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선생님, 무지無知의 선생님

우치다 타츠루 『스승은 있다』

2015-06-13     불광출판사

‘교권이 실추되었고, 진정한 스승은 없어졌다’는 탄식을 요즈음 그리 어렵지 않게 듣는다. 또 우리 교육의 암울한 현실이 쉽사리 개선될 것 같지 않다는 우려 역시 흔하다. 그런 와중이라 『스승은 있다』라는 제목은 사뭇 흥미롭다. 더구나 책의 원제가 『선생님은 훌륭하다(先生は偉い)』라는 사실을 알면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 지금처럼 교육 환경이 나빠지고, 참된 스승을 찾기 어려워졌다라고 걱정하는 마당에 스승은 있을뿐더러 훌륭하기까지 하다니. 저자는 왜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일까? 우리와 달리 일본에는 여전히 훌륭한 스승이 많다는 의미일까. 

| 스승을 찾아내는 첫 걸음
책의 결론을 미리 말하면 이러하다. 우리가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찾게 되면 스승의 의미 역시 재정립될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훌륭한 스승을 찾기 이전에 교육의 참된 의미를 꼼꼼하게 되짚어 보자고. 저자 우치다가 보기에 무엇보다 교육은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양자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를 파악하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또 교육이라는 현상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학생’이 어떤 존재인지가 분명해져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팔정도八正道에서 그 첫 덕목 역시 ‘올바르게 볼 것(正見)’이 아니던가. 

배우는 자, 즉 학생이란 누구인가. 우치다는 인간의 발전 가능성을 믿는 낙관주의자이다. 그는 “아이는 반드시 성장한다. 모든 아이의 내면에는 잠재된 풍부한 가능성이 지긋이 개화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라는 확고한 입장을 취한다. 우리 모두는 그야말로 배움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은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것, 배우고 싶다고 바라는 것만” 배우게 된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즉, 학생의 배우려는 욕망이 가장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저자는 “인간은 배울 수 있는 것”만 학습하며, “배우는 것을 욕망하는 것밖에 배울 수 없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배우려는 욕망이 학습에서 으뜸가는 요소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일어나는 배움이라는 사건에서 학생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견해를 반영한 것이다. 학생에게 무한한 배움의 가능성이 갖추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배우려는 욕망으로 발현시키지 않는다면 배움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점이 또 있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전제로 한 배움”이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이란 교사와의 만남을 통해 학생들이 저마다 품은 배움의 욕망을 실현시켜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체의 과정을 뜻한다. 이처럼 학생의 입장에서 “배움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스승을 찾아내는 첫 걸음이다. 


| 진정한 대화는 미지의 영역에 도달한다
이런 전제 위에서 저자는 학생과 교사 사이의 상호 작용을 더욱 자세하게 살핀다. 저자는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구현하는 창조의 장이 교육이라고 본다. 그 점에서 교육은 상호 작용이며, 그 핵심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대화’이다. 그런데 진정한 대화란 그 진행 방향과 도달점을 어렴풋하게 짐작은 하지만, 완전히 알 수 없다는 데에 그 묘미가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즉, 교육이라는 상호작용을 통해 교사와 학생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과 앎에 도달해야 한다. “상대방은 대화가 끝날 때까지 당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고, 또 반대로 상대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당신은 모른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이 점을 지적한다. 요컨대 교사와 학생 모두는 교육이라는 상호 작용을 거쳐, 그들에게 앎의 기쁨을 주는 미지의 차원으로 가 닿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진심어린 경청과 배려는 불가결하다. 우치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진심으로 바라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거기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둘 중 누구도 아닌 그 누군가입니다.” 또 저자는 대화에 바탕을 둔 학습 결과를 이렇게 요약한다. “기분 좋은 대화에서 말하는 측은 말할 생각이 없었지만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을 말했다는 성취감을 느낍니다. 또 듣는 이는 들을 생각이 없었지만 전부터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었다는 만족감을 느낍니다.” 대화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두 사람이 ‘말하고 싶었던 것’과 ‘듣고 싶었던 것’을 알게 되는” 창조적 계기로서의 교육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즉, 제대로 된 교육이란 학생과 교사 모두를 양자의 상호 작용을 통해 그들 모두를 알려지지 않았던 제3의 지점으로 옮겨주어야 한다. 

이런 교육이 이루어졌을 때, 다시 말해 상호 존중에 근거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양자 모두 예기치 않았던 인식의 차원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깊은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신경을 써주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고, 역으로 무시하면 점점 생명의 불꽃이 약해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그래서일까. 저자 우치다는 “소통의 진정한 목적은 메시지의 정확한 전달이 아니라 메시지를 주고받는 그 자체”라고까지 주장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 스승을 애타게 찾을 필요가 없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현대 사회에 접어들어 중요해진 정보의 습득을 간과하자는 태도는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입장은 교육의 본질적인 측면을 회복하자는 호소이다. 그런 이유로 우치다는 배움의 이유가 “만인을 위한 유용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교육의 참된 목적이란 “자신이 이 세계에서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 구현이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주장은 효용성을 강조하는 요즘에 그야말로 구태의연하게 들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승’이라는 단어가 풍겨내는 향취를 그 어느 때보다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가르침을 통해 제자의 본질적인 가치를 구현해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의 스승 말이다. 

이런 입장에 설 때 배움은 끝이 없는 과정이 된다. 저자의 말처럼 “이걸 할 수 있으면 된 거야.”와 “배움에는 끝이 없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배움의 끝이 없다는 점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저자는 ‘수수께끼 선생님’ 혹은 ‘무지無知의 선생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뭘 몰라서 무지한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즉 그들의 앎이 미치지 못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선생님을 뜻한다.

‘뭐가 뭔지 잘 모를 사람’ 혹은 ‘일종의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로 둘러싸여 있는’ 선생님이야말로 학생들에게 순연한 배움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학생들은 이런 선생님을 일종의 거대한 수수께끼로 느끼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무한한 가르침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참된 교사란 학생들에게 미지의 앎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알려주는 표식과도 같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학생들로 하여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채워지지 않음’을 뼛속 깊이” 느끼게 만들어 그들의 마음과 태도를 바뀌게 만들 수만 있다면 좋은 선생의 자격은 충분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학생이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배울 수만 있다면 이른바 “반면교사反面敎師”도 당연히 훌륭한 교사이다. 

우치다의 얘기는 이러하다. 선생님이 가진 뭔가 “허한 느낌”이 진정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전달되어 학생 스스로가 알아야할 무엇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느끼고, 배움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일으킨다면 교육의 본질적인 목적은 달성된다는 것이다. 즉, 학생이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고, 배우려는 욕망을 부리면 주변의 모든 사람과 사건,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경험은 스승이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스승을 애타게 찾을 필요가 없다.

『스승은 있다』라는 책은 스승이란 우리 속의 배움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존재라는 사실을 거듭 끈기 있게 알려준다. 그래서일까. 교육의 본래 모습(眞面目)을 잃어버린 탓에 그 어느 때보다 교육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오랫동안 망각되었던 귀한 통찰을 전해준다. 항상 우리 곁에 있었던 소중한 스승처럼.


성해영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 종교체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 석사학위, 미국 라이스 대학에서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문명의 교류와 충돌』, 『생각해 봤어?:인간답게 산다는 것』 등이 있고, 역서로 『문명 속의 불만』이 있다. 「신비주의란 무엇인가? : 개념에 대한 오해와 유용성을 중심으로」 등과 같은 신비주의와 종교 체험에 관한 논문을 주로 저술했다.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