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공부한다면, 반드시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상원사 용문선원 선원장 의정 스님

2015-06-13     불광출판사

 


2시간 거리다. 경기 양평 상원사 용문선원은 서울 조계사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도심에서 마음을 내면 한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다. 부처님 당시 기원정사도 그러했다. 사위성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거리다. 이른 아침 먹고 출발하여 오전 9시에 도착했다. 용문선원 선원장 의정 스님. 1973년 출가 후 지금까지 선문禪門에 머물고 있다. 제방의 수좌스님들이 정진하면서 의문이 생기면 한번쯤 찾아뵙는 선지식 중 한분이다. 마침 이날 타지에서 온 수좌스님 한분이 스님께 점검點檢을 받고 있었다. 

| 후배들을 위해 편찬한 『선원청규』
선가에서 납자는 수행정진하면서 때때로 선지식을 참방하여 자신의 공부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묻고, 지도를 받는다. 오늘날 한국불교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이처럼 공부하는 이들은 스스로 선지식을 찾는다. 여러 가지 경계의 문제, 병통에 대처하는 방법, 참구를 보다 내밀하게 하는 것을 묻는다. 진리와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다. 선지식과의 일대일. 이 공간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 

선원 앞마당에서 기다렸다. 용문선원 앞마당에서 내려다본 안대는 풍수지리상 청룡과 백호가 겹으로 펼쳐있어 최고의 지형이라고 한다. 핸드폰이 울린다. 스님이다. “예, 됐습니다. 이제 오세요.” 스님께 일 배를 드리고 마주 앉았다. 스님은 10년도 더 지난 냉장고 냉동칸에서 은박지로 싼 연잎차를 꺼냈다. 스님은 인터뷰하는 것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선禪을 좀 더 대중들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색하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고 뜨덤뜨덤 말했다. 

“현대인들은 합리적인 시스템 속에서 교육을 받았어요. 옛날에는 선지식을 믿고 공부했는데, 지금은 스스로 이해를 해야 공부합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화두’만 해라, 하면 못하죠. 스스로 이해해야 신념도 생기고 공부하죠. 선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일생동안 꾸준하게 할 수 있죠. 그렇지 않으면, 혼란스럽고, 여기 저기 선방만 기웃거리게 되요.”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선원생활 규범인 『선원청규禪院淸規』 편찬위원장을 맡아 4년간의 작업을 거쳐 2010년 11월 세상에 내놓았다. 선원의 구성과 체계에서부터 안거와 수행체계, 보청, 대중생활, 예경, 수행생활, 복지, 장례, 생명나눔 등 선원 생활의 모든 것을 규범화하였다. 이 시대의 『백장청규』인 셈이다. 백장 스님이 청규를 제정하여 선농일치禪農一致, 자급자족으로 선의 독자성을 강화해 나간 것처럼, 『선원청규』의 편찬은 한국선韓國禪의 공동체성을 염원하는 노고가 담겨 있다. 

“『선원청규』는 후배들을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구참수좌들이 먼저 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선원에서는 보청(普請. 전체 대중이 균등히 생산노동에 힘쓰는 것)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어요. 구참수좌들이 모여서 함께 청규가 만들고, 그 청규를 지켜가자고 했죠. 가정 먼저 청규를 만들면서 토론했던 스님들이 각자 처소에서 보청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를 열 가지로 강령화시켜서 각 선원에 배포했습니다. 앞으로는 점차 청규를 지키는 곳이 많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백장 스님도 10년 정도 지나가서 청규가 안정되었는데요. 차근차근 노력하면 전국의 선원이 청규에 준해서 운영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죠.”

『선원청규』 편찬은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근대 한국불교 이후 최초의 청규집이다. 이 청규 이전에는 『백장청규』에 준해서 각 선방에서 운영되었다. 이 『선원청규』는 현대사회에서 선원 수좌들이 어떻게 선원에서 생활하는지 세세한 부분까지 담았다. 독거노인 돌보기, 장애우 돕기, 생태교육 등도 『선원청규』에 있다. 현대에 맞게 규범화시킨 것이다. 


| 초심자는 선지식 인연을 찾아라
- 『선원청규』 보청법을 보면 현대화된 보청이 많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보청을 현대화시켰죠. 옛날에는 논밭에서 일하는 것이 보청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달라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독거노인을 돕거나, 봉사활동 하는 것 등 현대에 필요한 것을 행하는 것도 보청입니다. 물론 아직도 선원에서는 농사가 중요한 보청 중에 하나입니다. 결제 때에는 용문선원에서도 하루 1시간 보청을 합니다. 봉사활동도 하고, 농사도 하죠. 보청을 통해 좌선坐禪과 동선動禪을 겸하는 것이죠. 이 모습을 보면 많은 신도들이 감동받기도 해요. 대중들이 전체 도량을 가꾸니까요. 직접 일하는 모습을 보면 신심도 나죠.” 

- 일반적으로 선禪은 좌선을 떠올리는데요.  

“선에서 오래 앉아 있는 것만 하면 좌착坐着이라고 했어요. 좌선에 집착하는 것이죠.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이 선이죠. 그래서 선은 현대인에게 맞는 수행법입니다. 대혜 스님이나 백장 스님도 좌선과 동선을 겸해서 했어요.”  

- 일반 불자들은 동선을 어떻게 해야 하죠?

“단순 노동이 동선하기에 쉽습니다. 농사가 대표적이죠. 도심에서는 걸을 때도 좋죠. 설거지 할 때도 좋고. 또 앉는 것도 중요합니다. 좌선을 하루에 잠깐이라도 하면, 그 힘으로 동선이 가능하죠. 반복하고 습관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몸에 익어야 하죠.” 
- 선禪을 처음 공부하는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예부터 어른스님들은 수행할 때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선지식善知識, 도반道伴, 수행환경이죠. 특히 선지식이 중요합니다. 혼자 공부하면 바른 길로 갈 수 없습니다. 꼭 곁가지로 빠지게 됩니다. 변마장辨魔障입니다. 옛날부터 공부하다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견병知見炳 걸린 사람이 많습니다. 장님이 대중을 이끌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반드시 선지식에 의존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지견병은 유사 깨달음이죠. 공부하는 과정에서 올 수 있는 병입니다. 스승 없이 공부한 사람은 이를 잘 알지 못합니다. 덜 익은 상태에서 익었다고 하는 설도인道人이 됩니다. 선지식을 만나도 발 아래로 보입니다. 탁마가 안 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 초심자들은 선지식 인연을 찾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너무나 중요합니다. 일반불자들도 반드시 처음의 화두는 선지식에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반드시요?

“예, 반드시.”

- 최근에는 선지식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결제 중에서 점검하는 스승이 없고, 또 점검받으려는 수좌들도 없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선은 수시로 점검받고, 경책받고, 잘못된 지견이 생기면 고쳐주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근자에는 선지식이 점검해주는 전통이 많이 깨졌습니다. 공부의 정도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점검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많이 사라진 것이죠. 이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우리 구참 수좌들이 『선원청규』를 편찬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청규에 간화선 수행법을 간추려 담았습니다.” 

- 당송 시대의 화두가 오늘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 21세기에 맞는 화두가 나와야 하지 않는가, 이런 비판이 있습니다. 우리시대에 맞는 언어로 화두를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맞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간화선이 현대에 맞게 업그레이드가 된다면 현대생활에 맞는 화두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요즘에 맞는 가장 맞는 화두는 ‘이 뭐고’입니다. 이것은 세월을 초월해서 인간의 영원한 의문입니다. 나의 본체를 안다는 것은 현대도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래자리를 밝히는 문제는 시대 이전의 문제인 것입니다. 시대를 초월해 있는 것이죠. 화두를 너무 쉽게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진리의 명제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 모든 사찰을 공공화시키는 것이 필요한 이유
- 현대인들은 이해를 해야 움직입니다. 일단 해봐라, 하는 말씀은 잘 안 들립니다. 선을 하면 뭐가 좋은지 이해되어야 하는데요.

“현대인들이 선을 하면 첫째, 직관력이 생깁니다. 둘째는 창의력이 생기죠. 이 두 가지는 선을 하면 나타나는 특이한 경계입니다. 모든 사물을 가감없이 보게 됩니다. 또 새로운 것을 계속 창출해 냅니다. 예를 들면 옛날에는 통계로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통계만으로 안 되고 직관력이 결합되어야 사업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 예들은 많습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관견管見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관견은 대나무통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기가 배운 것만큼 이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선은 이 관견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있는 사람은 선지식을 자기 스승으로 둡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스승을 찾습니다. 마치 병이 있는 사람이 자신만의 주치의를 두는 것과 같죠. 인간의 병 90%는 스트레스입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참선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을 두고 스트레스 충격을 주었더니 10%~20%까지 차이가 났습니다. 이 수치는 큰 차이입니다. 정신질환 치료에 선이 중요한 것이죠. 특히 현대인들에게는 선이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한국불교에서 계율문제는 오랜 숙제입니다. 특히 선가에서는 계율문제를 잘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의 윤리 문제는 잘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본래 선가는 계율을 많이 이야기하지 않아요. 옛 스님들은 ‘왜 선에서는 계율에 대한 말씀이 없느냐?’는 물음에, ‘불교는 본래 계정혜 삼학이다. 그런데 선에서는 정과 혜는 이야기를 해도, 계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행하는 사람은 계율이 안 지켜지면 선정이 안 된다. 계는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세요. 계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죠. 참선하려면 반드시 계행을 지켜야 하는 것이죠. 선이 잘 안 된다는 것은 계행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죠. 이는 역대 스님들의 공통적으로 말씀하고 계세요. 계행의 그릇이 있어야 선정의 물이 고이고, 하늘에 달이 뜨는 것이죠.” 

- 윤리는 삶의 외형적 모습인데요. 선 수행자들의 삶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야 하죠? 실제 지금 한국불교에서 선 수행자의 삶의 모습에 부정적인 시선이 많습니다. 

“해제가 되면 수좌들이 대부분 토굴로 가요. 대중생활이 깨지고 있다는 겁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2,300여 명의 수좌들이 해제가 되면 1,000여 명은 토굴로 갑니다. 대부분 개인 토굴이죠. 사찰에 객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납자들이 해제가 되면 쉴 곳이 없고, 짐 놓을 곳이 없어요. 아는 사람이 아니면 사찰에 머물 수가 없어요. 그러니 여관에 머물죠. 경제적 여건이 되면 토굴을 만들고 거기에 머물죠. 대중생활이 안 되고 있습니다. 토굴문화가 종단에 큰 폐해를 주고 있어요. 세속화가 깊숙이 들어와 있어요.”

- 한국불교의 근간인 선방에 세속화가 깊이 들어와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인데요. 수좌스님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죠?

“납자가 아프면 갈 데가 없습니다. 종단에서도 지금까지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죠. 그래서 선원수좌복지회를 만들어서 이런 납자들을 지원하려고 한 거죠. 작년에 의료비 등으로 68명을 지원했습니다. 또 나이가 많으면 갈 곳이 없어요. 제일 많이 가는 곳이 시골집이나 시골 아파트에 갑니다. 싼 곳으로요. 돈이 없으니까요. 평생 선방에 있었던 분들은 돈이 없어요. 평생 수행했던 경험이 단절되고…. 비구스님보다 비구니스님이 더합니다. 모 사찰 복지원에는 납자스님들이 많은데요. 돈을 많이 내면 1인실을 주지만, 적은 분은 작은 공간에 3~4명이 살고 계세요.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수행하러 출가하겠어요. 나이 많은 수좌스님들을 모실 수 있는 공간을 우선 만드는 것이 필요해요. 선원수좌복지회에서 먼저 이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 대중생활이 깨졌기 때문에 토굴이 증가하고, 이는 또다시 대중생활을 깨지게 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 같은데요.   

“안타깝지만, 지금은 그렇죠. 종단에서 적극적으로 이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우선수좌회가 이를 회복하려고 합니다. 수좌스님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토굴 만든다고 야단하지 마시고, 해제 후에 갈 곳을 만들어 달라. 갈 곳이 없다.’ 지금 산철 결제를 하는 곳이 전체 150여 명 밖에 없어요. 나머지 토굴도 없는 분들은 어디 가겠어요? 떠도는 것이죠. 가슴 아픈 일입니다.” 

- 결국 사찰을 공공화시키는 것이 필요하겠네요. 

“예. 그렇죠. 정말 필요합니다. 아까 이야기했지만 불교는 선지식, 도반, 수행환경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수행환경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좋은 인재가 나올 수 있겠어요. 많은 분들이 힘을 모아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스님이 선원청규 편찬위원장을 마치고 다시 선원수좌복지회 대표이사를 맡은 것도 이런 책임성 때문이다. 선의 대중화 문제도 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상원사에 일반 불자를 대상으로 선을 강의하고 지도하는 장도 열었다. 구참 수좌스님들과 함께 작년 가을 ‘제1회 간화선 단기안거’도 열었다. 호응이 좋다. 올해 가을에는 제2회를 열 예정이다. 직빡구리 한 마리가 창문을 부리로 두드렸다. 스님은 익숙한 듯 창문을 열고 해바라기 씨를 손에 올려줬다. 그러자 거리낌 없이 손 위로 올라와 먹이를 물고 봄 하늘로 날아올랐다. 인터뷰가 끝날 때 스님은 선의 특징이 직관성, 창의성과 세 가지가 더 있다고 했다. 혁명성, 일상성, 진리성이다. 특히 선의 혁명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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