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회복지에 관한 기초적 연구

특별기획

2007-06-24     관리자


   연구의 목적
   산업사회는 인간의 욕망을 무한히 개방해놓기는 하였으나 탐욕을 적절히 자제하는 슬기를 둔화시켜왔다. 탐욕이 자제되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한 대상으로 간주하고, 인간 자체도 그 대상물 중의 한 가지로 보게 될 뿐이다. 이기적인 탐욕이야말로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사회에 불신과 갈등, 적대감 따위의 비인간적 성향을 만연시키게 한다. 이러한 세태는 일차적으로 물질적 풍요만을 최대의 관심사로 부추겨온 서구 산업사회의 정신적 빈곤때문이었다.
   그런데 한편 우리 사회는 아직 물직적 빈곤의 사회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도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병폐의 분위기가 점점 심각하게 문제시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초래한 중대한 원인들로서 예를 들면 단기간에 재촉한 산업화와 물량주의(物量主義), 끊임없는 정치적 변동과 사회 불안, 경제적 불평등과 계층간 대립 등등 현실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이 문제성들은 서로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과가 되기도 하며 악순환하고 있다. 이들 ‘문제’는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고(苦)의 개념이 아니고 일상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구체적 사실이며, 또 개개인의 특수한 경우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덮어씌어지는 질곡(桎梏)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불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은 흔히 불교가 세상의 일과는 무관하게 지내는 종교라고 생각한다.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별문제이지만 간혹 불교인들 가운데서도 그런 인식을 갖는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인간 싣달타가 불타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었던 동기로서, 현실적인 고통에 대한 최초의 문제의식(四門遊觀)을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의 구도(求道)의 발단이 현실적인 문제점을 여실히 관찰함에 있었고, 구도의 귀결도 ’현재의 법’에서 해탈하는 것이라고 설해져 있다 「잡아함 권 15」. 불교는 결코 현실을 초월하는 진리에서 설하는 권위주의적 종교가 아니고, 현실적 관찰과 그것의 극복 의지를 중요시 하는 인간주의 종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전에서 쉽게 불교의 사회복지 이념을 발견하게 되고 구체적인 사회 복지 사업의 예시까지도 접할 수가 있다. 불교의 근본정신은 곧 사회복지의 구현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은 것이다.
   사회복지에 대한 불교의 내적인 필연성이 그러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중요과제로서 이미 사회복지의 요구가 증대해 있는 것이다. 다만 아직도 불교가 이 사회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기 구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와 아울러 차제에 석존의 가르침을 사회복지적 측면에서 재조명하여 장차 하나의 전문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 연구를 하게 되었다.

   일반 사회복지론의 개요
   독자적인 불교 사회복지의 이념과 실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도 우선 학문적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사회복지 이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반 사회복지론은 서구 사회의 역사와 함께 발전되어 온 학문 체계이므로 우리 현실에 적합지 않은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의 많은 분야에서 그렇듯이, 서구적인 것이 곧 최선이라는 새로운 사대주의적 편견이 사회복지의 문제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닌 것같다.
불교 사회복지라는 용어 자체는 사실상 우리에게 비교적 생소한 느낌을 주는 것도 분명한 일이다. 때문에 불교인이거나 비불교인이거나 간에 자칫 일반 사회복지학에 불교를 종속시키는 논리로 받아들일 우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불교는 이미 본질적으로 사회복지의 이념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므로, 불교 사회복지는 전혀 새로운 의미 체계를 창출해내는 영역이라고 볼 수가 없다. 우리에게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사회복지사상으로서의 불교와 서구에서 전래된 일반 사회복지학이 어느 면에서 상통하고 어느 면에서 상이한가를 정확하게 파악한 연후에, 오늘 우리의 현실에 보다 더 적합한 사회복지의 이론과 실제를 독창적으로 확립해가야 한다는 것이 궁극적인 과제라고 본다.
   이에 먼저 일반 사회복지론의 대강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것은 주로 서구적 사회과학에 기초하여 있고, 이론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들로 용어, 정의, 사회문제의 개념, 복지의 이념, 복지의 방법과 분야 등을 말할 수 있다.
   개인이나 공공의 복지를 위하여 노력하는 일련의 사회적 활동을 상호부조(相互扶助), 자선사업, 박애사업, 사회사업, 사회복지, 사회정책, 사회운동 등의 여러 가지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중에서 사회사업, 사회복지, 사회정책 등은 근대 이후의 복지활동을 뜻한다고 본다.
   흔히 사용되는 사회사업(Social Work)과 사회복지(Social Welfare)는 대개 혼용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차이점이 있다. 사회복지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회적 제도나 시책을 개정해나감으로써 복지의 목적에 접근하려는 것을 의미하고, 사회사업은 병리현상에 감염된 개인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원조함으로써 그의 생활이 개선되도록 하려는 활동을 뜻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말하자면, 사람들의 빈곤과 질병같은 불행을 미리 막으려는 적극적인 예방과학이 사회복지이고, 기왕의 빈궁자, 질병자등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감소, 해소시켜 주려는 소극적 치료과학을 사회사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물론 이들 영역이 서로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다기보다는 밀접하게 상관하여 있음을 전제로 한다. 사회복지가 사회사업보다 좀더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사회복지 사업의 전개에 앞서 진단해야 할 사항은 그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소위 ‘사회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사회복지의 내용과 방법이 결정될 수 있다. 사회문제는 그 원인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사회구조의 모순에서 야기된 빈곤과 기타의 문제들이며 또 하나는 개인의 성격적 결함에서 비롯된 부적응 따위의 문제들이다. 전자의 경우 사회문제가 제도적 정책적 부조리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 그 해결 방법도 역시 제도나 정책의 개정으로 가능해질 것인데 이를 사회복지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았다. 또 후자의 경우와 같이 사회문제가 주로 개인의 성격적 장애로 일어난 것이라면 보통 사회사업적 차원에서 치료하는 방법을 쓴다.
   사회복지의 근본이념은 대개 두가지 흐름으로 이어져 왔다. 하나는 개인의 가치와 책임이 강조된 것이고 또 하나는 개인보다 사회의 가치와 책임을 크게 생각하는 것이다. 전자를 미시적 이념관, 후자를 거시적 이념관이라고도 하며 각각 사회사업적 방법과 사회복지적 방법으로 결부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체로 거시적 이념관에 입각하여 사회복지 정책을 중시하는 경향이 되어간다. 예컨대 가난의 책임이 개인에게 보다는 국가사회에 있다고 보는 서구의 사회복지 사상은, 산업혁명의 결과로 빚어진 사회적 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사태에 이르러 그같은 사회문제의 해결이 불가피해졌고 이때에 또한 민족국가의 형성이 이루어져 국가사회 책임의 복지이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에 비하면 동양사회는 비록 민족국가의 형성이 서양보다 빨랐지만 그동안 산업혁명과 같은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지 않고 비교적 순조롭게 사회발전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극심한 사회문제와 사회책임의 복지사상이 늦게 나타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복지이념은 여기서 완성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종래에 사회복지의 주요 관심사가 근본적으로 빈곤의 해소만을 위한 것으로 단정한 감이 없지 않으나, 오늘날은 그 점을 지양하려고 한다. 인간생활의 가치와 이상이 재물만으로 실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복지는 국민 가운데서 최저 수준이하로 낙오된 사람들의 생활 기준을 상승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무한한 영역에서 전체사회의 행복 추구에 전념해야 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물질적인 원조나 경제 정책에 의한 사회복지는 일차적인 것이었으며 이제는 나아가서 궁극적인 행복의 추구를 문제삼는다. 과연 무엇이 인간에 있어서 궁극적 행복인가. 여기서부터는 철학과 종교적 가치론등이 사회복지의 향방을 이끌어 갈 것이다. 불교 사회복지의 입지와 가능성이 바로 이 점에서 크게 강조되어야 한다고 본다.

      불교사회복지론
      1. 불교의 사회관

   경전 가운데 ‘사회’라고 하는 직접적 표현은 없으나 의미상으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세ㆍ세간(loka)ㆍ세계(lokadhatu)ㆍ승가(Samgha)’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세간 중에는 인간중심의 유정(有情)세간 뿐만 아니라 유정(有情)이 소의(所衣)로 하는 기(器)세간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를 도외시하지 않는 불교적 세계관의 한 특성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들 인간사회는 유정세간의 인간취(人間趣)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생각되는데 반드시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간이 인간자신의 행위와 의지(業力)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본다. 인간들의 의도에 따라서 초래된 세간이라면 현대 사회학에서 말하는 인위적 이익집단으로서의 사회(Community)와 상통하는 속성이 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의 행위의 총체가 동력이 되어 세간을 생성하고 발전케 하는데 일정한 법칙이 있다. 즉 세간의 모든 존재는 연기법에 의하여 발생, 전개된다.
      “만약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면 곧 저것이 생한다.   만약 이것이 없으면 곧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곧 저것이 멸한다 ”「상응부경」
   이 경구는 연기의 의미를 가장 간단히 설명하고 있는데, 만유제법의 시간적 공간적 상호관계를 나타낸다. 개인과 개인뿐만 아니라 개인과 사회, 사회와 사회, 인간과 자연등 세계 내의 모든 존재가 서로 밀접하고도 불가분의 연고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설은 역사적ㆍ사회적 변천을 거치면서 인간생활의 정치ㆍ경제 등의 제반활동을 분석하는 하나의 확고한 원리로 입증되고, 불교의 사회사상을 조직하게 되었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원칙에 입각한 오늘날에 와서도 연기법은 사회경제의 유기적 직능적인 질서를 판시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서도 자기와 자기 이외의 무한히 많은 인간이나 자연의 자원사이에서 전면적인 상호의존과 투자 그리고 고도의 상호융합과 같은 관계가 성립되었음을 알수 있다. 이러한 조건관계 속에서 인간은 서로 대립하기 보다는 합목적적으로 보충ㆍ보완해가야 할 연대책임의식이 투철해야 한다. 이는 곧 불교의 연기사상의 궁극적인 도달점이라고 할 것이다.
   불타는 연기법에 따라 생성된 이사회의 실태는 한 마디로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단언을 내렸다.  연기
하는 모든 존재는 조건에 따라 변화하게 되어 있고 변화하는 것은 고통을 느끼게 한다. 객관적 대상들뿐만 아니라 자기자신 조차도 무상(無常)ㆍ변천하게 되어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불변 상주하기를 고집하는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고통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예컨대 생존욕ㆍ명예욕ㆍ권력욕ㆍ재물욕등 갖가지 탐욕의 근원에는 아집(我執)에 있다. 나와 남의 구별, 나의 것과 남의 것의 분별, 주객(主客)과 능소(能所)의 대립적 인식이 모든 고통의 근본연유라고 한다「장아함 13, 大綠方便經」. 여기서 일체고(一切苦)는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이 모든 사회문제의 총체적 표현이다.

     2. 불교의 복지관 
   앞항에서 우리 현실의 모든 고통스런 문제들이 왜 생기게 되는가를 밝혀 보았다. 그 근본적 원인은 내 자신이 제법(모든 존재)의 연기성과 무상성을 여실히 알지 못하는 무지와 아집때문이라고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이 사회의 연기법칙과 무상의 도리를 확연히 알고 어느 존재와도 대립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지혜를 얻게 된다면 고통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곧 사회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원칙적 방안이 아닐 수 없다.
   경전에는 더 구체적인 복지사업의 사상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편의상 특징적인 몇 가지만을 소개 해야겠다. 「장아함경 권11 선생경(善生經, 혹은 六方禮經)」에서는 특히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 눈길을 끈다. 오늘날의 노사관계에 충분한 내용은 못되지만 당시의 사회적 풍습에는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가르침이라 하겠다.
   다음에는 원시경전에서 대승경전에 이르기까지 널리 설해진 사섭법(四攝法)이 있다. 보시ㆍ애어ㆍ이행ㆍ동사의 넷이다. 필요에 따라 재(財)나 법(法)을 베풀고 고운 말을 쓰며 모든 행위를 중생에 유익하도록 하며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섭수한다는 것이다.
   육바라밀(六波羅密)이나 위의 사섭법에도 들어있는 보시사상은 불교인들이 쉽게 사회사업과 연관을 지어볼 수 있는 가르침이다. 대표적인 경으로서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을 보면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재ㆍ법ㆍ무외(財ㆍ法ㆍ無畏)의 삼시(三施)가 논의되는 것은 물질적인 원조보다도 정신적인 안정이나 올바른 지혜를 갖게 하는 것이 중요시됨을 보여준다. 또한 갖가지 보시를 행할 때 보시자가 지켜야 할 주의사항도 있다. 이 내용은 현대 사회사업가의 윤리강령과도 같이 느껴진다.
   실천적 성경이 짙은 교리로서 복전사상이 있다. 복전(福田)이란 복의 밭, 즉 밭이 산물(産物)을 생하는 것처럼 여기에 보시하면 복(福)을 생(生)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사람에 대한 공경(인물복전)과 물자를 통해 중생의 편익을 도모하는 시물(施物)복전이 있다. 복전사상의 변천은 후기 대승불교에 이를수록 종교적인 권위자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사회의 일반 빈궁자ㆍ노약자ㆍ병자 등에 보시하여 복을 받도록 가르치고 있다.
   자비사상은 불교적 실천의 중핵이며 기준이다. 앞서 살펴본 여러 불교복지 사상들의 근원이라고 할만하다. 여기에는 중생의 개념속에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다 포함시키므로 다른 종교에서 찾기 힘든 독자적 사상이라 할 것이다. 현대의 사회문제 가운데 심각한 공해나 환경오염 등은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이 낳은 결과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인류만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여가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할 때다. 인간 역시 다른 생물과의 상의상관 하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각이 일찌기 불교의 자비정신에는 예고되어 있었다. 

     맺음말
   불교의 본질을 동양적 휴머니즘으로서 이해하고 투철한 인간주의와 사실주의에 입각한 종교라고 정의한 것과도 같이, 인간생활에 있어서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혹은 그것에 장애가 되는 여러 가지 악조건을 개선하여 복리를 증진케 하려는 불교의 궁극적 이념과 실천도는 곧 사회복지의 총체가 아닐 수 없다. 불교의 내면적 본질이 그러하고 또 한편 이 시대의 당면한 과제가 바로 사회복지의 실현에 있는 만큼, 불교 사회복지는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고 연구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불교는 이 사회를 구제하고 오랫동안 희미하였던 자기 위상을 확립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사회문제에 동참하지 않는 종교는 미신이며 희론(戱論)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