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말씀을 아로새기다

부산 미타선원 행복선수행학교

2015-06-13     불광출판사

1.png
 


하늘에 가득 찬 구름 틈 사이로 빛살 쏟아져 내리던 날이었다. 활기 넘치는 부산 남포동 광복로에 갔다. 북적북적한 번화가 한 켠에는 부산의 상징으로 꼽히는 용두산 공원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백두대간 중 용龍의 머리에 해당한다는, 부산 5대 명당 중 하나인 용두산龍頭山. 그 용두산 공원 입구에 도심수행도량 ‘미타선원(주지 하림 스님)’이 자리 잡고 있다. 도심 속 사찰, 현대식 건물과 건물 위 전통식 대웅전이 복잡한 세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미타선원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는데, 목요일 이른 오후임에도 법복 갖춰 입은 보살님들이 나란히 줄을 지었다. “보살님, 어디가세요?” “행복선수행학교 수업 들으러 갑니다.” 보살님들의 사뿐한 뒷모습에 등굣길을 뒤따랐다.


| 자기 마음을 살펴볼 수 있기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발걸음 바삐 올라간 보살님들이 미타선원의 행복선명상상담센터라고 이름 붙여진 1층의 잘 정돈된 공간에 삼삼오오 모였다. 모두 행복선수행학교 학생들이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주고받는다. 도반들끼리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우니, 말소리에 넌지시 귀를 기울였다. 헌데 여느 수다와는 달랐다. 수업 시작 전에 모여앉아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미타선원만의 진풍경이다. 언제 어디서나 도반들끼리 수행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있다. 전부 행복선수행학교 수업 덕이란다.

행복선수행학교는 2008년 11월 처음 문을 열었다.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시작하는 주간반과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하는 야간반, 두 반. 주·야간을 합쳐 매년 200여 명의 수강생이 수업을 거쳐 갔다. 학교라는 이름답게 1년에 2학기를 개강하는데 처음 학교를 열었을 때부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회도 빠짐이 없다. 

미타선원 주지 하림 스님은 재가불자들이 일주일 중 하루만이라도 자기를 위한 시간을 내어 자기 마음을 살펴볼 수 있기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참선에 대한 뜨거운 갈망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나아갈 수 없다는 재가불자들에게 참선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시민선방을 2년 넘게 운영하며 직접 참선 수행을 지도해 보았다. 그러나 재가불자들에게 참선은 쉽사리 진일보進一步하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맴 돌았다. 기초가 부족한 탓이었다. 하림 스님은 그 고민을 가지고 월암 스님(문경 한산사 용성선원장, 은해사 기기암 선원장)을 찾아갔다. 스님에게 재가불자들에게 참선을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을 상의했다. 수행학교를 만들어 하나둘 차근히 가르쳐 주면 될 것 같았다. 준비과정을 거쳐 행복선수행학교를 열었다. 월암 스님께는 교장 선생님의 자리를 부탁드렸다.

그런데 ‘행복선’이란 단어가 조금은 생소하다. 월암 스님이 ‘행복선수행학교’라는 이름을 지으며 함께 지었다는 이름 ‘행복선’. 선을 두고 안심법문安心法問이라고들 말하는데, 월암 스님이 안심을 현대어로 어떻게 풀이할까 고민하다가 행복이라는 낱말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행복선이라는 단어에는 미타선원이 생각하는 선의 핵심이 담겨있었다.

2.png
 


| 지혜와 선정으로 매 순간 모두 깨어있으니
수업 시간 10분 전, 학생 보살님들이 선원 2층 교육원으로 향했다. 줄 맞춘 좌식 책상에 수강생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았다. 목요일 오후 2시, 평일임에도 30명은 족히 넘었다. 2015년 1학기 강사는 미타선원 선원장 각원 스님이 맡았다. 스님이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 강의는 숫타니파타의 ‘금속 세공인 춘다’부터 ‘자비에 대하여’까지입니다.”

‘선’ 수행학교인데 가부좌를 틀기도 전에 숫타니파타 강의를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미타선원 수행학교의 뚜렷한 특징이다. 교관겸수敎觀兼修, 정혜쌍수定慧雙修. 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바른 가르침을 배워야 하며, 바른 가르침을 알기 위해서는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행학교의 수업은 한 시간 교학 강의, 한 시간 참선 시간과 의견나누기로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교학 강의는 초기 불교부터, 천태, 화엄 사상, 중국 선종사, 육조단경, 임제록, 간화선 수행, 각종 선어록 등을 학기마다 하나씩 가르쳤다. 수강생 중 1기부터 지금까지 7년째 꾸준히 나오는 보살님들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학도, 선학도 배우고 배워도 또 배울 수 있는 가르침들이 끊임없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숫타니파타를 강의한다. 최초의 불전을 통해 부처님 참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것이다. 각원 스님의 강의가 계속됐다.

“초기불교에서는 타고난 근기에 따라 수행하는 법을 다르게 설명합니다. 오정심관五停心觀을 이야기해요. 오정심관은 다섯 가지 번뇌의 장애를 가라앉게 하는 수행법을 이야기합니다. 타고난 근기에 따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일어나는 중생들의 심리적 한계 상황을 잘 극복해 마음의 안정을 이루고자 설해졌던 것입니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이 질문하면 학생들이 대답했다. 학생들이 질문하자 스님이 다시 대답했다. 교재에는 치열한 강의의 흔적이 남았다. 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휴식시간이 되자 자신 앞에 있는 좌식책상을 차례로 접어 한 쪽에 잘 정리해뒀다. 그리곤 좌복을 ‘ㄷ’자로 배치해 다시 자기가 앉고자 했던 자리에 정좌했다. 학습을 위한 강의실이 참선을 위한 선방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2부 수업, 참선을 시작했다.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저마다의 선정에 들어갔다. 죽비 소리가 뜨끔하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정적이 고요하다. 짹짹거리는 새소리만이 지금 이 순간 모두가 깨어있음을 알렸다.

짧다면 짧고, 길다 하면 긴 시간의 참선을 마치고, 눈을 들어 서로가 서로를 마주봤다. 그들은 저 좌선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오늘 하루 수업을 들으며 느꼈던 궁금증들이나 생각을 스님과 함께 자유스럽게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스님, 오늘 해주신 말 중에 ‘쥐뿔도 모르는 것’이라는 설명이 가장 인상 깊어요. 쥐의 뿔. 쥐의 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님, 저는 오늘 수업을 듣는데 ‘진리란 뭘까?’ 라는 고민이 들어서 참 혼란스러웠어요.”

학생들이 느낀 다양한 느낌과 질문에 강사스님 또한 정성껏 의견을 나눴다. 언제 어디서나 도반들끼리 수행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는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었다. 


3.png
 


| 선시불심禪是佛心 
교시불어敎是佛語
“참선이 선어록이나 책에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언제 어디서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오는데, 실질적으로는 선방에 앉아서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간화선은 그렇지 않아요. 행복선수행학교를 통해서 언제 어디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간화선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일상생활 어느 곳에서도 선이 자유롭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해요. 누구나 어디에서나 참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하림 스님이 전한 이야기에 깊은 수긍을 하게 된다. 행복선수행학교에서는 선이란 뜬구름 같이 막연한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신해행증信解行證, 굳은 믿음을 바탕으로 선에 대한 올바른 부처님의 가르침을 학습하고, 이해한 가르침을 삶속에서 잘 실천하고 닦아 완전한 행복에 이르자고 말하는 것이다.

스님의 깊은 원이 잘 전달이 되었던 것일까. 곽인순(80, 신심행) 불자는 1기부터 7년째 빠짐없이 행복선수행학교를 다니며 천지차이로 달라졌다고 소감했다. 

“우리 같은 옛날 사람들은 불교를 기복신앙으로 행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공부를 하니까 항상 어디에서나 화두를 찾게 되고 그래요. 옛날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는데 지금은 모르는 건 대답 못해도 아는 건 대답할 수 있어요. 그냥 선만 하면 모르는 게 많은데 교리를 배우면서 하니까 더 깊게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최순연(65, 법아) 불자는 수행학교에 다니는 것이 나 자신을 찾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수행이 따른 자의 강의를 들으니 그 가르침에 힘이 있어서 온 몸의 감각으로, 가슴에 직접 와 닿았다고 했다. 송종숙(57, 선정화) 불자는 교학과 참선을 함께 해보니 일상생활 속, 있는 그대로 그 자체를 보는 힘이 길러졌다고 표현했다.

“정말 내가 달라지는 모습을 봤어요. 교학 수업을 열심히 들었어요. 이론을 들었는데 어떻게 느껴지는지는 참선을 직접 해보지 않고는 모르겠더라고요. 참선의 느낌은 누구한테도 들을 수 없고, 전해 받을 수 없어요. 이론을 충분히 공부하면서 실참을 하니, 있는 그 자체를 바라보는 힘이 더 길러진 것 같아요.”

선시불심禪是佛心 교시불어敎是佛語. 선은 부처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 말씀이라는 서산 대사의 말이다. 부처님의 마음과 부처님의 말씀을 함께 아로새기며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상입상즉相入相卽하며 나아가는 것. 아마도 그것이 바로 행복선수행학교가 추구하는 지향점일 것이다. 

용두산 자락에 올라 미타선원의 행복선수행학교를 만나고 나니 뿌연 안개 가득 낀 숲길에 이정표가 하나 세워졌다. 마치 하늘에 가득 찬 구름 틈 사이를 비집고 빛살이 쏟아져 내리듯, 이정표가 환하게 길을 가리켰다.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