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식과 무게

2015-06-13     불광출판사

우리는 죽을 때까지 새로운 날들에 적응해야 한다. 익숙하지만 낯선 새날들 말이다. 하루하루가 수월하게 흘러가기도 하고 어려운 난관에 부딪치기도 한다. 우리네 중노릇도 만만치 않다. 어떨 땐 어려운 일도 쉽게 선택하고 결정하지만, 또 어떨 땐 너무 낯설어서 쉬운 일도 해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 하기 어려운 일
어릴 적, 어머니는 내게 불만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그것이 칭찬이 아니라는 사실은 내 진작 알았다. 아버지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고, 우리 집 말썽쟁이였기 때문이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했던 아버지. 가족을 힘들게 한 분이셨지만, 유일하게 단 한 가지, 내가 그분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다. 

사나이 중이 사나이였던 아버지는 병고로 돌아가실 즈음까지 앓아누웠던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건강한 체질이셨다. 그런데 내가 아주 어릴 적,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쓰러진 일이 있었다. 아랫집 할머니가 염소들 풀 먹이러 우리 집 앞산에 올라갔다가 독사에게 물렸는데, 고함소리를 듣고 달려간 아버지가 허리띠를 풀어 할머니 다리를 묶어 응급처치를 하고, 물린 곳을 입으로 빨아 독을 뽑아낸 후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응급처치 덕분에 할머니는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었고, 금세 회복해 퇴원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며칠 동안 퉁퉁 부은 채로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계셨다. 병원처방을 받고도 이주쯤 지나서야 겨우 회복세를 보였다. 서울 산다는 아랫집 할머니 자식들이 줄줄이 내려와 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명절 때마다 우리 집에 인사를 왔던 것 같다. 그렇게 여러 차례 고개를 조아리는 손님들을 보며 아버지 곁에서 나는 마냥 우쭐해졌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집에 찾아온 동네 사람들도 걸핏하면 그 얘기를 꺼내며 쉽지 않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곤 했다. 허풍이 심하면 심했지 결코 겸손하지 않은 아버지인데도, 그 칭찬 앞에서만큼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노릇을 하며 살다보니 그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기 어려운 일들 말이다. 남을 돕는 일 뿐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원칙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수록 당연한 일들이 때론 더 어려울 때가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 나는 스님이 되었고,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언젠가 집에 갔더니 아버지께서 소주 한 병을 들고 터벅터벅 들어오셨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마지막 남은 친구가 떠나 초상집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내가 죽으면 누가 날 위해 염을 해 주냐. 이제 다 떠나가서 나를 보내 줄 놈이 하나도 없네.”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내가 해드릴 테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다. 마음이 짠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렸다. 염을 한다는 것이 대체 어떤 일인지도 모르고.

아버지는 더 이상 예전의 그 호탕한 남자가 아니었다. 버석버석한 모습은 말 그대로 초라한 촌로일 뿐이었다.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자식들을 못 먹고 가난하게 만들고, 터무니없는 집착과 욕심으로 자기중심적인 가장이었다. 과거의 그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아버지가 훌륭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인간다운 의리’를 지킬 줄 아는 분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아가신 뒤, 약속대로 아버지를 잘 닦아 수의를 입혀드렸다. 그야말로 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순수하게 아버지와의 약속, 우리 둘만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교통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사람과 결혼해서 오랜 노력 끝에 시험관 아기를 낳았다는 부부 얘기를 보았다.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에야 당연히 예쁜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었겠지만, 사고 후에도 변함없는 사랑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테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했을 테니까 말이다. 보통은 아름다웠던 사랑에도 금이 가기 마련일 터, 그런데 오히려 더 깊어지고 넓어진 두 사람의 인연을 보며 그 숭고한 사랑에 하루 종일 마음이 따뜻해졌다. 간혹 나이든 부부들이 오랫동안 같이 살면 사랑이 아니라 의리로 사는 거라던데, 문득 사랑이 없는 의리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나 해야 할 일
기분이 좋을 땐 인생이 뜻대로 흘러간다 싶다. 하지만 대부분은 원치 않는 모습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삶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여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다.
 
태어나 다섯 달 되었을 때, 절집에 오게 된 우리 절 꼬마가 얼마 전 머리를 깎았다. 어려서부터 인정스럽기가 어른 같았던 아이다. 타향살이를 오래 하는 나를 볼 때마다, 쪼그만 것이 지가 뭐라고 밥 잘 챙겨먹으라는 걱정을 해주곤 했다. 어려서는 오줌을 못 가려서 얼마나 꾸중을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울음 끝이 짧아 사랑을 많이 받았다. 쥐방울만한 게 나를 보고 “행님~” 하고 부를 땐, 늘 함박웃음이 터졌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중학교 다닐 때도, 고등학교 다닐 때도 “넌 나중에 뭐가 될래?” 라고 어른들이 물으면 “전 출가할래요.” 라고 대답했다. 물론 기특한 대답이지만, 그렇게 말해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출가는 머리를 깎아봐야 아는 거니까. 깎기 전에는 백 번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스님들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머리를 깎고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1년 전 내가 물었을 땐 자기 미래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대답을 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그래도 자기가 걸어갈 길을 정함에 있어선 확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도 그랬지만, 절에서 크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이 빚을 갚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 같다. 부처님과 키워주신 스님들의 은혜 말이다. 열아홉, 어린 나이라 어른들보다 이기심이 덜한 편이기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어차피 살아갈 인생, 자기가 원하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이 있을 텐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출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리라. 아마도 마음속엔 아직 많은 미련들이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스토아학파였던 철학자 세네카가 ‘삶의 방식’에 대해 이미 2천 년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판단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칭찬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좋아 보이지만, 진정 칭찬하고 원할 만한 것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길이 좋은지 나쁜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길에 난 발자국이 얼마나 많은지에만 매달립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사람의 발자국은 하나도 없습니다.”
-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중에서 

발자국이 많이 난 곳으로만 가야만 정상인 것처럼, 순조로운 것처럼 판단한다는 내용이 지금의 현실과 2천 년 전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 출가의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이 풍족한 세상에서 한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자리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니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진한 열정과 푸른 신심으로 출가한 사람도 많이 계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현실을 직시한 연후에 출가를 결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바로 과거에 내가 그랬고, 지금은 무엇보다 잘한 선택이라 확신한다. 이제 곧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온다. 출가자에겐 생일이나 명절보다 더 정확하게 세월의 흐름을 인지시켜주는 날이기도 하다. 자부심으로 활짝 어깨가 펴지는 날이기도 하고. 

이제 막 출가한 저 행자도 이 ‘부처님 오신 날’을 몇 번쯤 맞이하고 나면 머지않아 출가자의 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자리 잡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달라져야겠지?

인생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의 인생에서 조금 떨어져 방관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인생 앞에 놓인 일들을 적극적으로 마주하며 대처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외면한 채 피하려고만 할 것인가.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제켜두고라도, 앞으로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제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


원영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계율과 불교윤리 분야). 운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선원 안거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2008년 「대승계와 남산율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대승계의 세계』, 『계율, 꽃과 가시』, 『인생아, 웃어라』 등이 있다. 현재 BBS불교방송 ‘아침풍경’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앙승가대학교 외래교수로서 강의와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