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낳는 어머니, 쁘라즈냐빠라미따

진리의 어머니, 반야바라밀

2015-06-29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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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에서 출토된 11세기 쁘라즈냐빠라미따 사본



‘쁘라즈냐빠라미따Prajñāpāramitā’ 즉 반야바라밀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지혜의 완성이나 보살의 수행덕목 등 주로 추상적인 형태로만 알려져 왔다. 하지만 반야바라밀은 한편으로 붓다를 낳는 어머니 불모佛母로 지칭되었고, 이를 다시 인격 혹은 신격화된 형태로 표현하여 오랫동안 신앙해온 점은 그리 많이 소개되지 못했다. 


| 반야바라밀은 온갖 선법의 어머니
대승의 핵심 철학이자 붓다의 어머니로서의 반야바라밀이라는 두 측면이 모두 소개된 문헌출처는 바로 『반야경』이다. 고려대장경의 제1번 경전이기도 한 반야경은 불교 경전 중 가장 방대한 양을 포함하고 있고 그 종류와 번역본도 매우 복잡하고 광범위한데, 이는 이 경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또한 반야경은 많은 대승경전에 영향을 준 모태의 경전이기도 하여, 『반야경』 자체가 대승경전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반야경』의 위상과 같이 『반야경』에서는 ‘반야바라밀’의 위상 또한 어머니로 설명한다. 『소품반야경』은 “반야바라밀이 보살의 어머니로서 여러 붓다를 낳는다.”고 하였고, 『대반야경』에서는 이를 확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사리자여, 한량없는 공덕은 모두가 반야바라밀의 힘으로 인해 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은 온갖 선법善法의 어머니여서 모든 성문, 독각, 보살, 여래의 선법이 여기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야바라밀은 『대품반야경』 등에서 ‘불모佛母’로 불렸으며, 『불설 불모보덕장 반야바라밀경』은 스스로를 ‘불모경佛母經’으로 지칭하고, 『소품반야경』의 이역본 명칭은 『불설 불모출생 삼법장 반야바라밀다경』이며, 『불설 성불모 반야바라밀다경』은 『반야심경』의 이역이기도 하는 등 반야바라밀이 불모로 존칭되어온 예를 두루 확인할 수 있다. 

부처의 어머니 ‘불모佛母’는 보통 석존의 생모 마야 부인을 떠올리게 하나, 이 밖에도 대애도大愛道 즉, 마하프라자파티mahāprajāpatī를 불모로 부르기도 하였고, 한국불교 신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천수경』에서는 7관음의 하나인 준제准提 관음보살이 불모로 불렸다. 준제는 범어 ‘Cundi’의 음사로 ‘청정’을 뜻하는데, 청정한 마음이 곧 붓다를 낳는다고 한 것이다. 

대승불교에 와서 ‘무엇이 부처인가’라는 개념이 달라지면서, 부처의 어머니 또한 해석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 하겠다. 인간 석가모니 붓다의 어머니들에서 깨달음을 일으키는 원리와 원천 등이 불모로 지칭된 것이다. 


| 많은 자식을 둔 늙은 어머니, 반야바라밀
불모 반야바라밀은 초월적 지혜가 붓다를 낳는다고 본 것인데, 반야경에서 반야바라밀을 어머니에 비유한 교설은 매우 다양하고 또 구체적이다. 『소품반야경』을 중심으로 몇 가지 대표적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상무상품相無相品」에서는 “갓난아이가 어머니에게서 떨어지지 않듯이, 보살 역시 깊은 반야바라밀을 들으면 이를 말하기를 여의지 않으며, 독송하고 베껴 쓴다.”라고 하였다. 아기가 생존하는 데 있어서 어머니가 가장 중요한 존재이듯이, 보살에게 반야바라밀 수행은 원천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어서 다른 교설에서는 반야바라밀이 많은 자식을 둔 늙은 어머니의 이미지로 등장하는데, 어머니가 병이 들자 자식들은 모여서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들은 비바람과 더위와 추위와 모기와 독충 등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어머니(반야바라밀)의 몸을 안전하게 지켜 오래 사시도록 해야 하며, 온갖 약을 써서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며 잘 돌보시어 세상의 삶을 누리도록 해 주신 은혜가 중하기 때문이다.” (『소품반야경』 「소여품小如品」)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을 낳아 기르고 돌보고 가르친 어머니로 묘사됐다. 그리고 자식들이 어머니의 은혜를 갚듯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은 언제나 반야바라밀을 마음속에 품는다.”고 설명한다.  

반야바라밀을 어머니로 설명하는 것과 관련하여 『반야경』은 모성의 비유를 더욱 발전시키기도 했는데, 다음과 같은 설명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여인이 임신하면 … 본래 좋아하던 일도 싫어져서 즐거운 마음을 갖지 못하는데, 그것은 본래의 모양이 나타나기 때문이니, 이 여인은 얼마 있지 않아서 반드시 아이를 낳을 것임을 알게 된다. 보살의 선근이 이루어지는 것도 이와 같으니 만약 깊은 반야바라밀을 보고 듣고 사유하게 되면 이 보살은 얼마 있지 않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기를 받을 것을 알아야 한다.” (『소품반야경』 「불가사의품」)

보살의 반야바라밀 수행의 경험을 여성이 임신하면서 겪는 변화에 비유하여 말한다. 이와 같은 『반야경』의 친여성성은 이 밖에도 많은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반야바라밀을 설명한 방식을 「살타파륜품薩陀波崙品」에서 더 살펴보기로 하겠다. 여기서는 살타파륜보살이 석제환인과 다음과 같이 대화한다. 

“교시가여, 마하반야바라밀이 모든 보살의 어머니라면 도대체 그것은 어디에 있는지 지금 당장 보고 싶습니다.”

“선남자여, 그것은 저 칠보로 만든 상자 안의 황금 책에 씌어 있다. 하지만 담무갈보살께서 칠보로 만들어진 도장으로 이것을 봉인해 놓았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보여 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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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부처는 반야바라밀에게서 태어난다
반야바라밀은 모든 보살의 어머니이지만, 그 존재방식은 황금 책 속에 씌어 있다 하였다. 즉, 반야경 자체이자 그 가르침이고 그 정수인 지혜라고 하는 것이다. 이어서 살타파륜보살과 5백 여인들은 가지고 온 보배를 반으로 나눠, 먼저 반야바라밀에게 공양하고 나머지를 담무갈보살에게 공양했다. 

반야바라밀이 공양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이와 관련하여 5세기 초 중국의 구법승 법현法顯은 그의 여행기 『불국기佛國記』에서, “(서역의) 대승불교도들은 반야바라밀과 문수사리, 관세음 등에 공양한다.”고 기록했는데, 여기서 공양 대상의 반야바라밀은 앞의 내용에서처럼 반야경을 담은 칠보함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반야바라밀이 여성의 모습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7세기 이후의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캐쉬미르 지역에는 이 시기 반야바라밀의 입상과 좌상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반야바라밀은 법륜인을 하거나 선정인을 하기도 하지만, 경전을 들고 있는 모습이 주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불모 반야바라밀은 반야경 및 모든 경전, 나아가 법보를 상징한다. 티베트불교의 경우, 귀의 의례 속에서 현재까지도 그 숭앙이 이어지고 있다.  

11~12세기부터 티베트와 히말라야 지역에서도 반야바라밀 여신상이 조성되기 시작하고, 흥미롭게도 그 이후 인도네시아 동자바 및 앙코르와트 시대의 캄보디아에서도 여러 점의 반야바라밀 여신상이 조성되어 그 유적이 남아있다. 

반야바라밀은 다른 보살상과 존격尊格들이 성이 불분명한 것에 비해, 매우 명백하게 여성으로 표현되었다. 동아시아의 관세음상과 유사하게 자비로운 어머니 형태로 조성되었으며, 또한 그 위상은 보조적이거나 주변적인 것이 아닌, 중앙에 위치하면서 여러 붓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형태로 설정되는 등 매우 높은 위상으로 모셔졌다. 

이처럼 반야바라밀은 여신 형태로 그 이미지가 조성되어 왔는데, 여기에 또 한 가지 반야바라밀만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 독립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반야경』 외에 『유마경』 등에서는 ‘반야모 방편부’와 같이 사상적으로 남성적인 것과 대칭쌍을 이루기도 했지만, 만다라 및 신상神像에서의 이미지는 대체로 독립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모 반야바라밀이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낳고 기르는 원천으로서의 대모신大母神 성격을 반영한다고 생각된다. 모든 생명체와 삼라만상이 위대한 어머니 신에게서 나왔다고 믿었던 오래된 신앙처럼, 모든 부처가 또한 이 어머니 반야바라밀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여신상 반야바라밀은 불교의 깨달음이 여성적 근원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듯하다. 


조승미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여성주의 불교수행론』,『한국 여성종교인의 현실과 젠더 문제』(공저), 『한국 비구니승가의 역사와 활동』(공저), 『근대 동아시아의 불교학』(공저), 『일본불교사 근대』(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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