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햇볕에 잘 익어라, 그 매실

혜성 스님과 함께 매실 찾아 떠난 여행길

2015-08-02     박찬일
 
마음을 씻었더니 
열매 맺어 
가을에 몸을 씻어주네.
경복궁에는 궁에서 심어 기르던 매화가 있다. 매화의 아름다움과 절개를 기억하는 이들도, 정작 그 열매의 쓰임새는 잊곤 한다. 우리는 매실밭으로 갔다. 
 
 
| 입맛 없을 때 매실장아찌
매실의 유효한 재배 지역은 북상 중이다. 날씨 때문이다. 다른 과일도 이런저런 이유로 북상하고 있다. 사과는 추운 곳을 찾아 자꾸 올라가고, 배는 더운 지역이 늘어서 역시 또 올라간다. 재배기술이 좋아지는 까닭도 있지만, 확실히 기후의 변화가 크다. 광양과 하동 지역이 중요 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남쪽 지방에서는 두루 심고 가꾼다. 최근 공급이 늘면서 값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다른 과실나무와 달리 가꾸는 데 큰 공이 안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토의 중부인 천안시 직산읍의 김승배 선생(75) 농장에 매실이 맺혔다. 
 
본디 회사원이었던 김 선생이 은퇴하고 가꾸는 직산의 밭에 심은 매화나무가 무겁게 열매를 달았다. 가용으로 쓸 것을 기를 뿐, 내다 파는 것은 아니라고 하신다. 김 선생은 연극연출가 김진휘의 부친으로, 김진휘와 나의 인연으로 취재팀이 찾아가 뵈었다. 
“약을 안 쳤더니 나무가 애를 먹습니다. 몇 그루는 이미 벌레를 먹어서 고사되고 있어요. 좋은 매실을 위해 약을 안 쓰고 버티고 있는 중이지요.”
 
일일이 죽은 나무를 보여주고, 매실이 잘 달린 나무를 골라 사진을 찍으라 권한다. 알알이 영근 매실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늠름하다. 대원사 혜성 스님이 참한 열매를 보고 빙그레 좋으시다. 사찰음식은 아직도 배우는 중이라고 하시는 겸손, 매실의 은근함과 닮았다. 매실이 다 익으면 살구처럼 먹어도 맛이 좋다고 하시는 혜성 스님은 지리산 산거에서 사찰음식으로 대중공양에 열중이시다.
 
“사찰음식은 구하는 음식이라고 하시잖아요. 사람을 구하고 몸을 구한다, 그런 뜻입니다.”
 
대원사는 ‘몸 생생 마음 생생 사찰요리’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물론 혜성 스님의 손길로 만들어진다. 대원사가 지역 주민과 가출 청소년, 학교 폭력 피해자 청소년의 심신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 핵심에 사찰요리가 있다. 치유의 음식, 사찰 음식의 본디 고갱이이겠다. 
 
“매실은 절집에서 귀하게 쓰지요. 입맛 없을 때 장아찌 같은 건, 소중한 맛입니다. 그런데 매실 요리라는 게 절집에서 별로 구색은 없었던 것 같아요. 노스님께 여쭤 봐도 약으로 주로 썼다, 이 정도의 말씀입니다.”
 
매실은 본디 약용의 효과가 컸다. 오래된 신문에도 초와 술을 만들어 약을 쓴다는 내용이 많고 “장마 전에 매실을 구하여 술을 담그라.”는 내용이 나와서 고작 매실주 정도를 상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매화를 그토록 사랑했던 선조들이 매실요리는 그다지 발전시키지 못한 듯하다. 우리의 몫으로 받아 발전시킬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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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실의 추억
혜성 스님에게 매실의 추억은 호된 맛이다.
 
“대원사 종각 담 너머에 적어도 육칠십년은 됨직한 큰 매화나무가 있지요. 해마다 매실이 실답게 달려 있으면 대중운력을 해요. 절에서 일하는 처사는 나무에 올라가 긴 대나무장대로 매실을 두드리고 스님들은 넓은 그물장판을 양쪽에서 잡고 서 있는 거예요. 매실이 떨어져 몸에라도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매실을 주워 손질하면서 참으로 매실차와 삶은 햇감자를 먹지요.”
 
예전, 내가 사무실에서 일할 때가 있었는데 고된 일에 음주와 흡연이 이어졌다. 툭하면 설사를 했다. 하루는 선배가 작은 병을 하나 내주었다. 매실농축액이니, 따뜻한 물에 타서 배앓이를 고치게, 했다. 신기하게도 배도 안 아프고 설사도 멎었다. 매실의 정장, 살균작용이 뛰어난 것을 그때 알았다. 이런 자연 약물은 부작용도 적고, 장기 복용이 가능하다. 매실을 맛으로도 먹겠으나, 약용으로 더 널리 쓸 일을 도모해야겠다.
 
십육 년 전, 이탈리아에 있을 때의 일이다. 요리학교 기숙사에 켄이라는 이름의 일본 학생이 있었다. 여러 국적의 학생들이 모여 술을 한잔 하는데,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식을 꺼냈다. 나는 별 게 없어서 마른멸치와 고추장을 냈고 일본인은 뭘 내나 궁금했다. 켄이 김을 가지고 있는 건 보았는데 내놓은 건 우메보시였다. 매실을 소금에 절이고 치자잎으로 물을 들인 그 유명한 일본 절임이었다. 아하, 이 친구들은 김치처럼 이것을 즐긴다던 게 사실이었구나. 그는 몇 개 남지 않은 우메보시를 아끼면서 조금씩 먹었다. 정말로 아낀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동작이었다. 나의 시식 소감은 별로였다. 너무 시었고, 짰다. 사실 이런 맛은 중독성이 강하다. 김치 역시 그런 맛이 아닌가. 입에 넣어 가만히 맛과 향을 음미하니 매실 특유의 시트러스 산미가 넓게 퍼지면서 은근한 맛이 있었다. 그가 멀리 유럽까지 비상식으로 우메보시를 가져왔다는 건 그만큼 보존성이 좋다는 뜻도 된다. 짜고 시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흰밥 도시락을 쌀 때 가운데 우메보시를 하나 쿡 박아서 밥이 쉬지 않도록 도모한다는 건 그런 의미이리라. 매실의 강력한 살균작용을 이용하는 일본인의 지혜인 셈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인(조선인)에게는, 이렇게 우메보시를 도시락 가운데 박아 넣은 것이 마치 일본 국기를 닮았다 하여 배척한 일도 있었다. 
 
매실은 푸르다는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청매 중심에서 황매의 가치를 더 잘 이용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유통상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시장질서와 달리, 소비자의 애호에 따라 원하는 것을 먹자는 뜻이다. 그렇게 최근 청매실 중심의 수요에서 벗어나 황매실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청매는 그대로 쓰임새가 있으나 어찌 되었건 다 익은 과일은 황매다. 당연히 더 달고 맛있고 진하다. 황매 애호는 근자에 크게 늘어서 산지 농민들이 황매 상태로 출하하고, 인터넷으로 주문받아 공급하는 일이 크게 늘었다. 그런데 청매실, 홍매실, 황매실은 품종이 아니라 색깔만 가지고 구분하는 방식이다. 청매가 익으면 황매가 된다. 우리는 매실장아찌나 술을 주로 담그는데, 대개 청매를 썼다. 근자에 잘 익은 황매의 가치를 알고 수요가 높아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청매 중심의 유통은 사실 유통상의 이익과 관련이 있다. 토마토를 파랄 때 따서 유통하듯이, 매실도 다 익어서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지면 유통 중에 상품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 비가 오거나 하여 낙과하고 상품성이 떨어지기 전에 청매를 출하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청매의 유통이 훨씬 많았던 것. 본디 상품은 공급자에 따라 수요와 쓰임새가 생기게 마련인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매실이다. 
 
붉은 빛이 도는 매실을 홍매라고 하는데, 남고가 대표적인 품종이다. 일식 우메보시의 주품종이기도 하다. 햇볕에 노출된 부분이 붉게 변하여 홍매라고 한다. 청매든 홍매든 어떤 경우든 익으면 노랗게 변해서 황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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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여름에 익어 황매를 내고
김승배 선생이 매실을 절일 멋진 항아리를 한 점 내신다. 매실과 설탕을 절이면 매실청이 된다. 산뜻한 맛의 설탕대용품으로 쓸 수 있는 조미료다. 스님은 매실장아찌 두 가지를 하실 작정이다. 청매를 일일이 칼로 깎고 홍두깨로 쳐서 과육을 발라낸다. 과육이 단단하여 즙의 손실이 적다. 설탕에 절인다. 다 익으면 무쳐서 내는데, 입맛 살리는 데 그만이다. 
 
“올해 매화가 너무 일찍 피었어요, 봄에 이상난동이었잖습니까. 갑자기 바람 불고 비가 오니, 꽃이 너무 많이 달린 터라 많이 떨어져 버렸어요. 매실이 더 많이 달릴 수 있었는데, 농사가 마음처럼 쉽지 않아요.”
 
보통 다른 유실수는 과일의 이름을 달아서 부른다. 사과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 그런데 유독 매실은 ‘매화나무’다. 매실나무라고 부르는 경우는 적다. 다 제 한몸인데, 어린 시절로만 불리는 특별한 운명의 나무다. 보통 매화는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온다. 3월경이다. 매실은 6월에 녹색으로 익어간다. 오래 전부터 이 땅에서 피어나고 자라 약용으로 쓰였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것은 물론이다. 약이 귀하던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이 돌면 오매烏梅를 처방했고, 이 때문에 오매를 비상용으로 행정관청에서 비축했다고 한다. 매실은 그만큼 특별한 효과를 기대하는 약재였다. 오매는 매실을 말려 검게 가공한 것이다. 지금도 한약 처방약으로, 민간약으로 쓴다. 
 
내 기억에 매실이 유명해진 건 술 광고 때문이다. 남도지역에 대거 매실을 심고, 술을 만드는 회사가 생겼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으로 대대적인 광고를 해댔고, 그것이 우리 국민의 기억에 남아 있다. 매실주는 한때 이런 광고 캠페인 덕에 보급이 늘었는데, 맥주와 포도주 같은 외래술의 공세에 제몫을 하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최근 품질을 크게 올린 고급 매실주가 시중에 다시 나온다. 매실주가 대중화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장아찌가 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니 스님이 절에서 담근 장아찌를 가져왔다. 직접 담근 고추장으로 무친 매운 장아찌가 아주 입에 잘 맞는다. 밥 한 그릇이 간절하다. 그 장아찌가 촬영을 도와준 김승배 선생댁에 선물로 간다. 그 덕성과 불심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마침 김 선생 댁이 신실한 불교 집안이다. 
 
출장 중에는 아직 황매가 남쪽지방에서도 익기 전이었다. 황매를 한 상자 시켜서 올해는 절임으로 해볼 요량이다. 과일의 맞춤한 때를 맞춰보리라. 혜성 스님도 황매로 올해는 요리를 해보실 것이다.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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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성 스님의 여름 밥도둑  매실장아찌
 
재료
매실 5kg, 설탕 5kg, 소주 5L
 
만드는 법
 
 
1. 매실은 씨알이 굵고 단단한 것으로 준비한다. 항아리 안에서 볏짚을 태워 잡냄새를 제거한다. 또는 항아리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닦아내고 뜨거운 햇살에 뚜껑을 열어 말린다.
 
 
 
2. 매실을 깨끗이 씻은 후에 꼭지를 제거하여 하룻밤 정도 펴서 물기를 제거한다. 항아리에 매실을 담고 매실이 잠길 정도로 소주를 부어 뚜껑을 덮은 후 21일 정도 시원한 곳에 둔다. 이렇게 하면 매실의 아삭아삭한 맛이 살아있다.
 
 
 
3. 매실을 꺼낸 후 4~5개의 칼집을 내어 도려내거나 홍두깨로 쳐서 씨를 발라낸다. 설탕에 버무린 다음 항아리에 넣어 남은 설탕을 붓고 밀봉한다.
 
 
 
4. 15~20일이 지난 후에 매실과 매실청을 분리한다. 매실청은 물을 타서 음료로 마신다(감식초를 섞어서 만들면 더욱 맛나다). 각종 요리의 양념으로도 사용한다. 
 
 
매실은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기호에 따라 반찬으로 그냥 먹기도 하고, 
고추장과 약간의 꿀을 넣고 버무려 통깨를 뿌려 먹기도 한다.
 
 
Tip_
배가 아프거나 체했을 때 매실청을 물에 타서 마신다. 특히 여름철 밀가루 음식을 먹을 때는 매실장아찌를 곁들인다. 장아찌를 담글 때, 솔잎을 따서 깨끗이 씻은 후 검은 꼭지를 제거하고 물기를 없앤 후 함께 넣어도 좋다. 솔향기가 은은히 배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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