계,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수행을 통한 변화의 핵심이라는 논리가 설명된다. 뇌 과학이 밝히는 불교의 가르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 명상할 때 일어나는 영적 체험은 자칫 특정개인의 경험, 신비화된 영역으로 치부되는데요, 뇌 과학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도파민은 유쾌한 기분(Pleasure)을, 세로토닌은 평온한 기분(Peaceful)을, 엔돌핀은 통증 벗어난 쾌감(Painfree)을 불러일으켜요. 1990년대 실험에서 만트라 명상으로 뇌의 주의집중과 생명중추만 작동하는 것이 관찰됐는데, 이때 다량의 NO(Nitric Oxide, 일산화질소) 방출을 발견했어요. 명상 상태에서 생성된 이 기체성 물질이 혈관을 퍼핑Puffing해서 피가 강하게 순환하고 앞에서 말한 신경전달물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신경회로가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요. 뇌의 질서가 바뀌는, 패러다임쉬프트Paradigm Shift죠. 신경과학에서는 ‘브레이크아웃Break Out’이라고 합니다. ‘법열法悅’과 같은 현상이에요. 시간, 공간 개념이 없어지는 고요, 주의집중이 명료한 각성, 두 가지가 같이 있죠. 요동 속의 이완입니다. 선에서 말하는 성성적적醒醒寂寂의 경지가 뇌 과학에서는 보편현상으로 설명 가능합니다.”

 

| 명상은 라이프스타일 패러다임의 혁명이다

- 우리 사회에서 우울증, 디지털 치매, 분노폭발장애 등 다양한 정신건강 용어들이 익숙하게 들려옵니다. 교수님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스트레스는 나의 힘’이라는 사고를 현대인의 삶에 끌어들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뉴 라이프스타일, 새로운 행동양식, 이게 수행이죠. 괴로움이 찾아옴으로 해서 이것을 넘어가기 위해, 깨달음은 출발합니다. 지금까지 ‘고苦-집集’만 되풀이했다면 마음공부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멸滅-도道’에 이르는 거예요. 무엇 때문이다, 누구 때문이다, 어디 그런가요? 나 때문이지. 살아보니까 알겠더군요. 역경의 삶이었습니다. 어릴 적, 사과밭에서 혼자 자랐어요. ‘격리성장’의 주제가 실은 내 아픔이었던 거죠. 고독력은 절제와 자기극복, 성찰의 힘입니다. 오래 전이지만,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하지마비로 6개월을 누워있었어요. 역경이 오면 딛고 일어설 지혜 얻는다, 경험 속에서 그걸 믿게 됐습니다.”

- 한국불교에는 지금, 전통불교에 대한 회의와 거리감, 그리고 다양하게 유입된 불교수행법의 혼란이 혼재해 있습니다. 이 속에서, 향후 명상이 갖는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그 중심에 명상이 있어요. 의료, 복지, 교육에 명상의 옷을 입히자, 명상병원 만드는 데 1조원이 투입됩니다. 국가적으로 보험에서 커버하거나 의료재단이 뒷받침할 수 있고, 명상계 혹은 불교계의 후원으로 추진할 수도 있겠죠. 사찰을 오픈해서 명상과 복지를 결합하면 절이 의료시설기능을 하게 됩니다. MBSR이 미국에서 출발해, 독일, 캐나다, 영국 정도를 거쳤어요. 그 다음이 한국이죠. 기존 한국불교의 폐쇄성을 직시한다면, 가능성은 높다고 봅니다. 아마, 지금이 그 기회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